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뜨고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다섯 청년 황시영, 박예휘, 김가영, 김지수, 서진원(왼쪽부터). 김진수 기자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그 말을 새기며 당사자들은 어땠을까.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노회찬 때문에 뛰어든 그곳에 노회찬은 없었다. “(노회찬 의원 돌아가시고) 입당했을 때는 정의당에 (노회찬처럼) 정말 좋은 사람만 있고, 현명하게 일처리를 할 줄 알았어요.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내부에서 정의당다운 방식으로 좀더 정의당답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계속했어요. 노 의원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했을까, 계속 생각했죠.”(김지수) “노회찬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이 던져지자, 정의당 내에서 몇 달 전 논쟁이 일었던 낙태죄 법안 얘기가 불쑥 튀어나왔다. 지난 4월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지 나흘 만에 ‘자기낙태죄’(제269조 1항)와 의사 등의 ‘동의낙태죄’(제270조 1항) 조항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가장 앞선 입법 노력에도 불구하고 “임신 주수에 따라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오히려 후퇴한 법안”이라는 비판으로 뜨거웠다. 하지만 두 달여 흐른 지금, 이들은 다른 지점을 얘기하고 싶어 했다. 사안의 ‘옳고 그름’ 이전에 그것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는 과정에서의 ‘태도’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당내 갈등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일부 의견을 배제했던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회찬이라면 그렇게 했을까요?”라고 누군가 물었고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너나 할 것 없이 답했다. “법안 발의 자체를 서두르기보다 담을 내용과 발의 과정에서의 진정성에 방점을 찍었어야 했는데…. 실제로 당내(여성주의 그룹)에서나 외부 여성단체에서 비판이 터져나올 때, 지도부는 그걸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여성주의는 차치하고라도 소통 자체가 어려웠어요.”(김가영) 소통 부재를 경험하고 얻은 결과는 무엇일까. “노회찬 의원이 떠난 직후 얻었던 17%의 정당지지율에 연연하지 말자”는 것이다. “정의당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는 원칙론이다. “노회찬에 대한 부채의식 말고 그 이상을 제시하지 못하니 지금의 결과로 이어진 것 아닌가요.”(박예휘) ‘그 이상’은 무엇일까. 야단법석이던 다섯 명이 동시에 한참 뜸을 들였다. “(정치에 관심 없이 알바만 하던) 나처럼 내가 나서도 될까, 내가 정치를 얘기해도 될까, 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서 나서게 하는 것 아닐까요. 저도 중앙당과 계약(정책위 당직자)이 끝나면 곧바로 지역으로 가려고요. 온몸으로 나서는 게 내 안에 있는 노회찬 아닐까요.”(김지수) “지난해 추모제에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 그게 뭔지 다시 새겨야 할 거 같아요. 당비가 적어서 그렇게 된 것 아닐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거기서부터 고민이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요.”(서진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지는 못하겠지만, 회사에서 허락하는 만큼, 퇴근 뒤, 주말에 당원들을 만나려고 해요. 현장에서 답을 찾아보려고 합니다.”(황시영) 300일짜리 정치아카데미를 갓 졸업한 정치 신인들이 내놓은 말이 모두 정답일 리 없다. 누군가에게는 지금까지 소외되던 계층을 조직화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이에게는 노회찬 정신을 이론으로 더 세련되게 가다듬는 것이다. 그것은 평생에 걸쳐 현장 속으로 들어가 소외 계층과 함께 일하면서도 정당정치 이론가로서 면모를 잃지 않았던 노회찬의 모습이기도 했다. 10주기가 되면 인터뷰가 잠시 중단되고, 사진 촬영을 위해 ‘젊은 노회찬들’이 노회찬 사진 앞에 섰다. 노회찬을 ‘갭모에’(영어 ‘gap’과 일본어 ‘모에루’(萌える)를 합성한 것으로 ‘반전매력’을 뜻함)라고 하던 활기는 노회찬 사진 앞에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활짝 웃어보면 어떻겠느냐 해도 경직된 얼굴을 어찌하지 못한다. 누군가 “웃어도 되나”라고 한다. 억지로 그린 미소가 자연스러울 리 없다. 여전히 숙연한 이들을 향해 “지금 각자에게 노회찬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도 쉽게 답하지 못했다. 노회찬을 정의할 수 있는 세상의 문장들은 차고 넘치는데, 그럴싸하게 말해도 될 법한데 단 한 사람도 나서지 않았다. “노회찬이라면 말문이 막힐 때가 있다”(김지수)거나 “(노회찬을 떠올리면) 버퍼링이 걸릴 때가 있다”(서진원), “내면화는 아직 잘 못하겠다”(김가영)는 말을 어렵게 꺼냈다. 이들이 ‘나에게 노회찬은 무엇이다’라고 말하게 되는 날, 진보정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노회찬만으로 택한 정의당, 후회는 없을까. 진보정당으로 입문해 기존 거대 정당으로 옮겨간 정치인은 셀 수 없이 많다. “소거법으로 하면 정의당밖에 없거든요. 노동이 당당한 삶을 대변해주는 것은 정의당밖에 없죠”(황시영)라거나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하면 생각하는 바를 훨씬 빨리 이룰 수 있지 않느냐고 누군가 말하면, 저는 거기에 속도보다는 방향이라고 말하고 싶어요”(박예휘)라는 결심만으로 이들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당직선거 결과가 발표되는 7월13일이면 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낙선을 경험할 것이고, 정치 구도나 세력의 필요성을 절감할 것이다. 300일 동안 이들과 함께한 강상구 정의당 교육연수원장은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청년이 배달노동을 하며 지역위원장이 돼 곳곳을 누비고, 평범한 중소기업 대리가 퇴근 뒤 지역주민과 함께 고민을 나누는 것 자체가 노회찬이 그토록 바라던 현장 속 정당정치의 모습일 것”이라며 “앞으로 10년, 노회찬 10주기가 되면 정의당에서 육성한 정치인들은 그렇게 노회찬 정신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7월23일은 고 노회찬 의원 1주기다. 추모집 모금은 14일까지 계속된다. 7월23일은 고 노회찬 의원 1주기다. 추모집 모금은 14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