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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제왕적 총재의 틀을 깨뜨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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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2-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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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출마 선언한 박근혜 한나라다 부총재… 제도적 개선 통한 공정한 경선 촉구

사진/ (이용호 기자)
사무실 모습을 보면 그 주인의 성격이나 경력 일부를 끄집어낼 수 있을지 모른다. 예컨대 동교동계 의원들의 의원회관 사무실을 가보면 대체로 김대중 대통령 사진이나, 김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 잘 보이는 벽면에 걸려 있다.

여의도 의원회관 545호, 박근혜 의원 사무실 양쪽 벽면에는 숨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나란히 서서 환하게 웃는 사진이 마주 보고 있다. 12월17일 의원회관 사무실에서 만난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는 1인지배체제로 대표되는 낡은 정치의 개혁을 주장하며, 이를 실천하기 위해 당내 대통령후보 경선출마를 선언했다고 말했다.

국민의 신뢰 회복할 기회로 삼아야


애초 97년 12월 대선정국에서 이회창 총재를 공개지지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총재에 대해 비판적인데.

=이회창 총재가 정치하면 깨끗한 변화된 정치를 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97년 대선에서 지지했다. 그렇지만 총재가 되고 나서 여러 가지로 실망스러웠다. 1인지배체제, 이른바 제왕적 총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충격을 받았던 일 중 하나는 지난해 5월 부총재 경선 때 일이다. 그때 뒤에서 조직적으로 누구는 밀고, 누구는 안 된다고 했다. 이것을 보면서 목적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얘기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느냐, 생각을 하다가 결국 1인지배체제가 문제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게 결국 당리당략의 원인이 되고 정쟁으로 흐르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회창 총재의 리더십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면 1인지배체제 같은 부분이 문제인가.

=그렇다. 또 이런 점도 있다. 당 안에서는 이념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지만 어쨌든 잘 이끌어간다. 그런데 당 밖을 보면 극한적으로 대립해 있다. 최근 자민련하고 있던 일도 그렇다. 자민련은 민주당과의 공조가 깨진 이후 생존을 모색하는 상황이다. 그러니까 한나라당이 얼마든지 포용할 수도 있고 같이 갈 수도 있는데, 서로 자극하면서 상황이 나빠지지 않느냐. 이렇게 자꾸 극한 대립을 해나가서 어떻게 되겠느냐, 그런 걱정이 든다.

경선이 공정하게 치러지면 승복하겠다고 했다. 공정한 경선의 기준은.

=1인지배체제에서는 당의 공식기구가 다 그 영향하에 있다. 그래서 한나라당개혁추진협의회라는 것을 제안했다. 경선참여자와 당 내외 중립적 인사들이 다 모여 공정한 경선체제, 정당 개혁을 의논해서 합의제로 의견을 도출해내자는 것이다.

구체적인 것은 거기서 의논을 해야겠지만, 나는 3가지 큰 원칙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국민 참여의 원칙, 둘째 공평 공정의 원칙, 세째 지역 균등의 원칙. 이런 큰 테두리에서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는 정당이 국민이 참여하는 정당이라기보다 정치인끼리의 집단이 됐다. 그러니까 당심과 민심이 차별이 있을 수 있다. 국민대표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 또 우리나라 정당들이 지역으로 갈라져 있고 지역갈등을 얘기하는데 경선 때부터 좋은 모델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지금 상황에서 당이 받아들일 것으로 보나.

=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것은 나 한 사람의 얘기가 아니고 시대의 요구이고 국민의 요구다. 현재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이다. 이것을 고치지 않고 나중에 우리가 누구한테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느냐. 시대의 요구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을 수 없다고 자신한다.

안 받아들여지면 독자출마할 가능성은.

=그런 생각 안 하고 있다. 내가 탈당할 것이라고 얘기도 하는데, 공정한 룰, 정당개혁, 경선제도의 바람직한 틀을 만드는 일을 할 생각은 않고 자꾸 탈당 얘기를 퍼뜨리는 저의를 모르겠다. 우선 공정한 룰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고 승복을 못하면 그 사람이 명분이 없는 것 아니냐.

정계 입문 전에는 “정치할 생각없다”고 했었고, 의원이 된 뒤에는 “대권에 뜻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어떤 자리를 목적으로 정치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97년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 들어갈 때 충격이었다. 그동안 피땀 흘려서 쌓아놓은 게 무너지는구나. 우리나라가 이렇게 어려울 때 그냥 일단 자기 편하자고 용기를 못 내면 두고두고 후회될 것 같았다. 그래서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또 지금도 자리를 목적으로 정치를 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정치를 계속 하면 안 된다, 반드시 정치개혁을 이뤄야 한다는 생각이다. 정치개혁을 이루지 않고 어떻게 경제·문화 등 다른 분야의 발전을 얘기할 수 있겠느냐. 사회 틀을 만드는 게 정치인데. 그런데 아무리 얘기해도 안 고쳐지고 안 됐다. 그렇다면 내가 나서서 고쳐보겠다는 것이다. 자리가지고 그런 것이 아니다.

정치개혁 없으면 정치할 이유 없다

향후 경선전은 어떻게.

=밖에 캠프 만드는 것은 얘기 들어보니까, 한달 운영비가 최소한 1억원이라고 한다. 돈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는 없고, 그냥 의원회관 사무실이 캠프가 될 것이다. 그래도 정말 국민이 바라는 바를 대변해서 이루려고 하기 때무에 국민 여러분이 도와주실 거라고 본다.

박 부총재의 대중지지는 아버지의 후광 아니냐는 시각이 있는데.

=후광이 많다. 당연하다. 그래서 내가 더 잘해야 된다는 부담을 느낀다. 그러니까 더 잘하고 정말 신중하게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

어디선가 “경륜도 중요하지만 국가관이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사회의 부조리, 비리, 부정부패를 몰라서 못 고치는 것이 아니다. 다 안다. 그러나 사심이 끼었다든지, 이해관계에 얽혔다든지, 또 이런저런 빚을 다 갚아야 되니까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런 게 많다. 투철한 국가관과 사심없는 마음, 그리고 화합과 화해를 이뤄낼 수 있는 리더십, 이런 것이 일을 이룰 수가 있다.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다.

12월11일 기자회견에서 “이회창 대세론이 아니라 반 DJ정서에 기반한 한나라당 대세론이다”라고 했는데.

=더 정확히 말하자면,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 대세론이라고 하면, 국민이 바라는 정당개혁을 이뤄내는 정당의 대세론이라는 것이다. 정당개혁을 하는 당이 승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이 개혁하는 마당에 우리가 안 하고 있으면 점덤 더 차별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저쪽보다 더 많은 개혁을 자진해서 빨리 이뤄 국민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 총재한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관을 밝히라고 요구해왔는데.

=현충원은 나라를 위해 일하다 희생당한 사람들이 묻혀 있는 곳이다. 거기 전직 대통령도 계시니까, 대선주자인 이 총재가 찾아간 김에 가보실 수 있는 것 아니냐. 또 같은 당 부총재의 부친 묘소도 있으니까 참배할 수 있는 거고. 그런데 안 하니까, 역사관이 뭔가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문제다. 왜나햐면 지난 97년 대선 때부터 우리 당 총재를 지지해달라, 한나라당을 지지해달라고 다녔는데, 거기에서 차이가 있다면 문제 아니냐. 그래서 밝혀달라고 한 것이다.

그동안 박 전 대통령에 대해 “100% 다 잘한 것은 아니다. 잘못한 일도 있다”고 했다.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당시 아버지가 정치할 때 우리나라는 절대빈곤에 처해 있었다. 또 남북관계도 지금과 달랐다. 한쪽으로는 튼튼한 국방, 자주국방이 절실했고 또 한쪽으로는 절대빈곤을 극복해야 한다는 이중의 과제가 있었다. 그때 그것을 했다. 그래서 단순히 경제발전을 한 것이라고 간단히 말할 게 아니다. 근본적으로 좌절에 빠져 있는 국민정신을,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살려낸 것이다.

잘못된 것은 그 과정에서 인권탄압이라든가, 또 정치적인 민주화를 못한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못다 이룬 것을 이루겠다는 마음으로 정치에 임하고 있다.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보나.

=근본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포용정책은 지지한다. 그 길밖에는 없다. 그런데 너무 빠른 성과를 보이려고 서둘렀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남북관계는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하나하나 제도화가 돼야 한다. 그러니까 앞으로 정책의 방향을 투명하게, 국민적 합의를 근거로 해서 제도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대북 포용정책 지지… 확고한 국가관 중요

차기의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우선 확고한 국가관이 필요하다. 개인의 목적이 아니라 국가의 이익이 최고의 목표가 돼야 한다. 또 한곳에 치우치면 안 된다. 많은 국민들의 합의를 근거로 한 최고의 국가이익, 그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국가관일 것이다. 이런 뚜렷한 국가관 위에 화합과 화해의 리더십을 갖고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것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영국의 대처 수상이나 당나라의 측천무후에 대해 말을 많이 했는데.

=이들을 롤 모델로 생각한 것은 아니다. 대처 수상은 비난을 받으면서도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꿋꿋이 수행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이고, 측천무후는 비디오를 재미있게 봤다는 얘기였다.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를 참 존경하고 있다. 타고난 총명도 있었겠지만, 왕실에 태어났으면서도 어릴 때부터 고생을 많이 했다. 죽음의 위협도 수십번씩 느끼면서. 그래서 그랬는지 여왕이 돼서 신중하게 합리적으로 일을 수행하며 중용을 보였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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