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대세론에 맞서는 박근혜의 야심… 후보지명 실패해도 몸값은 올라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극단적인 찬사에서 극단적인 비판까지. 그럼에도 그가 철권통치를 휘둘렀다는 사실 자체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당시 상황에서 불가피했다는 주장은 가능하지만.
그의 딸,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가 12월11일 대통령 후보경선 출사표를 던졌다. 명분은 올바른 정치와 민주적 원칙의 수립. “… 사람이 바뀌어도 정치가 올바로 될 수 있는 국가경영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적 원칙과 제도가 살아 움직이는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데 그 최우선 과제가 정당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당개혁의 시작은 1인지배체제의 종식에서 시작돼야 합니다.…”(경선출마 선언문)
민주적 체제 구축 내세워 출마 선언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1인지배체제에 도전하는 세력에 대해 철저하게 철퇴로 응징했던 독재자의 딸이 출마의 변으로 ‘민주’를 들고 나오다니. 박 부총재도 이런 점을 의식했을까. 박 부총재는 선언 다음날 고려대 행정대학원 최고관리과정 초청 특강에서 “아버지가 못 이룬 민주정치를 꽃피우는 일을 사명으로 알고 있고 이를 위해 경선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 시대에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동시추구라는 난제가 있었다. 다 잘됐다고 할 수 없으나 당시는 절대빈곤 해결이 우선 과제였고 1인지배체제가 가능했지만 지도력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야 한다. 지금처럼 다원화 사회에서 1인보스체제는 오히려 국가발전의 걸림돌이 된다.” 박 부총재의 경선출마를 둘러싼 한나라당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다. 특히 박 부총재의 기반이라 할 대구·경북 출신들은 “당의 단합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우려를 보이고 있다. “지금 TK 민심은 이회창 총재로 단일화돼 있다. 이 부총재의 행보가 지역민의 민심에 기반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TK가 분열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도 적지 않다.”(백승홍 의원) “경선출마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할 필요는 없지만 지역민심이 얼마나 동의해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경선출마가 당의 단합에 역행하는 것이라면 설득력을 잃을 것이다”(신영국 의원) 13일 경북도지부 송년회 모임에서는 “정권교체를 위해 일치단결해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박 부총재의 출마선언을 성토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박 부총재가 당내 경선출마를 선언한 것은 어떤 계산일까. 그의 대선 행보를 떠받치는 힘은 무엇일까. 정치권에서는 박 부총재의 광범한 대중적 인기, 막강한 대중 동원력을 그 배경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대중적 지지는 여론조사에서 확인된다. 박 부총재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지지도에 대한 각종 조사에서 이 총재에 이어 부동의 2위를 지키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의 12월 조사에서 박 부총재는 18.8%로 2위에 올랐다. 아직 이 총재의 43.3%에는 크게 뒤지지만, 3∼5%에 그친 3위 이하 그룹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박 부총재의 정치경력은 이제 4년 남짓하다. 박 부총재는 97년 12월10일 대선 직전 당시 이회창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하며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고문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원내에 진출한 것은 98년 4월.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다. 원내 진출 3년8개월된 재선의원. 이런 정치 ‘햇병아리’가 내년 대선을 넘볼 만한 대중 지지도를 갖추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상당부분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 덕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치된 평가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체를 겪으며 국민들 사이에 광범해진 ‘박정희 향수’를 등에 업었다는 것이다. 박 부총재도 “후광이 많다. 당연하다.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고 마음의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 박 부총재가 박 전 대통령의 이미지에 업힌 대중적 지지도만 믿고 경선에 뛰어든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대중 지지도만 놓고보면 이미 대세를 형성했다는 이 총재에 까마득히 뒤져 있다. 오히려 박 부총재가 기대하는 쪽은 ‘이회창 대세론’의 허점. 지역기반이 영남인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주자가 영남 출신이 아니라는 점, 따라서 이 총재에 대한 영남지역의 높은 지지도는 전망있는 영남 출신 대선주자를 찾기 어렵다는 ‘대안 부재론’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현실을 겨냥한 것이다. 영남쪽 사정에 밝은 당 관계자는 이렇게 전했다. “영남지역 특히 TK는 이 총재쪽으로 줄 선 분위기다. 지역기반이 없는 이 총재는 집권해도 TK가 등을 돌리면 약체정권이 된다. 또 이 총재 주변의 핵심 정책·기획은 TK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는 이 총재로 가도 무리가 없다는 계산이 서 있다. 그렇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말끔히 사라지겠느냐. 때문에 영남 출신이 나와 대안임을 입증한다면 분위기가 달라질 여지는 있다.” 박 부총재는 이 총재의 이런 약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11일 기자회견에서 박 부총재는 “이회창 대세론의 본질은 반 DJ정서에 기반한 한나라당 대세론”이라고 정곡을 찔렀다. 이회창 총재의 약점이 그에겐 장점
그동안 박 부총재는 이 총재와 선을 분명하게 긋고 독자노선을 걸어왔다. 이 총재의 리더십에 대해 정면도전도 서슴지 않았다. 대표적인 게 지난해 9월 여야대치 정국에서 보인 박 부총재의 태도. 당시 한나라당은 부산·대구 등 장외집회에 나섰다. 그러나 박 부총재가 “국민을 생각하며 소신있게 정치하는 것을 아버지한테 배웠다”며 “국민 대다수가 야당의 등원을 원한다”고 다른 목소리를 낸 것. 그리곤 당 지도부의 강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 집회에 불참했다. 또 잊혀질 만하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이 총재의 평가가 불분명하다며 해명을 요구하고 대북문제에 대한 당의 정체성 확보를 촉구했다. 이 총재가 당을 독선적으로 운영한다며 당내 민주화를 요구한 것도 단골메뉴였다. 지난해 5월 전당대회에서 임명직 부총재를 거부하고 경선에 참여해 2위를 한 것도 대표적인 독자노선의 사례.
박 부총재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감추지 않는 것과 관련해, 기회있을 때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하는 게 아니다. 나도 마음이 편치 않다. 그러나 편하게 지내려면 국회의원을 하지 않았다. 국민을 바라보고 정도를 갈 수밖에 없다. 그러다 안 되면 정치를 그만두겠다”며 사심이 없음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홀로서기는 의도야 어떻든 결과적으로 ‘이회창 대세론’에 도전할 발판이 됐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분석이다. “이회창과 다르다”, “이회창과 다른 비전을 갖고 있다”는 이미지는 “왜 이회창 대신 박근혜냐”는 질문에 대한 설명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박 부총재의 대선행보가 탄탄대로인 것은 아니다. 여전히 산넘어 산이다. 가장 큰 약점은 당내 세가 없다는 점. 세불리는 스스로도 인정하고 들어가는 대목. “당내 대의원들 대부분은 이 총재가 다 장악했다고 봐야 한다.”(박 부총재쪽 관계자) 따라서 현행 대의원 제도로 당내 경선을 치를 경우 박 부총재에게는 기회가 거의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정당개혁을 위해 ‘한나라당개혁추진협의회’(한추협)의 설치를 주장하고 나섰다. “공정한 경선규칙을 만들기 위해 국민참여의 원칙, 공평·공정의 원칙, 지역균등의 원칙 등 3가지 원칙의 테두리가 지켜져야 한다.” 대의원에 의한 경선방식으로는 승산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당내에서는 현행 경선방식의 큰 틀이 변경될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으로 본다. 한나라당의 역학구도상 이 총재가 반대할 경우 경선방식의 변경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박 부총재가 경선출마 선언으로 몸값을 올려 차차기를 노리거나 대선 이후의 당내 지분을 요구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총재의 한 측근은 “박 부총재가 이 총재를 제치고 후보가 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문제는 박 부총재가 다른 길을 택할 경우다. 박 부총재의 경우 자칫 지난 대선에서 이인제가 했던 역할을 할 우려도 있다. 따라서 어떻게든 박 부총재를 끌어 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부총재의 경선출마 선언이 이 총재쪽의 이런 절박감을 활용해 정치적 양보를 얻어내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정치적 역량을 평가할 꺼리가 없다
그렇다고 박 부총재에게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정치권은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 이후 당내 민주화에 대한 요구는 힘을 받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는 박 부총재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박 부총재의 향후 행보는 최근 거세게 불고 있는 민주당 개혁의 향배와 연결돼 있다. 국민경선제 도입을 포함한 민주당의 개혁방안이 탄력을 받아 국민적 호응을 얻는다면, 한나라당으로서도 당 개혁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이부영·김덕룡 의원 등 비주류는 총재와 후보 분리, 정당 민주화 등 당내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며 이 총재를 압박하고 있다.
물론 국민경선제 등이 도입된다고 해도 박 부총재가 후보로 지명될 것이라고 속단할 순 없다. 아직 그의 정치적 역량에는 물음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결국 앞날은 그가 어떤 정치력을 보이느냐에 달려있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사진/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는 폭넓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박 부총재와 이회창 총재가 악수를 하고 있다.(이용호 기자)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1인지배체제에 도전하는 세력에 대해 철저하게 철퇴로 응징했던 독재자의 딸이 출마의 변으로 ‘민주’를 들고 나오다니. 박 부총재도 이런 점을 의식했을까. 박 부총재는 선언 다음날 고려대 행정대학원 최고관리과정 초청 특강에서 “아버지가 못 이룬 민주정치를 꽃피우는 일을 사명으로 알고 있고 이를 위해 경선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아버지 시대에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동시추구라는 난제가 있었다. 다 잘됐다고 할 수 없으나 당시는 절대빈곤 해결이 우선 과제였고 1인지배체제가 가능했지만 지도력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야 한다. 지금처럼 다원화 사회에서 1인보스체제는 오히려 국가발전의 걸림돌이 된다.” 박 부총재의 경선출마를 둘러싼 한나라당의 반응은 냉담한 편이다. 특히 박 부총재의 기반이라 할 대구·경북 출신들은 “당의 단합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우려를 보이고 있다. “지금 TK 민심은 이회창 총재로 단일화돼 있다. 이 부총재의 행보가 지역민의 민심에 기반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TK가 분열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도 적지 않다.”(백승홍 의원) “경선출마를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할 필요는 없지만 지역민심이 얼마나 동의해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경선출마가 당의 단합에 역행하는 것이라면 설득력을 잃을 것이다”(신영국 의원) 13일 경북도지부 송년회 모임에서는 “정권교체를 위해 일치단결해 가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박 부총재의 출마선언을 성토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박 부총재가 당내 경선출마를 선언한 것은 어떤 계산일까. 그의 대선 행보를 떠받치는 힘은 무엇일까. 정치권에서는 박 부총재의 광범한 대중적 인기, 막강한 대중 동원력을 그 배경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대중적 지지는 여론조사에서 확인된다. 박 부총재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지지도에 대한 각종 조사에서 이 총재에 이어 부동의 2위를 지키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한길리서치’의 12월 조사에서 박 부총재는 18.8%로 2위에 올랐다. 아직 이 총재의 43.3%에는 크게 뒤지지만, 3∼5%에 그친 3위 이하 그룹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박 부총재의 정치경력은 이제 4년 남짓하다. 박 부총재는 97년 12월10일 대선 직전 당시 이회창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하며 한나라당 선거대책위원회 고문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원내에 진출한 것은 98년 4월. 대구 달성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다. 원내 진출 3년8개월된 재선의원. 이런 정치 ‘햇병아리’가 내년 대선을 넘볼 만한 대중 지지도를 갖추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상당부분 그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후광 덕이라는 게 정치권의 일치된 평가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체를 겪으며 국민들 사이에 광범해진 ‘박정희 향수’를 등에 업었다는 것이다. 박 부총재도 “후광이 많다. 당연하다. 그래서 더 잘해야 한다고 마음의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 박 부총재가 박 전 대통령의 이미지에 업힌 대중적 지지도만 믿고 경선에 뛰어든 것일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대중 지지도만 놓고보면 이미 대세를 형성했다는 이 총재에 까마득히 뒤져 있다. 오히려 박 부총재가 기대하는 쪽은 ‘이회창 대세론’의 허점. 지역기반이 영남인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주자가 영남 출신이 아니라는 점, 따라서 이 총재에 대한 영남지역의 높은 지지도는 전망있는 영남 출신 대선주자를 찾기 어렵다는 ‘대안 부재론’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현실을 겨냥한 것이다. 영남쪽 사정에 밝은 당 관계자는 이렇게 전했다. “영남지역 특히 TK는 이 총재쪽으로 줄 선 분위기다. 지역기반이 없는 이 총재는 집권해도 TK가 등을 돌리면 약체정권이 된다. 또 이 총재 주변의 핵심 정책·기획은 TK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는 이 총재로 가도 무리가 없다는 계산이 서 있다. 그렇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말끔히 사라지겠느냐. 때문에 영남 출신이 나와 대안임을 입증한다면 분위기가 달라질 여지는 있다.” 박 부총재는 이 총재의 이런 약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11일 기자회견에서 박 부총재는 “이회창 대세론의 본질은 반 DJ정서에 기반한 한나라당 대세론”이라고 정곡을 찔렀다. 이회창 총재의 약점이 그에겐 장점

사진/ "아버지가 못 이룬 민주정치 실현하겠다." 박 부총재가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식에서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 이야기하고 있다.(김종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