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후보 예비선거제 추진하는 민주당의 정치실험은 성공할 건가
민주당의 새로운 정치실험, 대통령후보 예비선거제가 적극 추진되고 있다. 예비선거제는 후보 선출과정에 당원과 당대의원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참여하도록 하는 방법.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은 4년마다 이런 방식으로 대통령후보를 선출한다.
예비선거제 도입 주장은 그동안 이른바 쇄신파가 이끌어왔다. 쇄신파는 11월8일 김대중 대통령의 당총재직 사퇴 이후 당개혁 차원에서 이른바 ‘당심’과 ‘민심’의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서는 대통령후보 선출에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명실상부하게 ‘DJ당’, ‘호남당’의 면모를 탈피하고 민주당이 진정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실감하도록 가시적으로 보여줄 방안이라는 것이다.
쇄신파가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11월19일 바른정치실천연구회(회장 신기남 의원)의 ‘정당민주화와 예비선거제’ 공청회. 이날 정동영 상임고문은 “대통령후보 예비선거제가 정치를 국민에게, 당을 당원에게 돌려줌으로써 막힌 정치의 물꼬를 트는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고문은 “대통령후보 선출에 참여하는 대의원 수를 현행의 1만명 수준에서 10만명까지 최대한 늘리고 10개 광역 시·도지부별로 예비선거를 순차적으로 실시해 민주당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것이 민심을 되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구체적 방안도 제시했다. 이강래 의원도 “일본이 예비선거제를 통해 막후정치의 폐단을 종식시킨 것처럼 우리도 예비선거제를 통해 당심과 민심이 일치하는 후보를 뽑을 수 있다”고 나섰다.
지역당 면모 탈피하는 절호의 기회
예비선거제 도입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7년 옛 국민회의 시절 대통령후보 지명전에서 김근태 의원이 예비선거제 도입을 주장했다. 논리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당시는 당내 민주화 차원에서 제기된 것으로 보긴 어렵다. 김대중 대통령이 사실상 후보로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거전략이라는 측면이 강했다. 권역별 예비선거제라는 대형 정치이벤트를 통해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또 민주적 절차에 의해 뽑혔다는 점을 강조해 대통령후보의 경쟁력을 한층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예비선거제에 대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부정적 시각도 적지 않다. 특히 이인제·한화갑 상임고문 등 일부 대선주자 진영은 썩 내키지 않는 분위기다. “민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투표 참가자가 많은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준비가 안 돼 있고 시기적으로도 늦은 것 아니냐”(이인제 고문쪽 관계자) “당개혁 방안에 대해 개방적 태도로 접근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선 과도체제 정비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한화갑 고문쪽 관계자)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이 고문이나 기존 대의원 장악력이 앞선 것으로 평가되는 한 고문의 경우 선거방식의 변화가 자칫 기득권 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11월28일 당워크숍에서도 예비선거제 도입을 주장하는 쇄신파들과 현실적 어려움을 들어 대의원 증원으로 대체할 것을 주장하는 의원들 사이에 의견이 맞섰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당총재직 사퇴 이후 당쇄신 방안마련을 위해 구성된 ‘당발전과 쇄신을 위한 특별대책위원회’(이하 특대위·위원장 조세형)가 예비선거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예비선거제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조세형 위원장은 11월29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 대통령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 당원들만 참여했다. 이제 국민의 시대를 맞아 국민의 뜻이 반영되고 국민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것이 가능한지 집중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예비선거의 필요성을 우선 당장 내년 대선을 겨냥한 선거전략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떠나간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당쇄신이 필요하다는 것은 다들 공감하는 것 아니냐. 그렇지만 국민들에게 ‘민주당이 바뀌었다’는 것을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방법은 예비선거다. 권역별로 1달 남짓만 레이스를 벌여도 온 국민들의 관심을 끌 수 있어 대선 경쟁력 제고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중진의원은 “현 상태에서는 이인제건 노무현이건 이회창 총재를 당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비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후보가 결정되면 그때는 달라진다. 국민들 눈에 그때의 이인제는 지금의 이인제가 아니며 그때의 노무현은 지금의 노무현이 아니다. 예비선거를 통해 업그레이드된 후보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대위 적극적… 현실적 난관 많아
민주당이 예비선거의 성공사례로 삼고 있는 것은 일본 자민당. 일본은 4월 모리 체제가 사퇴하기 전까지 잇따라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는 등 국민들의 정치불신으로 최악의 지지도를 나타냈다. 그러나 총재 예비선거를 도입해 ‘고이즈미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함으로써 9월 참의원선거에서 교체의석 121석의 과반수(61석)인 64석을 휩쓰는 압승을 거뒀다.
또 예비선거가 정치개혁의 현실적인,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도 강조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선관위에 신고된 민주당 당원은 173만6138명. 그러나 당비를 내는 실제 당원은 7065명에 그치고 있다. 사실상 대중정당이라고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당원의 대표인 대의원이 대선후보를 선출한다는 개념은 허구라는 것이다. 정진민 명지대 교수는 “실제 당원이 허구인 현실을 받아들여 대선후보 선출과정에 일반 유권자들을 참여시키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예비선거가 치러지기 2, 3개월 전에 예비선거 참여의사를 밝힌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유권자 명단을 확정하면 선거에 임박해서 일어날 수 있는 유권자 동원 및 특정후보 선출 방해 등 부작용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장훈 중앙대 교수는 “미국도 예비선거가 일반화되지 않은 68년 이전에는 대의원 선출과정에서 당내 유력인사들이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68년 민주당이 대선 참패 뒤 구성된 맥거번-프레이저 위원회 등을 통해 예비선거를 일반화하면서 대선후보 선출과정에서 당간부들의 영향력이 사라지고 민주화가 진전됐다”고 말했다.
민주당에 예비선거제가 도입될지는 아직 속단하기 어렵다. 우선 현실적 어려움 때문이다. 예비선거제가 도입될 경우 ‘시·도별 인구비례에 따른 대의원 수의 확정·배분→예비선거 유권자 명부 확정→예비선거 유권자의 직접선거와 득표율에 따른 대의원 배분→후보 확정을 위한 대의원대회’ 등의 순서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시·도별 인구비례에 따른 대의원 수의 배분방식이나 예비선거에 참여하는 유권자를 확정하는 방식 등을 놓고 대선주자들간 이해관계가 엇갈려 논란을 빚을 가능성이 많다.
또 표의 왜곡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고 있다. 지난해 공화당 대선후보 지명과정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 매케인이 부시를 누른 미시건 예비선거의 경우 공화당원의 표는 부시가 더 많이 받았다. 그러나 민주당원과 무소속 투표자들이 매케인에게 표를 몰아줘 승부가 뒤집혔다. 소속 당원들의 뜻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자칫 상대 정당에서 이런 문제점을 악용하려 할 경우 당의 총의가 심각하게 왜곡될 수 있는 맹점을 지닌 것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 특대위에서는 절충적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특대위 간사인 김민석 의원은 “후보 선출방식과 관련해 현행 대의원 중심의 선출방법과 이상적 형태의 국민참여 예비선거 등의 방식이 제기되고 있다. 두 가지 방식을 창조적으로 결합시킬 수 있는 방법을 특대위 차원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특대위에서는 당 대의원과 일반 국민에게 대선후보 경선 투표권을 50 대 50으로 배분해 절충하는 이른바 ‘한국형 예비선거제’ 방안에 대해 집중 논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국민의 경우 전국적 공모를 통해 입당원서를 받은 다음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해 해당 권역별로 투표권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특대위 관계자는 “대선후보 선출과정의 민주화에 대한 조세형 위원장의 의지가 크다”며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생각 안 할 수 없는 만큼 12월 중순 최종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예비선거제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안을 집중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심·민심 결합한 ‘한국형 예비선거제’
집권당의 경우 차기후보 선출과정에서 사실상 현직 대통령의 입김이 강력하게 작용해온 게 우리 정치사의 경험이다. 예비선거제 도입은 대선후보 결정권을 국민의 손에 넘긴다는 점에서 우리 선거문화를 뒤바꿀 획기적인 사안이다. 그러나 그만큼 생소하고 새로운 제도도입에 따른 부작용과 후유증도 우려된다.
실제적인 ‘3김 시대’ 마감 뒤 새 정치적 권위 창출의 시험대에 오른 민주당. 과연 민주당의 정치실험은 우리 정치사에 어떤 발자국을 남길까.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사진/ 민주당은 대통령후보 선출에 국민이 참여하도록 할 방침이다. '당발전과 쇄신을 위한 특별대책위원회' 조세형(사진 가운데)위원장과 위원들이 워크숍 보고사항을 검토하고 있다.(한겨레 이정우 기자)
예비선거제 도입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7년 옛 국민회의 시절 대통령후보 지명전에서 김근태 의원이 예비선거제 도입을 주장했다. 논리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당시는 당내 민주화 차원에서 제기된 것으로 보긴 어렵다. 김대중 대통령이 사실상 후보로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거전략이라는 측면이 강했다. 권역별 예비선거제라는 대형 정치이벤트를 통해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또 민주적 절차에 의해 뽑혔다는 점을 강조해 대통령후보의 경쟁력을 한층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현재 민주당에서는 예비선거제에 대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부정적 시각도 적지 않다. 특히 이인제·한화갑 상임고문 등 일부 대선주자 진영은 썩 내키지 않는 분위기다. “민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투표 참가자가 많은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준비가 안 돼 있고 시기적으로도 늦은 것 아니냐”(이인제 고문쪽 관계자) “당개혁 방안에 대해 개방적 태도로 접근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선 과도체제 정비에 힘을 모아야 할 때다.”(한화갑 고문쪽 관계자) 대세론을 형성하고 있는 이 고문이나 기존 대의원 장악력이 앞선 것으로 평가되는 한 고문의 경우 선거방식의 변화가 자칫 기득권 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을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11월28일 당워크숍에서도 예비선거제 도입을 주장하는 쇄신파들과 현실적 어려움을 들어 대의원 증원으로 대체할 것을 주장하는 의원들 사이에 의견이 맞섰다. 그러나 김 대통령의 당총재직 사퇴 이후 당쇄신 방안마련을 위해 구성된 ‘당발전과 쇄신을 위한 특별대책위원회’(이하 특대위·위원장 조세형)가 예비선거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히면서 예비선거제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조세형 위원장은 11월29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까지 대통령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 당원들만 참여했다. 이제 국민의 시대를 맞아 국민의 뜻이 반영되고 국민들이 참여하는 가운데 대선후보를 선출하는 것이 가능한지 집중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예비선거의 필요성을 우선 당장 내년 대선을 겨냥한 선거전략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떠나간 민심을 되돌리기 위해 당쇄신이 필요하다는 것은 다들 공감하는 것 아니냐. 그렇지만 국민들에게 ‘민주당이 바뀌었다’는 것을 가장 가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방법은 예비선거다. 권역별로 1달 남짓만 레이스를 벌여도 온 국민들의 관심을 끌 수 있어 대선 경쟁력 제고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한 중진의원은 “현 상태에서는 이인제건 노무현이건 이회창 총재를 당하기 어렵다. 그러나 예비선거라는 과정을 통해 후보가 결정되면 그때는 달라진다. 국민들 눈에 그때의 이인제는 지금의 이인제가 아니며 그때의 노무현은 지금의 노무현이 아니다. 예비선거를 통해 업그레이드된 후보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대위 적극적… 현실적 난관 많아

사진/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대의원 배분, 유권자 확정 방식 등을 놓고 이해관계가 엇갈린 전망이다. 지난 11월28일 민주당 워크숍에서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대선주자들.(한겨레 김진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