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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8.1% 득표에 고민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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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6-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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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당으로 떠오른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대표… 대선후보 선출 과정서 기득권 고집 안해

사진/ 다수 후보들이 출마 지역에서 정당지지도보다 적은 표를 얻었다. 민노당이 추구하는 대의에는 공감하지만 그것을 담아낼 세력이나 인물로서 민노당을 믿지 못하는 것 아닌가. (이정용 기자)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는 아주 신중했다. 언론은 민노당이 6·13 지방선거에서 얻은 8.1%의 정당지지율에 큰 의미를 부여했지만 그는 좀 달랐다. 6월16일 여의도 민노당 사무실에서 만난 권 대표는 “8.1% 정당득표로 민노당은 더욱 곤궁해졌다”고 주장했다. “적극 지지세력인 조직노동자들은 더 강력한 대변자 역할을 주문하겠지만, 8.1% 안에는 좀더 유연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달라는 요구가 혼재돼 있다”며 “상반된 요구를 어떻게 조화시키냐에 따라 한계에 갇힐 수도, 한 단계 도약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진보진영이 올 12월 대선에 출마할 단일후보 선출 경선에 합의한다면 민노당은 기득권을 포기하겠다며 ‘단일한 대선후보를 추대하기 위한 범국민적 추진기구’ 구성을 제안했다.

조직노동자와 대중의 상반된 요구

이번 선거 결과에 나타난 유권자의 뜻은 무엇인가.


우리 서민은 이렇게 어렵게 사는데 대통령 아들까지 포함된 정권의 부패가 왜 이리 심하냐. 그에 대한 반발 심리가 제일 강했다.

한나라당의 부패정권 심판론에 유권자들이 공감했다는 뜻인가.

한나라당이 잘해서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국민에게는 선택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이회창 후보가 부패정권 심판을 얘기했지만 한나라당이야말로 부패정권의 원조다. 그들이 어떻게 부패정권을 심판하나. 그럼에도 국민은 현 시점에서 부패한 이 정권을 어떻게든 심판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표현방법은 한나라당에 표를 던지는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그게 아니면 결과를 설명할 길이 없다.

민노당이 얻은 정당지지율 8.1%를 어떤 의미로 해석하나.

민주당에 경고를 보내고 심판은 해야 하는데, 한나라당은 도저히 찍을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 이도저도 아니라면 이번에는 진보정당을 한번 키워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사람도 있다. 진보정당 기본 조직표가 포함됐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런 요인들이 한데 어우러진 결과다.

민주당이 죽쑤면서 반사이익을 얻은 측면도 있는 것 같은데.

민주당 후보가 맘에 안 들어 정당지지를 민주당으로 연결하지 않고, 차라리 민노당이나 키워주자고 움직인 유권자도 좀 있을 것이다. 사실 민노당에 온 표는 여러 요소가 혼재돼 있다. 철저하고 냉정하게 분석해야만 당의 진로를 정확히 설정할 수 있다. 축하 인사는 고맙게 받아야 하지만 거기에 빠지면 아무것도 안 된다.

어쨌든 8.1% 득표는 상당한 성과임에 틀림없는데.

사실 8% 이상 정당득표를 하면서 민노당은 더욱 곤궁하고 어려워졌다. 적극 지지세력인 조직노동자들은 지금 절망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당연히 그 목소리를 대변하고 집회현장 등에서 함께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다면 “민노당 너희가 기성정당과 다른 게 뭐냐”고 외칠 것이다. 그러나 좀더 유연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 국민 다수를 지지자로 끌어들이라는 요구도 분명히 있다. 두 상반된 요구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가 최대의 고민거리다. 이 숙제를 풀지 못하면 민노당은 일정한 한계 속에 갇히게 될 것이고, 잘 해결하면 대도약을 할 수도 있다.

부산은 예외지만 이문옥 서울시장 후보를 비롯한 대다수 후보들이 출마 지역에서 정당지지도보다 적은 표를 얻었다. 민노당이 추구하는 대의에는 공감하지만 그것을 담아낼 세력이나 인물로서 민노당을 믿지 못하는 것 아닌가.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서울시장을 예로 들면 이명박·김민석 두 후보가 예측 불허의 대결을 펼치는 상황이었다. 그 속에서 우리에게 올 표가 없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쟁점 없이 사생결단식으로 대결하면 제3당으로 빠질 표가 별로 없다. 그게 우리 당 고민이다.

분기별로 1억3천여만원의 정당보조금을 지원받게 됐다. 돈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기성정당은 국고보조금을 당 운영 경비로 쓴다. 국고보조금은 분명 정책개발에 쓰라고 준 돈이다. 우리는 토론회를 통해 정책을 개발하고 알리는 데만 쓸 것이다.

사용내역 세부내용 공개도 가능한가.

당연히 공개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당원들이 용납하지 않는다. 민노당은 국고보조금을 받기 전부터 당 운영과 재정의 투명성을 강조해왔다.

보조금으로 정책 개발… 범국민 후보 선출

‘8·8 재보선’은 중대한 고비다.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 국민이 어떻게 평가하든, 재보선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세력이 막강하다. 동원된 조직표 외에 다른 참여자는 별로 없다. 솔직히 그런 조건 속에서 우리 당이 지방선거에서 받은 표만큼 득표하기도 어렵다.

선거를 포기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물론이다. 단 전면 참여할지, 부분 참여할지, 어디에 집중할지를 논의해야 한다.

12월 대선은 어떻게 치를 것인가.

대선 참여는 좀더 어려운 문제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133만표를 결집시켰다. 대선에서 이 정도 표를 모은다면 파장이 엄청날 것이다. 하지만 백기완 후보가 출마한 87년 대선부터 진보진영 안에는 ‘마의 30만표’라는 말이 있었다. 항상 그 범위에 머물렀다. 이번에 그 벽을 깼는데….

그렇다면 대선에서 그 정도 표를 얻을 수 있느냐.

(한동안 아주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대선은 정당에 대한 투표보다는 후보 개인에 대한 투표성향이 강하다. 상당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 여파도 클 것이다. 당장 지난번 그 표는 그야말로 거품이고 허상이라고 규정할 것이다. 또 “희망 있다”고 외치며 앞으로 가자고 했던 사람들은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이라는 좌절감에 빠질 것이다. 이것을 깨야 하는데…. 사실 참으로 어렵다.

‘진보진영의 단일한 대선후보를 추대하기 위한 범국민적 추진기구’ 구성을 제한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진보진영은 뭐 하나 논의하면서 세월을 다 보내는 습성이 있는데, 이번에도 그러면 안 된다. 지방선거 정당명부 득표율을 보고 빠르게 결정하고 폭넓게 활동해야 한다. 보수는 부패해서 망하고 진보는 분열해 망한다는…. 그 틀을 깨뜨려야 한다. 범국민 후보 선출을 제안할 것이다. 논의를 오래 끌어서는 안 된다. 기구구성 단계부터 질질 끈다면 진보진영이 대선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권영길 대표가 올 대선에도 출마할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출마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태도를 밝힐 단계는 아니다. 민노당 후보로 결정돼도 범국민 추진기구에서 실시할 진보진영 예비경선에 나갈 예비후보에 불과하다. 하지만 다른 진보진영에서는 민노당이 대선 국면을 일방적 끌고 가려 한다고 오해할 것이다.

진보진영을 하나로 묶기 위해 당의 기득권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그렇다.

권 대표 아닌 다른 대선후보를 내세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논의가 있다면 직접 경선에 나와 경쟁하는 게 당 발전에 도움이 된다. 어떤 선거든 경선은 아름답고, 아름답게 치러지면 그 조직은 발전하는 것이다.

민노당이 대선후보를 내는 것은 결국 한나라당의 집권을 돕는 행위라는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데.

한나라당은 부패 원조다. 한나라당 자체가 재벌정당이고, 본인들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재벌구조를 만들며 성장했고, 그 위에서 집권하고 기득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민주당과 민노당 차이도 아주 크다. 이회창과 노무현의 차이가 있지만 노무현과 권영길의 차이는 더욱 크다.

민주당과 정책연합을 시도할 수도 있을 텐데.

불가능하다. 정책연합은 세가 대등해야 성사된다. 만약 권영길이 후보가 된다면 노무현 후보가 연대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연대해도 노 후보 당선에 별 도움이 안 된다. 당내 경선에서 이인제씨가 노무현은 민노당 후보가 돼야 할 사람인데 어떻게 민주당 후보가 됐냐고 공격했다. 하물며 선거전에서 민노당과 연합한 후보라면 안팎이 시끄러울 것이다. 한나라당은 또 가만히 있겠나. 양쪽의 결합은 도움이 안 된다.

노무현과 권영길은 정책·노선 달라

독자후보론을 고수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민노당은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하나? 대선후보를 안 내면 우리 당의 존재가 무의미해진다. 민노당이 한 걸음씩 나가는 것도 정치발전에 도움이 된다. 역사 발전을 책임지고 있다는 민노당이 어떻게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나.

노무현과 권영길이 어떤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인가.

민주당과 민노당, 노무현과 권영길은 다르다. 이 시대의 진보는 이념적으로 잘 납득되지 않고, 국민도 그 차이를 완벽하게 인식하지 못한다. 나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한 사항인 일방적 금융개방, 공기업 및 알짜 대기업의 민영화와 해외매각, 노동시장 유연화로 포장된 대량해고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냐로 이 시대 진정한 진보와 보수가 구별된다고 생각한다. 진보진영은 이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이것을 수용하면서 진보주의다, 진보후보다라고 말한다면 거짓이다. 남북관계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보다 조금 앞서가는 것을 진보라 주장하면 안 된다. 노무현 후보가 이런 요구를 거부할 수 있나. 없다. 왜? 대통령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는 목청을 높였다.) 수용할 수밖에 없는 노 후보의 입장을 이해해줘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것을 수용하면 1300만 봉급생활자의 생존권은 박탈된다. 이미 이들 가운데 60%가 계약직·촉탁직으로 위협받고 있다. 이것을 방치하는 것은 노동자뿐 아니라 국민 생활 전체를 방기하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방기하고 가느냐. 이것이 민노당과 민주당, 노무현과 권영길의 차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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