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왼쪽)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11월14일 오후 국회에서 손을 잡고 있다. 유 대표가 신임 인사차 국민의당 대표실을 찾았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안 대표의 통합 의지가 사실 ‘보수를 향한 구애’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정치공학적으로 보자면 중도는 매력적인 공간이 아니다. 중도 지향의 표는 정치 상황이 진보 또는 보수로 확 쏠릴 경우 대세를 따르는 경향을 보여왔다. 중도라는 흔들리는 민심에 터잡는다는 것은 정치인으로서는 기약 없는 어음을 떠안는 격이다. 안 대표가 바른정당이라는 중도보수와 그 너머 자유한국당까지 연대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국민의당은 11월21일 바른정당과 ‘통합’에 찬반 의견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끝장토론’을 벌였다. 최명길·이언주 의원 등 중도보수에 가까운 ‘친안철수’ 세력은 바른정당과 통합에 찬성, 정동영·천정배 의원 등 중도진보에 가까운 ‘반안철수’ 세력은 반대 의견을 갖고 있다.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의원총회는 서로 이견만 확인한 채 똑 부러진 결론을 내지 못했다. 그러나 통합을 향한 안 대표의 행보는 이어지고 있다. ‘중도 통합’에 대한 안 대표의 의지는 끝장토론 전날인 11월20일 당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도 확인된다. 그는 “대한민국의 당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이념과 진영세력이 아닌 강력한 중도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연대와 통합을 통해 국민의당은 3당에서 2당으로 나아갈 수 있다. 2당이 되면 집권당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 길이 국민의당을 우뚝 세워주신 국민의 뜻에 보답하는 길이자 그 자체가 정치혁명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또 11월23일엔 호남 중진의원들의 만류를 꺾고 원외지역위원장 간담회를 강행했다. 본격적으로 통합을 위한 여론을 모으려 나선 것이다. 전체 195명 가운데 80여 명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는 이틀 전 의총과 달리 통합론으로 귀결됐다. 반대 의견조차 “통합은 무리다. 선거연대만 하자”는 수준에 머물렀다. 박지원, 천정배, 정동영 등 호남 중진 의원들이 주축이 된 ‘평화개혁연대’는 통합 불가론을 고수하고 있다. 박지원 전 대표는 11월16일 교통방송(TBS) 라디오에서 “(바른정당과 연대·통합 논의는) 명분상도 그렇고 정치적 실리 면에서도 조금 저능아들이 하는 것 아닌가”라며 안 대표를 비난했다. 그는 11월23일엔 안 대표의 ‘정치적 미숙함’을 비꼬며 “이유식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정동영 의원 역시 11월21일 기독교방송(CBS) 라디오에서 “(안철수 대표는) 부질없는 보수 통합 버리고 선거제도 개혁에 정치 생명을 걸어라”고 주문했다. 결국 안 대표의 통합론과 이에 저항하는 호남 중진 의원들의 갈등은 접점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대선 직후 국민의당 혁신위원장을 지낸 김태일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의 당내 갈등에 대해 “가치와 지지 기반, 권력투쟁 등 여러 요소가 중층적으로 얽혀 있다”고 설명했다. 세 불리기 들어간 반통합파 통합론을 지지하는 ‘친안’과 불가론을 고수하는 ‘반안’ 사이에는 화해하기 힘든 이념적 차이가 분명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북 정책이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정치학 교수는 “호남계 의원들에겐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정체성의) 상징과도 같은데,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가 이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만약 두 당이 합친다면 정체성에 혼란이 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북관은 결국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인식과 호남이라는 지역 기반과도 연결된다. 호남을 지역구로 둔 현역 국회의원들은 통합 반대에 가깝고 수도권을 지역구로 둔 원외위원장과 당원들은 통합 찬성에 가깝다. 한 걸음 더 나아가보면, 양자 사이엔 바른정당에 대한 인식 차도 상당하다. ‘친안’인 이언주 의원은 11월23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바른정당을 “오른쪽에서 유신독재 잔존 세력, 산업화 세력에 저항하면서 낡은 보수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치를 하자는” 세력이라고 긍정적으로 묘사했다. 이에 견줘 천정배 의원은 11월21일 오전 기자들에게 배포한 서면 발언에서 바른정당을 “국가 대개혁을 저지하려는 기득권 정당”으로 규정하며 “이 시대 최악의 적폐인 냉전적 안보관을 고수하고 호남을 겨냥한 지역차별적 자세에 여전히 머무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안 세력은 바른정당이 아닌 더불어민주당과 적폐를 함께 뿌리 뽑기 위해 ‘개혁연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합 찬반 세력 양쪽의 규모는 확실치 않다. 서로 자신이 유리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박지원 전 대표는 끝장토론 다음날인 11월22일 가톨릭평화방송(CPBC)에 출연해 “어제 30명의 의원이 발언을 했는데 통합을 찬성하는 사람은 아홉 분이었고, 20명은 ‘통합 논의를 여기서 중단하자’고 했다. 그 분위기를 알지 않겠냐”고 말했다. 통합 반대 세력이 찬성보다 두 배 이상 크다는 의미다. 친안 쪽은 정반대 주장을 폈다. 최명길 의원은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의원총회 결과를 언론에 잘못 전하는 분들이 계시다. 의원의 3분의 2는 통합에 반대했다는 인터뷰가 나오는데 오히려 그 반대”라며 “연대·통합 찬성이 26명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제가 메모한 것을 갖고 있다. 분위기를 왜곡하는 말을 서로 자제하는 게 좋겠다”고 날을 세웠다. 통합 찬반 세력의 ‘아전인수’
국민의당 진로에 대한 ‘끝장토론’이 논의될 의원총회가 21일 오후 국회에서 열려 의원들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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