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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산 넘고 물 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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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5-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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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후보 이회창-당면과제

‘경선 균열’ 권력 재분배로 치유 계획… 정계개편 가시화되면 소장파 동요 우려

사진/ 이회창 후보는 경선 후유증을 최소화하면서 당내 통합을 이루려고 한다. 이를 위해 경선 후보들을 요직에 앉힐 계획이다. (이용호 기자)
경선전에서 압도적 지지를 확인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일단 대선 고지를 향한 중요한 고비를 넘어섰다. 그동안 반기를 들었던 당내 비주류의 움직임도 잠시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진검 승부는 이제부터다. 이 후보 앞길에는 당을 분열시킬 폭발력 있는 지뢰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 후보는 이것을 사전에 효과적으로 탐지·해체해야 한다.

먼저 한나라당을 이회창 경선캠프로 재편하고 대선전에 당력을 집중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복잡한 당내 역학관계를 조절하고 내부 통합을 이뤄내야만 한다. 당장 경쟁했던 이부영·최병렬 후보부터 달래야 한다. 한나라당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최고위원 경선에서 발생한 내부균열도 심각한 문제다. 지금 추세라면 7명의 선출직 최고위원 대부분이 이 후보의 측근이나 민정계 의원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이 후보에게는 최악의 상황이다. 최근 개혁성향의 새 지도부를 선출한 민주당과 달리 한나라당은 변화를 거스르는 수구정당으로 이미지가 고착될 수 있다. 개혁적 보수를 표방해온 이 후보가 유권자들을 설득할 명분도 크게 약해진다. 미래연대 등 소장파와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한 재선 3인방인 안상수·홍준표·정형근 의원은 벌써 “한나라당이 80년 민정당으로 회귀한다면 12월 대선에서 필패한다”고 외치고 있다.


최병렬 선대위원장 임명 계획

이 후보는 한쪽으로 힘이 쏠리지 않도록 당내 권력을 재배분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경쟁자인 최병렬 후보를 대선 선대본부장에 임명할 계획이다. 영남대표성을 인정해주면서 기획력과 추진력 등 현실적 힘을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부영 후보는 대선 후보가 지명할 수 있는 한명의 최고위원직에 배려할 방침이다. 당내 최고위원 경선과정에서 대표적인 측근으로 비판받았던 김기배·하순봉 후보 가운데 1명을 하차시키고, 소장파의 대표주자 김부겸 의원을 당선시킨다는 내부 방침도 세웠다. 측근 발호와 민정당으로 회귀한다는 안팎의 비판여론을 없애면서 반대파를 포용하는 후보의 도량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구체화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당 안에는 김기배·하순봉 의원 등 민정계 지분을 대표해온 측근들이 최병렬 선대본부장과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김부겸 후보를 최고위원에 당선시킨다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다. 자칫 측근들의 반발만 불러올 수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다. 이 후보의 한 핵심 참모는 “단기간에 노풍을 잠재울 묘안은 없다”고 고백했다. 다만 최근 대통령 아들의 비리 사건 이후 노 후보의 지지율이 계속 빠지고 있다는 데 희망을 걸고 있다. 대통령 아들 등 권력형 비리를 피해가는 노 후보를 가짜 개혁론자로 몰아세우면서, 노 후보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계층을 집중 공략하면 역전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이 후보 쪽은 궁극적으로 변화를 열망하는 국민적 요구를 담아낼 안정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하지만 당장 뚜렷한 대책이 없어 고민이다. 이 후보는 일단 엘리트 이미지를 벗고 서민·대중 지도자로 다가서는 데 주력하기로 했다. 최근 지방 방문 때 장급 여관에서 숙박하고, 5월3일 이 후보의 경기중·고 재학 시절 성적표와 생활기록부 전격 공개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차명진 공보보좌역은 “하위권을 맴돌던 성적이 학년이 올라가면서 차츰 향상됐다”며 “이 총재는 타고난 엘리트가 아니라 후천적 노력으로 성공한 평범한 인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곧 가회동 빌라를 떠나 새집으로 이사하고, 정연·수연 두 아들도 단속할 계획이다. 최근 DJ의 세 아들 비리가 도마에 오른 만큼 이 후보가 먼저 두 아들을 해외로 내보내거나, 청렴서약을 받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노 후보가 강력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계개편론은 좀더 복잡한 걸림돌이다. 한나라당은 노 후보가 YS를 찾아간 뒤 일고 있는 반발여론을 반기고 있다. 그러나 이 후보 쪽 내부 사정은 단순하지 않다. 일단 정계개편 찬성여론이 상당히 높다. 또 노 후보와 YS가 손잡거나, 노 후보를 매개로 YS와 DJ가 화해할 경우 한나라당 자체가 균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개혁성향 재선의원은 그 파괴력을 이렇게 전망했다. “이 총재가 경선에서 압승한 지금 당장 반기를 들기는 어렵지만 양김이 87년 분열의 원죄를 속죄하며 동서화합과 지역구도 타파에 합의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정치판은 뒤흔들리고, 모든 정치인은 선택을 강요받을 것이다.” 두 사람의 화해를 신호탄으로 정책구도로 헤쳐모이는 대대적인 정계개편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YS·DJ 화해에 맞설 역정계개편

사진/ 정계개편 소용돌이를 어떻게 돌파할 건가. 한나라당 의원들이 김대중 정권 규탄 집회에서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용호 기자)
이 후보 쪽도 이런 가능성을 가장 경계한다. 당 전체가 “노 후보 행보는 3김을 정치무대에 부할시키는 반국민적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어떻게든 YS와 연결고리를 끊으려 애쓰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러나 이 후보 진영 일각에서는 YS가 이미 노 후보 쪽으로 기울었다며 다른 대안을 찾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JP와 이인제 의원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의원이 움직일 경우 민주당 충청권 의원 일부가 따라올 것이라고 자신한다. 이 후보 쪽 한 핵심 관계자는 “이미 이인제 의원의 협조를 얻기 위해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잔뜩 공을 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른바 ‘역정계개편’을 구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도 약점이 있다. JP를 끌어들이면 김원웅·서상섭·안영근·김홍신 의원 등 당내 개혁성향 의원들이 탈당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자민련과 함께할 수 없다는 생각만큼은 분명하다. 이들이 이탈하면 노 후보가 추진 중인 정책과 이념에 따른 정계개편도 힘을 받게 된다. 이인제 후보가 경선불복 시비를 감수하면서까지 대선 출마가 불가능한 이회창 후보와의 연대를 선택할지도 미지수다.

이회창 후보는 올 12월 대선을 통해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산을 어떻게 넘어서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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