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7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의원회관에서 국민의당 당대표 선거에서 안철수 대표가 당선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호남 민심 거스를 수 있을까 정당은 ‘어떤 가치를 대표하느냐, 누구의 이익을 대표하느냐’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그리고 현대 민주주의는 각 정당이 자신이 대변하는 계층을 위한 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 다른 정당과 논쟁을 벌이고 합의하며 정국을 끌어간다. 그런데 스스로 ‘어떤 계층을 대변할지’ 불분명한 정당이라면 다른 정당과 ‘논쟁과 합의’를 할 수 있는 기준을 잃게 된다. 안 대표는 국민의당이 대변하는 대상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 선한 사람들”이라고 언급했지만 이는 결국 ‘모두를 대변하거나 아무도 대변하지 않는다’는 말과 다름없다. 결과적으로 국민의당은 사안별로 각기 다른 기준을 들이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모호한 정체성으로는 현재의 다당체제에서 오래 생존하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이런 사실은 국민의당도 잘 알고 있다. 김태일 국민의당 혁신위원장은 지난 6월 라디오 인터뷰에서 “정당이란 것은 어떤 가치를 대표하느냐, 또 누구의 이익을 대표하느냐, 이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국민의당은 무엇을 대표하고 있는가. 이런 부분이 분명치 않았던 것이 현재 어려운 상황의 근원”이라고 진단했다. 안 대표 체제가 출범했지만 국민의당의 정체성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선거제도 개혁은 국민의당에 기회 ‘싸우는 야당’의 또 다른 문제점은 호남과의 관계 설정이다. 현재 호남 민심은 문재인 정부 쪽으로 쏠려 있다. 호남을 지역구로 둔 의원이 대부분인 국민의당이 호남 민심을 거스르며 정권에 비판의 날을 세우는 것은 자기모순이 될 수 있다. 정계 개편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바른정당과의 연대도 호남과의 관계 때문에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선 안 대표의 ‘선명 야당’ 노선은 결과적으로 ‘탈호남’ 노선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안 대표가 탈호남을 통해 전국 정당화를 꾀한다는 해석이다. 안 대표는 이를 강하게 부정했다. 그는 8월29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탈호남이라는 말을 누가 만들어냈는지 모르지만 정말로 고약한 단어”라며 “호남이 없는 전국정당화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그의 말대로 호남을 끌어안으면서 동시에 정권을 비판하는 역할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나갈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안철수 대표의 수락연설 가운데 가장 긍정적인 부분은 ‘선거제도 개혁’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는 “다시 사는 국민의당”이 되기 위한 세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로 선거제도 개혁을 꼽았다. 그는 “선거법 개정과 개헌에 당력을 쏟겠다. 다당제 민주주의는 국민의당이 서 있는 정치적 기반이고 막 싹이 핀 한국 정치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말했다. 현재의 소선거구제를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비례성이 높은 제도로 바꾸면 다당체제는 더욱 공고해지고 국민의당의 존재 기반은 그만큼 튼튼해진다. 앞으로도 오롯이 독자 노선을 걷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안철수 대표의 영원한 딜레마는 (진보·보수) 양쪽 모두가 제기하는 이중대 프레임이다. 이걸 돌파하는 방법이 바로 선거제도 개혁이다. 명분도 있고 실리도 챙길 수 있다. 안 대표도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을 내걸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를 정부·여당이 어떻게 받아안느냐에 따라 협치의 문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개혁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국민의당의 협조가 절실한 정부가 이들이 원하는 제도 개혁을 받아준다면 ‘협치’의 명분을 얻을 수 있다. 더구나 한국 사회에서 다당제 요구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지난 총선에서 유권자는 하나의 당에 표를 몰아주지 않았다.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수당의 횡포에 지친 유권자는 두 개의 거대 정당이 갈등을 빚는 양당제보다 서로 협의를 강제하는 다당체제가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요구를 받아안아 문재인 정부도 선거제도 개혁을 ‘100대 국정과제’에까지 포함시켰다. 안 대표 체제로 재출범한 국민의당의 미래는 어쩌면 선거제도 개혁에 달렸는지 모른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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