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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젊은 한나라당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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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4-0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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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지도체제 도입 이끌어낸 미래연대 회원들이 말하는 미완의 당내개혁

사진/ 미래연대는 한나라당 내부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미래연대 회원들이 이회창 총재 수습안에 회원들이 이회창 총재 수습안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3주 넘게 끌어온 한나라당 내분사태를 바라보는 당내 시각은 크게 두 갈래였다. 일찌감치 과열된 차기 당권경쟁의 부산물이라는 인식과, 1인 지배체제로 대표되는 수구적 정당구조의 극복 과정이라는 평가가 그것이다.

전자의 틀은 크게 ‘부총재 경선에서 이 총재를 업고 뛰는 일부 측근’ 대 ‘나머지 주류 중진과 비주류’의 대립구도를 만들었고, 집단지도체제 도입 주장도 비주류의 당권 분점 의도로 깎아내렸다. 후자는 ‘주류 전반을 아우르는 보수파’와 ‘주류 일부와 비주류 개혁파’를 맞서게 했다.

이런 복잡한 구도 속에 끼여들어 나름대로 교통정리를 하고 이회창 총재의 집단지도체제 도입 선언을 견인해낸 게 미래연대였다. 의원 16명과 원외 지구당위원장 10명으로 구성된 미래연대는 당내 주류와 비주류를 모두 포함하고 보수·개혁 성향을 아우르는 모임이다. ‘나이’(30∼40대 초) 하나로 묶인 조직이라는 게 비교적 정확한 묘사다. 당권을 노릴 연배도 아닌 만큼 이들의 시각에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복잡한 당내 조정자 역할


지난 3월9일 홍사덕 의원이 불공정 경선을 이유로 서울시장 경선 포기와 함께 집단지도체제 도입을 주장하고, 이어 최병렬 의원이 측근 배제를 촉구한 뒤 13일 미래연대는 첫 성명을 냈다. 이날 성명은 “5월 전당대회에서 집단지도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데 (회원들이) 대부분 동의했다. 총재 주변에서 당의 단합을 저해하는 어떤 행위도 자제해줄 것을 촉구한다”는 미지근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미래연대는 이후 내부논란을 거치면서 집단지도체제 조기 도입과 이회창 총재 측근을 포함한 폭 넓은 인적 쇄신 쪽으로 내분 수습의 가닥을 잡아나갔다. 밑바탕에는 민정계로 대표되는 옛 여권세력이 이 총재 주변은 물론 당내 지도적 위치를 차지함으로써, 변화하는 민심에 둔감한 당을 만들었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미래연대의 한 관계자는 “민정계가 이 총재 측근에 있으면 대선은 해보나 마나다. 당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민정계 당직자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지고 모두 물러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개혁적 보수’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그동안 한나라당 분위기는 개혁이란 수식어에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쪽으로 기울어왔다. 개혁 색채의 강화를 통해 지지층의 외연을 넓히려는 노력은 대부분 평가절하된 것이다. 비주류 쪽에서는 “이회창 대세론에 마취돼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미래연대가 마취상태에서 먼저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대부분 수도권에 지역구를 두고 있고, 이른바 386세대라는 점 때문으로 분석된다. 정권 교체의 열망을 이 총재 지지로 무리없이 연결짓는 정서에서 훨씬 자유롭기 때문이다. 영남에 지역구를 둔 한 회원이 탈퇴할 뜻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 것도 그 반증일 터다.

미래연대 소속으로 당직을 맡고 있는 한 의원은 “당권-대권 분리 논란이 일자 내 가족마저 이 총재를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는 욕심 많은 노인’으로 보더라”며 충격을 전했다. 그는 경기도 출신이다. 정당개혁이 만만찮은 시대적 화두로 등장한 것이다. 당직을 맡으면서 미래연대 활동이 뜸해진 의원들이 이번 사태를 통해 열성 회원으로 변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상황인식 달라도 쇄신에는 한뜻

사진/ 한나라당은 집단지도체제 도입으로 정당개혁의 첫단추를 끼웠다. 한나라당 화합발전특위 박관용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용호 기자)
한나라당 내부의 이런 민심읽기의 정도는 지난 3월16일 민주당 광주경선에서 ‘노무현 바람’이 일면서 더욱 벌어졌다. 미래연대는 이를 정치권 변화에 대한 유권자들의 거친 요구이자 강력한 대항마의 등장으로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주류 쪽은 “거품이다. 노무현은 지지층만큼 거부층도 많은 정치인이다”라는 반응이었다.

노무현 돌풍 속에 지난 3월19일 이뤄진 이 총재의 내분 수습안 발표는 이런 주류 쪽 인식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집단지도체제는 물론 당권-대권 분리도 거부한 이날 수습안에 대해 김영춘 의원은 “이대로 가면 집권하기가 힘들 것 같다”며 절망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미래연대는 이 시점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밤 마라톤 회의를 거친 뒤 20일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바람에 대단히 미흡한 방안”이라는 성명을 내기는 했지만, 대처 방안을 두고 의견이 크게 나뉜 것으로 전해졌다.

이성헌 공동대표는 “미래연대 내부에서 상황에 대한 인식과 의견의 개인 편차가 너무 크다. 사태를 봉합해야 한다는 쪽과 이대로는 수습이 안 된다는 쪽이 맞선다”며 고민을 드러냈다. 오세훈 공동대표는 수습안 발표가 나온 뒤 “어떤 결론이 났든 고민 끝에 나온 결정이므로 이 총재의 결단을 존중해야 한다. 위기국면이므로 전폭적으로 지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반대편 일각에선 “미래연대라는 틀을 왜 갖고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묻고 그 틀을 깨고 나가야 한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미래연대가 개혁 드라이브를 끝까지 밀고 나가는 데 결정적인 몫을 한 것은 우연적인 요소의 개입이었다. 20일 측근정치 논란의 장본인인 하순봉 의원이 강원도지사 후보선출대회에서 비주류와 소장파를 겨냥해 “배가 흔들리면 쓸데없는 쥐새끼들이 왔다갔다한다”는 폭탄발언을 한 것이다. 이 발언 이후 봉합에 무게를 두던 미래연대 회원들도 유턴을 하게 됐고, 21일 회원 23명이 ‘집단적으로’ 당사 기자실을 찾아가 하 의원 사퇴와 당 쇄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기에 이르렀다.

닷새 뒤 이 총재가 집단지도체제를 전격 수용함으로써 미래연대는 일정한 정치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초지일관 미래연대의 문제의식을 자극하며 대외협력위원장직 사퇴 등 행동으로 앞서간 김영춘 의원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미래연대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싸움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 총재의 2차 수습안 발표가 있기 직전, 한 의원은 “획기적인 수습안이 나오지 않는다면 젊은 의원들이 올해 대선에서 한나라당 지지를 호소할 명분이 사라진다”고 걱정했다. 결국 이번 내분 사태는 ‘젊고 개혁적인 목소리가 당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답을 구하는 과정인 셈이었다.

미래연대 ‘젊은 피’ 역할 할까

집단지도체제 도입이 제도적인 정당개혁의 수용이라는 자체의 의미를 지니지만, 이를 통해 열린 공간에서 젊고 개혁적인 내용을 채우는 일이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미래연대가 이번 사태를 거치며 그런 역량을 쌓았는지에 대한 답은 아직 유보적일 수밖에 없다. 한 의원은 “앞으로 기동력이 필요한 싸움은 각자 하고, 미래연대는 큰 흐름을 만들 때만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장 9시간까지 토론을 해야 했던 내부 합의과정이 힘겹게 느껴진 탓인 것 같다. 또 이번처럼 소장파가 한뜻을 이룰 사안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미래연대는 그동안 국가보안법 개정, 크로스보팅 도입 등 몇몇 개혁 의제에 손을 댄 적이 있지만, 주목할 만한 추진력을 보이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심지어 이번에도 “미래연대 회원들은 대부분 순진한데 몇몇이 배후조종했다”(한 핵심 당직자)는 극단적 폄하 발언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결국 이번 사태는 지난 2000년 ‘젊은 피’의 유행과 함께 미래연대가 출범할 때부터 던져진 궁금증을 한층 확대재생산해놓았다. 과연 미래연대는 그들의 나이만큼 당을 젊게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 그들이 나이를 먹어가는 방법을 택할 것인가.

박용현 기자/ 한겨레 정치부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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