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국민노총 출범을 지원한 것에는 한국노총을 견제할 목적도 있었다. 2011년 7월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양대 노총이 세력 경쟁을 벌여 노조 조직률이 높아질 것이므로 국정원은 “산업현장 안정 저해”로 인식해 대안을 마련하려 했다.(2010년 8월9일 국정원의 청와대 보고 문건) 특히 고용부가 추진한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따른 근로시간면제 제도’(타임오프)에 극렬히 반대하던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이 2011년 1월 한국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재당선돼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자, 국정원은 한국노총 견제 목적으로도 국민노총을 활용하기로 한다. “일부 여당들이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에 동조하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어, 이용득 고립화에 걸림돌로 작용. 적절한 견제 필요. 제3노총 출범 지원을 적극 검토.”(2011년 3월 국정원 내부 문건) 고용부가 청와대에 비공개로 보고한 ‘최근 노사관계 동향 및 대응 방향’(2011년 4월26일)에도 고용부는 한국노총에 “대화 단절, 재정 지원 중단 등 다양한 집행부 압박”을 추진하면서 “새로운 노동운동 세력(가칭 국민노총)의 공식 출범 지원” 계획을 밝혔다.
2011년 11월1일 국민노총이 출범식을 열고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동걸 전 보좌관에게 10개월간 매달 1570만원씩국정원과 고용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2011년 2월이다. 2월24일 이채필 당시 차관은 고용부 담당 국정원 ㅂ정보관에게 “최근 대통령께서 임태희 대통령실장, 박재완 고용부 장관(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에게 한국노총·민주노총을 뛰어넘는 제3노총 출범을 지시한 바 있다”며 제3노총 출범을 준비하기 위해선 사무실 마련이 급한데 국정원에서 3억원 예산을 지원해줄 수 있는지 문의한다. 실제 ㅂ정보관이 보고한 문건을 보면, 당시 이 차관이 “자신이 다음주 초 임 실장에게 그간 경과를 보고하고, 임 실장이 국정원 지휘부에 재차 지원 건에 대해 요청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임 실장은 민병환 국정원 2차장을 만나서도 같은 요청을 한 것으로 국정원 문건(3월19일)은 밝혔다.
고용부의 요청에 국정원은 마뜩지 않아 한다. ㅂ정보관은 보고 문건에서 “국정원이 독자적으로 지원한 사실이 노동계에 노출될 경우, 파문 가능성이 상존하므로 직접 예산 지원보다 경총·상의 등 경제계를 통한 우회적 지원이 바람직하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고용부가 “경제계가 노조 설립 뒷돈을 대는 것은 어렵다고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히자, 국정원은 결국 국민노총이 이동걸 당시 고용부 정책보좌관을 통해 요청한 4억1400만원 가운데 3억원을 지원하기로 한다.
그런데 왜 3억원이었을까. ㅂ정보관은 검찰 참고인 조사와 법정 증인신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이 차관이 ‘국정원은 통치자금 그런 것도 옛날에 많이 하고 그런 거 있잖아요?’라며 예산 지원을 부탁했다. 왜 3억원이냐고 물으니 이 차관이 ‘술 마실 때도 그렇고 돈 계산할 때도 그렇고 1, 3, 5, 7, 9로 해서 하잖아’라고 말했다. 큰돈에 국가예산이고 쉽지 않은 돈인데 그 말을 듣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진술했다.(2018년 7월9일 이 전 보좌관 3회 피의자신문조서, ㅂ정보관 대질조사) 국정원은 결국 이 전 보좌관에게 2011년 4월부터 매달 1570만원씩 10개월간 이듬해 3월까지 총 1억5700만원을 지급했다.
이동걸 전 보좌관은 KT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 캠프 활동을 했고, 이영호 당시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과 친분도 있었다. 정권 초기부터 고용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맡으면서,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당시 핵심 증인이던 장진수 전 주무관에게 입막음 비용 4천만원을 전달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는 2012년 민간인 불법사찰 연루로 장관 보좌관에서 사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경남지방노동위원장으로 취임해, 2018년 6월 검찰 수사 이후인 2018년 12월까지 직을 유지했다.
고용노동부가 국민노총 출범을 위한 자금지원을 요청했다는 국정원 내부 문건.
수령자 확인 서명이 있는 영수증이 남은 이유이 전 보좌관이 피의자로 소환돼 처음 검찰 조사를 받을 때만 하더라도, 돈을 받은 사실과 국민노총 출범 관여 사실조차 부인했다. 그러나 검사가 이 전 보좌관의 서명이 있는 영수증을 제시하자 그제야 시인한다. 그는 국정원 ㅂ정보관에게 “국민노총과 관련해 활동하는 데 쓰라”는 명목으로 매달 1570만원을 현금으로 받아, “사무실 서랍에 돈을 넣어두고 일자, 금액에 관계없이 필요할 때마다 빼서 썼다”. 그는 주로 자기 월급의 3배가 되는 돈을 “개인 활동비”로 “노동계 인사들과의 식사 비용으로 사용했다”고 진술했다.(2018년 6월27일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애초에 고용부가 요청한 명목은 사무실 마련 비용이었지만 이에 동떨어지게 쓰인 것이다. 국정원 관계자도 이 전 보좌관이 밥·술을 사는 데 돈을 쓴 사실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알았다.
이 전 보좌관이 범행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던 ‘영수증’이 남게 된 배경도 흥미롭다. ㅂ정보관의 상관이자 민병환 2차장의 부하였던 박원동 국익정보국장이 검찰에 2018년 11월27일 낸 진술서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국익정보국 예산으로 지원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보고했으며, 민병환 차장은 임 실장에게 자금을 지원해준다고 약속했으므로, 자신이 책임질 것이니 고용부에서 요구하는 대로 지원해주도록 지시했다. 민 차장이 사용한 예산임을 입증할 수 있는 근거를 남기기 위해 자금을 수령하는 사람의 인적사항을 영수증에 적시하고 직접 확인 서명을 받도록 조치했다.”
이러한 사실관계를 확인한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민병환 전 차장, 박원동 전 국장, 이채필 전 차관, 이동걸 전 보좌관은 ‘국고손실’ 혐의로 2018년 12월 기소하면서 임태희 전 실장에 대해선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그러나 2020년 2월7일 1심인 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민 차장이 임 실장으로부터 제3노총 설립에 관련된 국정원 예산에 관한 요청을 받았다고 충분히 인정할 수 있으므로, 검사의 (임태희 실장의) 불기소 처분이 적정했는지에 대해 합리적 의심을 제기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노총은 이명박 정부에서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 배정과 주요 고용부 지원사업 예산을 따내기도 했으나, 노조 합류가 추가로 되지 않으면서 정권이 바뀐 2014년 한국노총과 통합됐다.
성공할 수 없는 ‘이명박 노총’ 국정원이 국민노총 출범을 지원했던 이유가 된 이용득 전 한국노총 위원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겨레21>과 만나 자신과 관련된 문건을 확인한 뒤 “뻔한 얘기였는데 활자화된 것을 확인하니 재미있다”고 운을 뗐다. “국민노총은 이명박 정부가 그린 그림에 억지로 노조를 끼워맞춘,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이명박 노총’이었다. 이명박이 1960~70년대 같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한 것은 노동계가 분열됐기 때문이다. 양대 노총이 물이 스며들 틈을 줬기 때문이다. 이명박을 나무란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양대 노총이, 노동조합이 단결하고 연대해야 한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