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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정치적 해결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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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2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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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후보 노무현 해부

소설가 은희경씨의 눈에 비친 노무현 후보… 과격하기보다는 직선적인 ‘낯선’ 정치인

사진/ (이용호 기자)
민주당 대선후보 경기지역 경선이 열리는 성남 실내체육관에 들어서자 노란 티셔츠 물결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었다. 노 고문이 사실상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기 때문인지 그들은 국민경선에 참여한 일곱 후보의 이름이 새겨진 깃발을 함께 들고 흔들었다. 바쁜 일정으로 피곤해 보이는 노 고문을 유세 직후 실내체육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민주당의 권위주의 행태 사라진다


경선이 싱겁게 됐다. 국민들에게는 주말의 즐거움 하나가 없어진 셈이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한국정치 변화의 바람은 이제 시작이다.

대선까지 200일이 넘게 남아 있다. 노풍이 짧은 시간 안에 불어닥친 바람인데 그때까지 계속 유지될 힘이 있겠는가.

물로 치면 가두어놓은 물이 아니고 솟는 물이다. 주머니 속에 있다가 푹 빠져버리는 바람이 아니라 지구가 도는 한 지속적으로 이는 바람이다.

자신에 대한 지지를 ‘변화에 대한 갈망이다’라고 해석했던데 국민이 어떤 변화를 가장 갈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오랜 기간 3김 정치가 지배해왔는데 세분이 공통적으로 우리 정치의 어두운 면, 즉 보스정치라는 1인지배체제 안에 있었다. 한 사람이 공천권을 쥐고 그 밑에 줄을 서서 보스의 눈치만을 살펴야 하는 권위주의 정치에 국민들이 염증을 낸 것이다. 정책논쟁도, 인물의 역량도 당락과는 관계가 없으므로 유권자의 선택이 무력화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계보, 가신, 측근 따위의 수사로부터 독립돼 있다.

그런 점이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정치가 시작되리라는 기대를 주지만 한편으로는 정책을 추진할 만큼 장악력이 있을지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사람만 바뀌는 게 아니고 정치문화 자체가 달라진다. 아직 정착은 안 됐지만 특히 민주당의 공천제도가 달라져서 지구당 당원의 공천권이 커졌다. 이런 변화가 제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장악력의 근거가 됐던 정치적 이해관계가 힘을 잃어가고 있다.

노풍 이후 지역감정의 구도에 금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시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부산에서 낙선한 뒤에 노사모가 생겼는데 나를 만났을 때 첫 번째 인사가 ‘동서화합 노무현’이라는 구호였다. 이제 곧 민주당이 영남에서도 의석을 갖게 된다. 다음 총선 때는 전국적으로 골고루 의석을 갖게 될 것이다. 호남에서도 민주당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 더러 있는데 그러면 호남에서도 다른 당을 선택할 수 있다. 그것이 흐름으로 가고 제도를 바꾸는 것까지 가능하다.

구체적 방안이라면.

99년에 김대중 대통령이 중선거구제를 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흐지부지되고 말았지만 그런 정책 수정이 계속 필요하다.

김대중 정부에서 이어갈 것이 있고 혹은 끊어버릴 것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한 가지씩만 든다면.

이미 얼추 다 끝났다. 지엽적 부분에서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민주주의 시장경제, 생산적 복지 이런 큰 틀 그대로 간다. 동서화합, 노사화합, 지식기반 사회, 가야 된다. 보편적 세계주의, 가는 거다. 남북화해를 통해서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만들어내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것, 다 민주당의 비전이다.

끊어버려야 할 건 다 끊었다는 말인가.

그렇다. 지금 민주당의 문화는 계보가 맥을 못 추고 측근도 가신도 없다. 당내 권위주의 문화가 급속히 해체돼나가고 있다.

왜 나더러 굴종하라 하는가

자기 판단을 너무 확신하는 것 같다.

=내가 (웃음) 매일 떨어지면서도 언제나 큰소리치는 정치를 했다.(노 고문은 이마 주름살이 무척 깊다. 관상학적으로는 성취할 상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인상이 험해 보일 수 있다. 노 고문은 그런 의견이 반반이라고 한다. “어떤 의사가 하도 보기 싫다고, 좀 오라고 해서 갔더니 주사를 놓아서 눈두덩이 자꾸 가라앉고 눈이 찌그러지고, 혼이 났어요. 6개월 동안 주름살은 펴져 있는데, 여론조사하면 늘 바닥에 있다가, 약기운 다 떨어지고 다시 주름살이 생기고 나니까 올라가더군요.”)

내 주변에는 노 고문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다. 전투적으로 보이고 불안하다고 하는데 그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겠는가.

우리 사회에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 막연한 분위기로 인식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내가 한 일 중에서 남에게 불안을 느끼게 한 게 뭔지 한 가지만 얘기해보라고 해라.

<조선일보>와 관계개선을 할 생각은 없는가.

나를 부당하게 공격하고 상처 입혔고 지금도 그게 계속되는데 가만 맞고 있으라 이런 요구는 안 했으면 좋겠다. 때린 그들에게 사과하라고 하지 않고 자꾸 나한테 화해하라고 한다. 정치하는 사람은 옳고 그른 것에 상관없이 무조건 아무한테나 사과해야 하느냐. 그 점에 있어서는 국민도 나를 향해 너 이길 수 있냐, 힘센 놈한테 덤비는 거 보니까 불안하다 이 말인데, 이건 변화를 원하면서 변화하기 위한 행동에 대해서는 하지 말라고 하는 것 아니냐. 언론과의 관계에서 내가 약자다. 내가 선제공격하는 것도 아니고, 나를 때리는 것은 좋지만 부당하게 하지는 말라고 하는 것뿐이다.

세무조사가 5년에 한번인데, 임기 중에 언론 세무조사를 할 건지. 언론탄압이라는 여론이 있을 텐데.

세무조사, 해야 한다. 언론의 논조나 보도태도에 관계없이 조세징수의 목적으로만 한다. 대통령이 결정하지 않고 당연히 국세청 공무원이 판단하는 사회로 갈 것이다. 나는 권력을 가지고 언론을 개혁하려는 생각이 없다. 언론은 언론의 정도를 가주면 된다. 특권을 누리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언론과의 관계악화는 국민들이 보기에 불안하다는 지적도 있다. 뭔가 명분이나 계기를 만들어서 화해를 이끌어야 하지 않는가.

명분? 그런 정치적인 얘기 하지 말고 원칙대로 가자.

아주 단호해 보인다.

왜 나더러 굴종하라고 하는가.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말자고 말하는 정치인, 사실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노 고문은 논조가 과격하다기보다 말하는 방식이 직선적이었다. 정치인의 이미지에 걸맞은 계산된 포즈로 ‘민족과 국민을 위해 헌신한다’거나, 임기응변식의 노회함으로 ‘언급을 회피합니다’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제한된 삶을 살아야 하는 내 아이들…

88년 청문회가 끝난 뒤까지도 참석자들이 모두 언쟁을 벌이는데 혼자만 묵묵히 자료 보따리를 꾸리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깨끗한 사람으로 보이긴 하지만 조직에서는 왕따가 아닌가.

오늘 그 왕따가 일을 낸 것이다. 민주당의 돌풍을 일으켜낸 시민들이 그걸 좋다고 하는 것 아니냐. 좋은 게 좋은 것이다 식으로 우물우물 넘어가지 말고, 맞는 건 맞고, 아닌 건 아니고, 끊을 데 딱 끊고, 한번 해보라는 것 아니냐. 어떤 때는 기성의 질서에 대해 도전하는 의도된 태도였고, 어떤 때는 계산 없이 터져나왔던 깎이지 않은 나의 모습에 많은 국민이 손을 들어주었다. 국민도 이상하다. 모난 게 좋다고 변화시키라고 밀어줘놓고, 야 좀 깎아라, 너무 모났지 않냐 이런다. 나는 이렇게 본다. 현명하게도 국민은 내가 실수한 것에 대해 앞뒤 사정을 다 살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땐 노사관계가 형편없을 때다. 누구든지 분노할 때 아니냐. 88년 초선 때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상한 소리 하긴 했지만 그때 다 정경유착에 대해서 울분을 느낄 때고, 하는 식이다. 통념에 잘 타협하지 않는 정신,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해나가는 정신은 유지해나가되 이제 넥타이 풀고 술 먹고 편안하게 말하지 말고, 예를 들면 표현도 ‘왕따’라든가 ‘싹쓸이’라든지 그런 말도 하지 말고 ‘고립되었다’든지 이렇게 근사하게 얘기하라는 거다. (웃음) 앞으로 다듬어가겠다고 하는 것이 부끄러운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밖에서 노사모의 노랫소리가 들리자 노 고문은 노사모 회원들이 경선장에 자녀를 데리고 오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정치란 진흙탕에서 연꽃을 피우는 일인데 그런 정략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기가 불안하다는 것이다. ‘나는 완전한 인간은 아니다. 약점도 많이 있고 실수도 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려고 치열하게 자기와 싸운다’고 한 적이 있다. 정치인의 권위주의와 허위의식에 길들여진 한국의 국민에게 노 고문은 새로운 선택임에 틀림없지만 과연 한 과정에 있는 인간적인 지도자를 선택할 만큼 우리 사회가 자신감을 갖게 되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는가.

사진/ (이용호 기자)
부모의 사는 모습이다. 많은 것을 가르치는 것은 기능으로만 축적되지 인격으로 축적되진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습관인데, 좋은 습관은 자연스럽게 생활 속에서 익히는 것이다. 잘 알려진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부담을 많이 주는 아버지다. 아이들 때문에 이 길에 들어선 것이 후회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주목받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나는 모든 생활이 투명하게 공개돼 있어도 내가 선택한 것이고 그 불편을 상쇄할 만한 보람이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버지의 권력을 나눠 갖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행세할 수도 없다. 자기의 성취가 아닌데, 아버지 명망에 대해 약간 기쁨을 느끼는 것 외에 무슨 보람이 따로 있겠는가. 그런데도 아예 어떤 것은 할 엄두도 내지 않고 살아야 하고, 어디 가서 술 먹고 취할 수도 있고 친구들하고 싸울 수도 있는데 때로 실수로 생길 수 있는 일탈의 가능성이 있는 그 어떤 것의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제약받는 삶을 살아야 된다. 대통령 아들 한번 만나면 그 얼굴을 보고 한번 득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는 게 한국 사회의 수준이다. 내 아이가 자기에게 접근하는 모든 사람들을 감별해야 하는, 무슨 사설 정보부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경계심을 갖고 삭막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요즘 특히 미안하다.

현장에 있는 대통령 되겠다

김 대통령의 세 아들 문제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나.

그렇다고 처벌하지 말자거나 조사하지 말자는 뜻은 아니다. 조사하고 잘못이 있으면 처벌해야 한다. 다만 사회 분위기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부조리한 문화가 변화하고 청산돼가는 과정이다. 문화가 그냥 바뀌지는 않는다. 법조문화가 바뀌는 데 희생양이 있었듯이 지금 우리 정치문화도 급속하게 변화되는 흐름 속에 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 감명깊었던 책을 물어보면 <백범일지>이고 소설은 <토지>이고 영화는 <벤허>라는 우스개가 있다. 노 고문은 청소년기에는 철학서나 논리서보다 소설 같은 데서 사고의 틀을 배웠고 만화책도 좋아했다고 말한다. 요즘은 주로 사회변화를 읽기 위해 <부유한 노예> <벌거벗은 나라들> 같은 책을 읽었지만 최근에는 책 읽을 시간이 전혀 없다. 어떻게 해서 요트지도사 자격증을 갖게 되었냐는 질문에는, 가난하게 살았으니까 변호사 된 뒤 근사한 걸 해보고 싶었고, 동아대 요트서클을 후원한 것이 인연이 되었다는 대답이다. “요즘은 여가가 전혀 없어, 지난해 봄 여의도에서 타려고 아내의 것까지 접는 자전거를 두대 샀는데 한번도 타지 못했다”며 무척 서운한 표정이다.)

어떤 대통령을 꿈꾸고 있는가.

내가 대통령이 되면 달라지는 것이 셋 있다. 우선 비서와 대통령이 자유스럽게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고 농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또한 많은 권한이 총리와 장관에게 이양되어 일일이 대통령에게 결재받지 않고 그들의 책임으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대통령은 진짜 대통령만이 하는 고유업무에 최선을 다한다. 분권화된 행정운영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갈등의 현장이나 국가적으로 소용돌이치는 과제 충돌이 있을 때 현장에 있는 대통령을 보게 될 것이다. 대통령이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고 굳은 사람도 아니고 높이 있지 않고 낮게 있어 친근한 느낌을 줄 것이다. 그런 대통령을 보고 싶으면 노무현을 찍으라.

(경선결과 발표시간이 다가오자 노 고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 밖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중 몇 사람은 노 고문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노 고문은 미리 준비된 대답을 되풀이하지 않고 많은 질문에 성의껏 답변했다. 특히 여론조사 결과를 자주 인용했다. 노풍에 힘을 실어주었던 가장 큰 공신이기도 한 여론조사의 항목을 보면 ‘좋다’, ‘나쁘다’, ‘그저 그렇다’ 등이 있다. 불교에서는 ‘나쁘다’의 반대말이 ‘좋다’가 아니라 ‘괜찮다’라고 가르친다. ‘그저 그렇다’를 선택하면 ‘좋다’로 갈 기회는 전혀 없는 것이다. 지금 노 고문의 상황에서는 ‘나쁘다’보다 오히려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그저 그렇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더 큰 숙제일지도 모른다.)

은희경 l 소설가 SILVERPAPER@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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