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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다 포기하고 행복하세요~

이주의 키워드/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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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2-28 15:03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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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니 송년회를 다니느라 정신이 없다. 24시간 송년회를 하는 기분도 든다. 송년회를 왜 하는지 생각해봤다.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을 여러 사람이 보내는 데 의미가 있다. 이런 시간을 가지는 건 결국 더 나은 내년을 준비하기 위함일 것이다. 남의 일에 미주알고주알 하는 걸로 먹고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2016년은 행복한 해가 될까? 아닐 것 같다.

2016년엔 선거가 있다. 보통 이즈음의 선거는 ‘정권심판론’으로 기세를 올린 야당이 분위기를 타는 경우가 많다. 이번엔? 글렀다. 박근혜 대통령은 연일 국회에 대한 비난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자기는 열심히 잘하고 싶은데 게을러터진 국회가 자기들끼리 밥그릇 싸움이나 하느라 경제 활성화니 4대 개혁이니를 제대로 뒷받침하지 않고 있다고 타박한다. 여느 때의 정권심판론은 곧 ‘국회심판론’이 될 분위기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국회심판론으로 여당 내부까지 정리할 생각이다. 국가지대사를 앞에 두고 자기 살길이나 찾는 ‘배신의 정치’를 ‘진실한 사람들’로 교체하자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사전에 ‘레임덕’이란 없다!

여기에 맞서야 할 제1야당은 말 그대로 붕괴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당을 뛰쳐나갔고 당내 비주류들은 연일 탈당을 거론하며 문재인 지도부를 압박하고 있다. 어떤 언론에는 문재인 대표가 이미 사퇴를 약속했지만 공천을 둘러싼 알력 때문에 사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분석도 등장했다. 자기가 원하는 사람들을 공천하기 위한 기초공사를 다 해놓고 사퇴해봐야 뭐하냐는 것이다. 이러면 상황을 냉소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여름부터 시작된 이 꼴사나운 다툼이 누구 편을 국회에 더 많이 집어넣을 것이냐, 결국 누가 제1야당의 대선 후보가 되는 데 유리한 조건을 만들 것이냐의 문제였다는 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정치는 결국 ‘명분’의 싸움이다. 정치인들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다만 ‘밥줄’의 위기가 코앞까지 닥쳐왔을 때에는 명분이고 뭐고 속옷까지 벗어던지는 싸움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생중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정치에 대해 냉소하게 된다. 안철수 의원의 “총선은 이미 망했다”는 예언은 결국 자기실현적으로 들어맞게 될 것이다.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총선 목표가 180석 획득이라는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야권의 일부를 설득해서 개헌까지 추진하겠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미 많은 것을 이뤘지만 그래도 더 높은 곳을 꿈꾸자는 진취적 사고인가? 여전히 친박과 비박 사이에 ‘암수’가 오가지만, 험지 출마니 뭐니 해가면서 어쨌든 공천 문제도 무언가 정리돼가는 분위기다. ‘침대는 과학입니다’로 유명한 홍보전문가도 다시 불러오기로 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등을 추진해 수도권 여론을 악화시킨 대통령에 대한 불만은 부글부글 끓지만 수면 위로 드러나진 않는다. ‘배신의 정치’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역시 권력이 좋긴 좋다. 정부는 2016년에도 내수 활성화를 위한 단기부양책을 이어가겠다고 공언했다. 물가 관리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여기서 ‘물가 관리’란 서민을 위해 물가가 오르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저물가를 막을 수 있도록 압력을 조절해 경기를 떠받치겠다는 얘기다. 연기금과 공기업 여유자금까지 사회간접자본(SOC)과 에너지 인프라를 조성하는 데 투입한다. 한국은행은 2016년에도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런 총력전 덕에 2016년 상반기의 통계 수치는 ‘불황형 흑자’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좋을 것이므로, 이제 사람들은 경제를 되살린 여당 후보를 찍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단기부양의 약발도 끝이다. “야당의 비협조와 미국 금리 인상 및 중국 경기 둔화라는 대외 리스크로 경기 회생은 역부족이었다”는 해설이 뒤따를 것이다.


한 번 이기고 큰 실수 안 하면 마지막까지 이길 수 있는 게 이 나라 대권의 법칙이다. 그러니 야당의 대권 주자들이 총선을 사실상 포기하고 대권만 생각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만세 만세 만만세! 그냥 포기하면 행복한 2016년이 기다린다.

글·컴퓨터그래픽 김민하 <미디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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