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고문과 ‘언론 발언 술자리’함께 한 <한겨레21> 기자의 진상보고
이인제 민주당 고문이 "노무현 고문이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메이저 신문 국유화', '폐간' 따위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고 일부 언론이 이를 크게 보도해 파문이 일고 있다. <한겨레21>은 문제의 저녁식사 자리에 있었던 임석규 기자가 보고 듣고 기억하는 당신의 정황과 대화내용, 당사자로서의 소회 등을 싣는다. 임기자는 당신 <한겨레> 정치부 소속으로 민주당을 출입하고 있었다. 편집자
기자는 숙명적으로 관찰자다. 기자가 특정한 사건에 개입하려 하는 것은 위험하다. 정치부 기자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곤혹스럽다. 의도와 관계없이 이미 정치화된 사건에 연루된 탓이다. 그래도 보고 듣고 느낀 대로 쓰는 게 기자의 책무일 것이다.
한 가지 분명히 해두고 싶다. 당시 저녁식사가 아무리 비보도를 전제로한 자리였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고문이 언론사를 폐간시킬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면 기사를 썼을 것이다. 그 정도의 사안이라면 취재원과의 비보도 약속을 지켜야 하는 기자윤리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당시 노 고문의 발언에 티끌만치라도 무게가 실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진정성이 엿보인 발언이었다면 기자들이 꼬치꼬치 캐묻는 게 정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얘기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비보도 약속이어서 기사화하지 않았다기보다, 기사화할 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쓰지 않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노 고문이 그 자리에서 밝힌 부산 후원회 계획은 다음날 <문화일보>에 보도됐다. 그 자리에 있었던 기사가 기사를 썼다. 노 고문이 9월11일 부산 롯데호텔에서 대규모 후원회 행사를 열기로 했다는 내용이었다. 큰 기사는 아니었지만 보도할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도가치 있는 얘기 오가지 않아
술자리에선 숱한 농담이 오간다. 과장된 표현이 나오게 마련이고, 강조를 위한 비약과 반어법도 넘쳐난다. 기자들이 정치인과의 술자리에서 나온 얘기들을 말 그대로 의미 부여해 기사화하기로 들자면 신문분량이 100쪽이라도 모자랄 것이다. 오히려 더욱 중요한 문제는 그날 오간 얘기들이 증폭되고 왜곡되고 거두절미된 채 날선 대립관계에 있는 정치인에게 유출된 경위다. 그 자리에 기자가 있었던 언론사가 사안을 차분하게 보도하는 데 비해 그 자리에 기자가 없었던 <중앙일보>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이 무슨 난리라도 난 것처럼 흥분된 보도를 하는 것도 어처구니없는 노릇이다. 그 자리에 있었던 기자들과 없었던 기자들 가운데 도대체 누가 더 진실에 가깝게 보도할 수 있겠는가. 노 고문 쪽이 그날 참석했던 기자들에게 사실을 사실대로 밝혀달라고 요청함에 따라 이미 ‘비보도 약속’은 깨졌다. 비보도 약속을 지키느라고 보도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노무현 고문과 민주당을 출입하는 기자 5명의 저녁식사는 지난해 8월1일 여의도 민주당사 근처의 한 식당에서 이뤄졌다. 정치인과 기자들이 이용하는 음식점치고는 값이 싼 편에 속하는 식당이었다. 서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도 민주당 대표 시절 기자들과 이 식당을 자주 찾았다. 모임은 밤 7시께부터 2시간30분 남짓 이어졌다.
그날 모임은 기자들이 노무현 고문에게 먼저 요청해 마련됐다. ‘오프더레코드’(비보도 요청)도 기자들이 자발적으로 약속한 것이었다. 스스럼없는 대화를 나누고, 기자들도 활발히 의견을 개진하자는 취지였다. 노 고문 쪽도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요컨대 그날 모임의 일차적인 목적이 특별한 현안에 대한 취재보다는 당시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른 노 고문에 대한 이해를 넓히자는 데 있었다. 참석자들은 노 고문과 <한겨레> <문화일보> <대한매일>, SBS, YTN 등 기자 5명, 노 고문의 유종필 공보특보 등 모두 7명이었다. 이들 기자 5명은 모두 84년에 대학에 입학했고, 비슷한 시기에 언론사에 입사해 경찰수습기자 생활을 함께 경험한 동기생들이었다.
이런 형식의 모임은 노무현 고문이 처음이 아니었다. 김근태 고문과 정동영 고문 등 다른 유력 대선주자들과도 1∼2개월의 시차를 두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형식의 모임을 가진 바 있었다. <중앙일보>나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자칭 ‘메이저 신문’의 민주당 출입기자들 가운데는 동기생들이 없었다. 이들 신문사의 기자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자리는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 자리에선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왔다. 기자생활의 애환 등 정치 이외의 얘기들도 오간 것으로 기억한다. 식사와 함께 술이 오갔고, 후반부엔 이른바 ‘폭탄주’도 두어 순배 돌았다. 노 고문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자리가 아니어서 기자들도 왁자지껄 떠들었다. 농담과 우스갯소리도 자주 나왔으며 그때마다 폭소도 터져나와 분위기는 어수선하기까지 했다. 필기도구와 메모지를 꺼내 기록한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직까지 녹취록이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 녹음기를 지참한 사람도 없었던 것 같다.
8개월 전 여러 사람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오간 대화내용을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기억해내기란 어렵다. 술까지 곁들인 자리였으니 더욱 그렇다. 따라서 참석자들이 당시에 대한 기억을 되살린다고 해도 그것이 100% 완벽한 진실일 수는 없다. 때문에 누구도 자신만의 기억이 진실이라고 고집하기도 어렵다. 다만 몇 가지 대화의 내용과 그 맥락은 떠오른다. 언론사에 대한 얘기가 화제에 오른 것은 술자리 후반부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초미의 관심사였던 언론사 세무조사를 둘러싼 얘기가 나왔고, 막대한 액수의 세금추징에 대한 대화도 오갔다. 당시 언론계에서 소문으로 나돌던 <동아일보>의 세금납부 능력에 대한 얘기들이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화제가 <동아일보>로 이어졌다.
세금납부 언급하다 <동아일보> 화제로
노무현 고문은 <동아일보> 기자들에 대한 애정과 희망을 표시했다. 좋은 기자들이 많았고, 과거엔 괜찮은 신문이었다는 얘기도 했다. 이런 맥락에서 소유지분제한과 사원지주제를 염두에 둔 듯한 견해도 내놨다. 기자들이 돈이 없는데 어떻게 지분을 늘리느냐고 묻자 한국은행특별융자라도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했다. <동아일보> 사주의 고려대 앞 사건에 대한 얘기도 오갔다. 사주의 ‘퇴진’과 ‘폐간’이란 말도 나왔으나 참석기자 가운데 한명이 진담인지를 묻자 농담으로 웃어넘겼다. 이인제 고문 쪽이 주장하는 ‘메이저 신문 국유화’라는 말은 들어본 기억이 없다. 언론사를 국유화하겠다는 말을 들었다면 분명히 귀가 번쩍 뜨였을 것이다. 이 밖에도 노 고문은 정치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얘기, 김근태 고문은 성숙한 정치인이며 그것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고민과 성찰에서 나온다는 얘기, 이인제 고문에 대한 평가, 경선전략 등에 대한 얘기들을 했다.
기자는 그날 모임에 대한 파문이 확대되자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다른 언론사 기자 4명을 만나거나 전화로 연락해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일부 언론에서 보도한 것처럼 5명이 함께 만나 ‘긴급모임’을 한 적은 없다. 5명의 기억이 일치하는 부분도 있었고 조금 차이가 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대부분 이 고문 쪽의 주장이 과장되거나 일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는 느낌을 얘기했다. 다른 4명의 기자들도 ‘메이저신문 국유화’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기억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한 기자는 “<동아일보>를 공영화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고 당시의 기억을 되살렸다. 또 다른 기자는 “<동아일보>가 기자와 사원들의 뜻이 존중되는 구조가 돼야 한다는 맥락으로 이해한다”고 기억했다. 한 기자는 “‘공영화’나 ‘국유화’라는 말은 일상적인 용어가 아니므로 들었다면 또렷이 기억이 날 텐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폐간’이라는 말을 들었는지에 대해선 2명은 “들었다”거나 “들은 것 같다”고 말했고, 다른 2명은 “기억에 없다”고 말했다. 참석기자 5명은 기억이 일치하는 부분과 엇갈리는 부분 등을 종합해 있는 그대로 기사화하고 이를 다른 언론사에도 알리는 형태로 공동의견을 밝히려 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사의 데스크(차장과 부장 등 간부)에서 이를 반대해 무산됐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이 ‘입 열다 만 한겨레 기자’ 따위의 제목으로 4월6일치에 보도한 기사는 이런 전후관계를 왜곡한 매우 악의적인 기사다. 기사를 작성한 두 언론사의 기자들도 이후 기자에게 미안함을 전해왔다.
동아·조선의 악의적 왜곡 기사
그날 모임에서 오갔다는 대화내용이 어떻게 이인제 고문쪽에 유출됐을까. 일부 기자들은 이날 식사 자리에서 나온 얘기를 중심으로 이튿날 자신의 신문사나 방송사에 이른바 ‘정보보고’를 했다. 정보보고는 주로 간단한 메모형식으로 작성되며, 대부분 압축된 핵심 요지만 담긴다. 기자들의 정보보고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 흔히 증권가에 유출돼 정보지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 후보 쪽은 정보의 출처에 대해 설명이 조금씩 바뀌기는 했어도 언론사 간부나 기자를 지목했다. 지난 4월4일 이인제 후보의 김윤수 공보특보는 노 고문이 문제의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언론사 정보보고 문건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김 특보는 당시 “친분이 있는 언론사 데스크로부터 정보보고 문건을 넘겨받았다”고 말했다. 김 특보는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다. 그러나 이날 밤 이인제 후보는 문화방송 토론회에서 “경선과정에서 한 기자가 심각하게 그런 내용을 전해주기에 나의 특보에게 확인해보라고 한 것”이라고 정보의 출처를 다르게 설명했다. 이때만 해도 그 기자가 당시 저녁식사 자리에 참석했던 기자인지 여부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이튿날인 4월5일 밤 이 후보는 경인방송 토론회에서 “노 후보와의 저녁 자리에 참석했던 기자가 자발적으로 찾아와 그런 얘기를 했다. 어느 기자인지는 나중에 밝혀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참석기자 5명 가운데 1명이 자신에게 직접 찾아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먼저 얘기했다는 것이다. 기자는 이 고문을 찾아간 적이 없다. 나머지 4명의 기자들도 “찾아간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렇다면 이 고문이나 기자 5명 가운데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부분에 관해 이 고문은 확실히 밝혀야 한다. 이 고문의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다른 4명의 기자는 부당한 오해를 받을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 고문은 정보의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이 고문은 또 “김윤수 특보가 참석했던 기자 5명에게 일일이 내용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자는 이 고문 쪽에서 아무런 확인을 받은 적이 없고, SBS 기자도 확인 사실을 부인했다. 이 부분만큼은 이 고문 쪽이 사실을 왜곡한 셈이다. 그 뒤 이 고문은 “참석기자 3명에게 발언내용을 확인했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이들 3명의 기자들도 “이 고문 쪽에서 확인을 요청해왔지만 ‘기억에 없다’, ‘비보도였으니 말할 수 없다’며 확인해주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보보고 문건 입수 경위 밝혀야
문제의 정보보고 문건은 이미 오래 전에 유출됐을 개연성이 높다. 노 고문과 기자 5명의 지난해 8월1일 저녁식사 며칠 뒤에 이미 <조선일보>는 이 문제에 대한 취재에 들어간 바 있다. 당시 민주당을 출입하는 <조선일보> 기자 한명은 노 고문과의 식사 자리에 참석했던 기자 일부를 상대로 노 고문의 발언내용을 취재하며 확인을 요청했다. 노 후보의 유종필 공보특보도 “당시 이 <조선일보> 기자한테서 ‘노 후보가 8월1일 이런저런 말을 했다고 들었는데 맞느냐’며 확인을 요청하는 전화를 받았다”며 “근거 없는 얘기니 쓸 테면 쓰라고 했으나 기사화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문제의 저녁식사 모임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곧바로 노 고문이 발언했다는 내용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 <조선일보> 쪽에 넘어갔다는 얘기다. 물론 당시 <조선일보>가 정보보고 문건까지 입수했는지, 또 입수했더라도 그 문건과 이인제 고문 쪽이 입수한 문건이 같은 것인지 여부는 단정할 수 없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사진/ 일러스트레이션ㅣ장광석.
보도가치 있는 얘기 오가지 않아

사진/ 노무현 후보와 일대격돌을 벌이고 있는 조·중·동 현장에 기자들이 없던 언론사들이 오히려 흥분된 보도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후보들. 인천지역 경선장에서 노무현, 정동영, 이인제 후보가 행사진행을 기다리고 있다. (이용호 기자)

사진/ 노무현 후보의 유종필 공보특보가 민주당사 기자실에서 기자들에게 입장을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사진/ 이인제 후보의 김윤수(왼쪽) 공보특보가 기자들과 얘기하고 있다. 김 특보는 문제의 문건을 친분있는 언론사 간부로부터 건네받았다고 밝혔다. (이용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