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탈당으로 대선판도 변화 초읽기… ‘짝짓기’ 상대는 누가 될 건가
냉혹한 현실정치판에서 무소속 의원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 때문에 별다른 정치세력도 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당의 보호막을 벗어던지는 것은 ‘정치적 도박’으로 불린다. 지난 2월28일, 박근혜 의원은 이회창 총재와 결별,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당장 그의 앞날에는 아무것도 보장된 게 없다. ‘박정희 향수’를 기억하는 유권자, 폭넓은 대중적 인기, 영남 출신 정치인이라는 것을 밑천삼아 생존해야만 한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탈당 회견에서 큰 밑그림은 내비쳤다. 기성정당 불참, 무소속 잔류-국익 우선 정치이념을 가진 사람들과 신당 창당-대선출마가 그 핵심 줄거리다. 이 구상이 성공하려면 ‘반이회창’ 세력의 대표주자 자리를 굳혀야만 한다. 그러나 길은 멀고 험난하다.
군소야당 ‘군침’… YS 포함 신당설
가장 손쉬운 방안은 자민련, 민국당 등과 제휴. 앞날이 불투명한 자민련은 적극적이다. 총재인 JP는 “언제든 박 의원을 만나겠다”고 밝혔고, ‘박근혜 대선후보 추대론’까지 나돌고 있다. 김윤환 민국당 대표도 오래 전부터 ‘영남후보 추대론’을 미끼로 박 의원 영입을 시도해왔다. 박 의원만 결심하면 현실화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들은 정치권의 ‘마이너리티’다. 더욱이 ‘흘러간 레퍼토리’를 읊조리는 극우보수 이미지가 강하다. 탈당 명분인 국가와 민족을 위한 새 정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결합이다. 자칫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는 위험한 카드다.
결국 박 의원은 영남에 기반한 ‘제3 신당’ 창당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 일단 영남에 일정한 지지세를 확보한 무소속 정몽준 의원과의 결합이 가능하다. 정 의원은 지난해 이미 박 의원과 신당 창당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경우 YS가 가세할 가능성도 높다. 그동안 “비이회창, 반DJ”를 외치며 “영남후보 지원” 의지를 밝혀온 YS가 이들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박종웅 의원은 “박 의원의 탈당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며 “박 의원이 YS를 만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고, 조만간 두 사람이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PK, TK를 모두 끌어안아 ‘영남대표성’을 확실히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박 의원에게 좀더 바람직한 길이다. 하지만 두 마리 용이 한 지붕에 똬리를 트는 상황이 발생한다. 박 의원은 “여성대통령 출마는 세계적 추세”라며 도전의지를 분명히 했다. 정몽준 의원은 대선출마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굳이 정치적 모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그는 박 의원과 어떤 협의나 교감도 없었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이탈 세력들과 결합한 대규모 정계개편 가능성도 열려 있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참패를 전제로 한 그림이다. 후보경선에 돌입한 민주당이 당장 박 의원을 옹립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지방선거에서 영남의 두터운 벽에 부닥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97년 대선 때 아들 병역문제가 불거지자 이회창 후보 교체론이 등장했듯, 민주당도 승산없는 싸움보다 박 의원 등 제3의 후보를 옹립해 신당 창당을 모색할 수 있다. 민주당의 최대 의원모임인 중도개혁포럼(회장 정균환 의원)이 정계개편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어 가능성은 있다. 민주당 한 핵심 당직자도 “당장 박 의원과 손잡고 신당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지방선거에서 깨진다면 새판짜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며 “박 의원이 대안으로 검토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의원에게는 가장 바람직한 상황이다. 호남의 개혁세력과 영남의 산업화세력이 결합해 동서화합을 이룬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워 이회창 총재를 포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남후보 내세운 정계개편 가능성도
하지만 모든 것은 그저 가능성일 뿐이다. 박 의원은 당장 한나라당이 제기하는 ‘제2의 이인제론’, ‘야당 분열론’을 넘어서야 한다. 2000년 4·13 총선 당시 김윤환, 조순, 이기택, 신상우 등 정치거물들은 ‘1인보스 정치 청산’을 내걸고 정치세력화를 시도했지만 한나라당의 이런 방어논리에 좌절했다. 한나라당 영남권 한 재선 의원은 “그동안 비영남 출신인 이회창 총재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만으로 박 의원의 몸값이 올라갔다. 그러나 이제 스스로 정치력을 증명하고 색깔을 검증받아야만 한다”고 말했다. 잠재적 폭발력은 갖췄지만 정치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이수성, 박찬종, 이기택 등 대통령을 꿈꿨던 수많은 영남 출신 정치거물들처럼 잊혀지는 존재로 전락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 의원은 요즘 삼성동 집에서 여론과 정치권 동향을 살피며 다음 포석을 구상하고 있다. 측근들은 “탈당 이후 국민여론이 좋다”면서 “곧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과 대중적 인기를 갖춘 영남주자, 그리고 여성이라는 자산을 토대로 대선정국 자체를 흔드는 중심축으로 설 것인가. 아니면 거품인기로 막을 내릴 것인가. 그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사진/ 박근혜 의원이 정치력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 2월 28일 한나라당 탈당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박 의원. (박승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