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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으랏차차 전자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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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6-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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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된 민주당의 혈로를 뚫기 위한 전략…‘e-민주당’은 새 정치의 문을 열 것인가

사진/ 민주당 허운나(오른쪽) 의원이 국민경선 투표 결과 집계를 보고 있다. e-민주당은 세력과 조직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폭발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용호 기자)
민주당이 위기국면 돌파와 대선승리를 위한 비장의 카드로 ‘e-민주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다. e-민주당은 지지자 관리와 정책수립, 홍보, 선거캠페인 등 핵심적인 정당활동을 인터넷을 통해 전개하는 전자정당(e-party)을 말한다. <한겨레21>이 입수한 민주당의 ‘e-민주당 기획안’에 따르면 온라인 지구당, 온라인 정책위원회, e-캠페인 등 전자정당 창당을 위한 구체적인 방책들이 상세히 나와 있다.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새로운 실험이다.

노사모와 국민경선 응모당원 뛰어든다면…

e-민주당 추진은 당 지도부가 대통령 아들들의 부패사건으로 꽉 막혀버린 당의 혈로를 뚫기 위해 지방선거 이후 내놓을 핵심전략 가운데 하나다. 지난해 10·25 재보궐선거 참패로 맞은 위기국면을 국민경선제라는 새로운 실험으로 돌파했듯이, 이번엔 e-민주당이 효자노릇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한 당직자는 “국민경선이 국민의 정치참여를 일시적으로 이끌어내는 데 그쳤지만 전자정당은 국민에게 항구적으로 정치참여 기회를 보장하자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 작업은 국가전략연구소, 전자정당추진기획단, 사이버지원단, 노무현 후보의 사이버지원팀 등이 주도하고 있다. e-민주당 기획안은 최근 최고위원회에 보고돼 깊이 있게 논의됐다. 노무현 후보도 얼마 전 당 사이버지원단장인 허운나 의원을 만나 e-민주당에 대한 나름의 의견을 내는 등 강력한 추진의지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 후보는 “e-민주당은 국민정당화의 핵심이고 정치개혁의 중요한 고리다. 지역적으로, 세대적으로, 계층적으로 편중된 현재의 왜곡된 정당구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다”라고 말했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


사진/ 국민선거인단이 민주당 경선장에서 도우미로부터 전자투표요령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이용호 기자)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는 현대정당화 추진 차원에서 이미 2001년 7월 e-민주당 기획안 초안을 마련해놨다. 그러나 당내 지도부의 이해부족 등으로 기획안은 탄력을 받지 못한 채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기획안이 다시 주목받게 된 계기는 노무현 돌풍이었다. 돌풍의 주역이 인터넷을 능란하게 사용하는 20·30대로 드러나면서 인터넷의 잠재력이 새삼 확인됐다. 정치의식은 높지만 정치 참여도는 낮은 젊은 연령층을 정치의 마당으로 끌어내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으로 전자정당이 주목됐다. 당 지도부도 정치의 패러다임이 혁명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e-민주당은 기술적 측면에서만 보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세력과 조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상당한 폭발력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4만7천여명에 이르는 노사모와 190만명에 이르는 국민경선 응모당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만약 이들이 조직적으로 대선운동에 뛰어든다면?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끼칠 것이다. e-민주당 추진 배경엔 노사모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사장시키지 않고 선거운동의 주요한 동력으로 흡수하자는 의도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노사모는 선관위가 사조직으로 규정해 대선운동에 합법적으로 참여할 수 없는 상태다. 민주당과 노무현 후보 쪽으로선 노사모의 동력을 선거에 합법적으로 동원할 새로운 틀이 필요했던 것이다. e-민주당이 바로 그것이다. 노사모 쪽에서 이를 전적으로 수용할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노사모 박시영 사무총장은 “노사모는 선거법이나 정당법에 어긋나지 않는 활동방안을 광범위하게 검토하고 있다”며 “노사모를 인터넷 모임으로만 유지할 것인지, 이름을 바꿔서라도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할 것인지, 민주당이 추진 중인 e-민주당에 참여할 것인지에 대해 이달 말 총회에서 공론화해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사모 내부엔 민주당원으로 가입하는 데 대한 거부감도 상당히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누구든 정책위원회에 자유롭게 참여

민주당 국민경선제에 참여한 사람은 190만명에 이른다. 민주당은 이 가운데 160만명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완료했다. 80만명의 휴대폰 번호와 4만5천명의 이메일을 확보했고, 인터넷을 통해 가입한 33만명은 곧바로 네트워크로 연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 이들은 일상적인 정당활동을 하는 당원들이 아니다. 현재로선 서류상으로만 등록된 ‘허수아비 당원’에 불과하다. e-민주당을 창당하면 이들을 정치의 마당과 대선운동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 허운나 사이버지원단장은 “이인제 후보의 사퇴로 경선의 열기가 식은 상태에서 치러진 인터넷 투표에도 4만1800여명이 참석했다”며 “온라인을 통한 정치참여는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정치활동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민주당은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일까. 또 e-민주당의 당원으로 가입하면 어떤 활동을 할 수 있고, 어떤 권리와 책임을 지게 될까. 민주당 기획안을 뜯어보면 대강의 윤곽이 드러난다. 우선 인터넷상에 ‘e-민주당’(가칭)이라는 별도의 사이트가 구축된다. 정당활동이 가능한 사람은 누구나 당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이미 전자서명법이 시행된 터여서 인터넷 정당가입은 정당법상 하자가 없다. 여기엔 여러 가지 온라인 커뮤니티도 구축된다. 아이러브스쿨, 프리첼(?), 다음카페 따위의 온라인 공동체가 꾸려지는 것이다. 온라인 정책위원회는 전자정당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공간이다. 누구든 부문별 정책위원회에 자유롭게 참여해 활동할 수 있다. 각종 정책적인 민원도 제기할 수 있다. 노무현 후보의 온라인 정책자문단엔 1700여명이 활동하고 있는데, 30대와 40대의 지방대, 이공계 교수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민주당은 이들처럼 정책 형성과정에서 소외된 전문가들을 온라인 정책위원회를 통해 폭넓게 흡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주당은 e-민주당원들에 대한 다양한 정책적·정치적 배려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예컨대 e-민주당원들에게 비례대표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지방의원 추천권을 보장하거나 일정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하는 방안이다. 제시된 정책적 의견에 대해선 실제 당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당헌과 당규의 개정이 필요한 대목이다.

정당구조의 폐쇄성 해소

사진/ 지난 4월28일 경기도 덕평 수련원에서 열린 노사모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한 노무현 후보 부부. 노사모 쪽에서 e-민주당을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이용호 기자)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서울 성동구에 사는 약사 김아무개씨가 e-민주당에 가입했다고 치자. 그는 형식적으론 민주당 성동지구당 당원자격을 부여받는다. 정당법상 중앙당 당원이라는 개념이 없고 모든 당원은 특정 지구당에 소속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당 활동은 안 해도 무방하다. 지구당 활동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과목인 셈이다. 김씨는 지역별·학교별·취미별·정책별로 구성된 온라인 공동체에서 다양한 활동할 펼칠 수 있다. 보건복지 정책위에 참여해 의약분업에 대한 나름의 의견을 개진하거나 당 또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반박할 수 있다. 당이 추진하는 보건정책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당의 의견제시를 요청할 수도 있다. 김씨는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출할 기회도 합법적으로 얻게 된다. 정치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특정 정치인에 대한 지지 혹은 반대활동도 펼칠 수 있다.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이들을 규합해 세를 과시할 수 있다. 활동하기에 따라선 온라인상에서 이름을 떨칠 수도 있다. 민주당은 온라인상에서 이름을 날린 사이버 논객들을 위한 공간도 따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전자정당의 출현은 정치적으로도 다양한 함의를 지닌다. 기존 정당구조는 선거를 위한 동원체제나 마찬가지다. 일상적인 정치활동은 미미하고, 지구당 위원장의 사조직처럼 관리되는 형편이다. 당연히 조직을 운영하려면 상당한 비용이 든다. 그러다 보니 당원도 자영업자나 주부들이 중심이다. 연령도 대부분 40대 이상이다. 직장인이나 전문인들은 구조적으로 정당활동을 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 20·30대도 마찬가지다. 전자정당은 이런 정당구조의 폐쇄성을 상당부분 해소해준다. 온라인 공간에선 직장인이건, 대학생이건, 전문가건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자유로운 활동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정당조직의 폐쇄성과 후진성 때문에 정치활동을 꺼려온 유권자층을 흡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전자정당의 또 다른 매력은 돈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 정당에선 작은 행사를 해도 교통비·식비 따위의 기본적인 비용이 들지만 온라인상에선 이런 것들이 불필요하다. 노사모의 경우 어떤 당원들보다도 열성적인 활동을 펼치면서도 오히려 후원금을 모았다. 민주당 경선기간에 노사모 회원 4만7천여명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노 후보 후원금이 1억3천여만원에 이르렀다. 전자정당에선 또한 쌍방향 의사소통을 통한 민주적인 의견수렴이 가능하다. 일방적인 지시와 통제가 아니라 당원들이 정책과 노선에 대한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다. 지난해 민주당 특대위가 정치개혁의 핵심 화두로 제시한 현대정당화는 정당의 체질을 이런 구조로 바꾸자는 것이다.

전자정당이 성공하기 위한 열쇠는 자발적인 참여자가 얼마나 되느냐다. 전자정당 기획과정에 깊이 관여한 천호선 민주당 부대변인은 “참여자들의 자발성을 존중하고 진정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당이 과도하게 기획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네티즌들이 스스로 설계하고 자발적으로 꾸려가는 공간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활동을 참여자들에게 맡기자는 주장이다.

기존 정당조직과 충돌 위험도

전자정당이 성공할지에 대해선 우려의 시각도 나온다. “전자정당은 획기적인 발상임에 분명하지만 당장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당리당략의 차원에서 접근할 경우 성공하기 어렵다. 네티즌들에게 명확한 권한과 책임을 주고, 그들의 자발성을 최대한 존중하며, 그들이 제시한 의견에 대해 성의 있는 반응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 민경배 사이버문화연구소장의 지적이다. 한신대 조정관 교수(정치외교학)는 “지속적인 활동이 보장되지 않는 사이버 커뮤니티에 지나친 자율성과 독자성을 부여할 경우 기존 정당조직 지지자들과의 조화의 문제가 발생한다”며 “사이버 영역에서 이뤄지는 활동엔 임의성과 과장성이 많기 때문에 전자정당에 대한 지나친 기대나 조급한 추진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전자정당 추진은 분명 새로운 실험임에 틀림없지만 성공 여부는 불확실하다. 그것의 성공 여부는 기존의 당 조직에서 기득권에 집착하지 않고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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