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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국회, ‘직회부’는 결정적 순간에 쓸 필살기

김진표 의장 “직회부 늘면 국회 권위만 실추” 간호법 표결 보류
민생법안 입법 ‘일하는 모습’ 보인다지만… 여론 설득하며 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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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3-04-20 20:44 수정 : 2023-04-2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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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국회의장(왼쪽)이 2023년 4월13일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 제정안 상정을 보류하자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항의하고 있다. 가운데는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직회부 법안이 늘어나고 있어 걱정이다. 그러다보면 양곡법 같은 (대통령 거부권) 절차를 밟으면 국회 입법권의 권위만 실추된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2023년 4월14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전날 김 의장은 본회의에 올라온 간호법 제정안 표결을 보류했다. 2021년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이 법은 간호사의 역할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국민의힘이 반대하자 다수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법 절차에 따라 소관 상임위원회(보건복지위원회)에서 본회의로 ‘직회부’했다. 하지만 김 의장은 관련 단체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므로 여야가 최대한 합의점을 찾아 2주 뒤 본회의에서 법안을 의결하자고 했다. 이날은 민주당이 앞서 직회부로 본회의에 올려 통과시켰다가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최종 부결됐다.

방송법, 양곡관리법 이어 간호법까지
최근 민주당이 국민의힘 반대로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묶인 법안을 상임위에서 본회의에 바로 올릴 수 있는 ‘직회부’ 카드를 쓰고 있다. 이에 국민의힘은 대통령 재의 요구(거부권 행사) 등으로 막으면서 여야 대립이 심해지고 있다.

2023년 들어 보건복지위가 간호법 제정안을 본회의에 곧바로 올렸고(2월9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임 절차를 변경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직회부(3월13일)했다. 국민의힘은 방송법에 대해선 4월14일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청구 및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앞서 민주당은 2022년 12월28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정부의 쌀 의무매입 조건을 규정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직회부했다. 이 법은 본회의에서 통과됐지만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고, 2023년 4월13일 국회 본회의 재투표에서는 의결 요건인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문턱을 넘지 못해 부결됐다.

직회부는 국회법 제86조 3항에 따라 법사위가 법안을 이유 없이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을 경우 해당 법안을 올린 상임위에서 재적 5분의 3 이상 찬성으로 법안을 본회의에 바로 부의할 수 있는 권한이다. 2012년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마련될 당시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대폭 축소하고 대신 상임위 위원 대다수가 찬성하는 경우 본회의에 올릴 수 있는 규정을 신설했다. 당시에는 법사위 심사 기간이 120일 지나야 직회부 요건이 되도록 했지만 2021년 여야가 법사위 권한을 축소하는 쪽으로 국회법을 개정하면서 법사위 심사 기간은 60일로 단축됐다.

그동안 보수나 진보 진영이 국회 의석의 ‘5분의 3’을 채우는 경우가 없어 직회부 조항은 거의 활용되지 못했다. 하지만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전체 의석(300석) 가운데 180석을 확보한 이후 국민의힘의 반대를 뚫고 국회선진화법의 직회부 조항을 활용해 입법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 “법사위 문 걸어잠근 여당 탓”
민주당은 주요 쟁점 법안을 직회부하는 데 대해 여당이 법안 통과에 의지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4월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이 무책임하게 법사위 문을 걸어잠그니 오히려 야당이 나서서 급한 민생법안만이라도 국회법 절차에 따라 본회의에 직회부해왔다”고 말했다.

다수 야당으로서 입법권이 가장 강력한 정부 견제 수단인 만큼 이를 통해 정국 주도권을 회복하려는 의도도 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의 직회부 입법 전략에 대해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희석하는 목적이 크다”고 분석했다. 현재 이재명 대표는 대장동 개발 비리 연루 의혹으로 재판받고 있으며 당 차원에서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배포 의혹까지 불거진 상황이다. 민주당은 민생 관련 입법으로 국민에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실질적 성과를 만들 수 있다. 윤 대통령이 반복해서 거부권을 행사하면 ‘입법권 침해’라는 정치적 부담이 가중되는 쪽은 집권여당이다. 이종훈 평론가는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입법을 주도할 경우) 대통령이 ‘무능하다’는 프레임을 강화할 수 있어 민주당은 더욱 기세를 올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직회부 외에 ‘안건조정위원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 같은 국회선진화법 조항도 활용하고 있다. 안건조정위는 상임위에서 여야 합의가 안 될 때 여야 동수로 구성된다. 안건조정위원(6명)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법안에 찬성하면 상임위 전체회의에서 표결해야 한다. 민주당이 2022년 4월 검찰 수사권 축소 법안을 추진할 때 민형배 의원이 탈당해 야당 몫으로 법사위 내 안건조정위원으로 들어가 표결했다. 안건조정위를 통과한 해당 법안은 법사위 전체회의→본회의까지 무사히 통과해 시행되고 있다. ‘위장 탈당’ 논란을 일으킨 검찰 수사권 축소 법안 통과 뒤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지만 헌법재판소는 3월23일 “법사위 절차에 위법은 있었지만 해당 법 시행은 유효하다”고 결정했다. 위헌 꼬리표를 뗀 민주당은 4월17일 교육위원회에서 또 ‘무소속’ 민형배 의원이 참여하는 안건조정위를 구성해 학자금대출에 일부 무이자 혜택을 주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했다.

이런 방식이 소구력 있을까
신속처리안건은 국회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이 찬성하면 지정할 수 있고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되면 일정 기간(8~11개월) 뒤 본회의에 상정되도록 하는 절차다. 민주당은 정의당과 협조해 ‘대장동 50억 클럽 의혹’과 윤 대통령 아내 김건희 여사 의혹 특검법을 4월27일 본회의에서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투표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민주당의 입법 드라이브는 어떤 정치적 효과를 낼까.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강성 지지층을 결집할 수는 있겠지만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중도층을 끌어안아야 하는데 이런 방식이 소구력이 있을지 의문”이라며 “국회선진화법의 ‘5분의 3 이상 동의’ 조항의 취지는 다수당의 횡포를 막고 여야가 협의해 통과시키라는 것인데, 민주당이 법안을 밀어붙이는 것은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하 정치평론가는 “직회부 조항 같은 건 결정적 순간에 써야 하는 필살기 같은 것”이라며 “국회법 요건에 맞춰 입법을 추진하는 것 자체는 할 수 있는 일인데 일방적 모습을 보이지 않고 최대한 여론을 설득하고 입법을 정당화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민주당의 과제”라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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