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적으로 북한 껴안기에 본격 나서… 한반도 긴장완화에 중요한 역할 할 수 있을까
‘보조적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유럽연합(EU)’.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서 EU가 주요 행위자로 급부상하였다. 물론 아직은 미국·일본·중국의 영향력에 견줄 바는 못 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EU가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해 요긴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미 관계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부각되지 못한 북-EU 관계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는 얘기다. 당근보다 매를 중시하는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뒤 핵사찰 문제를 둘러싸고 북-미 간의 충돌 가능성까지 불거지면서 EU의 비중을 가볍게 봐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셈이다. 일각에서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일방주의 경향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가장 쓸 만한 대안이 EU를 활용하는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온다. 미국이 EU의 도움 없이는 현안인 테러와의 전쟁이나, 다른 세계전략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는 점에서 EU의 목소리를 무작정 외면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미국은 자신들의 대북정책 노선과 달리 EU가 독자적으로 북한 껴안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에 대해 내심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시의 신경 건드리는 대목도 적잖아
EU도 부시 행정부의 이런 시각을 감안해 매우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의 사전협의를 누누이 강조하는가 하면, 자신들의 역할은 보조적인 것일 뿐이라고 스스로 자세를 낮추는 모양새를 취하기도 한다. 실제로 EU는 부시 정부가 특히 우려하는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확산을 막는 데 측면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사일 문제와 관련한 EU의 기본적인 태도는 2000년 11월 EU 각료회의에서 발표된 ‘행동방침’에 잘 드러나 있다. EU는 이 방침을 통해 핵 및 탄도탄 미사일 비확산,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 비준, 미사일 및 미사일 기술의 수출 중단, 유엔인권협약 존중 등을 북한에 요구했다. 북한도 EU의 이런 주장에 대해 부분적이나마 호의적으로 나오고 있다. 요한 페르손 스웨덴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EU대표단이 2001년 5월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3년까지 미사일 실험 발사를 유예하겠다고 선언해 EU의 외교적 위상을 높여주기도 했다. 또 EU는 이미 지난 97년부터 북한의 핵개발을 묶어놓는 데 핵심구실을 맡고 있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국으로서 핵확산 방지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해오고 있다. EU는 앞으로도 할 일이 많아 보인다. 박선원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핵 문제를 둘러싸고 북-미 기본합의 준수와 사찰문제가 불거지거나, 북한의 중·장거리미사일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면 EU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국제연합(UN)등과 힘을 모아 북-미 사이의 공정한 역할, 또는 사찰과 검증을 점검 또는 감시하는 구실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북-EU 사이의 협력이 부시 행정부의 신경을 건드리는 대목도 적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EU의 북한 접근 모양새는 부시 정부와 분명히 달라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먼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규정한 데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강압적 방법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푸는 것도 영 못마땅하게 여긴다. EU는 ‘건설적 포용’과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간 협력’이라는 외교원칙을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2002년 2월에는 ‘국가전략보고서’를 내고 북한을 실질적이고 체계적으로 돕기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EU의 북한 진출은 다목적성을 띤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 한몫을 담당하면서 동북아에서의 정치·외교적 입지를 강화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경제적 실리도 챙기려고 하는 복안이 엿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크리스 패튼 EU 외교담당 집행위원은 종합적인 북한 지원 보고서를 승인하는 자리에서 “북한에서의 평화와 안보, 자유를 지원하기 위한 EU의 역할 제고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EU는 보고서를 통해 북한 우선지원 분야로 세 가지를 꼽았다. 북한이 앞으로 효과적인 경제개발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쌓도록 도와주고, 에너지를 비롯한 천연자원에 대한 기본관리기술의 이전을 통해 북한 사회와 경제의 회생을 촉진함과 동시에 수송부문을 현대화하고 관리하는 정책을 개발하는 데 북한을 적극 돕겠다는 구상이다. EU는 이들 사업의 진전과 인권·비확산분야에서의 협력 정도에 따라 현재 지원 외에 따로 1500만유로(약 170억원)를 오는 2004년까지 북한에 지원할 작정이다. 특히 에너지와 교육분야에 공들여
중국, 일본에 이어 북한의 3대 교역파트너이기도 한 EU는 지난 95년 북한의 대홍수 뒤 해마다 식량과 농업복구 지원, KEDO의 참여 등 여러 형태로 북한을 지원하고 있다. EU는 올해도 북한의 상·하수도 체제 개선을 위해 560만유로(약 65억원) 상당의 원조를 제공하며, 1900만유로(약 223억원) 상당의 비료 10만t과 100만유로(약 12억원) 상당의 농업기술을 지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EU는 이런 여러 지원 조처들을 그간 핵 비확산 및 경제구조 개혁은 물론 인권과 같은 EU의 관심사항에 북한이 관심을 보이고 실제 개선 조처를 취하는 데 대한 보상으로 보고 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EU가 북한의 자립을 위해서는 기존 인도주의적 원조에, 장기적인 개발지원 프로그램이 결합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인도주의적 원조와 개발지원 프로그램을 모두 가동시킬 경우, 북한이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의 초기단계에 접어들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U가 특히 공을 들이는 분야는 에너지와 교육분야다. 이와 관련해 EU는 최근 두개의 실험적 기술지원 프로젝트를 승인한 바 있다. 하나는 북한 전력당국이 발전량을 늘리기 위한 최적의 방식을 찾도록 도와주는 기술지원 프로그램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 고위관료와 경제인력을 대상으로 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원리와 국제무역 교육 프로젝트다. 북한과 EU의 협력은 분야가 광범위하고 조직적이라는 점에서 다른 나라와 구별된다.
EU 집행위 차원의 꾸준한 대북 접근과 더불어 서울에 있는 주한 EU상공회의소의 측면지원 활동도 눈길을 끌고 있다. 침묵을 지키는 미국 상공회의소 쪽과는 달리 북한과 활발하게 교류활동을 벌이고 있다. EU상의는 한국·일본·중국 지역의 EU사업가들을 조만간 북한에 파견해 아리랑 축전과 제5회 평양국제무역전시회에 참가토록 할 계획이다. 방문단은 아리랑 축전관람을 비롯해 산업시찰과 투자협상 등과 함께 골프 등 간단한 레저 활동도 즐길 예정이다. EU상의는 최근 박근혜 의원의 북한 방문을 주선하기도 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인권문제’요구 땐 난색
북한이 앞으로 EU와의 관계개선에 더 적극적으로 나올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식량이나 경제지원은 반길 일이지만, EU가 껄끄러운 인권문제 개선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여 북한 당국은 몹시 난감해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 지도부는 평양주재 EU외교관들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면서 향후 추이를 관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 서울에 온 에르베 드장드라바티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유럽으로 눈을 돌린 것은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기를 바라는 전략적 관점에서의 외교술”이며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북한이 갑자기 태도를 바꿔 EU와의 관계 급진전을 이룰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중간에 껄끄로운 게 있더라도 ‘EU카드’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박선원 연세대 교수는 “EU는 위기에 놓인 북한 경제를 전반적으로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기술과 무역의 협력, 식량구호를 포함한 인도적 지원과 지속적 정치대화가 잘 결합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면서 “EU의 건설적 개입정책에 북한이 잘만 호응하면 경제발전은 물론 대외관계 개선에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U도 부시 행정부의 이런 시각을 감안해 매우 조심스런 행보를 보이고 있다. 미국과의 사전협의를 누누이 강조하는가 하면, 자신들의 역할은 보조적인 것일 뿐이라고 스스로 자세를 낮추는 모양새를 취하기도 한다. 실제로 EU는 부시 정부가 특히 우려하는 북한의 대량파괴무기 확산을 막는 데 측면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사일 문제와 관련한 EU의 기본적인 태도는 2000년 11월 EU 각료회의에서 발표된 ‘행동방침’에 잘 드러나 있다. EU는 이 방침을 통해 핵 및 탄도탄 미사일 비확산,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 비준, 미사일 및 미사일 기술의 수출 중단, 유엔인권협약 존중 등을 북한에 요구했다. 북한도 EU의 이런 주장에 대해 부분적이나마 호의적으로 나오고 있다. 요한 페르손 스웨덴 총리를 단장으로 하는 EU대표단이 2001년 5월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3년까지 미사일 실험 발사를 유예하겠다고 선언해 EU의 외교적 위상을 높여주기도 했다. 또 EU는 이미 지난 97년부터 북한의 핵개발을 묶어놓는 데 핵심구실을 맡고 있는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집행이사국으로서 핵확산 방지에도 적지 않은 기여를 해오고 있다. EU는 앞으로도 할 일이 많아 보인다. 박선원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핵 문제를 둘러싸고 북-미 기본합의 준수와 사찰문제가 불거지거나, 북한의 중·장거리미사일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면 EU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국제연합(UN)등과 힘을 모아 북-미 사이의 공정한 역할, 또는 사찰과 검증을 점검 또는 감시하는 구실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북-EU 사이의 협력이 부시 행정부의 신경을 건드리는 대목도 적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EU의 북한 접근 모양새는 부시 정부와 분명히 달라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먼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의 하나로 규정한 데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강압적 방법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푸는 것도 영 못마땅하게 여긴다. EU는 ‘건설적 포용’과 국제기구를 통한 ‘다자간 협력’이라는 외교원칙을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2002년 2월에는 ‘국가전략보고서’를 내고 북한을 실질적이고 체계적으로 돕기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EU의 북한 진출은 다목적성을 띤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 한몫을 담당하면서 동북아에서의 정치·외교적 입지를 강화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경제적 실리도 챙기려고 하는 복안이 엿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크리스 패튼 EU 외교담당 집행위원은 종합적인 북한 지원 보고서를 승인하는 자리에서 “북한에서의 평화와 안보, 자유를 지원하기 위한 EU의 역할 제고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EU는 보고서를 통해 북한 우선지원 분야로 세 가지를 꼽았다. 북한이 앞으로 효과적인 경제개발정책을 세우고 실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을 쌓도록 도와주고, 에너지를 비롯한 천연자원에 대한 기본관리기술의 이전을 통해 북한 사회와 경제의 회생을 촉진함과 동시에 수송부문을 현대화하고 관리하는 정책을 개발하는 데 북한을 적극 돕겠다는 구상이다. EU는 이들 사업의 진전과 인권·비확산분야에서의 협력 정도에 따라 현재 지원 외에 따로 1500만유로(약 170억원)를 오는 2004년까지 북한에 지원할 작정이다. 특히 에너지와 교육분야에 공들여

사진/ 북한 방문계획을 밝힌 뒤 환하게 웃는 박근혜 의원. 그의 방북은 EU상의의 주선으로 이뤄졌다.(한겨레 이정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