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이 비정상이 된다고 한다. 과학과 이성의 영역이 아닌 혼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규격화할 수 있느냐, 그 범주화는 가당키나 한 것이냐, 뭐 이런 합리적 의심에 앞서 그냥 그 단어, 혼이 낯설었다. 혼, 확실히 범상한 말은 아니다.
몇 년 전, 처음 다녔던 크로스핏 박스 이름이 ‘투혼’이었다. 멋있다고 생각했다. 여태 경험해본 적 없는 체력의 바닥까지, 근육의 움직임이 정지될 때까지 모든 것을 쏟아붓자는 구호로 ‘투혼’만 한 말도 없지 않은가. 얼마 전 <우리동네 예체능>(KBS)을 보다보니,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6년 건립된 태릉선수촌에도 그 말이 붙어 있었다. 그런 특수한 공간의 격에 맞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 교과서 논란이 끝을 모르고 치닫는 상황이라 그런지 정몽주의 단심가도 떠올랐다.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로 시작되는 그 시조 말이다. 국정 교과서로 역사를 배울 때, ‘상황’ ‘화자’ ‘음보율’ ‘어조’ 이렇게 분해해 달달 외웠던 문장이다. 넋이라고 쓰고 혼이라고 읽어야 하는 그야말로 혼을 위한, 혼에 대한, 혼의 읊조림이다. 물론, 썩 와닿진 않았다. 역사를 향한 박근혜 대통령의 ‘일편단심’이야 의심할 나위 없는 것이지만, 그분의 관심이 특정한 시기에 집착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려 말의 넋에서 영감을 얻어 혼을 발화한 것은 분명 아닐 듯싶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대통령은 혹시 패트릭 스웨이지와 데미 무어가 나왔던 <사랑과 영혼>(Ghost, 1990)을 감명 깊게 본 것일까. 그것도 아닐 듯싶다. 아무리 뒤져봐도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 감상을 즐긴다는 기록은 없다. 대통령은 ‘국선도’를 즐겨, 혼자 물구나무를 설 수 있고, 그렇게 육신을 거꾸로 해 기를 다스린다고 한다. 게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10여 년의 칩거, 요샛말로 ‘히키코모리’ 생활을 끝내고 다시 사회활동을 재개한 것이 1989년이다. 1990년은 ‘아버지 시대’의 복권을 위해 한창 담론화 작업을 시작했을 때다. 근화봉사단을 결성해 열정적으로 전국 순회강연을 벌였는데 그렇게 유물론적 토대를 닦으며 관념론적인 ‘영혼’에 정념을 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일까. 대통령은 왜 많고 많은 말 중에 ‘혼’을 꺼내들어 이 혼비백산의 상황을 만든 것일까. 당최 떠오르지가 않았다. 괴로웠다. 비정상적인 TV 시청 습관 탓에 딱 한 장면만 음성 지원됐다. 영화 <타짜>(2006). 조승우가 주인공 ‘고니’ 역할을 맡았던 영화. 주옥같은 대사가 쉴 새 없이 남발돼 아직도 ‘짤’계의 레전드로 불리는 그 영화 말이다. 영화 초반부, 고니의 스승이었던 평경장(백윤식)은 고니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화투가 나고 내가 화투인 물아일체, 혼이 담긴 구라~.”
그러고 보니 고니와 박근혜 대통령의 여정은 닮아 있다. <타짜>는 아버지 같았던 평경장의 복원을 위해 고니가 떠났던 긴 여정을 그린다. 그 여행을 위해 ‘기술’을 배우고, 그러다 ‘이대 나온 여자’도 만나고, 끝내 아귀를 만나 복수를 이루는 대서사시다. 기가 막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여정도 그것이다. 아버지의 복원을 위해 ‘정치’를 시작하고, 그러다 ‘공안검사’도 만나고, 끝내 역사 교과서까지 다시 쓰려는 대서사시다. 말하자면 대통령은 지금 그 마지막 승부를 위해 ‘기술’을 쓰고 있는 것이다. 혼의 비정상화 질타로 온 국민의 혼을 국정화하려는 통치술은 “진실한 사람만 선택해달라”며 사실상의 선거 개입으로 치닫고 있다.
가히 ‘선거의 여왕’, 선거판의 ‘타짜’다운 행보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고 했었나. 정치인 박근혜는 언제나 다른 정치인보다 빨랐다. 선거가 나고 내가 곧 선거인 물아일체의 아이콘이었다. <타짜>에서 고니는 기술을 쓰기 전 늘 ‘아수라발발타’라는 주문을 외웠다. 대통령이 마지막 주문을 외고 있다. ‘그 원혼’을 위한 거대한 진혼제, 그게 혼의 정상화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