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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젊은 리더십 ‘야망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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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1-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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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정국에 몰아치는 세대교체 바람… 정치적 변혁의 열망 담아야 폭발력 발휘

사진/ "정치혁명은 세대교체로부터…." 민주당 첫 예비경선자인 제주도에서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한 정동영 의원.(한겨레 이정우 기자)
“50도 많다.” 1월16일 제주도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한 정동영 민주당 의원. 그는 이렇게 도전적인 표현을 쓰지는 않았다. 그러나 여야 대선주자 가운데 유일한 40대(53년생)라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강점으로 여겼다. “사고방식부터 새로운 세대가 정치의 전면에 서야 한다.” “정치혁명은 세대교체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정 의원은 이날 내내 ‘세대교체’와 ‘40대의 젊은 리더십’을 화두로 제시했다.

“50대도 많다, 40대가 나선다”

세대교체는 50대 민주당 주자들이 너나없이 한두 차례 제기했던 이슈. “전후세대가 국가 지도자가 되는 것은 이제 세계적 흐름이다.”(이인제 의원) “세대교체는 나이문제가 아니라 낡은 정치로부터의 탈피에 의미가 있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각국 지도자가 모두 세대교체형으로 자리잡고 있다.”(김근태 의원) “97년 대선 때는 ‘정권교체가 중요하며 세대교체는 사이비’라고 주장했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세대교체를 거론할 때가 됐다. 왜곡된 우리 정치문화의 변화와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열망이 세대교체론으로 집약되는 것이다.”(노무현 의원) 35년생으로 67살인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를 겨냥한 발언들이다. 이 총재와 비교해 이들 50대 주자보다 더 확실하게 젊은, 더 분명한 대척점을 보여주는 40대 이미지. 정 의원의 속마음은 “50도 많다. 세대교체의 주역은 40대”라고 선언하고 싶지 않았을까.


민주당은 지금 ‘젊은 리더십’ 바람이다. 정 의원이 40대의 리더십을 앞세우며 대선경쟁에 가세한 데 이어, 64년생으로 38살인 김민석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굳히고 공식선언 날짜 택일을 저울질하고 있다. 김 의원은 “광역단체장 선거에도 참신한 인물들이 출마해 돌풍을 일으켜야 한다”고 밝혔다. 또 55년생으로 47살의 김영환 과학기술부 장관도 “이번 선거에서는 정치개혁과 세대교체가 중요한 흐름이 될 것”이라며 경기도지사 선거 출마 뜻을 굳혔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서는 6월 지방선거와 12월 대선을 앞두고 세대교체를 이슈화해 선거국면을 주도해가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우선 핵심지역인 서울·수도권에 30, 40대를 내세워 세대교체 바람을 일으킨 뒤 그 분위기를 대선까지 이어간다면 대선은 지금까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세대교체, 젊은 리더십은 이회창 총재가 곤혹스러워하는 이슈 아니냐. 대선에서 쟁점화한다면 지역구도에 바탕한 이회창 대세론을 꺾을 만한 유력한 이슈라고 본다.”(민주당의 한 관계자)

세대교체라는 용어는 학술적으로 확립되거나 논구된 개념은 아니다. 유팔무 한림대 교수는 “90년대 들어 사회학에서도 신세대에 대해 논의하는 등 세대개념으로 사회를 접근하기도 하지만 세대교체라는 말은 학문용어라기보다는 일상적 용어 또는 저널리즘 용어”라고 설명했다. 사전은 세대교체에 대해 “신세대가 구세대와 교대하여 어떤 일의 주역이 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금성출판사 국어대사전) 말 그대로 새로운 세대가 사회의 새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애초 세대는 생물학적 연령의 개념으로 사용됐다. 한 아이가 성장해 부모의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기간을 잡아 통상 30년을 한 세대로 규정해온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갈수록 이런 인구학적 의미보다는 세대의 역사적 의미가 주목된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기, 이른바 형성시기를 함께 보낸 세대가 같은 역사적·사회적 사건을 함께 겪으며 비슷한 가치관, 문화, 행동양식 등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유팔무 교수) 4·19세대, 6·3세대, 유신세대, 386세대, 신세대 등의 용어는 이런 방식에 의한 세대구분이라고 볼 수 있다.

오래된 정치권 화두, 원조는 ‘40대 기수론’

사진/ 젊은 정치인들은 3김의 카리스마로부터 자유로운 위치에 있다. 민주당 소장파의원 그룹인 '새벽21' 회원들.(한겨레 김경호 기자)
우리 정치사에서 세대교체가 화두로 떠오른 것은 처음이 아니다. 71년 당시 야당이던 신민당 대통령후보경선 전당대회는 세대교체의 대표적 사례.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 이철승 전 의원 등 40대 의원들이 이른바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유진산 당수는 “젖비린내 난다”며 코웃음을 쳤지만 도도한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리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야 했다.

16대 국회 들어서도 민주당쪽에서는 잊혀질 만하면 한번씩 세대교체를 거론했다. 이해찬 의원은 정책위 의장 시절이던 지난해 6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세대교체론은 제3의 리더십을 찾는 시대적 표현”, “세대교체론이 힘을 얻을 때만 정권재창출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균환 의원도 지난해 11월 “김대중 대통령의 총재직 사퇴 이후 민주당은 젊은 차세대에 의한 민주적·집단적 리더십을 창출해야 한다”고 가세했다.

왜 지금 이 시점에 세대교체일까. 물론 이회창 총재의 고령을 겨냥한 민주당 선거전략의 한 일환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민주당 주자들의 세대교체론은 현실적인 사회배경이 전혀 없는 단순한 전략전술 차원의 것일까.

전문가들은 세대교체가 의미있는 정치적 화두가 되기 위한 기본조건으로 ‘세대간 가치 지향이나 인식이 상당한 정도의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꼽고 있다. “단순히 정치인 또는 후보가 젊어서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정치선전에 그친다. 세대간 뚜렷한 차이가 있을 경우 서로 다른 세대를 대표하는 주자가 세대교체를 통해 새로운 사회가치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세대교체가 의미있을 만큼 세대간 차이가 나타나려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라야 한다. 정체된 사회에서는 세대간 가치관의 변화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정진민 명지대 교수) 세대교체의 본질은 생물학적으로 젊은 나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빠른 사회변화에 조응하는 가치관, 문화, 행동양태의 세대교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 정 교수는 우리나라야말로 대표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라고 진단했다. “잉겔하트라는 미국 미시간대 정치학 교수가 90년대 초 미국과 유럽, 일본 등 40여개국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회가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세대간 가치관의 차이가 가장 벌어진 나라로 나타났다.” 사실 우리 사회는 박정희 대통령의 개발시대 이후 압축성장이 지속된데다 정보화 사회가 급속도로 진전되는 등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이른바 ‘광속’의 시대를 맞고 있다는 게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세대교체의 객관적 토대는 성숙돼 있는 셈이다. 실제 정치권을 뺀 사회 각 분야에서 30∼40대 지도자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기업체에서 30∼40대 CEO의 등장은 낯선 장면이 아니다.

3김 퇴장으로 세대교체 임계점 형성

정치권에서도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이 치열했던 80년대를 지나 90년대 들어서면서 세대교체론은 권력교체기마다 제기되긴 했다. 가깝게는 97년 대선에서 당시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는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깜짝 놀랄 만한 젊은 후보” 발언에 고무돼 세대교체론을 들고 나왔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 의원의 세대교체보다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의 정권교체를 선택했다. 아직 정치권은 3김의 카리스마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군사독재 정권이 오래 지속되면서 나타난 정치권의 지체현상인 셈이다.

이번 대선은 어떨까. 이번 대선은 과거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우선 우리 정치사를 30년 넘게 지배해온 3김이 퇴장하는 시기에 이뤄진다는 점에서 결정적 차이가 있다. 빠른 사회변화의 속도에도 아랑곳없이 정치권의 세대교체 요구를 억눌러온 3김의 권위가 김대중 대통령의 퇴장과 더불어 사라지게 됨에 따라 세대교체가 활성화될 정치적 터전이 마련된 것이다.

30대의 서울시장을 꿈꾸는 김민석 의원은 “박정희 개발 패러다임이 끝나고 그 후과가 집적돼 나타난 것이 IMF 체제였고, 김 대통령은 위기탈출 리더십, 중간의 리더십이다. 따라서 김 대통령이 물러설 수밖에 없는 상황과 스스로 물러난 상황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세대교체의 임계점이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세대교체는 3김 정치를 극복하는 전환기를 맞은 지금 우리 정치에서 필연이라는 것이다.“세대교체가 생물학적 나이를 기준으로 이뤄진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3김 시대에서 3김 이후로, 산업화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관선에서 민선으로,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가는 전환기에 걸맞은 새로운 리더십을 누가 어떻게 창출하느냐의 문제다. 이제 1인지배형 구시대의 리더십은 수명을 다했다. 그래서 리더십 내용에 초점을 맞추는 시대교체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김민석 의원은 “그럼에도 젊은 리더십이 각광을 받느냐는 것은 그것이 역사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세계사의 전환기에는 늘 기성의 리더십보다 젊은 리더십이 요구된 게 상례다. 우리나라 개화기의 개화파나 선각자들, 사카모도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등 메이지유신을 이끈 이들 모두 20∼30대였다. 러시아를 다시 일으켜 세운 푸틴도 젊은 리더십 아니냐. 개인적 능력도 탁월했지만 시대의 요구였다. 전환기라는 상황이 새로운 리더십, 창조적 리더십을 요구하는 것이다. 경륜 부족보다 젊은 리더십의 특징인 패기, 강력한 지도력의 장점이 더 필요한 시기인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영 의원도 “변혁기의 리더십은 주류·기득권층에서 나오지 않는다. 빚이 없는 사람이 변혁의 중심이 될 수 있다”며 젊은 리더십, 세대교체가 3김 이후 새로운 정치질서 창출을 위한 합리적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바꿔’ 열풍과 시대적 흐름이 만나면…

사진/ 30대 서울시장의 꿈을 안고…. 김민석(오른쪽) 의원이 국회정치개혁특위에서 한나라당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한겨레 김경호 기자)
사실 국민의 세대교체 요구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조사된다. 지난해 6월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가 20살 이상 남여 7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세대교체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83.4%를 차지했다. 반면 ‘반대한다’는 대답은 14.9%에 그쳐 정치권 세대교체에 대한 기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에서 세대교체의 흐름은 이미 일정 부분 진행되기도 했다. 사실 국민의 세대교체 요구는 바로 정치권의 변화, 변혁에 대한 갈망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2000년 4월 총선에서 ‘바꿔’ 열풍이 거세게 몰아치며 112명의 의원이 새롭게 원내에 진출한 반면 현역의원 94명이 고배를 마신 것은 바로 이런 민심의 반영이다. 당시 여야 지도부가 총선을 앞두고 이른바 ‘젊은피 수혈’이라는 명분으로 참신한 인사 영입에 발벗고 나선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대선에서 세대교체가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을까. 민주당쪽에서는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국민들은 새로운 정치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정동영 의원) “최대쟁점이 될 것이다. 지역주의라는 낡은 시대의 힘에 대항할 유일한 힘이다.”(김민석 의원) 민주당의 한 초선의원도 “지역구도가 여전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과 민심 등에 탄력을 받아 세대교체 바람이 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사정이 그렇게 간단치 않을 것 같다는 시각도 많다. 지역주의 구도가 워낙 완고하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2000년 4월 총선에서 ‘바꿔’ 열풍을 주도한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은 수도권에서 20명 가운데 18명을 탈락시켰지만, 영남권에서는 한나라당 의원 18명 가운데 1명만 낙선시켰다. 반DJ의 지역감정을 뚫지 못한 것이다.

세대교체론 자체에도 맹점이 있다. 정진민 교수는 “사회 내에는 다양한 균열, 갈등이 있다. 이 가운데 세대균열은 조직적 힘으로 나타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예컨대 계급균열의 경우 공통의 이해관계를 기반으로 조직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세대는 이런 조직화가 불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따라서 선거에서 얼마나 힘을 받을지는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느슨한 연대감으로 완고한 지역주의에 도전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 세대교체 내용의 현실성, 설득력에도 문제가 있다. 세대교체, 젊은 리더십이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왜 세대교체냐 하는 부분에 대해 아직 설득력을 얻는 데 한계를 보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부패한 김대중 정부을 심판하자”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이상, 세대교체론은 현 정권의 실정에 대한 책임을 비껴가려는 집권당 주자들의 술책 비슷한 것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설득력의 한계, 무엇으로 극복할 건가

더 근본적인 것은 정치권 변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세대교체라는 슬로건으로 오롯이 담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홍형식 한길리서치연구소 소장은 “세대교체 자체가 정치권에 중요한 변수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국민들이 바라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면 변혁, 변화다. 썩은 정치를 바꾸라는 것이다. 국민들이 ‘개혁, 개혁’ 하면 넌더리를 내지만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감대는 형성돼 있다. 그러나 세대교체는 그런 변혁, 변화를 담기에는 뭔가 모자란다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세대교체만으로는 국민들이 “맞아, 바로 그거야”라고 무릎 치기 어렵다는 것이다.

3김 이후 새로운 리더십의 대안으로 제시된 세대교체와 젊은 리더십. 그러나 세대교체가 현실 정치판을 움직일 만한 힘이 되기 위해서는 세대교체에 어떤 내용을 채울 것인가, 국민들의 정치변혁 요구를 어떻게 담아내는냐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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