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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보수여, 날개를 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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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5-0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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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정책과 노선

이회창 후보가 꿈꾸는 한국식 발전모델… 성장과 분배 동시 추구하지만 성장론에 무게

사진/ "반듯한 나라, 활기찬 경제를 이루련다." 이회창 후보는 최근 보수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용호 기자)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이회창 후보는 중도적이고 통합적인 정책과 이념노선을 내세운다. 어느 한쪽의 기치를 분명하게 취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예컨대 ‘개혁적 보수’라는 구호가 그렇고, 성장과 분배를 고루 추구하자는 ‘한국식 발전모델’이 그렇다. 보수는 보수로되 통합적인 중도보수임을 내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노무현 돌풍이 분 이후엔 보수적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현 정부를 좌파적으로 규정하면서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도 우파라고 딱 부러지게 얘기한다. 그가 설계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대선경선에 나서면서 ‘반듯한 나라, 활기찬 경제, 편안한 사회’를 자신이 꿈꾸는 대한민국의 미래상으로 제시했다.

사회·복지정책


성장의 열매를 풍성하게

그가 바람직한 사회발전 모델로 내세우는 것은 이른바 ‘한국식 모델’이다. 성장과 효율을 강조하는 미국식이나 사회적 분배와 약자에 대한 배려를 중시하는 유럽식 가운데 어느 한쪽을 따르지 말고 양쪽을 통합해서 장점을 취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과 분배의 저울추를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정책의 수평을 맞춘다는 것은 이론상으로나 가능할 것이다. 정책을 집행하다 보면 결국 우선순위를 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후보의 정책적 발언들을 뜯어보면 저울추는 아무래도 성장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출마선언에서 “성장의 열매를 일자리와 따뜻한 복지를 위해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일단 성장이 풍성해야만 분배의 여력이 생긴다는 인식이 엿보이는 것이다. “성장을 해야만 일자리도 있고, 따뜻한 복지에 쓸 돈도 마련할 수 있다”는 언급에서도 일단은 파이부터 키우자는 성장론자의 신념이 읽힌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성장 우선론자로만 비치는 것은 극히 꺼리고 있다. ‘따뜻한 복지’라는 개념을 부쩍 자주 사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가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으로 제시한 6개항목 가운데 △빈부격차가 줄어들고 더불어 함께 사는 나라 △빈틈없는 교육안전망과 사회안전망이 우리를 지켜주는 나라 등 복지분야를 유독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생산적 복지정책에 대해선 “국민에게 고통을 안겨준 실패한 정책”이라고 강도높게 공격한다. 대신 “연금제도와 건강보험제도 등 복지제도 전반에 걸쳐 산적한 문제점을 깊이 검토해서 근본적인 수술에 착수하겠다”고 별렀다. 사회보장 정책의 각론에선 전반적으로 효율성보다는 공공성을 강조한다. 현 정부 들어 처음 실시된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해선 “지금보다 더 확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민간보험 도입 여부에 대해서도 “당장 도입하는 것은 혼란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중장기적으로나 검토하자”는 견해를 내놨다. 교육제도에 대해선 학생과 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확대 등 고교 평준화 정책을 대폭적으로 손질할 계획임을 내비쳤다. 전체적으로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주저하지 않고 유럽식 모델을 선택하며, DJ식 생산적 복지정책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경제정책

규제를 풀어 기업활동 보장

사진/ "성장과 분배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련다." 이회창 후보가 인천 경선을 앞두고 농산물 시장을 방문해 활짝 웃고 있다.
“해매다 6% 이상의 성장이 이뤄지도록 경제기반을 구축해서 20년 뒤엔 현재의 3.2배로 성장시키겠다.” 그는 경제성장의 목표치를 구체적인 수치로 제시한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내세우는 게 국가 전반의 혁신을 통한 경쟁력 강화와 생산성 향상이다. 경제성장의 새로운 엔진은 과학기술 혁신과 인재양성에서 찾는다. 구체적으로는 기술혁신을 위한 연구개발 투자를 3%로, 교육 투자를 국내총생산(GDP)의 7%로 확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구상하는 경제정책의 기본 틀은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 보장’이다. 그는 “기업이 투자의욕을 불태우고 경쟁력 강화에 전념할 수 있도록 불합리한 규제를 폐지해서 기업하기에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한다. 경쟁력의 발목을 잡는 기업에 대한 규제와 제한은 과감히 폐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에서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기업집단지정제도를 완화하고 궁극적으로 폐지하겠다”는 재벌정책이 나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보인다. 집단소송제에 대해서도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으므로 아직 시기상조다”라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당연히 친기업적이라는 지적도 따른다. 그러나 △지배구조의 투명성 강화 △부실재벌 퇴출 △상속·증여세의 엄정한 집행 등에 대해선 강한 의지를 보였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민영화 문제에 대해서는 “공기업으로 존재할 뚜렷한 이유가 없으면 모두 민영화해야 한다”고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철도와 전력부문에 대해서도 민영화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다만 “현 정권은 민영화의 기본원칙은 옳았지만 구체적인 계획 없이 졸속으로 추진했다”고 비판했다.

대북정책

부시를 닮은 ‘주기받기론’

그는 “남북관계에서 내가 지켜나갈 자유민주주의는 추호의 흔들림도 없을 것”이라며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강력한 수호자임을 자임한다. 그가 제시한 16대 정책비전 가운데 대북정책 항목은 1개에 불과하다. “철통같은 국가안보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보안법에 대해 “북한의 변화가 확인되기까지는 현행대로 유지해야 하며, 북한 노동당 규약과 형법 등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완강한 개정 불가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북한에 대한 대화와 협력의 문은 활짝 열어둬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여기엔 조건이 있다. △상호주의 △국민합의와 투명성 △검증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정부의 햇볕정책 기조에 대해선 찬성하면서도 금강산 지원 등 각론에선 대부분 반대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북지원의 경우 인도적 지원과 대규모 지원으로 나눠 다르게 접근한다. 대규모 지원은 반드시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야 하지만 인도적 지원은 분배의 투명성만 보장되면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북 전력지원에 대해선 “군사용도로 전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강력히 반대한다.

그가 북한과의 관계설정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상호주의 원칙이다. 예컨대 경의선 연결의 대가로 면회소 설치를 연계해 관철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 대한 국민적인 비난여론이 고조된 이후엔 ‘대화를 통한 남북문제 해결’을 강조한다. 그의 대북정책 기조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그것과 닮은꼴이다. 대량살상무기 위협에 대해 강력히 대처하겠다는 부시 대통령의 방침과 대량살상무기 문제의 해결 없이는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이 후보의 인식은 궤를 같이한다.

정치노선·이념

합리적 보수, 건강한 개혁

이 후보는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보수주의적 우파로 분명히 규정한다. “나는 보수의 기조 위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고 세계의 발전과 시대의 흐름에 맞춰가는 개혁과 자기쇄신을 지향한다. 이런 점에서 우파적이라고 봐도 된다.” 그러면서도 최근엔 “필요하다면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여권 인사들과도 손잡을 수 있다”며 ‘국민대연합’이라는 개념을 부쩍 자주 입에 올린다. “좌우 양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합리적 보수와 건강한 개혁을 포괄하는 국민대연합만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분히 노무현 후보의 ‘민주·개혁세력 연합론’에 대한 맞불의 성격이 짙다. 한나라당 개혁파와 영남세력 일부를 겨냥한 노 후보의 공세에 대응하는 ‘역 정계개편론’이다.

그는 내각제, 이원집정제, 4년중임제 등 정치권의 분분한 권력구조개편 논의에 대해 단호한 반대태도를 보여왔다. 대신 엄격한 3권분립을 강조한다. 그는 “대통령의 국회 국정연설을 국무총리가 대독하는 관행을 타파할 것”이라며 “대통령이 되면 국회에 나가 직접 국정을 보고하고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전통을 세우겠다”고 약속했다.

‘깨끗한 정부’도 그가 현 정권의 부패사건을 공격하면서 자주 얘기하는 단골메뉴다. 부패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검찰과 국세청, 국정원 등 권력기관의 인사쇄신을 강조한다. 공정한 인사를 위해 고위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는 정치부패의 원죄를 돈드는 선거제도에서 찾는다. “선거가 깨끗해져야 정치가 깨끗해지고 그래야만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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