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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사찰, 북한의 선택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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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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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ㅣ장선섭 경수로사업지원 기획단장

전력지원과 특별 핵사찰 동시실시 주장은 생소… 현재 아주 순조롭게 진행 중

사진/ (박승화 기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북한과 핵사찰 일정 등을 협의하기 위해 이미 17차례나 만났다. 이 자리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IAEA는 이 만남을 통해 북한에 요청한 게 있다. 북한이 이 요청에 협조만 해주면 문제는 해결된다. 하나같이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하지만 그간 양쪽 사이 대화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진전들이 계속 이뤄져왔다.”

미 행정부가 북한의 과거 핵활동 규명을 위해 이른 사찰을 강도높게 요구하면서 이와 연계된 경수로사업의 운명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미국은 북한이 핵사찰을 2003년 안에 받지 않으면 경수로공사를 중단시킬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기 때문이다. 경수로사업의 중단은 곧 한반도 안보위기와 맞닿아 있다.


다국적 컨소시엄인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첫 닻을 올린 지난 95년부터 줄곧 한국 쪽 대표를 맡아 ‘경수로사업의 산 증인’으로 불리는 장선섭 경수로사업지원 기획단장을 4월19일 만나 북-미관계의 관건인 핵사찰과 경수로사업의 진로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는 현재 KEDO 집행이사회 의장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토머스 허바드 주한 미 대사는 4월18일 한 강연에서 “북한이 IAEA와 관련된 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경수로 프로젝트에 심각한 지연을 초래할 것”이라며 북한의 조속한 핵사찰 수용을 거듭 촉구했다. 이때 허바드 대사가 언급한 ‘국제원자력기구와 관련된 구체적인 북한의 의무’는 무엇인가.

단적으로 말해 핵사찰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으면 누가 중단하고 안하고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경수로사업은 진행될 수가 없다. 핵사찰이 이뤄지지 않으면 경수로의 핵심부품이 북한에 제공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찰이 완전히 끝나야 할 시기는 핵심부품이 전달되기 전이라고 북-미 합의서에 나와 있다. 문제는 사찰의 시작시점이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현재 공사가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핵심부품은 2005년 상반기 중에 북쪽에 건넬 예정이다. IAEA는 과거 남아공화국의 전례로 보아 북한의 과거 핵활동 사찰은 최소한 3, 4년은 걸리니까 지금부터 하자는 입장이다. 이는 물론 미국의 입장과 같다. 핵사찰은 단순한 프로세스가 아니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일부에서는 ‘조기사찰’이라는 용어를 쓰는데 이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미국이나 IAEA의 주장이 합리적이고 적절하다고 보나

가장 바람직한 것은 IAEA, 미국과 북한이 대화로 타협점을 찾는 것이다. 현재까지 IAEA와 북한은 계속 대화하고 있다. 17차례나 협의해왔다. 큰 진전은 없다. IAEA는 이런저런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얘기하고 있고, 북쪽에서는 안한다고 버티고 있어 합의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전혀 진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올 초 IAEA 관계자들은 핵사찰 대상 가운데 하나인 북한 영변의 방사성동위원소 생산연구소를 ‘방문’했다. 사찰은 아니었다. 이것도 전에 없던 일이다. 이것이 핵사찰 프로세스의 일부로 보기에는 미흡하지만 그러나 작은 시작으로 볼 수 있는 조처가 이뤄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 미국의 주장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북-미 기본합의서를 통해 핵사찰을 받겠다고 이미 합의했기 때문에 단지 시기문제만 남았다.

사진/ (경수로 기획단)
북한의 핵동결 및 해체조치와 경수로 공급일정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인도일정 및 조치의정서’는 언제쯤 체결되나? 또 의정서 서명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KEDO와 북한 사이에는 경수로 공급협정에 따라 모두 13개 후속 의정서를 맺게 돼 있다. 현재까지 8개에 서명했고 5개만 남았다. 인도일정 의정서는 핵사찰과 관련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KEDO는 한-미-일 등 당사국 입장을 종합해서 자체 단일 일정을 만들어놓았다. 조만간 이 문제를 협의할 것이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핵사고가 일어났을 때 누가 책임을 지느냐는 것을 명시한 ‘원자력손해배상 의정서’다. 이것은 다음달 초 북한과 협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올 초 협의하게 돼 있었으나 북한의 거부로 미루다가 이번에 다시 북한이 협의를 재개하기로 결정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일단 KEDO와 북한이 협상을 재개할 경우, 북한이 경수로 완공 지연에 따른 전력손실을 보상해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은 없나.

미국은 북한과의 제네바기본합의서를 통해 경수로 1호기가 완성될 때까지 해마다 50만t의 중유를 지원해주기로 약속했다. 이는 30만∼35만kw의 전력과 맞먹는 적지 않은 양이다. KEDO는 경수로가 목표 연도인 2003년에 완공이 안 돼도 전력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해마다 중유 50만t을 북한에 지원해주게 되어 있다. 따라서 KEDO로서는 더 이상 전력보상을 해줄 수 없다.

일부 전문가들이 핵사찰과 경수로 건설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해 핵심부품 인도와 동시에 특별 핵사찰을 실시하자, 또는 전력지원과 동시에 핵사찰을 하는 방안 등을 내놓았다. 설득력이 있는 대안인가.

생소한 얘기다. 지금은 북-미 사이에 합의한 사항을 성실히 이행하면 된다고 본다. 다만 당사자들이 마주앉아 핵사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대안이 괜찮다면 서로 합의하면 될 것이다.

북한은 경수로사업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하고 있나? 실제로 경수로공사에 많은 공을 들이고, 국가차원의 협조를 잘 해주고 있는가? 미 행정부는 얼마 전 북한이 기본합의서 이행을 준수한다는 인증을 할 수 없다고 의회에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북한은 실제로 기본합의서 이행을 제대로 안해 왔나?

이는 북한이 제네바합의를 어기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북한이 제네바 북-미 합의사항을 제대로 이행하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문서상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 핵활동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모르겠다는 것이지, 공식적으로 북한이 합의를 위반하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다고 밝혔다.

북한은 경수로사업 지연에 불만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경수로 자체에 대해서는 많은 애정을 표하고 있다. 공사가 가시화하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이제는 경수로사업에 상당한 신뢰감을 주고 있다. 지난해 말 북한의 고위관료와 기술자들이 남쪽에 내려와 울진·고리 원자력발전소 등을 견학하고 돌아간 것도 경수로에 이들이 상당한 애착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무적으로 북쪽 사람들과 많이 접촉하였지만 북한도 이 사업에 큰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미국 공화당의 정책담당자들은 이전 클린턴 정권 때부터 94년 북-미기본합의서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과거 핵 규명 검증방법이 미흡하고, 북한에 지나치게 양보함으로써 좋지 않은 선례만 남겼다는 불만이다. 과연 부시 행정부가 경수로를 끝까지 제공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난 3월에는 북한의 기본합의 이행을 인증하지 않겠다고 의회에 통보해 기본합의서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북-미 합의를 무효화하기 위한 전주곡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부시 행정부가 기록상이나, 공식적으로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밝힌 적은 없다. 물론 핵사찰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경수로사업을 중단없이 진행하겠다는 의지는 확고하다. 말뿐이 아니다. 중유 제공을 책임진 미국은 부시 행정부가 들어와서도 차질 없이 중유를 북한에 제공하고 있다.

최근 경수로 공사는 잘 진행되고 있나?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경수로 공사가 삐걱거리는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경수로사업 자체는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공정 진척도는 20%다. 부분적으로는 40∼50% 진행된 것도 있고, 아직 시작도 안 된 부분도 있다. 현재 북한에 가 있는 한국 근로자는 700명 정도이고, 우즈베키스탄 쪽 인력 500명, 북한 근로자가 100명, 모두 합쳐 1300여명이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금액 면에서도 올 3월 기준으로 8억달러 넘게 투입됐다. 어느 누구도 경수로사업이 중단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당사자는 없기 때문이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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