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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김수남 검찰총장의 선택

박근혜, 조사와 조서 검토에 21시간… 검찰은 아직 ‘영장’ 만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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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3-27 18:39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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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이 3월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짧게 대답한 뒤 조사받으러 검찰청에 들어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단 두 문장이었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지 11일 만에 나온 첫 공개 발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3월21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현관 앞에서 기자들이 내민 마이크에 대고 짧게 말하고는 검찰청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간 시간은 오전 9시35분. 달라진 건 없었다. 대통령에서 민간인 신분으로 바뀌었다지만, 아침마다 미용사를 불러들여 매만진 올림머리도, 청와대에서 나오던 날에 입은 짙은 남색 코트 차림도 그대로였다.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서초동까지 오는 길을 지켜준 대대적인 경호 행렬도, 계단 아래로 내려와 깍듯이 인사하는 검찰 관계자들의 예우도 박 전 대통령이 ‘피의자’ 처지임을 느낄 수 없게 했다.

검찰 “손님 예우” 변호인 “검찰에 경의”

박 전 대통령은 이날 검찰에서 14시간가량 조사를 받았다. 조사는 한웅재 형사8부장과 이원석 특수1부장이 차례로 맡았다. 검찰은 안종범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의 업무수첩 등을 내밀며 박 전 대통령에게 삼성으로부터 433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받기로 약속받은 혐의를 캐물었다고 한다.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정호성 전 대통령비서실 부속비서관,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진술한 내용이 맞는지도 따졌다. 박 전 대통령은 뇌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강요, 공무상 비밀누설 등 모두 13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구속된 최순실, 정호성, 안종범을 불렀으나 개인적 사유로 모두 불응했다.” 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조사 내용을 브리핑한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의 설명이다. 노 차장검사는 본격적인 조사에 앞서 휴게실에서 10분가량 박 전 대통령과 간단히 차를 마셨다고도 밝혔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을 “대통령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손님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티타임 때 먼저 가서 기다렸다”고도 말했다.

이날 밤 11시40분께 조사는 끝났다. 검찰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대한 시간은 14시간. 검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이) 예상과 달리 전반적으로 진술을 굉장히 많이 했다”고 말했지만, 대부분의 진술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최순실과 관련해서는) 나중에 내용을 알았다” “기업들에 재단 출연을 강요한 적이 없다” 등 혐의 내용을 부인하는 취지였다고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조사가 끝난 뒤 무려 7시간 가까이 진술조서를 검토했다. 박 전 대통령이 검찰청을 나온 시간은 다음날인 22일 새벽 6시54분. ‘조사’ 때문이 아니라 ‘조서 검토’ 때문이었다. 검찰청에 들어간 지 21시간30분 만에 박 전 대통령은 집으로 돌아갔다.

‘악의적 오보, 감정 섞인 기사, 선동적 과장 등이 물러가고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신 검사님들과 검찰 가족에게 경의를 표한다.’ 검찰 조사가 끝난 22일 새벽에 박근혜 전 대통령 변호인단의 손범규 변호사가 기자들에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손 변호사는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검찰은 특검과 달랐다. 정치적이지 않고 객관적, 중립적으로 사실을 파헤치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조사는 진실이 드러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검찰은 실제로 ‘객관적’이려고 노력 중이다. 박 전 대통령의 신병 처리와 관련해 최대한 말을 아낀 채 고심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을 조사한 지 나흘째인 24일,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현재 관련 기록과 증거 관계를 면밀히 검토하는 단계다. 생각보다 검토할 기록과 자료가 좀 많다. 증거관계를 분석하는 게 그렇게 쉬운 작업이 아니다. 주말까지도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주말을 지나 3월27~28일께 되어야 구속영장 청구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총장이 말한 ‘법과 원칙’ 의미

검찰은 과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을까? 법리적으로만 보면 구속영장 청구는 불가피하다. 일단 최순실과 안종범, 정호성 등 박 전 대통령의 ‘공모자’들이 대부분 구속됐다. 박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한웅재 형사8부장은 지난 1월 최순실의 첫 공판에서 “대통령이 (최씨의) 공범이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고 말하며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친 바 있다. 뇌물수수 혐의와 관련해서도 뇌물 공여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됐는데 수수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하지 않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3월23일 출근길에 만난 기자들의 질문에 “(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김 총장은 “그 문제는 오로지 법과 원칙,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판단돼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김 총장은 3월15일 박 전 대통령에게 소환조사를 통보한 이후 기자들의 관련 질문에 답하지 않아왔다. 일주일 넘게 고심해 내놓은 ‘법과 원칙’이란 단어인 만큼 무게감이 실린다. 실제 이번 수사의 책임자는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이지만, 전직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라는 사안의 무게 때문에 최종 승인 결정은 결국 검찰총장이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에는 한웅재, 이원석 부장검사 등 수사를 맡은 주임검사의 의견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검찰은 이후 보강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은 3월24일 오후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사무실 3곳을 압수수색했다. 청와대가 압수수색을 불승인한 까닭에, 수사에 필요한 특정 자료를 청와대의 협조 아래 임의 제출 형식으로 전달받았다. 이날 압수수색은 우병우 전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이 최순실 국정 농단을 비호했다는 혐의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앞서 지난해 11월,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지난 2월 청와대를 압수수색하려고 시도했으나, 청와대는 ‘군사·공무상 비밀’을 이유로 압수수색을 거부한 바 있다.

구속 여부 3주 내에 결판날 듯

박영수 특검팀은 2월21일 우 수석이 문화체육관광부 등의 인사에 부당 개입한 혐의 등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조사한 직후 안종범 전 수석과 정호성 전 부석비서관을 소환해 보강 수사를 벌였다. 검찰이 구속영장이란 마지막 카드를 만지작거릴 시간은 많지 않다. 4월17일부터 대선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검찰 안팎에선 늦어도 4월 중순 이전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청구와 기소까지 마무리돼야 정치적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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