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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노무현 꺾어 혼란 막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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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1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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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필패론’ 내세우며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한 최병렬 의원

사진/ (이용호 기자)
한나라당 최병렬 의원이 ‘이회창 필패론’과 ‘보수대연합론’을 앞세우며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등록을 마친 이튿날인 4월6일 아침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당과 나라를 위해 소신출마했으며 마음이 편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회창씨는 지지세 반등 여력 없어

그동안 ‘이회창 유일대안론’을 앞장서 설파하다 ‘이회창 필패론’을 제기했다. 무슨 까닭인가.


근자에 ‘노무현 돌풍’이 일었다. 민주당이 국민경선제를 통해 정치를 국민에게 열었고, 국민과 호흡하는 이벤트를 연출해 성공한 게 배경이었다. 노 고문은 신인은 아니면서도 기성정치인과는 모양새가 다른 분위기와 매력으로 당원들과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았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회창 대세론’에 푹 빠져 세상 돌아가는 데 별 관심이 없었다. 밥상 다 받아놓고 누가 숟가락 들고 올까봐 챙기는 분위기였다. 그 와중에 빌라게이트와 원정출산이 터져 민심이 (노 고문 쪽으로) 확 쏠렸다. 이회창씨로는 정권교체가 안 된다. 그는 너무 오래 노출돼서 개인적인 능력으로 지지세를 반등시킬 수 있는 부분은 지극히 제한적이다. 이회창씨는 민주당 쪽의 공격에도 취약하다. 올라갈 가능성보다 내려갈 가능성이 더 크다. 과연 이회창씨로 되겠느냐는 의문을 안 할 수 없었다.

이회창 전 총재가 문제라는 것인가.

97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졌다. 내가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었다. 이인제씨가 튀어나가서 졌지만 그가 왜 뛰쳐나갔나. 이회창씨 아들문제 때문에 지지도가 폭락하자 보따리 싸들고 나갔다. 그래도 우리는 이회창씨를 원망한 적 없다. 지난 4년 동안 이회창씨 붙들고 대통령 만들자고 지금 여기까지 왔다. 그렇다면 이회창씨도 그에 맞게 자기 몸을 좀 추스리고 그걸 해줬어야 한다. 이번에 일 터지고 보니 황당하다. 그는 또 보수와 진보 사이를 왔다갔다해서 아리송하다.

그렇다면 왜 최 의원이 나서야 하는지 궁금하다.

‘노무현 돌풍’은 바람만이 아니다. 이인제 고문이 과격분자라고 공격해도 먹히지 않고 있다. 노무현씨가 후보가 되면 정부와 여당의 강력한 뒷받침이 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또 지역문제는 얘기하기가 조심스럽고, 나도 영남 출신이지만 경상도가 무너지고 있다. 여론조사를 봐라. 경상도에선 노무현을 같은 경상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회창씨에 대해선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한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서 가까운 친구들이 이회창씨로는 노무현을 절대로 못 꺾으니 네가 나서라고 하더라. 내 생각과 주위의 압력과 설득이 합쳐져 결정했다. 정치에 손을 턴다는 생각으로 나섰다. 택시기사들이 이회창씨와 내가 짜서 경선 흥행을 돋우기 위해 나섰다고 말한다고 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지금이라도 이회창씨가 본선에서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서면 난 들어간다.

‘노무현 돌풍’을 얘기했는데, 그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최소한 우리가 생각하는 정치적 신념에 의하면 노무현씨가 대통령 되면 나라에 큰일난다. 그동안 해온 과격발언을 보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인가.

노 고문이 대통령 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무너진다. 구심점도 없어지고, 영남 쪽 의원들이 많이 흔들린다. 17대 국회의원 총선 때는 한나라당이 서바이브(생존)하기 어렵다. 노무현씨가 그동안 해온 발언만 가지고 보면 엄청나게 과격한 사람이다. 정치적 신념이 나와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기도 하겠지만, 국가적으로도 큰 혼란이 오지 않겠는가. 난 그렇게 생각한다.

꼴보수와 다른 보수적 개혁주의자

사진/ "이회창 후보로는 정권교체 못한다." 최병렬 의원은 자신을 '개혁적 보수'라고 말했다. (이용호 기자)
최 의원의 정치적 신념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선 흔히 진보면 좋은 것이고 보수는 나쁜 것으로 돼 있다. 보수와 진보는 7 대 3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언론탄압, 인권탄압, 독재 등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사람, 부패한 내력 있는 사람들이 보수 위에 덧씌워져 있다. 이들은 수구보수다. 이 때문에 자신의 신념이 보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나서서 내가 보수요, 라고 말하지 못한다.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우리나라 보수세력의 절대다수는 깨끗하고 개혁적이다. 나도 그 속에 포함된다. 진보와 보수는 철학의 차이다. 성장을 중시하느냐 분배를 중시하느냐, 기회균등을 중시하느냐 결과균등을 중시하느냐 따위다. 우리나라에선 개혁과 보수가 아니라 보수적인 개혁파와 진보성향의 개혁파로 나누는 것이 옳다. 수구는 별도로 있다. 또 진보 쪽에도 별도로 한 부대가 있다. 친북세력이다. 보수 쪽 뒷구멍에 수구가 있고, 진보 쪽 뒷구멍엔 친북세력이 있는 것이다. 보수는 보수적 시각에서 나라를 개혁하자는 쪽이고, 진보는 진보적 시각에서 나라를 개혁해가자는 것이다. 내가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보수의 개념을 재정립해서 그 중심에 설 것이다. 난 꼴보수와는 다르다.

노무현 고문은 이런 분류에서 보자면 어느 쪽인가.

진보적 시각에서 나라를 개혁해가는 세력으로 일단 보는데, 얘기하는 게 너무 과격하다. 크게 보면 진보적 개혁세력에 들어간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JP는 개혁적 보수세력의 범주엔 들어가지만 참신하지 않다. 그렇다고 수구라고는 보진 않는다. 수구는 기득권에 집착하는 부패세력이다.

수구세력이나 친북세력을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해달라.

구체적으로 말하긴 곤란하다.

5공 시절 정계에 입문해 6공에서 요직을 지냈다. 이런 전력이 앞으로 문제될 수 있는데….

85년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들어왔다. 자의반 타의반이었지만 요직은 아니었다. 6공 이후엔 요직을 지냈다. 난 가만히 있었는데 정권이 자꾸 바뀌었다. 내가 당적을 바꾸거나 한 적이 없다. 이런 데 대한 길티필링(죄의식)은 없다. 5공 시절 민정당 정세분석실장을 지낼 당시 누구도 얘기하지 못했던 대통령의 친인척 문제를 위에 보고하기도 했다.

현 정부를 ‘좌파적 정권’으로 규정한 이회창 전 총재의 인식에 동의하나.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도 현 정부를 좌파정권이라고 했으니 틀린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현 정부의 정책이 어떤 철학 위에 서 있느냐의 문제를 구체적 정책으로 제기하는 게 옳다. 뭉뚱그려서 ‘좌파적 정권’이라고 한 것은 정치적 냄새가 난다. 좌파를 친북세력과 연결시키는 태도는 옳지 않다. 진보냐 보수냐를 따져야 한다.

보수대연합을 추진하겠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부영 의원 등 당내 개혁파와는 함께하지 않겠다는 얘기인가.

정강정책이 구체성을 띠게 되면 달라진다. 지금은 생각이 딴판인 김용갑 의원과 김원웅 의원이 당에 함께 있어서도 정강정책이 모호하게 돼 있어서 큰 문제가 없다. 정강정책을 보수면 보수, 진보면 진보로 정확히 하면 이념이 같은 사람끼리 모이게 된다. 그러나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안 되며 선거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보수대연합을 추진하면 자민련과의 합당도 추진하나.

그렇게까지 진도가 나간 것이 아니다. 보수성향의 국민대연합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김종필 총재나 박근혜 의원, 김윤환 의원도 다 들어올 수 있다. 정치판만을 가지고 한 얘기는 아니다.

구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있지 않나.

정치판에 오래 있었으니 그런 이미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나이가 먹거나 여러 역정을 거쳤다고 새로운 생각을 갖지 말라는 법이 없다. 어떤 젊은이와 만나더라도 나라의 미래에 대해 내 나름의 확실한 청사진을 가지고 토론할 수 있다. 우리나라 이대론 안 된다. 뜯어고쳐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뜯어고치는 게 옳다고 믿고 있다.

경선출마 <조선일보>와는 무관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노무현 고문에 대해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평상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진리를 보는 태도에 차이가 있다”고 말했는데.

=그때 노무현씨가 언론에 대해 혹독한 얘기를 했다. 교육은 학교교육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학력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 ‘교육된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었다. 노 고문의 언론에 대한 얘기를 두고 말한 것이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올해 안 답방에 대해 찬성하나.

올해 안에 답방하면 선거에 영향을 끼친다. 이 정부나 북한 모두 그렇게 해선 안 된다. 올해 안 답방이 성사되면 민주당 후보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김정일한테 빚지고 시작한다.

수도권 경쟁력이 부족한 것 아닌가.

난 수도권에서 정치를 하고 있고, 서울시장도 지냈다. 내가 나서면 바깥의 건전한 보수세력이 급속하게 몰린다. 보수세력 결집의 바람이 불면 굉장한 지지가 일 것이다. 수도권엔 깨끗한 보수세력이 아주 많다.

<조선일보> 편집국장을 지냈는데, 출마와 관련해 얘기가 있었나.

개인적으론 정초에 방우영 회장 세배도 가고 하지만, 요즘은 갈 일도 없고 자기들 일한다고 나를 청한 일도 없다. 자주 만날 일이 없다.

대담 정영무 편집장young@hani.co.kr
정리 임석규 기자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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