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은 반전의 드라마… 후보 단일화·선호투표제 등 역전의 변수
드디어 뚜껑이 열렸다. 민주당 차원의 오랜 준비와 대선 예비후보 7명의 사활을 건 바닥표 훑기. 그러나 개표는 순식간이었다. 개표선언 뒤 0.5초 만에 결과가 집계됐다. 한국 정치사에 새로운 실험으로 평가받는 민주당 대선후보 국민경선. 그 첫장을 연 3월9일 제주 선거인단대회는 예상대로 전자투표의 힘이 한껏 돋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일반의 예측을 단박에 뒤엎었다.
예측 뒤엎은 이변 “대세는 없었다”
‘이인제 대세론’과 ‘노무현 대안론’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정동영 고문의 ‘정치태풍론’이 추격할 것이라는 게 언론의 대체적 전망이었다. 하지만 ‘한국판 뉴햄프셔’의 영광은 동교동 신파의 좌장인 한화갑 후보에게 돌아갔다. 그는 투표에 참여한 제주 선거인단 675명 가운데 26.1%인 175표를 얻어 1위로 올랐다. 이변이었다. “됐어, 화갑이 형이 정말 됐어.” 연단 주변에는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 후보는 몰려든 기자들을 향해 외쳤다. “오늘 결과는 기적이 이니라, 예견이 현실화됐을 뿐이다. 언론이 소위 대세론이니 양강구도니 난리법석을 떨었지만 이 모든 것이 거품이었음을 입증했다.” 한 후보 진영은 “앞으로 경선구도는 한화갑, 이인제, 노무현의 3파전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1위를 빼앗긴 이인제, 노무현 후보는 충격에 휩싸인 듯 말없이 제주를 떴다.
그러나 한 후보의 영광은 ‘1일천하’로 막을 내렸다. 다음날인 3월10일 오후 3시. 두 번째 경선지인 울산 선거인단대회의 뚜껑이 열리자 역전과 이변이 벌어졌다. 영남 출신 노무현 후보의 1위 예측은 현실로 확인됐다. 그는 울산 투표자 1017명 가운데 29.4%인 298명의 지지를 얻어 제주·울산 종합 1위로 떠올랐다. 제주에서 5위였던 영남 출신 김중권 후보도 281표(27.8%)로 선전, 종합 2위로 수직상승했다. 극도의 긴장과 이변, 역전과 반전. 제주·울산 두곳의 국민경선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앞으로 50일 동안 14곳의 국민경선이 예정돼 있지만 아무도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상황이다. 민주당 정세분석국 한 관계자는 “마지막 경선인 4월27, 28일 서울대회가 끝날 때까지 누구도 최종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아예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초반 두곳의 뚜껑이 열리면서 큰 그림은 이미 그려졌다. 먼저 이른바 ‘이인제 대세론’이 한풀 꺾였다. 민주당 안팎에서 ‘대세론’이 강세였다. 97년 대선에서 500만표를 얻었고, 당내 주자 가운데 가장 높은 여론지지율을 기록한 이 후보가 그나마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맞수가 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 후보는 제주에서 한화갑 후보에게 2등으로 밀렸고, 울산에서는 3등으로 떨어졌다. 이 후보 진영 전용학 대변인은 “제주는 조직표, 울산은 지역주의”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이 후보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단 경선 초반 대세론 장악에 실패했다. 또 울산 경선 결과 이 후보의 영남득표력에 한계가 확인됐다. 이 후보는 지난 97년 대선 때 이른바 ‘이인제 학습효과’를 경험한 영남유권자의 표를 얻지 못해 12월 대선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이른바 ‘이인제 필패론’이다. 이 후보는 “97년 대선 때 영남에서 내가 얻은 25%와 DJ를 찍은 13%를 모두 가져올 수 있다”고 맞섰다. 그러나 울산에서 약체로 평가받던 김중권 고문에게 큰 표차로 밀리면서 영남득표력에 대한 회의론은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광주의 선택에 따라 구도 형성될 듯
이 후보는 오는 3월17일 광주 경선에서 역전극을 펼치고 이어질 충청권 경선에서 대세론을 확고히 장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만만찮은 과제다. 광주는 제주처럼 조직력을 앞세운 한화갑 후보의 선전이 예상되는 지역이다. 한 후보 진영 이용범 공보특보는 “조직력을 바탕으로 광주, 전남에서 우리가 1등을 하고, 강원과 경기지역에서도 이인제 후보와 1위 경쟁을 벌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후보는 지난 2월28일 대선주자들의 대리전으로 치러진 민주당 경기도부지부장 선거에서 이 후보 진영이 총력지원한 이윤수 의원을 누르고 자파 계보원인 문희상 의원을 당선시킨 바 있다. 조직국 한 핵심관계자도 “광주는 97년 대선 때 이 후보가 출마해 DJ가 대통령이 된 만큼 도와줘야 한다는 ‘보은론’이 강세였지만, 제주·울산 경선 이후 부동층이 늘고 있다”며 “광주에서 큰 표차로 노무현 후보를 따돌리지 않는 한 이인제 회의론이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대적으로 노무현 대안론은 힘을 받는 분위기다. 경선 초반 선두를 달리면서 당 안팎에 “노무현도 해볼 만하다”는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대안론 역시 적지 않은 한계를 노출시켰다. 울산에서 1위는 했지만 득표율이 29.8%에 머물렀다. 노 후보에게 우호적인 노동자들이 집약된 지역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부진한 성적이다. 제주에서 3위를 했지만 2위인 이인제 후보에게 7%(47표)나 뒤졌다. 결국 노무현 대안론은 이인제 대세론의 부진에 따른 반사이익일 뿐 강력한 자기추동력이나 기반을 가진 것은 아니다. 종합 2위인 이 후보와 차이도 29표에 불과하다. 노 후보도 “전체 구도적인 측면에서 보면 만족한다”면서도 “애초 예상에는 못 미쳤다”고 한계를 인정했다. 더욱이 앞으로 경선 일정이 노 후보쪽에 불리하다. 광주(3월16일), 대전(17일), 충남(23일), 강원(24일) 등 3월 한달 동안 이 후보의 선전이 예상되는 지역에 집중돼 있다. 이 후보가 광주에서 1위로 선전할 경우 3월은 1위 자리를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 노 후보는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에서 사활을 걸고 있다. 노 후보 공개지지를 선언한 천정배 의원은 “최근 며칠 사이에 국민의 힘과 변화 열망을 봤다”면서 “광주에서 모든 것을 걸겠다”고 말했다. 광주에서 선전해 이인제 대세론을 다시 한번 꺾을 경우 경남(3월30일), 대구(4월5일), 경북(4월7일), 부산(4월20일)에서 ‘노무현의 4월 바람’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 영남 4개 지역 선거인단 수가 광주·대전·충남·충북·강원 5개 지역을 합친 것보다 1.5배 이상 많아 노 고문이 상당히 유리하다. 노 고문 진영은 특히 김근태, 노무현의 분열로 단일대오를 형성하지 못했던 개혁성향 의원들이 급격히 힘을 실어줄 가능성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한계 드러난 정동영과 김근태
정동영 후보의 ‘정치태풍론’과 김근태 후보의 ‘클린정치론’도 한계를 드러냈다. 정 후보는 젊음과 패기를 앞세우며 경선 초반 이인제-노무현-정동영의 3자 대결구도를 만든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돌풍을 기대하며 지난 2달 동안 상주했던 제주에서 4위(110표·16.4%)에 그쳤고, 울산에서는 5위(65표·6.4%)로 밀려났다. 정 고문은 앞으로 1위에 오를 만한 뚜렷한 지역 기반도 없다. 3월31일 전북 경선이 기대를 걸어볼 만한 곳. 하지만 전체 7만명의 선거인단 가운데 2734명으로 경선구도에 변화를 일으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결국 이인제 대세론과 노무현 대안론이 팽팽한 가운데 민주당 적자를 자임해온 한화갑 후보의 조직표가 얼마나 위력을 발휘하느냐에 따라 판도가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김근태 후보는 초반에 완전히 침몰했다. 제주, 울산 모두 꼴찌를 한데다, 두 지역의 득표 수를 합쳐야 26표에 불과하다. 선두그룹과 격차가 너무 커 회복 불능 상태다.
이런 초반 결과에 따라 몇 가지 변수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먼저 개혁성향 의원들 사이에서 정동영, 김근태 두 후보의 사퇴를 전제로 ‘개혁후보연대’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김 후보는 서울 경선까지 지속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러나 김 후보 진영의 핵심 참모들은 이미 사퇴를 진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고문은 후보등록 과정에서 단일화 압박을 가한 노 후보에게 감정이 상하기 전까지 “노무현이라면 양보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여왔다.
정동영 후보는 상황이 좀 복잡하다. 정 후보 진영은 막판까지 버텨도 별로 손해볼 일은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러나 민주당 일각에서 정 후보를 서울시장 후보로 내세우자는 얘기가 계속 흘러나온다. 현재 서울시장 출마의사를 밝힌 민주당 예비주자들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이길 수 있을지 회의하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정 고문을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한 핵심당직자는 “현재 거론되는 몇몇 주자들이 젊은 층의 득표력을 강점으로 내걸지만 그동안 각종 선거에서 이들은 가장 낮은 투표참여율을 보였다”며 “지금대로 가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경선 시기를 대선후보 경선이 끝난 뒤로 미루는 방안까지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 후보가 서울시장 출마로 방향을 틀어도 경선에서 누구와 연대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정 후보는 그동안 사석에서 “노무현이 잘돼야 할 텐데…”라고 말해왔다. 노 후보를 비롯한 소장 개혁성향 의원들도 정 후보를 ‘개혁연대’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 후보는 최근 노무현 대안론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특히 3월9일 제주 경선 후보연설에서는 “노무현 후보는 과격한 이미지와 안정감 부족 때문에 이회창 총재를 이기지 못한다”며 ‘색깔론 시비’를 불러오는 등 보수성향이 강해지고 있다. 이인제 후보는 그동안 이인제 대통령 후보, 정동영 서울시장 후보로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키자며 정 후보쪽에 계속 입질을 해왔다. 정 후보가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경선판도는 적지 않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30% 이상 득표자도 나오기 힘들듯
한편 초반 판세대로 경선 레이스가 지속될 경우 경선이 끝날 때까지 과반수는 고사하고 30% 이상 득표자도 없는 상황이 닥칠 수도 있다. 결국 4월27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선호투표를 적용한 결선투표로 대선후보를 확정할 가능성이 높다. 선호투표제는 1위 후보가 전체 유효투표의 과반수를 얻지 못할 경우 과반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최하위 득표 후보의 2위 기표자를 배분하는 방식이다. 후보간 선호투표 연대에 따라 결선투표에서 2, 3위 주자가 대선후보로 결정되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다. 벌써 이런 상황을 가정한 후보자들 사이에는 선호투표제를 통한 짝짓기가 모색되고 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전은 유력후보들 사이에 치열한 선두다툼, 개혁후보 단일화와 하위권 주자의 중도하차, 선호투표를 통한 연대 등 온갖 변수가 맞물리면서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반전의 드라마가 거듭될 것으로 보인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사진/ 누가 승리의 축배를 들 것인가. 지난 3월 10일 울산 선거인단 대회에서 한광옥 대표와 경선 후보자들이 손을 들고 있다.
그러나 한 후보의 영광은 ‘1일천하’로 막을 내렸다. 다음날인 3월10일 오후 3시. 두 번째 경선지인 울산 선거인단대회의 뚜껑이 열리자 역전과 이변이 벌어졌다. 영남 출신 노무현 후보의 1위 예측은 현실로 확인됐다. 그는 울산 투표자 1017명 가운데 29.4%인 298명의 지지를 얻어 제주·울산 종합 1위로 떠올랐다. 제주에서 5위였던 영남 출신 김중권 후보도 281표(27.8%)로 선전, 종합 2위로 수직상승했다. 극도의 긴장과 이변, 역전과 반전. 제주·울산 두곳의 국민경선은 한편의 드라마였다. 앞으로 50일 동안 14곳의 국민경선이 예정돼 있지만 아무도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상황이다. 민주당 정세분석국 한 관계자는 “마지막 경선인 4월27, 28일 서울대회가 끝날 때까지 누구도 최종결과를 장담하기 어렵다. 아예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초반 두곳의 뚜껑이 열리면서 큰 그림은 이미 그려졌다. 먼저 이른바 ‘이인제 대세론’이 한풀 꺾였다. 민주당 안팎에서 ‘대세론’이 강세였다. 97년 대선에서 500만표를 얻었고, 당내 주자 가운데 가장 높은 여론지지율을 기록한 이 후보가 그나마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맞수가 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 후보는 제주에서 한화갑 후보에게 2등으로 밀렸고, 울산에서는 3등으로 떨어졌다. 이 후보 진영 전용학 대변인은 “제주는 조직표, 울산은 지역주의”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는 이 후보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단 경선 초반 대세론 장악에 실패했다. 또 울산 경선 결과 이 후보의 영남득표력에 한계가 확인됐다. 이 후보는 지난 97년 대선 때 이른바 ‘이인제 학습효과’를 경험한 영남유권자의 표를 얻지 못해 12월 대선에서 패배할 것이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이른바 ‘이인제 필패론’이다. 이 후보는 “97년 대선 때 영남에서 내가 얻은 25%와 DJ를 찍은 13%를 모두 가져올 수 있다”고 맞섰다. 그러나 울산에서 약체로 평가받던 김중권 고문에게 큰 표차로 밀리면서 영남득표력에 대한 회의론은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광주의 선택에 따라 구도 형성될 듯

사진/ 민주당 국민경선이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제주에서 1위를 차지한 한화갑 후보.

사진/ 울산에서 1위를 차지한 노무현 후보.

사진/ 민주당 경선 후보들은 선호투표제를 통한 짝짓기를 모색하고 있다. 개혁후보들의 연대를 촉구하는 민주당 의원들. (한겨레 이정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