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 좇다가 길 잃은 한반도 평화
[외교·안보] “전쟁 없을 것” vs “최대한의 압박” 엇박자
등록 : 2021-03-21 19:51 수정 : 2021-03-22 09:33
2018년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처음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북핵 등 비대칭 위협 대응능력 강화남북기본협정 체결 및 남북관계 재정립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및 경제통일 구현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및 평화체제 구축주변 4국과의 당당한 협력외교 추진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 형성이상은 높았으나 실속이 기대에 못 미쳤다. ‘문재인 정부 4년 평가단’이 매긴 외교·안보 정책 성적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한국 외교·안보 정책의 핵심은 한반도 정책이다.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핵 없는 한반도, 남북 간 적대 행위 금지 등을 천명한 판문점 선언과 평양 선언, 남북 간 군사적 합의를 이룬 것”을 높이 평가했으나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앞서 2017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두 달 만에 독일 베를린을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는 이미 평화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라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공식화했다. 2018년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히면서 남북관계는 해빙의 급물살을 탔다. 그해 4월27일,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과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한 뒤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남북 정상은 판문점 회담을 시작으로 그해에만 세 차례(4월, 5월, 9월)나 만났다.
사상 최초로 북-미 정상회담도 잇따랐다. 김정은 위원장과 당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는 2018년 6월(싱가포르)과 2019년 2월(베트남 하노이) 연거푸 만났다. 기대를 모은 북-미 협상은 북한 비핵화의 실무 단계 논의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미국의 일방적인 ‘하노이 노딜’ 선언으로 파국을 맞았다. 문제는 후속 대응이었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은 으르렁거리는 북-미 관계에서 방향과 동력을 잃고 표류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와 미-중 갈등 심화라는 구조를 넘어서기엔 한국의 외교·안보 역량이나 정책의 한계가 분명했다.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한 외교·안보 틀을 벗어나지도 못했다”(박정은)는 평가는 뼈아프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위원도 “문재인 정부가 미-중 전략적 경쟁의 격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산업질서 재편 등 격변기를 맞아 우리 외교·안보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 채 현안 위주의 대응에 그쳤다”고 꼬집었다.
판문점 선언에서 3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의 겉보기 평온함은 교착상태에 빠진 ‘차가운 평화’다. 문 대통령은 미국 트럼프 정부가 임기 내내 북한 등 적대국에 적용한 ‘최대한의 압박’ 전략에도 동조했다. “한반도 군사 문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인식, 정책, 전략에 심각한 불균형이 존재한다”(정욱식)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평화를 지켜주는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대화와 신뢰’라고 하면서 ‘한국의 평화를 지켜주는 것은 강력한 한-미 동맹과 국방력’이라는 모순된 화법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으로 4년을 보냈다”며 “이것이야말로 대북정책 실패와 남북관계 악화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