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민주화 촉구한 초·재선 의원 13명… 정당정치 쇄신 발언에 지도부 긴장
9월15일 민주당 초·재선 의원 13명의 간담회를 정치권에서는 ‘금요일의 반란’이라고 불렀다. 당 운영권한을 소수의 지도부가 독점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풍토에서 소장파 의원들이 지도부 퇴진까지 거론한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가 이에 경직된 반응을 보였고, 문제를 제기했던 의원들도 잠깐 주춤하여 사태의 전개를 내다보긴 어렵지만 어쨌든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같다.
정국에 대한 위기의식과 현 지도부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은 꽤 오래 전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7월24일 국회법 개정안 날치기 통과 시도 때도 이들 사이에선 이런저런 뒷말이 오갔다. 그러던 끝에 지난달 말 터진 윤철상 의원의 ‘선거비용 실사 개입’ 발언 파동과 한빛은행 대출의혹 사건이 잇따랐다.
정국 위기의식·리더십 불만이 도화선
국회파행이 계속되는 가운데 잇따라 악재가 터지자 국민여론이 여당에 등을 돌리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지만 지도부의 인식은 “야당이 억지논리를 펴며 여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지도부는 윤철상 파동은 단순한 ‘말실수’로, 한빛은행은 ‘근거없는 모략’으로 치부했다. 마침 8월30일은 전당대회였다. 지도부(사무총장, 원내총무, 정책위의장 등 당 3역) 교체 기대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유임이었다. “지금 지도부를 교체하면 잘못을 인정하고 한나라당에 밀리는 형국이 된다”는 것이 유임 배경이었다. 창조적 개혁연대 소속 한 초선의원은 “어찌나 어이가 없고 허탈하던지 국감 준비나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런데 이번에는 ‘나이 먹은’ 초·재선들이 더 들끓기 시작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전당대회 직후인 9월2일 초·재선 10여명은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모임을 갖고 ‘지도부 사퇴’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 지도부의 정국운영으로는 진짜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추석 연휴 시작 전 며칠 동안 ‘거사’는 차근차근 준비됐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소장파와 함께 공동성명을 발표하자는 쪽으로 논의가 확장됐다. 그러나 공동성명은 여야 의원의 시각차와 지도부의 압력으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지도부 사퇴’ ‘선거부정과 한빛은행 사건에 대한 특검제 도입’ 부분을 둘러싸고 여야의원간에, 또 여당의원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던 것이다. 당 지도부는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사전에 이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지도부는 각 의원들에게 전방위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위기일발의 순간도 있었다. 9월8일 오후 3시께 국회 의원회관의 한 민주당 의원 방에서 10여명이 ‘사전모의’를 하고 있었다. 정보가 샜는지 김옥두 사무총장과 정균환 원내총무가 몇차례씩 전화를 걸어 의원을 찾았다. 그러나 보좌진들은 “안계신다”며 전화를 연결하지 않았다. 그러자 오후 4시께 김 총장이 방으로 들이닥쳤다. 다행히 의원들은 그 직전에 흩어져 ‘김옥두 습격사건’은 무위로 끝났다. 무위로 끝난 ‘김옥두 습격사건’
우여곡절 끝에 여야 소장파 의원의 공동성명이 예고됐던 9월14일, 이들은 “성명 채택은 일단 중단”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날 수는 없었다. 김태홍·이재정 등 9명의 민주당 의원들이 자연스럽게 점심 때 모이게 된 것이다.
“공동성명은 무산됐지만 이대로는 있을 수 없습니다.”
“애초 지도부 퇴진이 핵심 문제 아니었습니까?”
“한나라당과 같이 하는 것이 무리라면 우리끼리라도 뭔가 해야 되지 않을까요?”
‘일단 모이자’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모여서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룰 것도 없었다. 다음날 바로 만나기로 했다. ‘얘기가 될 만한’ 초·재선 의원 30여명을 뽑아 9명이 나누어 연락을 맡았다. 이 중 20여명이 참석을 약속했고 13명이 최종참석했다. 다음날 오전 8시 의원회관 식당. 애초 비공개로 할 예정이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들이 들이닥쳤다. 그러나 이들은 카메라 앞에서도 “한빛은행 의혹에 대한 특검제 도입” “지도부 자진 사퇴” 등 발언의 수위를 낮추지 않았다.
사건이 발발하자 동교동계를 비롯한 당주류쪽은 “답답하다고 아무렇게나 얘기하면 되나”(청와대 고위관계자)라며 날카롭게 반응했다. 고위당직자들은 참여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질책하며 유감을 표시했다. 주류쪽의 한 중진의원은 “언론이 자꾸 써주니까 자신이 잘났다는 착각에 빠져 신이 나서 자꾸 떠든다”며 “실제로는 ‘당’이라는 ‘메이커’를 떼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당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모임은 여당 내에서 당 지도부를 정면비판하는 목소리가 집단적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정치현실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평가하기에 충분하다. 아무리 지도부의 노선이 잘못돼 있더라도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당론에 반기를 들고 나온 것은 한국정치사에 유례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날의 사건은 16대 국회 들어 나타난 일련의 흐름의 연장선에 선 것이었다. 정치개혁과 당내 민주화를 주장하고 나선 이른바 ‘386의원’들이 언론의 각광을 받기 시작하더니 7월18일 여야의원 6명의 ‘공격수 역할’ 거부 성명발표를 거쳐 급기야 8월2일 민주당 3인방의 ‘항명출국’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던 끝에 몇몇 ‘튀는 악동’들 이상으로 행동범위가 확대되기에 이른 것이다.(참가자중 정범구, 송영길, 김성호, 장성민 의원 등은 ‘창조적 개혁연대’ 소속으로 지도부 비판 발언을 도맡아온 ‘단골 손님’이며 이재정, 김태홍, 이호웅, 최용규 의원 등은 ‘국민정치연구회’ 멤버들. 여기에 곽치영, 추미애, 박인상, 정장선, 문석호 의원 등이 가세)
정치공학적 측면에서 사태의 배경을 분석할 수도 있다. 15대까지만 해도 다음 공천권자가 누군지 명확했다. 하지만 지금은 17대의 공천권이 누구에게 갈지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DJ나 동교동계가 지금처럼 전권을 휘두르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상향식 공천이 시행돼 대의원들의 투표로 결정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날 모임에 참석했던 한 의원은 “요즘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깊어갈수록 ‘소신파’ 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더 올라간다”며 “2년 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지도부에 잘 보이는 것보다 유권자들의 인기를 확실하게 해두는 것이 훨씬 낫다”는 ‘계산’을 내놓았다. 이날 간담회 참석자들이 대부분 ‘표심’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서울·수도권과 충청지역 출신 의원들이라는 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공천권자 불확실해 소신파 행동 제어 못해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번 사건의 의미는 대통령(총재)-대표-당3역 등으로 이어지는 단선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지도 체제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는 데서 찾아야 할 것같다. “구여당에선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겠습니까? 안기부가 미리 알아내 차단을 했을 텐데.” 한 당직자의 말이다. 야당도 마찬가지였다. 15대 때만 해도 국민회의는 DJ가 총재로 버티고 있었고 79석의 소수야당이었다. 살아남는 데 급급했고 정권교체가 절대절명의 과제였다.
박병석 민주당 대변인은 이 사건에 대해 “우리 당이 얼마나 민주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외적으로 당혹감을 애써 감추려는 자기위안적 성격이 짙은 말이지만 역설적으로 이번 사태의 본질을 가장 꿰뚫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새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타고 당선된 의원들이 자신들이 얻은 ‘표값’을 하기 위해 당내 민주화라는 깃발을 본격적으로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안선희 기자/ 한겨레 정치부shan@hani.co.kr

(사진/민주당 초·재선의원 13인의 간담회. 이들은 지도부 퇴진까지 거론하는 등 당내 민주화를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국회파행이 계속되는 가운데 잇따라 악재가 터지자 국민여론이 여당에 등을 돌리는 것이 피부로 느껴졌지만 지도부의 인식은 “야당이 억지논리를 펴며 여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지도부는 윤철상 파동은 단순한 ‘말실수’로, 한빛은행은 ‘근거없는 모략’으로 치부했다. 마침 8월30일은 전당대회였다. 지도부(사무총장, 원내총무, 정책위의장 등 당 3역) 교체 기대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유임이었다. “지금 지도부를 교체하면 잘못을 인정하고 한나라당에 밀리는 형국이 된다”는 것이 유임 배경이었다. 창조적 개혁연대 소속 한 초선의원은 “어찌나 어이가 없고 허탈하던지 국감 준비나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런데 이번에는 ‘나이 먹은’ 초·재선들이 더 들끓기 시작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전당대회 직후인 9월2일 초·재선 10여명은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모임을 갖고 ‘지도부 사퇴’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 지도부의 정국운영으로는 진짜 ‘위기’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추석 연휴 시작 전 며칠 동안 ‘거사’는 차근차근 준비됐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소장파와 함께 공동성명을 발표하자는 쪽으로 논의가 확장됐다. 그러나 공동성명은 여야 의원의 시각차와 지도부의 압력으로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지도부 사퇴’ ‘선거부정과 한빛은행 사건에 대한 특검제 도입’ 부분을 둘러싸고 여야의원간에, 또 여당의원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던 것이다. 당 지도부는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사전에 이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지도부는 각 의원들에게 전방위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위기일발의 순간도 있었다. 9월8일 오후 3시께 국회 의원회관의 한 민주당 의원 방에서 10여명이 ‘사전모의’를 하고 있었다. 정보가 샜는지 김옥두 사무총장과 정균환 원내총무가 몇차례씩 전화를 걸어 의원을 찾았다. 그러나 보좌진들은 “안계신다”며 전화를 연결하지 않았다. 그러자 오후 4시께 김 총장이 방으로 들이닥쳤다. 다행히 의원들은 그 직전에 흩어져 ‘김옥두 습격사건’은 무위로 끝났다. 무위로 끝난 ‘김옥두 습격사건’

(사진/초·재선의원들의 반발에 대해 민주당지도부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