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심문’에선 각 대선 주자의 담당 기자가 취약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그 첫 번째로, 김완 기자가 이재명 경기도 성남시장을 검증했다. 그의 인터뷰, 저서, 공약집, 과거 선거 공보물을 살피면서, 유력 대선 주자로 부상한 뒤 국가 경영과 관련해 분야별로 어떤 발언을 해왔는지 집중 점검했다. 정당 기반이 단단하지 못한 정치인이 대중적으로 성공한 해외 사례들도 찾아봤다.
이재명 시장은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현실적 문제에 천착해왔다. 이를 정치학 용어에선 ‘거래적 리더십’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 시장에겐 비어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는 취약했다. 성공 경험을 앞세워 미래를 말하는 방식 역시 과거 정치인과 닮아 있었다. _편집자
이재명 성남시장의 강점은 서민 친화력이다. 하지만 그는 지지자들이 좋아할 만한 언행을 한다는 비판을 극복해야 한다. 류우종 기자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어떤 언론들의 문제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대로 ‘농부가 언제까지 밭을 탓할 순 없는 노릇’이다. 경선이 본격화되기도 전에 구도가 빠르게 ‘문재인 vs 안희정’으로 재편되는 움직임마저 보인다. 대선 국면이 본격화되자, 밑에서 모이는 ‘손가락혁명군’이 부상하는 속도보다 위에서 움직이는 ‘중앙정치의 관성’이 더 큰 부하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대선 주자’ 이재명은 끝내 ‘변방 장수’ 이재명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재명 시장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핵심적 이유로 ‘성남 행정의 전국화’를 꼽는다. “성남에서 한 것을 대한민국 표준으로 만들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대통령은 그 수단일 뿐”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대단한 자신감이다. 그 자신감은 경제·복지 정책 전반을 관통한다. 현재 버전의 공약집이라고 할 수 있는 <이재명, 대한민국 혁명하라>(메디치미디어 펴냄)에서 이 시장은 “정부가 성남시처럼 복지정책을 하는 데 얼마가 들지 단순하게 계산해보면 (중략) 5조원 정도다. 정부 예산은 추경까지 더하면 420조원가량 되는데, 10%를 아끼면 42조원이고 7%를 절감하면 약 30조원이다. 5조원은 1% 남짓이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마련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성남시에서 그랬던 것처럼 지출을 효율화해서, 그 차익으로 복지를 실현한다는 계산이다. “박근혜 정부가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하고는 ‘복지 없는 증세’를 했다면 자신이야말로 ‘증세 없는 복지’를 실천하겠다”고 약속한다. 증세 없는 복지의 한계 이재명 시장은 ‘증세 없는 복지’를 “나는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주 대통령 박근혜의 무능력과 성남시장 이재명의 능력을 대비한다. 얼핏 ‘내가 해봐서 아는데…’처럼 들린다. 자신을 중심에 두고 대통령을 비판하는 가장 후련한 화법이다. 하지만 정부 예산을 효율화하겠다는 약속은 후보자 시절 박근혜도 했다. 이뿐만 아니다. 예산 절감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우파 정치인들의 단골 레퍼토리다. 하지만 대체로 실패했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예산 편성은 부처별, 지역별로 강력한 원심력이 작동하는 문제다. 기존 사업을 축소하는 것에 대한 관료들의 반발도 치열하다. 예산 승인권을 가진 의회를 상대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단임제 권력이 사회적 합의와 치밀한 준비 없이 예산 문제를 감당하는 건 언제나 쉽지 않다. 물론 과거에도 실패했으니 이재명도 실패할 거라고 말할 순 없다. 다만 이 시장의 말처럼 성남의 특정한 사례가 반드시 국가 예산 전체에 대한 장밋빛 전망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얘기다. 어쨌든 예산은 각각의 쓸모가 분야별, 시기별로 정립돼 있어 한정된 자원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공격적 복지를 확대해가는 ‘마술’은 단기간엔 가능할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론 불가능에 가깝다. 복지 확대에 대해 이 시장은 “전봇대와 공공 조경 사업만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다”고도 했다. 전봇대와 조경 사업은 사례일 테고 궁극적으론 ‘불필요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축소’를 하겠다는 것이다. 이 시장은 “SOC 사업 축소 등을 통해 30조원의 추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며 “대통령이 관심을 갖고 지시하면 일주일 안에도 만들 수 있는 돈”이라고 단정한다. 아직 그 추계가 구체화되지 않아 표를 의식한 ‘수사’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2017년 기준으로 1년 SOC 예산의 총액은 22조원 규모다. 박근혜 정부조차 SOC 예산을 줄이고 싶어 했지만, 늘 국회가 발목을 잡아왔다. SOC 예산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지역구 의원들이 사활을 거는 문제다. 그 행태를 비판하긴 쉽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더욱이 SOC 공약 축소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이 시장의 공약과 발언에는 ‘토건국가’ 체제를 개선하겠다는 철학적·구조적 명분은 보이지 않는다. 예산을 줄여본 성남시장으로서의 성공 경험을 앞세울 뿐이다. 물론 추가적인 재원 확보 방식이 제안되긴 했다. 이 시장은 ‘재벌 증세’ ‘초고액 소득자 증세와 조세 감면 축소’ 등으로 약 20조원을 추가 징수한다는 계획이다. 역시 추계의 타당성 여부와는 별개로 이 방안은 한국 사회의 지배구조 자체를 사실상 “작살내겠다”는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질 공산이 농후하다. 이 시장은 여러 차례 “재벌 체제를 해체하겠다” “성과연봉제, 열정페이를 작살내겠다” 등의 화끈한 발언을 하며 한국 사회의 지배구조와 싸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전체 기업 59만여 개 가운데 0.08% 수준인 440여 개 대기업의 법인세를 현재 22%에서 30%로 인상해 연평균 15조원의 재원을 마련하고, 과세표준 10억원 이상 초고액 소득자 6천 명에 대해 10억 이상분에 대한 최고 세율을 50%로 올려 2조4천억원을 추가로 마련한다”는 게 이 시장의 계획이다. 진보적 입장을 표명하는 후보의 논리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변방에서 속 시원하게 그런 주장을 하는 것과 실제 실천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다. 이 시장이 실제 이 방안을 추진한다면 참여정부를 향했던 기득권의 저항을 뛰어넘는 보수세력 전체의 맹공이 예견된다. ‘법인세 인상’이라는 한 가지 키워드만 검색해봐도 비판적 기사가 수천 건인데, 한국 사회 전체가 재벌 증세 논란에 휩싸일 경우 극단적 갈등이 불가피하다. 이 시장 역시 “싸우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점을 적극 인정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 싸움의 적임자라고 한다. 권력을 갖게 되면 싸우겠다고 생각하는 건 이 시장의 의지고 철학이다. 그걸 지지하는 유권자가 이 시장 주변에 모여 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해보면, 싸워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일을 예산 추계의 근거로 삼고 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이에 대해 이 시장은 “당연한 거를 집행하는 건 행정가가 하는 일”이고, 정치가는 “옳은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자신의 선거 슬로건이기도 한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게 정치의 이유이자 꿈”이라고 말한다. 만약 이재명 시장이 기존 예산 집행을 효율적으로 하는 데 성공해 ‘선별적 복지’를 대폭 확대하고, 지배계급의 경제적 이익을 환수하는 방식으로 ‘보편적 복지’마저 달성한다면 이는 한국 사회에 벼락처럼 떨어지는 축복이 될 것이다. 하지만 행운의 나열을 공약으로 삼는 건 곤란하다. 게다가 설계의 정교함마저 부족한데 이를 ‘나는 할 수 있다’는 말로 메우는 건 표를 매혹하는 선심성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기에 딱 좋다. 게다가 이 시장은 복지 재원의 확충은 “대통령이 의지와 철학만 가지면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례 없는 대전환을 말하며 ‘국민의 사회정치적 연대’를 이미 확정된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것도 못미더운 접근법이다. 누군가는 이 시장이 화끈한 얘기를 한다고 환호하지만, 여전히 다른 편에선 자극적인 선동일 뿐이라고 폄하하는 이유다. 변방의 성공을 중앙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이냐는 질문은 여전히 이 시장의 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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