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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정계개편 ‘엔진장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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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3-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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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내홍 맞물려 가속도 붙어… 세력간 이해관계 엇갈려 파괴력은 미지수

사진/ 제3신당은 정치권 '빅뱅'을 주도할 것인가. 지난 3월8일 박근혜(왼쪽) 의원과 이수성 전 총리가 자리를 함께 했다. (이용호 기자)
제3신당이 정말 뜨는 것일까? 박근혜 의원의 한나라당 탈당이 신당 창당 등 정계개편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예상했다. 그러나 구체화 시기와 방법, 가능성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최근 정계개편론이 급속히 힘을 받고 있다. 태풍의 눈인 박 의원이 본격적인 세규합에 나섰고, ‘3김 시대’ 이후 펼쳐질 정치지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세력들이 각개약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3김 이후를 노리며 고지 선점 경쟁

박 의원은 당분간 탐색전을 펼칠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고 신당 창당을 향해 고속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지난 3월8일 이수성 전 총리를 만난 그는 “정치개혁을 이루는 데 뜻을 같이하는 분들과 힘을 합쳐 국민이 희망을 갖는 나라를 만드는 데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신당 창당’ 구체화를 선언한 것이다. 탈당 가능성이 점쳐지는 김덕룡 의원도 10일 “이런 정치로는 안 된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끼리 모여야 힘이 된다”며 신당 대열에 합류했다.


강삼재 의원의 총재경선 출마 포기와 부총재직 사퇴,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포기한 홍사덕 의원의 이회창 총재 당무사퇴 요구, 한나라당 김아무개, 이아무개 의원의 탈당 임박설, 화해전진포럼의 신당창당설 등 정치판은 그야말로 급격히 요동치고 있다.

가장 큰 관심거리는 3월8일 만난 박근혜 의원과 이수성 전 총리의 구상. 이 전 총리는 “기존 정당의 이합집산을 통한 정계개편을 생각한 게 아니다”며 “대선에 제3의 후보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각계각층을 규합한 신당 창당과 독자적인 대선후보를 내는 쪽으로 틀이 잡혔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창당 방안까지 나돌고 있다. 박 의원이 영남지역에 나름의 지지세를 확보한 정몽준 의원과 신당을 창당, 둘 가운데 한 사람이 대권후보로 낸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최근 “정몽준 의원과 못 만날 이유가 없다”며 적극적인 연대의지를 표명했다. 김덕룡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할 경우 신당 대표로 내세우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8일 회동에서 이런 밑그림을 합의하고 역할분담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은 조만간 YS와 정몽준 의원, 박태준 전 총리 등 거물급을 연쇄접촉할 계획이다. 이 전 총리는 김윤환 민국당 대표,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 이기택 전 의원 등 주로 영남권 인사 영입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 전 총리 자신은 물론 영입대상 정치인들의 폭발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결국 박 의원이 주도할 신당 창당은 정몽준 의원과 YS의 합류 여부에 성패가 달려 있다. 정 의원이 동참할 경우 신당 창당은 상당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정 의원은 “박 의원과 아무런 협의도 없었다”고 밝혔을 뿐 말을 아끼고 있다. 정 의원쪽은 “당분간 월드컵 성공을 위해 매진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 의원은 최근 “월드컵 뒤 논스톱 슈팅을 쏠 수도 있다”며 대선출마 가능성은 열어놨다.

YS는 심상찮게 움직인다. 그는 박 의원의 탈당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결코 간단하지도 않다”고 호평하고 “대선구도는 앞으로 몇 차례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대변인격인 박종웅 의원은 “지방선거 전 소규모 정계개편에 이어, 지방선거 뒤 큰 폭의 개편이 있을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전망했다.

YS는 정계개편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YS는 지난 2000년 4·13 총선 직전부터 민주산악회를 재출범시키는 등 정치력 복원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른바 ‘이회창 대세론’에 가로막혀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한나라당 내부가 분열하면서 이회창 대세론에 의문이 커지는 최근 상황은 YS가 기회를 엿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김덕룡, 강삼재 두 의원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민주계 대표자로 YS와 꾸준히 교감해온 때문이다. 이 총재의 한 측근 참모는 “김덕룡, 강삼재 의원의 언행을 보면 YS가 뭔가 일을 벌이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신당은 YS·정몽준에 달려 있다”

사진/ 정치권 안팎이 정계 개편을 둘러싸고 소용돌이치고 있다. 신당창당에 기대를 걸고 있는 김영삼 전 대통령.
대선후보 경선 불참을 선언한 강삼재 의원은 운만 떼놓은 상황이다. 그는 “김덕룡 의원이 탈당한 뒤에도 당 쇄신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면 당 대선후보 경선과 지방선거 전후로 당에 대혼돈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덕룡 의원은 신당 창당으로 사실상 마음을 굳힌 것 같다. 그는 한나라당 이아무개, 김아무개 의원에게 “동반 탈당”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이회창 총재의 당무 사퇴를 요구한 홍사덕 의원과도 최근 두 차례나 만났다. 김 의원의 측근 참모는 “기존의 정치로는 한계가 있어, 신당 창당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김 의원이 박근혜 의원의 신당 창당 작업에 동참할지는 더 두고봐야 한다. 김 의원 진영은 영남신당보다 개혁신당에 관심을 두고 있다. 당분간 여야 개혁성향 의원과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폭넓게 접촉하며 정치지형 변화를 좀더 지켜볼 것으로 예측된다.

신당 창당은 민주당과도 연동돼 있다. 이미 대선후보 경선레이스에 돌입한 민주당에서 당장 박 의원을 중심으로 한 신당 창당에 합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경선상황에 따라 흐름이 바뀔 수도 있다. 동교동 신파의 좌장인 한화갑 고문은 최근 잇따라 정계개편론을 설파하고 있다. 3월9일 “대선에서는 3김이 물러난 공백을 메우기 위한 다자구도가 출현한다. 영남쪽이 데릴사위(이회창)한테 유산을 통째로 물려주진 않는다”고 밝혔다. 한 고문 발언을 신당 참여로 연결짓는 것은 아직 무리다. 한 고문의 대선전략 자체가 지역별로 후보들이 창궐하는 다자구도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6월 지방선거 이후 정계개편이 가속화될 경우 새판짜기에 나설 가능성은 열려 있다. 한 고문의 측근참모는 “한 고문 주변에서 동서화합을 위해 박근혜 의원과 힘을 합치라는 요구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른바 ‘동서화합형 신당론’이 움직일 명분이 될 수 있다.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고문이 대선후보로 선출될 경우에도 정계개편의 바람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노 고문은 이미 “대선후보가 되면 6월 지방선거전 기존 지역구도를 뒤흔드는 대규모 정계개편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영남당, 민주당=호남당이라는 지형이 불분명해지는 만큼 한나라당 소속 영남의원 상당수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총재 측근도 “노무현이 민주당 주자가 되면 영남의원들이 동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때 박근혜 의원을 중심으로 한 영남신당 창당 움직임도 영향을 받는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전격 결합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영·호남의 개혁세력 및 ‘반DJ 비구여권’ 중간층을 한데 묶어 국민통합을 대의명분으로 내걸 수 있기 때문이다. 노 고문은 현재 “박근혜와의 결합은 위험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경남 출신인 자신이 대선후보가 될 경우 대구·경북의 반발정서를 누그러뜨릴 수 있다. 박 의원도 타협의 여지는 있다. 노 고문이 책임총리제, 대통령과 당 총재직 겸임금지 법제화 등 이회창 총재에게 요구했던 정치개혁안 실천을 공언하고 있다. 탈당 명분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 정계개편의 한 축으로 떠올라

사진/ 한나라당 당내 개혁을 주창하는 홍사덕 의원.
민주당 최대 의원모임인 중도개혁포럼이 지방선거 뒤 정계개편에 미련을 두고 있는 것도 의미있다. 회장인 정균환 의원은 계속 “정치변화의 중심에 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새 정치를 명분으로 지난해 발족한 ‘화해전진포럼’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포럼에는 김근태, 정대철, 김덕룡, 이부영 등 여야 중진 의원은 물론 김원웅, 서상섭 등 여야 소장개혁 성향 의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함세웅 신부 등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의 참여폭도 넓다. 이들은 출발부터 기성 정당을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공언했다. 정치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신당 창당의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각 세력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 요동치는 정치판에서 모든 것은 그저 가능성일 뿐이다. 소규모 신당은 얼마든 가능하다. 그러나 파괴력을 갖춘 신당 창당은 쉽지 않다. 상당수 정치세력들이 정계개편을 통해 유리한 지형이 출현하기를 기대하겠지만 힘이 결집되지 않은 채 시나리오 수준에서 막을 내릴 가능성도 적지 않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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