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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칭찬∼합시다, 검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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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5-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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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를 즐거운 축제와 변화의 장으로 만들기 위한 지역시민들의 다양한 도전들

사진/ 각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들이 주축이 된 ‘파워비전21’ 소속 지방선거 출마자들. 선거판에서 경쟁자를 칭찬하는 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이정용 기자)
언론은 이들의 활동을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누구보다 열심히 뛴다. 목표는 명확하다. 6·13 지방선거를 시민축제 마당으로, 자치정부를 진정한 자결기구로 만드는 것이다.

5월24일 낮 12시,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는 좀 색다른 행사가 열렸다. “어떤 후보든 장점은 있다. 상대의 좋은 점을 먼저 주목해 부각시킨 뒤 우리 주장을 펼치겠다.” 각 대학 총학생회장 출신들이 주축이 된 ‘파워비전21’ 소속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선거판에서 경쟁자를 칭찬하는 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참여민주주의 실현을 기치로 전국 200여 시·군·구에 지역포럼을 조직한 이들은 올 6월 선거에 모두 120명의 기초단체장 및 광역·기초 의원을 출마시켰다. △지방정부 부패구조 개선 △제도개혁을 통한 자치역량 강화 △대민 행정서비스 확대가 핵심목표다. 출마자의 50% 이상을 당선시켜 향후 ‘386 중심 정당’을 만들겠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든 목표 실현에 앞서 상대후보 칭찬을 약속했다. ‘칭찬스티커’도 발급했다. 김준길 회장(38)은 “먼저 상대의 좋은 점을 부각하고 주민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내야만 지방선거가 즐거운 축제와 변화의 장이 된다”고 강조한다.

고등학생도 나섰다


5월25일 오후 광주YMCA. 광주·전남지역 18살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결성한 미래유권자연대(집행위원장 강경필)는 “선거연령을 18살로 낮춰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4월27일 창립한 유권자연대는 미래유권자 선포식과 가두캠페인을 벌이며 “사회 통념상 성인으로 간주되는 청소년의 정치적 선택권을 박탈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목청을 높여왔다. 이들의 최종 목표는 20살로 유권자 연령을 규정한 현행 선거법 15조의 개정. 이번 지방선거를 청소년 참정권 확대 여론을 확산하는 장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6월 지방선거 날 인터넷 공간에서 18살 유권자 중심으로 모의투표를 벌일 예정이다.

아예 자치정부를 직접 접수하겠다고 나선 이들도 있다. ‘2002 고양시민행동’은 6·13 선거를 통해 고양시청을 접수하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지난 3년 동안 일산 신도시 러브호텔 건립과 난개발, 계명산 골프장 건설 등을 놓고 시청과 힘겨루기를 계속해온 시민들은 고양시를 ‘고양제후국’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지난 5월15일 더 이상 기성 정당의 후보들에게 변화와 개혁을 구걸하지 않겠다며 시민후보를 중심으로 ‘고양공화국’을 만든다고 선언했다. 시민행동은 이를 위해 시장후보로 이치범 고양환경운동연합 대표를 내세운 것을 비롯해 도의원 후보 1명, 시의원 후보 14명 등 모두 16명을 고양시 전역에 집중 출마시켰다. 16명 후보는 김지하(시인), 김동춘(성공회대 교수), 김인숙(러브호텔공대위 공동대표)씨 등 각계 인사 40명으로 구성된 ‘후보선정위원회’의 검증을 거쳤다. 시민행동은 시민후보에게 △러브호텔 건설과 난개발 방지 △계명산 골프장 저지 △시민참여 시정 등을 약속받았다. 시민후보들은 당선된 뒤 주민의사에 배치되는 정책결정을 내리면 주민소환을 받겠다는 서약서도 작성했다. 심기철 시민행동 조직1위원장은 “여야 정치권 후보들이 선거 때는 골프장과 일산 신도시의 고층아파트 건립 반대를 공약했지만, 당선된 뒤엔 건립을 발의하는 등 주민들을 속여왔다”면서 “더 이상 그들을 믿을 수 없어 직접 나섰다”고 말했다.

광주·전남에서는 민주당 박수부대 역할을 거부하며 중앙권력과 연결고리를 단절하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5월10일 광주·전남자치연대와 민중연대회의는 두달 가까운 검증작업을 거쳐 무소속 시민후보 43명을 선정·발표했다. 자치연대 추천을 받은 정동년씨는 광주시장 후보로 나섰고, 동구청장 전영복, 서구청장 김상집, 나주시장 신정훈씨 등이 후보로 선정됐다. △도덕성과 청렴성 △사회 진보와 발전 기여도 △ 지방자치 개혁에 대한 대안능력이 검증 포인트였다. 이들의 목표는 6·13 선거를 통해 지역패권적 중앙권력의 독점력만 강화해온 자치정부를 자결권이 보장된 진정한 자치공동체로 복원하는 것. 임병옥 자치연대 사무처장은 “지방정치가 각종 이권과 청탁으로 인한 권력형 비리로 얼룩지고 중앙 정치권력과 결탁한 무능한 정치인들의 출세전쟁터로 전락했다”고 진단하며 “특정정당에 독점되는 지역정치를 끝장내지 않고는 광주·전남에서 변화나 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더 이상 무능하고 부패한 중앙권력인 민주당 후보를 일방적으로 지지하지 않겠다는 독립선언인 셈이다.

5월23일 오후 광주·전남 86개 시민사회단체는 ‘부패정치인 양산 민주당 규탄과 시·도민 주권회복 선언대회’를 열고 가두행진을 벌였다. 최근 민주당 후보 선정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비리의혹을 더 이상 눈뜨고 볼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들은 민주당 소속 이정일 광주시장 후보, 박태영 전남지사 후보, 김대동 나주시장 후보, 임호경 화순군수 후보가 후보 선정과정에서 각종 불법행위와 관련됐다고 주장하며 후보직 사퇴와 검찰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민주당 지지기반의 중심축에서 ‘안티민주당’시위가 시작된 것이다.

낙천·낙선운동을 한 단계 뛰어넘어…

출마후보에 대한 검증작업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한국YMCA는 ‘관객에서 주인으로’라는 기치 아래 전국 각 지부를 총동원해 유권자 참여와 후보검증 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서울, 광주·전남, 부산, 경북 구미, 경남 진주, 경기 안양 등에서 유권자위원회를 구성해 △후보자별 공약 및 정책 비교 △토론회와 모니터링을 통한 도덕성 검증 △사이버 공간을 통한 후보자 정보공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서울YMCA는 인구의 1%인 10만명 유권자를 조직화한 뒤 검증을 거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획기적인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른바 ‘유권자 10만인위원회’다. 5월25일 현재 6만명의 유권자를 조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김기현 YMCA 전국연맹 정책기획부장은 “단순한 공명선거 촉구 운동이나 과거 낙천·낙선운동보다 한 단계 발전한 직접참여에 의한 변화 시도”라며 시민참여를 호소했다. 이들은 선거가 임박한 6월7일께 서울시장 후보자와 주요 구청장 후보에 대한 평가와 검증 결과를 발표하는 방식으로 유권자들에게 선택의 길을 제시한다.

충북정치개혁연대도 최근 충청북도의 광역 및 기초단체장 후보 43명에 대한 검증을 시작했다. 13명의 활동가로 정보공개팀을 구성해 후보와 관련한 각종 비리의혹을 수집·분석·검증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김예식 정보공개팀장은 “각 후보의 해명과 정책자문단, 집행위원단의 최종 검증을 거쳐 6월3일께 그 결과를 최종 공개할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올바른 선택을 촉구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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