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페미’가 국회 게시판 곳곳에 붙인 포스터. 국회페미 제공
4급 보좌관 여성 비율 8.2% 그쳐 9급 비서나, 인턴의 경우 여성이든 남성이든 모두 국회 생활이 쉽지 않다. 문제는 ‘의원실 살림을 챙겨야 한다’는 논리로 허드렛일과 잡무가 주로 여성에게 전가되는 구조다. 국회 직급별·성별 현황과 의원실 운영 방식을 보면 여성 비서들이 허드렛일과 감정노동의 쳇바퀴에서 쉽게 빠져나오기 어렵다. ‘막내니까 해야 한다’고 하지만 막내가 대부분 여성이다. 보통 의원실에서는 의원 일정 관리와 회계 등을 맡는 8~9급 행정비서를 두는데 주로 여성이 맡는다. 자연스럽게 일정·회계 관리라는 공식 업무 외에 의원실 온갖 잡무를 떠안게 되는 게 현실이라고 4명의 보좌진은 말한다. 게다가 한번 행정비서를 맡게 되면 대부분의 보좌진이 꿈꾸는 정책·정무 비서관으로 승진하기 어렵다고 한다. 보좌진 ㄱ씨는 “행정비서로 8급을 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학력과 경험을 가진 남성 비서와 출발선부터 뒤처진다는 이야기다. “인턴을 하던 중 직급을 올릴 기회가 왔을 때 의원이나 고참 보좌관으로부터 ‘인턴 계속할래, 행정비서 할래’라는 식의 질문을 받는 것은 여성뿐이에요. 행정비서를 선택했을 때 ‘저도 정책일 하고 싶어요’라고 하면 행정비서 한다고 했으니 안 된다는 답변을 듣죠.”(보좌진 ㄱ씨) “한번 행정비서라는 딱지를 얻으면 다른 직무로 옮기는 게 아주 어려워요.”(ㄴ씨) “일정 관리와 회계 자체만 보면 괜찮지만 문제는 행정비서가 의원실 물품 구매, 전화 응대, 잔심부름 등 잡무를 ‘독박’ 쓴다는 것이죠. ‘어머니가 되라’는 이야기도 들어봤어요.”(ㄷ씨) “여성 비서에게 잡무를 전가하는 의원실에선 비슷한 직급의 남성 보좌진은 전화 응대도, 잡무도 신경 쓰지 않아요. 자기보다 높은 급수의 여성 보좌진이 차를 준비해도 손놓고 있죠. 허드렛일을 하는 게 단순히 직급이 아니라 성별의 문제이기 때문이에요.”(ㄹ씨) ‘국회 공무원 성별 현황’(국회 사무처·6월1일 기준)에서 국회 보좌진의 경우 가장 높은 4급 보좌관의 여성 비율은 8.2%에 불과하다. 5급 20.4%, 6급 25.4%, 7급 39.1%, 8급 59.9%, 9급 64.8%로 낮은 직급일수록 여성 비율이 높다. 이러니 여성 비서들이 롤모델을 만나거나 성평등한 의원실을 만나 ‘유리천장’을 뚫는 것은 운에 달렸다. 4명 중 ㄷ씨만 “운이 좋은지 의원의 배려로 정책 업무도 해봤다”고 말했다. ㄹ씨는 “불규칙하고 일이 특정 시기에 몰리는 국회 업무 특성상 출산과 육아를 겪는 여성 보좌진은 경력 단절로 사라지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이들은 동년배의 남성 보좌진이 정책·정무 업무를 맡아 승진하는 모습을 보며 ‘이곳에 미래가 있나’ 생각하며 일터를 지키고 있다. 국회는 원래 그런 곳? 지난해 #미투 운동이 일어나 젠더 이슈가 부상하면서 국회의원들은 대책 마련을 약속하고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4명의 보좌진은 자신들의 노동환경에선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여성에게 허드렛일을 전가하는 게 의정활동 시스템의 일부인 것 같아요. 10명이 안 되는 직원들이 의원실을 운영하다보니 한 명에게 잡무를 떠안기는 게 편하겠죠. 그걸 관행이라 하면서 지속시키고요.”(ㄱ씨) “의원이나 남성 보좌관이 눈치를 보긴 하지만 미투나 젠더 문제를 개인의 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구설에 휘말리면 안 된다’ 딱 그 정도예요.”(ㄷ씨) ‘기울어진 여의도동 1번지 대나무숲’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있다. “당대표 방북 선물이 왔으니 받으러 어디로 오란다. 시간 맞춰 배부처에 가니 다 같이 짠 것처럼 온통 젊은(어린) 여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상한 풍경인데 너무 익숙해서 그런지 누구도 이상한 줄 모르는 눈치였다.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국회야.”(2018년 9월23일) 국회페미는 앞으로도 ‘이상한 국회’에 계속 질문을 던질 계획이다. “여성 보좌진을 도구화하고 계속 약자 자리에 가두면서 ‘국회는 원래 그런 곳’ ‘관행’이라며 문제를 손쉽게 외면하고 은폐하는 국회가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 소외된 이웃, 서민들을 위해 얼마나 진정성 있는 정책을 펼칠 수 있을까요?”(ㄱ씨)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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