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민주당의 돌파구 찾기…쇄신의 주체와 대상 모호해 예측 어렵다
민주당이 다시 한번 기로에 섰다. 닥친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기회로 반전시킬 수도 있고, 점점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 지난해 10·25 재보궐선거 참패의 위기를 국민경선제로 돌파했던 저력을 또다시 발휘할 수 있을까.
“제도와 문화, 인물이 다 개혁돼야 한다. 조금 지나면 상당부분 노무현식 정치의 영향을 받게 돼 있다. 지금은 내가 두드러진 활동을 안 하고 있지만 포커스를 받고 정치활동을 하게 되면 그걸 수용할 수밖에 없는 국민적 압력이 생긴다.” 노무현 후보가 6월9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지방선거 이후 대대적인 당 개혁운동에 나설 뜻을 내비친 대목이다.
후보교체론 제기 가능성 희박
노 후보가 나서지 않더라도 민주당은 지방선거 이후 한바탕 씻김굿판을 벌이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과가 그럭저럭 나오더라도 이대로는 이반된 민심을 회복해 정국을 반전시키기 어렵다는 데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최고위원들도 선거 이후 제2의 쇄신책을 논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김원길 사무총장은 “8·8 재보선 때 반전을 못하면 우리 당은 죽는다. 내 정치생명을 걸고 당이 변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씻김굿판이 어떤 모양새로 흐를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우선 누가 쇄신의 주체고, 누가 쇄신의 대상인지가 모호하다. 쇄신의 방법에 대한 계파별 의견편차도 크다. 선거 책임론을 놓고 당내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될 가능성도 있다.
선거에서 패할 경우 먼저 노 후보 본인이 약속한 ‘재신임’ 공약에 따른 후보 책임론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노 후보 쪽은 이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어떤 방식이로든 당내 재신임 절차를 거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장 후보교체론이 제기될 가능성은 희박한 듯하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선거 책임론은 당을 장악한 한화갑 대표와 집행부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김원길 사무총장이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제2의 쇄신론을 제기한 것도 선거 이후 불거질 책임론에 대비한 측면이 크다. 한 대표도 상당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한 대표 등 당권파 쪽에서 비주류의 동반 책임론을 제기하며 제2의 쇄신운동 등을 통해 정면돌파를 시도할 경우 비주류가 격렬히 반발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내홍으로 치달을 수 있다.
대대적인 쇄신과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선 당내 누구나가 공감하지만 그 주체가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민주당의 고민이다. 지난해 쇄신의 주체로 나섰던 바른정치의원모임 회원들은 이미 당내 주류로 각종 주요 당직을 차지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은 쇄신의 주체로 나서기가 어렵다. 신기남 최고위원과 천정배·정동채 의원 등 재선그룹 의원들은 최근 모임을 열어 대책을 논의했으나 답답한 상황인식만을 공유한 채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쇄신국면보다 훨씬 어렵다. 주체가 애매하고 마땅한 카드도 없다.” 한 재선 의원의 고백이다. 돌파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당내 그룹별·모임별로 제각각 목소리가 분출되는 복잡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다.
당의 간판 내리고 새로운 피 수혈?
일각에선 민주당이라는 틀을 깨지 않고는 국면돌파가 어렵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당의 간판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력을 대거 흡수하면서 외연확대를 통해 돌파구를 찾자는 주장이다. 아예 당의 간판을 내리고 새로운 피를 수혈해 ‘호남당’, ‘DJ당’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파 한나라당 의원들을 끌어들이는 정책구도로의 재편이 되지 않고 신진세력 일부만을 흡수하는 모양새가 될 경우 정치적 실리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리는 적고 분란만 가속화시킬 수 있는 모험이라는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처절하게 깨질 경우 오히려 약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재집권에 대한 위기의식이 노 후보 중심으로 당을 결속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위기에 강한 당이다. 깨지려면 철저히 깨져야 한다. 어중간한 결과가 나와 수술칼을 꺼내지 않으면 환부가 곪아 대선이 더욱 어려워진다.” 지방선거에 깊숙이 관여한 한 3선 의원이 내놓은 처방전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사진/ 민주당 최고위원회의.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될 수 있다. (한겨레 김경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