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리더십 내세우며 대선출마 선언한 정동영 의원이 말하는 세대교체론
서울 여의도 한국보이스카우트빌딩 201호에 마련된 정동영 의원 후원회 사무실에 들어서면 사진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 의원이 오른손에 쥔 감색 양복 윗도리를 어깨에 걸친 채 청색 와이셔츠 위로 넥타이를 살짝 흩날리며 가볍게 뛰어가는 모습이다. 볼 때마다 활동적이고 젊은 기운이 풍겨나는 정 의원의 이미지와 잘 어울려 보인다.
정 의원이 1월16일 제주도에서 젊은 리더십과 세대교체를 주장하며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했다. 젊은 리더십을 떠받치고 있는 내용은 어떤 것일까, 얼마나 옹글게 영글었고 묵직한 것일까. 1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제주도에서 울산을 거쳐 이제 막 서울에 도착했다는 정 의원이 자리에 앉자마자 “조직도 별로 없고, 돈도 없을 텐데 뭘 갖고 선거를 치를 생각이냐”고 물었다. 그런데 대답이 뜻밖이다. 하소연 비슷한 소리부터 했다.
“제주도와 울산을 3일 돌고 왔더니 한쪽으로는 희망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민심과 정면대결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먹구름이 끼는 것을 느낀다. 낡은 정치의 부정적 유산이 아직 청산되지 않았다. 각 캠프에서 벌써부터 내려와서 사람들 모으고 다니는 게 보였다. 그런 식으로 동원 선거를 하면 국민경선제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사즉생의 각오로 만든 정치쇄신안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두 가지를 추진해볼 생각이다. 하나는 몇분과 진정한 페어플레이를 결의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제도 보완을 촉구하는 것이다.”
노쇠한 지도력은 낡은 기반에 의지 제도 보완이라면 어떤 것이냐. =표본 국민경선제다. 무작위로 표본집단을 뽑아서 선거인단의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동원 조직에 의한 국민경선이 되면 누가 동원력이 있느냐에 의해 승패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죽은 경선이 된다. 국민선거인단을 응모받아 추첨하는 방식보다 표본집단을 뽑아서 하는 방식은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페어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는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한광옥 대표도 만나보고 선배들도 만나 호소해봐야겠다. 출마 선언하자마자 너무 죽는 소리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흘러가면 그 속에 민의가 살아 있겠느냐. 국민 참여시킨다는 것은 당심과 민심을 일치시키자는 것 아니었냐. 그런데 민심을 왜곡시키는 경쟁이 벌어지는 데 개인적인 이불리를 따질 게 아니다. 어떻든 본론으로 들어가서, 조직 자금에서 약점 아니냐고 물었는데, 나는 강점이라고 느낀다. 지금은 정치의 변혁기, 변혁의 계절이다. 변혁기의 리더십은 역사적으로 주류에서 나오지 않는다. 기성의 뿌리, 과거의 기반에서 나오지 않는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은 쇄신할 수 없다. 나는 그런 과거의 기반, 낡은 기반으로부터 가장 자유롭다. 빚이 없는 사람이 변혁의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진정한 민의가 반영되는 경선에서는 승부를 충분히 걸 만하다. 왜 지금 젊은 리더십이냐. =세상이 변했다. 전국의 은행 지점장 가운데 50살 이상이 없다. 사회 각 분야가 20대, 30대, 40대의 에너지로 해나간다. 그들이 주역이다. 왜 정치만 60대, 70대가 하냐. 심각한 불일치가 있다. 지금이 때라고 생각한다. 이미 세계사의 흐름도 영국의 블레어, 미국의 클린턴, 리시아의 푸틴, 대만의 천수이볜, 일본의 고이즈미, 중국의 후진타오 모두 새 세대들이 주역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이란 영화를 봤는데, 케네디가 와이셔츠 바람에 소매 걷어붙이고 참모 책상에 걸터앉아서 새로운 아이디어 없냐고 자문을 구하는 모습은 신선했다. 위기를 헤쳐나가는데 어떻게 총체적 지혜를 모을 것인가를 가지고 고뇌하고 고민하고 의견을 모으고 하는 것이 부러웠다. 이제 군림하는 통치자의 정치로는 이제 한국 정치가 더이상 활력을 가질 수 없다. 케네디가 43살이었기 때문에 스폰지 같은 흡수성, 열린 마음으로 지혜를 모아갈 수 있었다.
정 의원과 노무현·김근태 의원 등이 이른바 민주개혁세력 연대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정 의원은 “그런 식의 연대는 낡은 틀”이라고 거부하고 있는데 그럼 민주개혁이라는 틀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이제 없다는 것인가.
=아니다. 누구보다 쇄신에 앞장선 게 정동영이라고 생각한다. 정당민주주의나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관해서는 양보할 수 없다. 다만 연대방식 자체가 구정치적이라는 것이다. 쇄신의 한목소리를 내고, 그런 것 이상의 강력한 연대가 뭐 있느나. 누가 누구에게 몰아주자는 것이 연대의 핵심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동의하지 않는다. 민심이 그렇게 동원대상이 아니다. 정동영은 정동영의 길을 간다. 선배들은 선배들의 길을 가고, 그러나 어느 지점에서 만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격려하고 견인할 수 있다.
이른바 운동권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에 많이 들어왔지만,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본격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력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어왔는데.
=적어도 당내에서 누구는 개혁이고 누구는 아니라고 하는 것은 갈등의 소지가 있다. 그래서 나는 정치혁명을 일으키는 게 첫 목표이지만,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최전면에서 민주당의 재집권을 위해 투신할 것이다. 그게 더 큰 가치다. 당내에 차별성은 있다. 그러나 모두 개혁동참세력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민주당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노무현, 김근태 등 이른바 정통민주세력이라 할 인사들의 차별성은 하위개념이라는 뜻인가.
=그렇다. 그 부분은 대단히 가치있는 부분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그것만 갖고 어떻게 민주당이 집권할 수 있느냐. 민주당의 다양한 부분의 하나다. 다만 정통성과 역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중심의 한 부분이라고 본다.
정치권에는 새싹이 있고 고목도 있다
정통성 있는 중요한 부분이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희생하고 양보하는 것도 낡은 방식인가.
=그것은 낡고 새롭고 그런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가치는 페어플레이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민심이 자연스럽게 한쪽에 모이는 것이다. 누가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느냐가 중요하다. 국민을 누가 우둔하다고 그러겠느냐.
대통령 출마선언에 보면 정당쇄신, 정치쇄신, 국가쇄신을 중요한 과제로 밝혔는데.
=우리는 정당민주주의를 해본 적이 없다. 지금의 정치는 정쟁으로 표현되지만 그 뿌리는 1인지배체제다. 이걸 쇄신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이제 그것을 바탕으로 국가쇄신을 하는 것이다. 국가쇄신은 흩어져 있는 국민의 에너지를 하나로 통합해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통합해서 우리의 목표로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국가쇄신이다. 국가는 항상 전진하는 것이 아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처럼 뒤로 넘어져 코깨질 수 있다. 야당의 집권은 뒤로 넘어지는 것이다.
새로운 리더십은 기득권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정 의원도 낡은 정치체제, 기득권 체제의 수혜를 받지 않았느냐.
=현역 국회의원을 다 낡은 정치인이라고 하면 다 퇴장해야 한다. 그 속에서 무엇이 새싹이고 새 뿌리인지, 무엇이 고목의 뿌리인지, 다르다.
정 의원이 정당개혁을 얘기한 것은 1년밖에 안 됐다. 그 전에는 그런 얘기 안 했는데.
=비공개적 노력과 공개적 노력으로 나뉜다. 정치하면서 최고의 가치로 뒀던 것은 정권교체였다. 이를 위해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일했다고 자부한다. 또 이 정권의 성공을 위해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99년 5월 김태정 장관 퇴진 건의로부터 시작해서 2000년 12월 청와대 최고회의에서 권 고문 퇴진발언을 할 때까지 1년6개월은 비공개적 노력이었다. 뜻을 같이하는 의원과 함께 대통령에 직보하는 채널을 찾아가서 간청한 것도 여러 차례였고, 건의서를 보낸 적도 있다. 그러니까 공개적 쇄신 목소리가 느닷없이 터져나왔다고 보는 것은 그 뿌리를 못 보는 것이다.
다시 묻겠다. 왜 지금 젊은 리더십, 세대교체냐.
=박정희 시대는 박 대통령의 퇴장과 동시에 끝나지 않았다. 전·노 대통령까지 이어졌다. 3김 시대는 우리 김대중 대통령의 퇴임과 더불어 끝나지 않는다. 성은 다르지만 또다른 3김에 의해 계승될 수 있다. 그 점에서 이회창 총재는 성씨만 다른 3김 정치의 아류라고 본다. 1인지배정치의 상징 아니냐. 우리가 타파해야 할 최우선 핵심과제를 고스란히 그런 모순을 짊어지고 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3김 정치의 부정적 요소 유산의 청산을 희망하는 것 아니냐. 가장 확실하게 문을 여는 것은 세대교체가 가장 깨끗한 대답이다.
세대교체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국민이 원하고 있다는 게 사실이라면 실현될 것이다.
성장과 분배의 문제, 무엇이 우선이라고 보나.
=상충하는 개념으로 보면 둘 다 유지 못한다고 본다. 보완관계라고 이해된다. 지난번 김만제 한나라당 의원이 정책위의장 시절 기초생활보장법에 대해 사회주의라고, 사회주의적이라고 했는데, 시장경제 속에서 열패자가 나올 수밖에 없고, 낙오자를 놓아두고 계속 갈 수 없지 않느냐. 끌어안고 가야 한다.
그럼 현 상황에서 분배를 더 해야 한다고 보나.
=지금 복지는 많이 부족하다. 그러나 지금 효율의 증진없이 분배의 몫을 더 떼어낼 여력이 없다.
그러니까 성장이 우선 돼야 분배가 가능하다는 것이냐.
=그렇다. 그렇다고 내가 시장주의자, 효율주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낙오자들을 끌어안고 가는 우리 사회의 사회통합적 문화는 살려가야 한다.
권력집중 정치는 실패… 성공한 CEO에 배워
국가쇄신을 위한 충분한 책임과 권한이 중요한가, 1인지배체제 타파를 위한 권력분산이 더 중요한가.
=다원화된 사회에서 1인지배정치, 권력이 집중된 정치로는 실패하게 돼 있다. 그래서 유능한 조정자, 유능한 관리자, 유능한 CEO가 필요하다. 지난해부터 성공한 CEO를 시리즈로 만나고 있다. 예외 없다. 목이 뻣뻣하게 굳어 있고 군림하는 CEO치고 성공한 CEO 없다. 한국전기초자라고 부도난 회사를 세계 일류회사로 3년 만에 키운 서두칠 사장, 국민은행 김정태 행장 만나보면, 공통점이 뭐냐. 권위주의형 리더십과는 정반대의 리더십이다. 팔 걷어붙이고 함께 뒹굴고 같이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이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카리스마. 성공하는 카리스마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다.
글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노쇠한 지도력은 낡은 기반에 의지 제도 보완이라면 어떤 것이냐. =표본 국민경선제다. 무작위로 표본집단을 뽑아서 선거인단의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동원 조직에 의한 국민경선이 되면 누가 동원력이 있느냐에 의해 승패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죽은 경선이 된다. 국민선거인단을 응모받아 추첨하는 방식보다 표본집단을 뽑아서 하는 방식은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페어플레이를 할 수밖에 없는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한광옥 대표도 만나보고 선배들도 만나 호소해봐야겠다. 출마 선언하자마자 너무 죽는 소리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흘러가면 그 속에 민의가 살아 있겠느냐. 국민 참여시킨다는 것은 당심과 민심을 일치시키자는 것 아니었냐. 그런데 민심을 왜곡시키는 경쟁이 벌어지는 데 개인적인 이불리를 따질 게 아니다. 어떻든 본론으로 들어가서, 조직 자금에서 약점 아니냐고 물었는데, 나는 강점이라고 느낀다. 지금은 정치의 변혁기, 변혁의 계절이다. 변혁기의 리더십은 역사적으로 주류에서 나오지 않는다. 기성의 뿌리, 과거의 기반에서 나오지 않는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은 쇄신할 수 없다. 나는 그런 과거의 기반, 낡은 기반으로부터 가장 자유롭다. 빚이 없는 사람이 변혁의 중심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진정한 민의가 반영되는 경선에서는 승부를 충분히 걸 만하다. 왜 지금 젊은 리더십이냐. =세상이 변했다. 전국의 은행 지점장 가운데 50살 이상이 없다. 사회 각 분야가 20대, 30대, 40대의 에너지로 해나간다. 그들이 주역이다. 왜 정치만 60대, 70대가 하냐. 심각한 불일치가 있다. 지금이 때라고 생각한다. 이미 세계사의 흐름도 영국의 블레어, 미국의 클린턴, 리시아의 푸틴, 대만의 천수이볜, 일본의 고이즈미, 중국의 후진타오 모두 새 세대들이 주역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룬
사진 이용호 기자 yhlee@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