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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79.3%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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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17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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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론 확인에 그친 한나라당 경선… 예정된 몰표에 불공정 시비 증폭

사진/ 한나라당 경선에 이변은 없었다. 이회창 후보가 인천 경선장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이용호 기자)
“동원은 없었다. 그런데 이회창 후보가 너무 많이 얻었다. 앞날이 걱정이다.”

4월13일 오후, 인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대선후보 첫 경선 결과가 발표되자 이회창 후보 쪽 한 인사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압승이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인천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부영 후보의 대변인인 안영근 의원(인천 남구을)조차 경선 이틀 전부터 “위원장인 내 말도 잘 먹혀들지 않는다. 창 대세론은 미동도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누구도 80%에 육박하는 몰표를 예측하지는 못했다. 인천지역 11개 지구당 가운데 3개 지구당 위원장의 지지를 확보한 이부영 후보 쪽은 적어도 25%는 얻을 것이라 전망했다. 이회창 후보의 측근들도 많으면 70% 득표라고 예상했다. 몇몇은 “70%도 많다. 인천경선에서 이회창 60%, 이부영 30%, 최병렬 10%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6 대 3 대 1’, 대세론에 상처 없이 최병렬 후보의 원조보수 바람을 막으면서 흥행과 공정성도 보장할 황금분할이었다.

‘이회창 원맨쇼’ 경선 열기 시들


그러나 인천 선거인단은 “노풍을 잠재울 인천상륙작전을 허락해달라”는 이회창 후보에게 무려 79.3%(1111표)의 표를 몰아줬다. 변화와 개혁을 외친 이부영, 원조보수를 자처한 최병렬 후보는 14.3%(201표)와 5.6%(79표)를 얻는 데 그쳤다.

경선 직후 이회창 후보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기자실에 들러 모든 기자들에게 일일이 악수를 청하며 고마움도 표시했다. 당 안으로 번져오던 이회창 필패론과 후보 교체론의 악몽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이 배어났다. 이회창 후보 쪽 이원창 의원은 “노풍에 위기를 느낀 선거인단이 이회창밖에 대안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노무현 돌풍이 불면서 작은 힘이나마 보태지 않으면 정권탈환은 고사하고 한나라당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진다는 위기감이 퍼졌고, 이회창 후보에 대한 표쏠림으로 분출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 압승은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을 또 다른 위기를 내모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내심 민주당과 같은 주말드라마로 당과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첫 경선에서 80% 가까운 몰표가 나오면서 경선전은 맥이 빠졌다. 당 안에서는 울산(18일), 제주(20일), 강원(23일) 등 남은 11개 권역별 경선은 “해보나 마나”라는 분위기가 강하다. ‘이회창 원맨쇼’를 걱정할 정도다.

인천경선 이후 격화된 불공정 시비도 큰 복병이다. 자칫 경선판 자체가 뒤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부영 후보는 14일 “한 대의원이 두 차례 투표한 행위가 발각됐고, 당직자로 구성된 투표 도우미들에 의한 공개투표까지 이뤄졌다. 선거인단도 일찍 마감되는 등 원천적 불공정 경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사실이 자꾸 드러나면 어떻게 경선을 계속 치를 수 있겠냐.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중도사퇴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이 후보는 △인천경선 불법사례 조사 △선거인단 재선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부영 사퇴 내비쳐 “이대론 안 된다”

최병렬 후보도 “조직을 동원한 표몰이 결과”라며 “지금도 전국 각지에서 이회창 후보 앞으로 줄세우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구식 특보는 “울산에서는 우리 캠프에 속한 지구당 간부가 ‘나중에 공천 받으려면 찍이면 안 된다’고 말할 정도”라고 주장했다.

이회창 후보 쪽도 고민이다. 참모진 일각에서는 부정경선 시비를 막기 위해 당분간 득표활동을 중단하자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 후보 쪽 한 관계자는 “경선전략에 근본 수정은 없지만 선거운동을 최대한 자제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판이 깨지는 것을 막고, 다른 경쟁자들이 레이스를 지속할 명분과 힘을 축적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경선과정에 개입해 연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회창 후보 쪽 뜻대로 풀릴지 의문이다. 이 후보의 다른 한 측근은 “인천 같은 결과는 바람직하지 않지만, 노풍에 위기감을 느낀 당원들은 계속 결집하고 있다”면서 “우린들 어쩌겠냐”고 말했다. 이 인사는 “이회창이 97년에 DJ한테 당했는데, 노무현한테 또 당하도록 놔둘 수 없다는 동정론까지 일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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