•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6월의 전설을 12월 대망으로?

415
등록 : 2002-06-26 00:00 수정 :

크게 작게

월드컵 4강으로 대선출마 터닦은 정몽준 의원의 신당 창당 프로젝트

사진/ 월드컵을 밑거름 삼아 대선출마를 준비하는 정몽준 의원. 최근 축구대표팀 선전에 힘입어 국민 지지도가 크게 올랐다. (이용호 기자)
“한국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4강에 들면 정몽준 의원이 히딩크 감독의 인기를 발판으로 ‘축구당’을 결성한다. 정 의원은 대선에 출마하고, 히딩크 감독은 축구당의 총재가 된다.” 인터넷에서 나도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한국 정치판에서 일부 현실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축구당’은 아니지만 2002 한·일 월드컵공동조직위원장인 정몽준 의원(무소속)이 신당 창당을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들이 속속 감지되기 때문이다. 정 의원의 신당 창당이 이뤄질 경우 한국 축구대표팀의 눈부신 축구성적에 상당부분을 빚지게 될 것임은 분명해보인다. 물론, 어디까지나 축구는 축구고, 정치는 정치다. 하지만 한국팀의 축구경기가 열릴 때마다 거리로 쏟아져나왔던 수백만 인파의 열정을 조금이라도 정치에 담아낼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환경신당 창당해 독자 대선출마”

정 의원의 정치적 비중도 한국팀이 거둔 축구성적에 비례해 올라간 것일까. 정치권에서도 정 의원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면서 신당 창당설에도 더욱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아직 신당 창당의 확실한 윤곽은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정 의원 쪽이 신당 창당을 위한 준비작업에 나섰음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월드컵이 끝난 뒤 대선출마 여부를 밝히겠다던 정 의원의 정치구상이 일단 신당 창당을 통한 독자적인 대선출마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얘기다.


정 의원과 함께 환경신당을 창당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 최열 환경운동연합 대표는 “월드컵이 끝난 이후 정 의원과 만나 신당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 등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월드컵 이전엔 자주 만났고, 월드컵이 시작된 이후엔 전화통화만 했다. 한국에도 이제는 환경정당이 필요하다는 데 폭넓은 공감대를 이뤘다. 월드컵이 끝나면 국민적 열기를 담을 수 있는 정당을 만들 것이다. 그런 열기를 끌어내는 펌프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초창기에 사심없는 훌륭한 사람들이 결단을 해서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가 그런 역할을 할 것이다.” 최 대표는 월드컵 이후 곧바로 신당 창당을 추진하느냐는 물음에 “내가 미리 할 얘기가 아니다. 그것은 내 몫이 아니라 정 의원이 해야 할 말이다”라고 비켜갔다.

정 의원과 가까운 한 인사도 “정 의원이 신당 창당 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은 상당히 오래됐다”고 전했다.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실무적으로 창당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정당생활을 했거나 정치권의 조직과 기획분야에서 일했던 사람들이다. 아직 캠프를 따로 차린 것은 아니지만 언제든 시기가 정해지면 곧바로 창당작업에 나설 수 있는 정도의 인력이 확보돼 있다.” 이미 창당 준비는 완료됐으며, 창당 지시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김동주 민국당 최고위원도 정 의원을 대선후보로 염두에 둔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새로운 정당 창당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정몽준 의원과 구체적인 얘기가 다 된 것은 아니다. 일단 월드컵이 끝나고 보자. 정 의원도 대선후보로 거론된다. ‘반이회창, 반김대중 세력’이 있고, 제3의 대안을 원하는 국민도 많다. 박태준 전 총리와 논의해 결정할 것이다.” 민국당 일각에서 추진하고 있는 신당 창당도 정몽준 의원의 신당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 의원의 행보에 따라 정치권에 다양한 파장이 일 수 있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실무진 활동 개시… 지지도 수직상승

사진/ '정몽준 신당'의 승패는 참여인사에 달려 있다. 지난 4월 대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코스타리카 대표팀의 평가전에 참석한 정 의원과 박근혜 한국미래연합 대표. (한겨레 김봉규 기자)
정 의원은 지난 92년 국민당 창당 당시 김동길·봉두완씨 등과 접촉하는 등 막후에서 창당작업을 주도했다. 지금은 자민련에 몸담고 있는 정우택 의원이 경제부처 관료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도 정몽준 의원의 영입에 따른 것이었다. 정몽준 의원과 정우택 의원의 형 정지택씨가 서울대 상대 동기생이라는 인연 때문이었다. 국민당 창당 당시 사무총장을 맡았던 이용준(전 노동부 차관)씨도 “정몽준 의원이 외부인사 영입 등 국민당 창당과정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고 회고했다. 실상 정 의원에게 창당경험이 있다는 얘기다. 한번 당을 만들어본 적이 있는 정 의원에게 신당 창당은 그다지 두려운 작업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치권에선 시내 한 빌딩에서 정 의원의 언론관리팀이 활동하면서 정몽준 대통령 만들기 계획인 ‘MJ 2002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는 설도 나돈다. 그러나 정 의원의 이달희 보좌관은 “정 의원이 대선캠프를 가동하고 있다는 소문은 근거 없는 낭설에 불과하다”며 “정 의원의 사무실은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과 광화문 신문로빌딩의 후원회 사무실, 울산 동구의 지역구 사무실 등 3곳뿐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월드컵 이후 정 의원의 국민지지도는 곧추 상승하고 있다. 5월까지만 해도 한 자릿대에 머물던 여론조사 지지율은 월드컵 이후 최고 18%대까지 치솟았다. 국회 의원회관에선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의 여론조사 결과도 화제에 올랐다. 민주당 비주류 일각에서 대선후보 교체론이 불거진 직후인 지난 6월15일 성인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였다. “민주당 후보교체시 교체인물로 누가 적당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정몽준 의원 21.9%, 고건 서울시장 12.4%, 이인제 의원 11.3%가 나왔다. 월드컵 성적뿐만 아니라 요동치고 있는 민주당의 복잡한 속사정도 어쨌든 정 의원의 정치적 운신을 폭넓게 해주는 셈이다. 정 의원은 대선출마의 조건에 대해 “여론조사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게 나오고, 선거법을 지킬 자신이 있다면 나가겠다”고 말한 바 있다. 주변의 정치적 여건이 정 의원의 대선출마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왕 회장의 아들에서 환경 정치가로

사진/ 정몽준 의원은 친환경적 정책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사무실에서 대회 준비 상황을 살피는 정몽준 의원. (이용호 기자)
정 의원이 추진하는 신당은 친환경 정책을 전면에 내세울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정 의원은 최근 “환경을 테마로 하는 신생정당이 만들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에도 독일의 녹색당 같은 정당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여기에선 환경보다는 개발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는 기업인 출신 정치가로서의 한계를 극복하자는 의도도 엿보인다. 최열 환경운동연합 대표도 “정 의원이나 나나 환경정당이 좁은 의미 환경정당 아니라 여성, 장애인, 인권, 사회적 약자, 평화, 바람직한 교육제도까지 포괄하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는 데 생각이 일치한다”고 전했다. 예전의 국민당 창당방식과 달리 정 의원은 창당과정에서 현대 쪽 인맥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정 의원과 가까운 한 인사는 “일부에서 알려진 것처럼 현대 쪽 인사들이 창당을 주도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 의원은 현대 쪽 인사들이 전면에 나섰다가 기업이 어려움에 처했던 국민당의 쓰라린 경험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고민의 이면엔 현대 인맥이 창당을 주도하는 것으로 비칠 경우 재벌 2세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작용한 것 같다.

신당을 만들 경우 참여인사의 면면에 승패가 달렸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인물들이 얼마나 합류하느냐가 성공의 열쇠라는 얘기다. 정 의원이 환경운동가 최열씨 등과 접촉한 것도 새 인물 찾기의 일환으로 보인다. 정 의원의 구상은 일단 신당을 만든 뒤 새로운 인물은 물론, 기존 정치판의 다양한 정치세력까지 아우르는 구심점으로 삼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기존 정당의 이탈세력을 흡수하고, 다양한 정치세력과 연대하기 위해서도 일단 신당을 만들어놓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대선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앞두고 있지만 정치판에서 소외된 다양한 정치세력들을 신당에 모아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소수지만 송석찬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정 의원을 영입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자민련에서도 정우택·송광호 의원은 지난 92년 국민당을 함께한 사이다.

동참인물이 관건… 거품인기 편승 지적도

사진/ 지난 3월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한·일 청소년 친선경기를 관람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정 의원과 노무현 민주당 후보. (한겨레 김봉규 기자)
신당 창당은 결국 대선출마를 노린 사전 포석이다. 정 의원이 대통령에 출마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오래됐으며, 그 의지 또한 확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버지가 못다 이룬 꿈 때문일까. 대통령에 대한 현대가의 집착을 보여주는 일화 한 토막. “97년 무렵이다. 당시 정세영 회장이 집으로 나를 불렀다. 도착했더니 현대가의 형제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며느리들까지 있었다. 내게 그 집안 모든 자손들의 사주와 사진을 내놓고 ‘우리 집안에서 대통령이 나올 것 같으냐’고 물었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여류 역술인의 얘기다. 현대가의 대통령 배출에 대한 의욕이 만만치 않다는 방증이다.

한국팀이 아무리 빛나는 성적을 거둔다 해도 그의 대선행보가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니다. 넘어야 할 고개도 많다. 체육인이자 정치인이기에 앞서 그는 아직도 정주영 회장의 아들로 인식된다. 재벌의 정치참여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그가 넘어야 할 첫 번째 고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대선을 노리는 정치인으로서 ‘재벌의 아들’이라는 것이 약점이 아니냐”는 물음에 “기업은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좋은 경험이다. 약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다른 기업들의 따가운 시선도 문제다. 현대와 경쟁관계인 한 그룹의 임원은 “기업 쪽에선 정 의원을 독립적인 정치인 이전에 현대가의 자제로 본다. 다른 기업들이 그의 대선출마를 달갑게 볼 리가 없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이에 대해 “(내가 대통령이 되면) 정경유착이나 정경대립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의 정치적인 리더십도 아직 최종적인 시험대를 통과한 것은 아니다. 4선의 중진의원이지만 대부분 무소속의 ‘단기필마’로 활동해온 탓이다. 그가 체육인으로서 발휘한 리더십과 정치적인 리더십을 동등하게 평가해야 할 근거는 없다. 이는 그가 정치 현안에 대해 나름의 소신을 보였지만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내거나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데서도 기인한다. 그의 대중연설이나 텔레비전 토론능력엔 아직 의문부호가 따라다닌다. 상승추세를 보이는 그의 여론지지도가 거품인지 실체인지도 아직은 불분명하다. 한국팀이 꿈의 성적을 이루면서 나온 반짝인기인지, 아니면 그의 리더십을 평가해서 나온 것인지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퍼블릭 서비스에서 정치로 가는가

정 의원이 준비하는 신당이 월드컵에서 표출된 국민의 엄청난 에너지를 흡수해서 탄탄한 정치적 기반을 잡을 것인지, 아니면 또 하나의 ‘벤처신당’으로 끝날지는 속단할 수 없다.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정 의원이 지난해 펴낸 <일본에 말한다>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같은 책에서 그는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치를 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퍼블릭 서비스(public service)를 하기 위해 출마하는 것이다. 선거는 정당이 당락을 결정한다. 그러나 퍼블릭 서비스엔 정당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그랬던 그가 지금 새삼스럽게 정당을 만들려고 하는 이유는 이제야말로 퍼블릭 서비스가 아니라 정치를 해보겠다는 것은 아닐까?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