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를 둘러싼 정치권의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노무현 정부가 2007년 11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전 북한에 의견을 물어본 뒤 기권했다”고 적었다. 그는 11월21일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사흘 전 18일 열린 회의에서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북한에 의견을 물어보자고 제안했고, 이에 문재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일단 남북 경로로 확인해보자고 결론 냈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회의에 참석한 인사들은 모두 “기권은 이미 16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결정됐고, 북한엔 사후 통보했을 뿐 의견을 구할 사안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최순실씨를 축으로 한 미르재단·케이(K)스포츠재단 의혹 탓에 궁지에 몰렸던 새누리당은 이를 북한과 내통한 국기문란으로 사건을 규정하며 대대적인 국면 전환을 꾀한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새누리당이 전가의 보도인 ‘대북 색깔론’을 꺼내들었다고 비판한다. <한겨레21>은 남북관계 전문가인 김연철 인제대 교수의 기고를 통해 시비를 짚어보았다. _편집자
기억은 주관적이다. 서로 충돌하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한 전직 관료의 회고록이 폭풍을 일으켰다. 기억의 혼선은 회고록의 공통된 특징이지만, 그것을 활용한 ‘북풍’은 전혀 다른 문제다. 회고록을 쓰면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과 협의했다면 오류를 줄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의적 기억은 북풍의 근거가 되었다. 송민순의 기억은 과연 사실일까.
도대체 이렇게 쓴 이유가 뭘까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10월1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북한대학원대학교로 출근하고 있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로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문제를 둘러싼 진실 논란의 중심에 섰다. 연합뉴스
찬성을 결정한 2006년의 경우는 좀 다르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고,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통일부는 강력하게 기권을 주장했다. 그때 송민순은 청와대의 안보실장이었다. 그는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서 오랜 소신인 찬성 입장을 관철할 수 있었다. 통일부를 비롯한 다른 부처들이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특수한 상황이었다. 송민순의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기억은 편파적이다. 특히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통일부가 일관되게 기권을 주장한 중요한 맥락을 생략했다. 의도적이 아닐 수 없다. 송민순은 통일부가 기권을 주장한 이유를 남북관계, 즉 북한의 반발을 의식한 결정이라고 본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부차적이고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생략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공개적인 노무현 정부의 기본 입장이 있었다. 11월16일 삼자대면이 이뤄진 과정 노무현 정부는 북한인권 개선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실질적 방법이라고 강조했고, 자유권뿐만 아니라 사회권도 중요하며 ‘접촉을 통한 변화’를 중시했다. 통일부가 왜 기권을 주장한 줄 아는가? 유엔의 결의안이 한국 정부의 북한인권에 대한 기본 입장과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5년의 경우 표결 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북한인권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고 기권한 것이다. 이런 맥락을 알면 ‘북한에게 물어보고’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 송민순은 “인권결의안에 찬성 못하면서 어떻게 북한 핵과 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우리의 방안에 협력해달라고 다른 나라들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고 강조한다. 그럼, 기권한 2004년과 2005년은 뭔가? 송민순 6자회담 대표가 회고록에서 자랑스럽게 강조하는 2005년 9·19 공동성명을 주도한 ‘외교적 성과’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권결의안의 기권과 한국 정부의 외교적 역할은 분리될 수 있음을 앞부분에서 사실상 설명해놓고, 뒷부분에서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 논리적 모순이다.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상회담 직후였고, 11월14일부터 16일까지 남북총리급 회담이 서울에서 열렸다. 총리회담은 정상회담의 후속 조치와 이후 일정을 결정하는 중요한 회의다.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정부 입장을 결정하는 안보정책 조정회의는 바로 11월15일에 열렸다. 통일부와 국가정보원, 그리고 회의를 주재한 안보실장은 ‘정상회담 후속 대책’을 더 중시했다. 그래서 기권을 주장한 것이다. 찬성을 주장하는 외교부 장관의 발언에 반박했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결국에는 큰소리를 냈다. 회고록에서 의도적으로 생략한 부분도 있다. 송민순은 개인의 소신과 정부의 방침을 혼동했다. 회고록을 보면,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정부의 방침이 결정되기 전에 유엔 한국 대표부가 북한과 접촉을 진행했다. 누가 외교부에 그렇게 하라고 했는가? 그리고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이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송민순은 북한인권결의안 찬성 입장을 전제로 사전에 일본과 협의했다. 최소한 안보정책 조정회의에서 사전에 양해를 구해야 했다. 명백한 일탈행위다. 이재정 당시 장관이 이 사실을 나중에 알고 강력히 항의했다는 사실은 왜 회고록에 쓰지 않았는가? 기권 결정은 언제 결정됐을까? 11월15일 안보정책 조정회의에서 송 장관은 찬성 입장을 주장했지만, 다수의견은 기권이었다. 15일 회의 평가는 크게 다르지 않다. 공식 회의이기 때문에 회의록도 있다. 문제는 16일의 기억이다. 송민순은 문제를 다시 논의하는 회의처럼 묘사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16일 이재정 통일부 장관은 청와대 안보실장이던 송 장관이 북한인권결의안 찬성을 관철한 2006년의 기억 때문에 혹시나 그가 공식 결정을 무시할까 걱정돼 대통령 면담을 신청했다. 대통령을 만나러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송민순 장관이 와 있었다고 한다. 대통령을 앞에 두고 이재정 장관과 송민순 장관은 다시 격렬한 언쟁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듣고 있다가 ‘기권으로 합시다’라고 말했고 회의를 마쳤다. 당연히 이날의 만남은 공식 회의가 아니기 때문에 기록도 없다. ‘북한 쪽지’ 아닌 국정원 보고서
새누리당은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 내용에 대해 참여정부가 북한과 내통했다며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운데)가 10월16일 송민순 회고록 태스크포스팀 회의에서 “참여정부가 북한의 누구와 어떤 경로로 표결 관련 입장을 주고받았는지 반드시 밝히겠다”고 말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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