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알파고’일 가능성
여권 분열
등록 : 2016-03-14 15:33 수정 :
누군가 그런 우스개를 했다. “정두언이 알파고인가?” 도대체 무슨 말인가? 들어보니 이런 얘기다.
정두언 의원이 ‘살생부’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새누리당의 계파 갈등 수준은 한계까지 끌어올려졌다. 김무성 대표가 사과하는 걸로 갈등은 일단 봉합됐지만 ‘이미 정신적 분당 상태’라는 말까지 나왔다. 어찌됐건 봉합된 채로 공천 심사에 돌입한 상태에서 뜬금없이 윤상현 의원의 막말 사건이 터졌다. 윤상현 의원이 “죽일 거야”라고 말한 상대가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나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일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면서 정두언 의원이 폭로(?)한 ‘살생부’는 다시 부활했다.
김무성 대표는 ‘지라시’에 떠도는 얘기를 종합했다고 해명했지만 윤상현 의원이 이한구 위원장이나 현기환 수석과 누구를 자르니 마느니 하는 얘길 했다면 애초 ‘청와대로부터 명단이 왔다고 했다’는 정두언 의원의 주장이 맞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친박 중진’이라는 이한구 위원장이 김무성 대표 지역구의 공천 결과 발표를 보류하고, 이에 반발한 황진하 사무총장이 공천관리위 업무를 보이콧하면서 친박과 비박의 갈등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까지 왔다.
알파고의 위력은 그가 두는 수가 계산된 것인지 실수인지를 알 수 없다는 데서 온다는 게 바둑을 좀 아는 사람들의 평이다. ‘정두언은 알파고’라는 농담은 그의 ‘살생부’ 관련 문제 제기가 과연 이런 상황까지 예상한 것이었는지를 냉소적으로 묻는 셈이다. 정두언 의원이 문제 제기를 할 때만 해도 좌충우돌 스타일을 고수해온 정치인의 특이한 행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그의 ‘미래 예측 능력’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가 아닌가 싶다.
이 난리통이 만들어진 연원은 새누리당 내 양대 계파의 노선이나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가 아니다.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들’을 20대 국회에 되도록 많이 ‘내리꽂아’ 자신의 정치적 수명을 확장하려 한 데서부터 이 모든 갈등이 시작됐다. 보수언론의 한 논설주간 역시 같은 지적을 내놓았다. 애초에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에게 등을 돌렸던 김무성 대표나 유승민 의원을 용서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얘기다.
누가 그러거나 말거나 박근혜 대통령은 열심이다. 3월10일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돌아본다는 이유로 대구를 방문한 것은 ‘정면돌파’의 신호다. 이한구 위원장이 강경파여서가 아니다.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하니 칼을 쥐고 선두에 나선 사람은 단 한 발자국도 물러날 수 없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유승민 의원을 잘라내지 못하고 김무성 대표가 차기 대권주자로 영향력을 키우는 데 성공하면 과연 박근혜 정권은 어떻게 되겠는가? 대통령과 친박들에겐 그야말로 악몽일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의 대활약에도 불구하고 ‘진박’들의 지지율은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국민이 이런 상황을 달갑게 여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박 대통령의 구상과 행보는 명분으로도 공학으로도 좋게 평가해줄 수가 없다.
유일한 반전 요소는 정두언 의원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 알파고일 가능성이다. 알파고는 ‘정책망’과 ‘가치망’이라는 두 체제로 바둑판을 읽고 최적의 수를 계산해낸다고 한다. 박 대통령 역시 어떤 필터로 향후 가능한 모든 정치적 시나리오를 검토한 끝에 이렇게 하기로 결론 내린 것일 수 있다. 당장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악수’이지만 경기가 끝날 때는 “역시 박근혜는 무서웠어!”라고 외칠 만한 상황일지도 모른단 얘기다.
물론 정치는 바둑이 아니다. 바둑과는 달리 정치는 과정에 대한 평가가 중요하다. 대통령이 만든 20대 국회를 둘러싼 이 상황은 한국 정치의 부끄러운 ‘흑역사’로 남을 수밖에 없을 거다. 알파고의 승리는 인공지능의 발전을 보여주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승리는 정치 불신과 냉소만을 보여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글·컴퓨터그래픽 김민하 <미디어스>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