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로 사람이 모여들고 있다. 없던 문제가 생겨났고, 있던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갈등을 풀어야 하는 정치도 바빠졌다.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제2공항’ 건설 예정지의 성산 주민들, 해군기지 건설로 10년째 고통받는 강정 주민들, ‘제주 4·3사건’으로 68년간 고된 삶을 사는 희생자 등은 여전히 ‘정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즘 제주에서 가장 바쁜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한겨레21>이 만났다. 그에게 난개발, 주택·토지 가격 폭등, 교통량 폭증, 취업난 등 현안을 묻고 대책을 들었다. 뒤이은 기사에선 ‘낯선 아름다움’의 제주어와 제주의 아픈 역사, 독특한 문화를 다룬 책들을 소개한다.
원희룡 제주특별도지사의 집무실엔 책이 없었다. 칸막이 책장에는 인형, 공예품, 그림, 조각 등이 들어차 있었다. 직접 꾸민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이런 일은 젊은 사람들에게 맡겨놓는다”고 했다. 전국 지자체장의 집무실을 모두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유독 젊은 감각의 사무실이었다.
그는 올해 51살이다. 49살에 제주지사가 됐다. 1992년, 28살에 사법고시를 수석 합격했다. 나중에 사법연수원을 수석 졸업했다. 1982학년도 대입학력고사에선 전국 수석으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제주제일고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던 날, 그는 이미 제주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제주가 낳은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일찍부터 들었다. 지난 2년 동안, 그는 명성과 기대에 어찌 부응했을까.
7월26일 오후 3시, 제주도청 도지사 집무실에서 원희룡 지사를 만났다. 인터뷰 앞뒤로 면담 예정이 빡빡했다. 그는 우리에게 1시간을 내줬고, 결국 1시간30분을 인터뷰했으나, 궁금한 것을 모두 묻기엔 여전히 부족했다. 인터뷰는 안수찬 편집장이 진행했고, 서보미 기자가 정리했다.
임기 절반을 끝낸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중국 투자 과잉, 난개발 허용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대해 “취임 이전 시작된 사업들을 그나마 조정하여 개선시키고 있다”며 “실제 노력한 과정을 이해한다면 사라지게 될 오해”라고 말했다.
대선 불법자금 모금 때문에 ‘차떼기당’의 오명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 따라붙던 시절, 박근혜 대통령이 새로운 당대표에 올랐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여의도 공터에 천막을 치고 당사를 옮긴 것이었다. 그에게 당대표 출마를 강력히 권유한 것은 원희룡, 남경필 등 당시 소장파 의원들이었다. 이후 총선에서 박 대표는 침몰 직전의 한나라당을 구했다. 원 지사도 당시 재선에 성공했다. 몇 달 뒤 전당대회에서 원 지사는 박 대표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당 지도부 반열에 올랐다. 2004년 이후에도 행보를 지켜봤는데, 2014년 제주행은 조금 급작스러웠어요. 상투적 표현일지 몰라도 ‘고향 봉사’라는 생각이 강했죠. 변화의 기로에 선 제주에서 제가 할 일이 있다고 느꼈어요. 계획했거나 그 전부터 생각했던 건 아니라는 게 솔직한 사정이에요. 그러나 (국회의원) 3선 하고 쉬고 있는데 중앙당과 지역에서 부름도 있었고. 대중 정치인이니까 언제든 사회가 부르고 기회 되는 곳에 공인으로 봉사한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죠.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원 지사는 그 전까지 지사를 번갈아 맡았던 우근민·신구범·김태환 등 ‘제주판 3김’의 시대를 끝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1%의 1천년 저항의 정치’ 기사 참조 ) 제주 지사의 역할이 다른 지자체장의 그것과 다른 면이 있을까요. 국제자유도시를 완성하겠다는 국가적 목표가 분명하고 그를 위해 특별자치도라는 틀과 수단이 주어져 있어요. 규모가 작으면서도 여러 국제적 사업의 현장이니까 (행정의) 성과가 분명히 드러나는 측면도 있지요. 그러니 도지사로서 전 국민적 책임감이 있습니다. 제주도는 우리의 쉼터이자 안식처라는 생각을 국민이 갖고 있으니까요. 난개발이나 외국투자 등으로 인해 제주의 원래 모습이 손상되는 것에 국민들 걱정이 많다는 것도 압니다. 이를 바로잡고 지켜야 한다는 것에 일차적 사명감을 느끼고 있죠. 제주특별자치도는 다른 지자체와 비교해 높은 수준의 자치권이 부여된다. 도지사 직속의 자치경찰이 있고, 제주시·서귀포시의 시장도 투표를 거치지 않고 도지사가 직접 임명한다. 이주민이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어느 수준까지 이주민 규모가 늘어나는 게 적당하다고 보나요. 최근 이주민 규모가 정점에 이르렀을 가능성은 있어요. 그래도 갑자기 다시 이주 규모가 줄어들기보다는 이 추세가 유지될 것 같습니다. 국민의 삶의 가치관이 바뀐 거죠. 경쟁 위주의, 앞만 보고 가는 대도시의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으로 봐요. 특히 제주도는 대자연과 도시 생활이 가까운 거리에 압축돼 있거든요. 게다가 귀촌·귀농과 관련된 1차산업을 응용한 부분도 많고…. 그래서 제2의 인생을 설계하기에 유리한 면이 있어요. 취재 기간 내내, 제주 땅값이 폭등했다는 이야기를 주민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지역에 따라선 불과 2~3년 만에 20~30배 폭등한 곳도 있었다.( ‘‘탐욕의 섬’ 길목에 선 탐라도’ 참조) 인구 유입이 급증하면서 당장 부동산 문제가 심각한 것 같아요. 도심 아파트 가격이 서울 강남 수준이더라고요. 경제적 형편 때문에 제주 이주를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질 것 같아요. 5년 전쯤 제주로 이주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를 봤는데, 3천만원 저축으로 제주 오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3억원 저축이면 고소득층에 속했죠. 지금은 몇 배 수준으로 올랐을 겁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의 부동산 가격 폭등은 이주를 꿈꾸던 많은 사람들뿐 아니라 도민들, 제주에서 경제활동을 하려는 이들에게도 고통을 안기고 있죠. 당장은 투기적 수요를 진정시키려 해요. 토지 거래를 허가제로 한다든지, 아니면 난개발을 강력하게 제어한다든지. 취임 이후 이 부분을 아주 강도 높게 강화하고 있어요. 농사짓지 않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하면 이를 환수하는, 아마 대한민국 사상 최초의 조치도 이미 2년째 하고 있어요. 동시에 실수요 증가에 대해선 적정한 공급이 필요하죠. 그래서 괜찮은 공공임대주택, 적정 가격에 분양할 수 있는 주택의 공급을 앞으로 10년간 10만 가구를 공급하려 합니다. 앞으로 부동산 시장의 추이를 보면서 완급을 조절할 생각입니다. 지금 제주에선 대형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어요. 예컨대 제2공항은 지금 말씀하신 난개발을 막겠다는 것과 배치되는 거 아닌가요. 제2공항은 기존 (제주) 공항이 포화상태라서 국가적으로도 과제였어요. 지역 주민들의 25년간의 묵은 현안이기도 했지요. 그것을 결론 내려 진행하고 있는 거죠. 기존 공항을 확장하는 등의 대안을 찾으라는 지적도 있던데요. 해당 지역 주민들이 최근 반대 대책위도 만들었고요. 원래 기존공항 확장안, 신공항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연구조사를 했어요. 기존 공항을 확장하면 비용이 저렴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주공항 주변은 이미 도심으로 개발돼 있어 바다 방향으로만 확장이 가능해요. 그래서 대규모 해양 매립이 필요한데, 그렇게 되면 천혜의 해안선과 해상 식생 등의 대규모 훼손이 불가피해져요. 대규모 매립 공사로 사업비도 크게 높아지지요. (항공 연습용으로 사용 중인) 정석비행장의 경우, 입지 평가 과정에서 기상, 환경, 접근성, 공공지원 시설 분야 등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지인 것으로 분석됐어요. 그래서 제2공항 건설로 방향이 모아진 것이고요. 지난해 11월 국토교통부는 ‘성산 제2공항’ 건설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총사업비 4조1천억원을 들여 연간 25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제공항을 짓겠다는 것이다. 예정 부지는 495만m²(150만 평)다.( ‘“조용히 살당 가시믄 조으크라”’ 참조) 주상절리대가 있는 지역에 호텔 신축도 허가하셨어요. 자연환경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던데요. 그동안의 과정을 잘 모르시면, 경관 보존하겠다는 제 입장과 모순된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겠죠. 솔직히 말해 설거지하느라 미치겠습니다. (함께 웃음) 주상절리 지역에 들어설 호텔은 제 취임 당시 이미 절차가 상당 부분 진행됐습니다. 그런데 호텔이 모든 경관을 막게 돼 있었던 것을 제가 다시 심의하게 해서, 건물 중간중간에 경관을 확보하도록 했고, 해안에 공공의 접근도 보장하도록 했어요. 지금도 건설사 회장을 여러 차례 만나 직접 담판을 지으면서 계속 양보를 받아내는 과정에 있습니다. (애초부터) 왜 기업에 땅을 줬냐는 분도 있어요. 저도 (취임 뒤에) 물어봤더니, 중문 관광단지에 아무도 투자를 안 해서 (취임 전) 제주도에서 건설사에 떠맡겼다는 겁니다. 그러니 억지로 호텔을 지어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지금은 다시 제한하려 하니까, 투자자 입장에선 불만이 많죠. 중국 투자자들도 원희룡 지사 때문에 못해먹겠다고 하고요, 국내 투자자들도 아주 불만이 많아요. 딜레마적 상황이 계속 발생할 것 같군요. 수요에 부응하겠다면 결국 개발을 계속하게 될 텐데요. 인프라 확충과 관련해서, 제주 경제를 지금보다 줄여야 한다는 극단적 의견도 있지만 적정한 성장은 뒷받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는 자급자족 경제가 아니에요. 개방성을 바탕으로 전세계와 연결된 것을 잘 유지해야죠. 다만 그 과정에서 외부 주도가 아니라 도민이 주도해 도민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향을 찾아야죠. 성장 자체를 도외시하는 것은 동의가 어려습니다. 개발 문제와 관련해 취재 기간에 만난 어느 제주도민이 말했다. “중국이 제주를 집어삼킨다는 불안이 많아요. 그 실체를 꼭 좀 파헤쳐주세요.”( ‘독도는 우리땅! 제주도 우리땅?’ 참조) 이 문제를 꺼내자 원 지사는 컴퓨터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인터뷰 도중, 원 지사가 인터넷 검색으로 중국 언론의 기사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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