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미국발 핵폭풍이 다가온다

401
등록 : 2002-03-20 00:00 수정 :

크게 작게

‘핵 태세 검토’ 이어 북한에 핵사찰 압력… 2003년 극한의 대치상황이 벌어진다면?

“북한이 핵 관련 기술을 과격단체에 이전할 가능성은 실존하고 있으며, 이것은 미국의 가장 큰 우려사항 중의 하나다.”

“우리(미국)는 북한의 잠재적 핵 위협을 계속해서 우려하고 있다.(…) 최근의 평가는 북한은 최소한 하나, 혹은 두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플루토늄을 생산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왜 그리 핵사찰 서두르나


사진/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 핵사찰 수용을 촉구하면서 경수로 중단 가능성까지 경고하고 있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 (AP연합)
토머스 슈워츠 주한미군사령관은 3월5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행한 진술에서 유난히 북한의 핵 위협을 강조했다. 국내 언론에서는 제대로 다루지를 못했지만 사실 슈워츠 장군의 이 진술은 클린턴 정권 때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뉘앙스를 풍기는 것이었다. 부시 행정부가 기본적으로 북한의 핵 동결 약속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분위기를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94년 미국과의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통해 경수로 2기를 제공받는 대가로 앞으로 핵 개발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만일 슈워츠 장군의 진술처럼 북한이 ‘최근’에도 핵폭탄 제조를 위한 플루토늄을 추출해온 것으로 확인됐다면 이는 곧 북-미관계의 파탄을 예고한다. 여기에다가 북한의 핵 관련 기술이 테러단체 등의 손으로 흘러들어간 물증이라도 잡히면 북한은 꼼짝없이 미국의 2단계 테러전쟁의 공격목표물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사정이 이쯤 되면 국제사회의 여론도 지금과 달리 북한에 등을 돌리기 쉽다. 물론 이는 슈워츠 장군의 진술이 신빙성을 갖는 경우다.

부시 정권은 지금 ‘악의 축’의 한쪽에 서 있는 북한을 제압하기 위한 명분찾기에 혈안이 돼 있는 듯하다. 미국이 북한의 핵 활동과 관련된 확증을 쥐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심증을 굳힐 만한 여러 증거들을 상당히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는 게 국내 정보소식통의 귀띔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의 핵 개발 물증을 찾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현지 사찰밖에 없다. 부시 행정부가 부쩍 서둘러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통해 북한에 핵 관련 시설에 대한 현지 사찰을 하루빨리 수용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미국은 북한이 지난 1월 국제원자력기구의 북한 내 동위원소 시설방문을 허용한 적은 있으나 이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다며 핵비확산 의정서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또 북-미 기본합의서에 따른 특별사찰을 지금부터 수용하라며 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미국 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는 핵사찰을 하는 데 3년 넘게 걸리니까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기본합의서에는 “경수로계획의 상당부분이 완료될 때, 그러나 주요 핵심 부품의 인도 이전에,(…)IAEA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모든 조치를 포함하여 IAEA의 안전조치협정을 완전히 이행할 것”이라고 돼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의 해석을 충실히 따질 경우 미국의 북한 핵 관련 시설에 대한 특별사찰은 2005년께나 돼야 가능하다. 강정민 서울대 핵공학 박사는 “터 닦기, 기초굴착공사, 터빈제너레이터 인도 등 경수로사업의 상당부분은 2005년 봄이나 돼야 완료될 예정”이라면서 “따라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그대로 따를 경우 북한이 지금부터 핵사찰을 받아야 될 의무는 없다”고 말한다.

문제는 부시 행정부가 물러설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2월13일 하원세출위 소위원회에서 “제네바 합의에 따라 북한이 IAEA의 핵사찰을 수용해야 할 시점이 됐는데도 북한이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전체 경수로 프로그램이 중단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시 행정부와 국제원자력기구는 내심 2003년을 특별사찰 시작 시점으로 빨간 줄을 쳐놓은 상태다. 미국의 밀어붙이기와 북한의 강경 맞대응이 불러올 한반도에서의 초긴장 상태를 빗대 벌써부터 ‘2003년 한반도 위기설’이 번지고 있는 배경이다. 게다가 다음해는 북한이 약속한 미사일 실험 발사 유예가 만료되는 시점이다. 핵사찰과 미사일 문제를 둘러싼 북-미 사이의 강경대치가 꼭지점을 향해 나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얘기다.

북한이 남침 안 해도 핵 사용 가능

사진/ 미군은 재래식 최첨단 무기뿐 아니라 소형 핵무기까지 사용하는 '적극적 안보'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미태평양사령부)
미국은 1958년 1월 한반도에 처음으로 핵무기를 들여왔다. 1970년대 중반에 개발된 미국의 대북공격전략인 이른바 ‘공지전전략’은 1980년대로 넘어와서 더욱 가공할 공격성을 띤 군사전략으로 바꼈다. 골자는 휴전선에서의 무력충돌이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개전 초에 북 전역을 전술핵무기로 완전히 초토화한다는 선제 핵 공격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바 있다. 하지만 1991년 냉전질서 해체시기에 일어났던 걸프전은 또 한번 미군의 군사전략을 바꿔놓았다. 미군은 실전을 치르면서 재래식 최첨단 무기인 공대지 미사일 AGM-130과 AGM-142의 공격력과 파괴력이 종래의 전술핵무기에 버금가거나 오히려 뛰어넘는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따라서 전술핵무기에 의존해왔던 미국의 기존 군사전략은 불가피하게 변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변화는 1991년 가을에 주한미군 기지들에 배치해 두었던 엄청난 양의 전술핵무기들을 철수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렇지만 한반도에서는 전술핵무기 철수와 상관없이 북한은 여전히 미국의 핵 공격 대상으로 분류돼 왔음이 이번에 입증됐다. 지난 3월9일 가 특종보도한 미 국방부 비밀보고서 ‘핵 태세 검토’(NPR)를 통해서다. 미국은 지난 94년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통해 북한에 대해 핵무기로 위협하지도, 사용하지도 않을 것임을 공식적으로 약속한 바 있는데도 말이다.

미 국방부는 이 극비문서를 통해 옛 소련의 핵 공격에 대한 억제력으로서만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냉전 시절의 입장에서 탈피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북한을 비롯한 중국, 이라크, 이란, 시리아, 리비아 등을 미국의 잠재적인 핵 공격 대상으로 올려놓았다. 미국은 그간 러시아를 겨냥한 핵무기 공격 계획은 구체적으로 마련해왔음을 시인했지만, 이번처럼 러시아를 뺀 다른 잠재적 표적 국가들을 공식적으로 드러내기는 처음이다. 보고서는 핵무기들이 △비핵 공격에 견딜 수 있는 (깊은 터널과 동굴 등과 같은) 목표물 △핵 및 생화학무기 공격시 보복 △돌발적인 군사사태 등 3가지 유형의 상황에 사용될 수 있다고 적고 있다. 1월8일 의회에 제출된 이 보고서는 특히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돌발상황으로 이라크의 이스라엘 또는 인접국 공격, 북한의 남한 공격, 또는 대만 해협에서의 군사 충돌 등을 보기로 들었다. 보고서는 이와 함께 미국의 핵무기 실험 재개 및 신형 소형 핵무기 개발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군사전문가들은 이 보고서의 지침을 따른다면 북한은 반드시 남침을 감행할 경우뿐 아니라 미국의 자의적인 상황판단에 따라 얼마든지 공격 목표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보고서는 소극적인 방어전략이 아닌 적극적인 방어, 곧 선제 핵 공격의 가능성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중국, 북한, 베트남의 공산세력에 대해 핵무기 사용을 검토했으나 실제로는 늘 피해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핵무기의 실제 사용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난 점에서 예사롭게 볼 대목이 아니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3월13일치 사설은 “NPR 보고서가 핵 공격 상황의 하나로 ‘불시의 군사사태’를 거론한 것은 핵무기를 최후의 수단으로서 아니라 ‘자유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음을 의미할 정도로 모호한 구석이 있다”고 강하게 비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소형 핵무기의 달콤한 유혹

사진/ 주한미군은 지난 91년 한반도에서 전술 핵무기를 철수시켰지만 북한을 잠재 핵공격 대상국으로 분류해왔다. (사진공동취재단)
미 국방부가 소형 핵무기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눈길을 끌고 있다. 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미 군부는 그간 기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적을 궤멸시킬 수는 있지만 자칫 미군의 대규모 인명살상이나 재앙적인 환경파괴라는 역풍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용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소형 특수 핵무기가 개발돼 이런 우려를 씻어낼 수 있다면 미군으로서는 적극적인 핵무기 사용 유혹을 떨쳐버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특히 이 소형 핵무기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나 빈 라덴과 같은 표적 인물 제거나 시설을 효과적으로 파괴할 수 있도록 설계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문건 보도로 비밀 핵무기 개발계획이 폭로됨으로써 미국이 실제 원하는 새로운 소형 핵무기를 손에 쥘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미국의 핵무기 개발은 또 다른 군비경쟁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미 국내는 물론 전세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