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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여의도 청백리의 ‘정치적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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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1-28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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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정치 실험하는 이협 민주당 사무총장… 집권당 살림살이에 깨끗한 이미지 심을 건가

사진/ 정치권에서 청백리 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이협 의원. 이 의원이 집권당 사무총장으로 깨끗한 정치를 실현할지 귀추가 주목된다.(이정용 기자)
“보도를 접한 뒤 하루가 참 흐뭇하고 그래도 아직은 희망이 있구나 하는 기대와 함께 의원님의 소신이 국민들에겐 철학으로 영글어지길 기대합니다.” “저는 국회의원을 혐오합니다. 행태를 보면 혈세를 축내는 빈대 같다는 생각밖에 안 들거든요. 신념을 가지고 정치를 하는 분이 있다는 사실이 조그마한 희망을 줍니다. 변치 않는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요즘에도 이런 국회의원이 계시구나. 많은 분들이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원님으로 인해 새롭게 바라보게 된 지금 묵묵히 지켜보고 싶습니다.”

과도한 후원금 2500만원 돌려줘

이협 민주당 의원의 인터넷 홈페이지(www.leehyup.go.kr) 게시판에는 최근 이런 내용의 격려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 의원이 11일15일 후원회에서 받은 후원금 가운데 과도하게 받은 2500만원을 당사자들에게 돌려줬다는 보도가 나간 뒤부터다. 이 의원쪽 관계자는 “몇몇 분들이 격려전화도 해왔다. 대부분 ‘정치권이 비리연루설로 시끄러운데 이처럼 깨끗한 의원이 있다니 신선하다’는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이 의원은 오래 전부터 청렴결백한 정치인으로 손꼽혀왔다. 4선의 국회의원이면서도 오랫동안 13평 연탄보일러 아파트에서 생활해왔고, 이 때문에 당시 경찰이 동네주민들에게 “진짜 이 아파트에 국회의원이 살고 있느냐”고 의아해했다는 일화는 이 의원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에는 이 의원이 살던 13평 아파트가 재개발에 들어감에 따라 28평 전세아파트로 집을 옮기자 몇몇 언론에서는 “이협 의원이 28평 전세아파트 입주해 의원 4선 만에 연탄방신세 면했다”고 보도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의원의 청백리 정신을 보여주는 이런 일화들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이 의원과 가까운 호남 출신의 한 의원은 이렇게 전했다. “정권교체 뒤 사업하는 사람들 가운데 이 의원을 보자는 사람이 많았다. 한번은 한 사업가로부터 이 의원에게 할말이 있다며 ‘식사라도 한번 하자’는 요청이 왔다. 이 의원은 ‘사람 만나 이야기 듣는 게 정치인의 일인데 못 만날 이유가 없다. 대신 장소는 우리가 정해 통보해주겠다’고 한 뒤 약속장소를 청진동 해장국집으로 정했다. 해장국집 분위기가 은밀하게 뭘 전해주고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어서 그곳으로 정했다는 것이다. 이권청탁 같은 것을 미리 봉쇄하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민주당의 다른 관계자는 또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협 의원이 88년 원내에 진출한 뒤 92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당총재이던 김대중 대통령이 이 의원에게 ‘선거준비는 잘되나’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이 의원이 ‘선거자금이 없습니다’라고 우물거리니까, 김 대통령이 ‘이제 이 의원도 의원생활 4년 했으면 자기 앞가림할 때가 되지 않았나’하며 혀를 끌끌 찼다고 한다.”

이처럼 평소 청백리로 소문난 이 의원이 이번에는 후원금 일부를 돌려줬다는 얘기를 듣고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로 찾아갔다. 각종 게이트로 비리연루설이 끊이지 않는 정치권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당총재직 사퇴 이후 11월12일 사무총장에 임명된 이 의원은 “늘 하던 것인데 이번에는 지역신문에서 어떻게 알아가지고 그만 밖에 알려졌다”고 조금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정치하면서 후원금을 안 받을 수는 없지만 원칙이 있다. 학교 선·후배나 친구, 친척 등 잘 아는 분들에게는 받는다. 잘 규명이 안 되는 돈은 모두 돌려준다. 또 형평성을 따져서 지나친 후원금도 돌려준다. 이번에는 지방의원의 경우 10만원, 동책과 면책은 5만원만 남기고 돌려줬다.” 이렇게 해서 2500만원을 돌려줬더니 모두 1억원 남짓한 후원금이 남았다고 한다.

이 의원이 이처럼 돈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보이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88년 처음 국회의원 될 때 13평 아파트에 살았는데, 당선되고 나니까 주위 사람들이 다들 환영해주었다. 그런데 한 아주머니가 ‘이제 아무개네도 큰 집으로 이사가겠네’ 하더라. 그때 생각했다. ‘아하, 서민 생각은 의원이 되면 다들 생활이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생각하는구나.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그래서 그 아파트에 그냥 눌러 살게 됐고, 유혹이 있을 때마다 그때 일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았다.”

‘실탄’은 부족해도 ‘도덕성’은 충만

사진/ 이협 의원은 원내진출 13년 만에 처음으로 핵심당직에 올랐다. 한광옥 권한대행과 당직자들이 그 자리를 같이했다.(한겨레 이정우 기자)
부인 우태경씨도 이런 이 의원의 뜻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부인과 전혀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집사람은 내가 가난하게 산다고 보도되는 것을 싫어한다. ‘뭐 자랑할 일이냐’는 것이다. 한번은 한국방송에서 취재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크게 말다툼을 한 적이 있다”고 이 의원은 덧붙였다.

흔히 선거판에서 돈은 ‘실탄’이라고 한다. 표를 낚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수단이라는 뜻이다. 전북 익산에서만 4선. 과연 어떻게 선거를 치렀을까. 이협 의원은 “사실, 호남지역의 특수성이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텃밭이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일까. 지난해 총선에서 호남에서는 민주당 후보 4명이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지난해 민주당 공천과정은 이 의원이 지역구에서도 신망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당시 총선전 선거구 조정과정에서 전북 익산은 갑을이 합쳐져 이 의원은 최재승 의원과 공천경합을 벌여야 하는 처지였다. 최 의원은 당시 동교동계의 핵심이었다. 권노갑·김옥두·최재승 의원을 가리켜 이른바 ‘권·옥·승’이라며 여권 핵심실세로 꼽던 시절이다.

그러나 지역구 공천은 이 의원 몫이었다. 당시 당주변에서는 이 의원이 동교동계 선배라는 점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지역구의 분위기가 이 의원쪽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의원은 “10년 남짓 돈 안 쓰는 정치를 해오니까 으레 ‘이협은 그런 사람이야’ 하고 양해하는 분위기가 있다. 92년 선거에 나설 때 일부에서 ‘초선 때는 돈없이 당선될 수 있지만, 재선때는 안 된다. 돈 좀 장만하라’고 충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지역에서도 나의 정치스타일을 다 알고 그려러니 한다. 정치인이 결심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쇄신파의 한 의원은 이협 의원을 가리켜 “동교동계 의원 같지 않은 동교동계 의원”이라고 말했다. 신문기자 출신인 이 의원은 79년 10·26 직후 DJ의 공보비서로 정치에 입문한 뒤 80년 ‘김대중 내란사건’으로 1년8개월 수감생활도 했다. 80년대 중반부터 민추협 대변인 등으로 활동하다 88년 평민당 공천으로 원내 진출한 DJ 직계의원이다. “그럼에도 핵심당직과는 거리가 멀었고 충성심만 앞세우는 ‘돌쇠’형도 아니다. 합리적인 쪽이다. 더욱이 누구보다 청빈한 의정활동으로 모범을 보여왔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의원의 청렴정치에 대해 찬사일색인 것만은 아니다. 쇄신파에 속하는 한 중진의원은 “이 의원의 도덕성은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깨끗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아니냐. 너무 방어적으로 자신을 지키려다보니 적극적으로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지 않았느냐. 도덕성이냐, 정치적 성취냐를 놓고 양자택일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정치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당관계자는 더욱 신랄하다. “이협 의원이 ‘청렴’말고 다른 일로 언론을 타는 것을 별로 못 봤다.” 깨끗하긴 했지만 정치인으로서 4선에 걸맞은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이 의원도 이런 지적에 대해 충분히 인식했다. 지난해 8월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 경선 출마를 선언했던 것도 이런 문제의식 때문이었다. “4선까지 되니까 지역주민들의 기대가 커진다. 성장하지 않는 나무에 물주는 것을 주저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뭔가 뜻을 펼치고 나도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했다. 최고위원 경선을 통해 활로를 열고 싶었다.”

이젠 정치적 업적 이뤄낼 건가

그러나 이 의원은 참담한 정치현실과 맞부닥친다. 조순형 의원과 함께 깨끗한 정치와 무전(無箋)·무조직(無組職)을 선언하고 나섰으나 최하위권에 머물며 떨어졌다. “고민이다. 정치를 하는 사람이 돈을 모으면 비리와 연루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이렇게 깨끗한 정치를 한다는 것만으로는 사람을 모아 함께 일을 도모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렇다고 황하가 맑아질 때까지 해오라기처럼 기다릴 수도 없는 것 아니냐. 하긴 맑은 물에 고기가 모이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이 의원은 11월12일 사무총장에 임명됐다. 김 대통령의 당총재직 사퇴 이후 한광옥 총재권한대행 체제의 당살림을 맞게 됐다. 과도체제라는 한계는 있지만 정치입문 13년 만에 핵심당직에 앉은 것이다. ‘깨끗한 정치’와 ‘정치적 실현’의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까. 당살림을 맡은 그가 보여줘야 할 새로운 실험이다.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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