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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 김영삼, 서글픈 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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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9-2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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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국민운동 발판으로 정치적 활로 모색… 반김정일 행보에 지지자들도 우려 표시

(사진/극우투사라 불러다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반김정일 2천만명 서명운동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주산악회가 활기를 되찾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반김정일 2천만명 서명운동을 선언하면서 민주산악회를 운동의 근간으로 삼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서울 여의도 한 빌딩에 있는 사무실은 ‘옛날 동지’들의 문의전화에 응대하는 한편 서명용지를 지역에 내려보내는 따위로 부산한 모습이다. 10월 말에는 경북 문경새재(장소 검토중)에서 수만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산행을 시도한다는 계획이다. 이 ‘정치 산행’은 산악회 조직 재건을 위한 YS의 전국 순회방문의 첫 일정이 될 것 같다.

민주산악회는 YS가 민자당 대선후보이며 총재였던 92년 말에 절정을 구가했다. 전국 350여개 시·군·구 지부에 150만 회원(자체 주장)을 확보했으며 당시 여권의 내로라 하는 실력자들이 앞다퉈 가입했다. 그러다 93년 초 YS의 대통령 취임 직후 ‘사조직 해체령’에 따라 물밑으로 들어갔고, 그의 퇴임 뒤에는 더 위축돼 수도권과 영남권을 중심으로 50여개 지부가 친목모임 형태로 명맥만 유지해왔다고 한다. 그러던 끝에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루 앞둔 9월7일 YS가 오경의 회장(김영삼 정부에서 마사회장 역임)을 직접 불러 “조직 재건을 서둘러달라”고 지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정치권 기반 못 만들자 국민운동 선택


YS가 이 시점에서 조직 재건에 나선 이유는 뻔하다. 그는 진작부터 “차기 대선에서 나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러나 16대 총선 시기에 민주국민당에 대한 지원 여부를 저울질하다 주저앉음으로써 딱히 기반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한 민주계 중진의원의 분석에 따르면 그는 더이상 기다릴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YS는 현재 단기필마다. 그렇다면 다음 대선 때가 되더라도 누가 찾아와 의중을 묻거나 상의라도 하겠느냐. YS는 그런 처지를 견딜 수 없다.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합종연횡 게임에라도 끼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지금부터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관심의 대상은 전략이 수정됐다는 점이다. YS는 퇴임 이후 끊임없이 한나라당 내 민주계 의원들을 수하로 다시 끌어들이고자 했다. 그러나 의원들은 ‘저물어버린 태양’인 그의 주변에 모이려 하지 않았고, 그러한 양상은 16대 총선 공천단계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러자 남은 대안으로 현역의원보다는 원외인사 내지 일반인을 상대로 한 ‘국민운동’ 방식을 택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가 정치재개의 이슈로 반김정일 운동을 고른 것도 흥미롭다. 그는 9월8일 회견에서 발표한 ‘김정일 범죄 고발·규탄 선언문’을 통해 “김정일은 통일의 파트너가 아니라 민족통일 과정에서 단죄해야 할 민족반역자”라고 규정했다. 김대중 대통령을 겨냥해선 “반국가단체 수괴인 김정일에게 조공을 바치듯이 굴욕적인 경제지원을 약속했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메시지는 보수를 표방하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그것과도 다른 것이다. 이 총재가 남북대화의 총론은 찬성하되, 국군포로 문제 등 각론을 비판하는 데 비해 그는 남북대화 자체를 송두리째 부인하고 나선 것이다(서명 발기선언문의 뼈대가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방문 저지).

극우 스펙트럼 선점해 독자적 기반 구축?

이유는 분명하다. YS는 현존하는 정치인 가운데서 가장 극우적인 스펙트럼을 나름대로 ‘선점’함으로써 이회창 총재와도 구별되는 독자적 기반을 만들려 하는 것이다. 한나라당 민주계의 한 중진의원은 “YS의 주장이 공감의 폭은 넓지 않더라도 영남권의 50, 60대 등 장·노년층에게는 어필할 여지가 있다”며 “그 정도면 차기 대선에서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다”고 말했다. 측근인 박종웅 의원도 “욕먹을 것은 YS도 잘 안다”며 “그러나 현재 YS 입장에선 모든 사람의 지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전직 대통령이 정치를 재개하든지, 차기 대선에 영향력 행사를 꾀하든지 말든지는 전적으로 그의 자유이다. 그러나 문제는 ‘어떻게’이다. 그 자신 집권기간에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했으며 대북 쌀지원을 했던 마당에, ‘극우 투사’로 180도 선회하는 행태가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는 점이다. 최근 박형규 목사, 이삼렬 숭실대 교수, 서경석 전 경실련 사무총장 등 민주화운동 시절의 옛 재야 지지자들이 그의 행태에 우려를 표시하고 나선 것도 이런 배경으로 볼 수 있다.

박창식 기자cspcsp@hani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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