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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청년을 50% 공천할 정도의 혁신을”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으로 영입된 ‘다준다 청년정치연구소’ 이동학 소장… “새정련은 뜨거운 물 속 개구리, 사회는 위아래 꽉 막힌 소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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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23 07:3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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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학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이 지난 6월17일 과 만나 제1야당의 혁신과 청년정치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는 의원들에게 “왜 정치를 하는지 자신들의 가슴에 다시 절절하게 질문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아직 1800여만원의 빚이 있다. 돈 벌어 학교를 다닌 청춘들의 빚 목록처럼 학자금 빚이 찌꺼기처럼 남아 있다. 그의 명함에 찍힌 직함들은 비루한 현실에 갇히지 않겠다는 한 청춘의 ‘유쾌한 응전’을 보여준다. 그는 프리랜서 진행자다. 얼마 전엔 장애견 달리기 대회, 믹스견 콘테스트에서 진행을 봤다. 레크리에이션 1급 지도자 자격증이 있는 그는 “즐겁게 사는 법을 강연”하는 웃음메이킹 강사다. ‘모두가수닷컴’ 대표이기도 하다. 어르신의 인생을 담은 노래, 의뢰인의 첫사랑과 그 헤어짐의 이야기를 담은 “나만의 노래를 만들어주는 사업”이다. 애석하게도 지난해 의뢰받은 노래는 “3~4곡”뿐이다.

그는 학위가 없는 시민교육 ‘신촌대학교’에서 정치를 재밌게 가르치는 ‘예능정치학과장’이다. 이곳에선 자신이 지향하는 가상 국가를 만든 뒤 당을 만들어 당원을 모으고 당대표가 되는 과정 등을 익힌다. “군 전역자의 무좀을 국가가 배상하라는 ‘무좀지원법’을 대표 정책으로 둔 ‘무좀당’을 만들어 활동해보는” 식이다.

기존 정당이 취약한 ‘소통 감성’에 능통

이제 언론과 정치권이 주목한 그의 ‘다준다(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다른) 청년정치연구소’를 얘기할 차례다. 청년문제를 상시 연구하거나 미래 세대를 키울 생각을 하지 않는 ‘이놈의 기성 정당’에 대항한 연구소다. 2012년 6월, 20~30대 청춘들이 창립했다. 이동학은 이곳의 소장이다. 그는 “연구소를 작은 정당이라 생각하고 실험하는 곳”이라고 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연사 초청 강연, 저자 초청 독서모임을 140회 이어왔다. 정당이 방기한 청년 정치교육을 이곳에 이식해 실천해본 것이다. 강연자는 여야, 보수와 진보 진영을 넘나들며 부른다. 그간 정치·복지·경제·외교·국방·저출산·고령화·일자리·결혼·교육문제 등을 공부했다. 글쓰기·연설 특강도 연다. 지난해 12월 독서모임에 초대된 <한국 자본주의>의 저자 장하성 교수는 열띤 청년들의 토론에 놀라고 갔다고 한다.


청소년·청년 연설대전도 국회에서 개최해왔다. 자신들의 문제를 끄집어내 대중과 공유하는 연설대회다. 그는 이걸 정당이 하지 않는 “차세대 리더, 인재 발굴 기능”이라고 했다. 찜질방에서 간담회·토크쇼를 진행한 적도 있다. 정당의 고루한 간담회 형식은 따분하기 때문이다.

“‘아, 이렇게 의사소통하면 되는구나, 의견 듣는 자리를 마련하면 사람들이 오는구나, 이런 자리가 소멸되지 않고 의미 있게 이어지면 후원금도 기부하는구나’라는 걸 이 연구소에서의 실험을 통해 알게 됐다.”

이는 기존 정당들이 꾸준히 하지 못했거나 취약했던 ‘소통 감성’이다. 그래서 비로소 그의 새 직함이 등장한다. 김상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장은 청년정치를 고민해온 이동학 소장을 당의 혁신위원으로 영입했다고 지난 6월11일 발표했다. 혁신위는 지난 4월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새정치연합이 심각한 내분 속에서 생존의 동아줄처럼 출범시킨 혁신기구다. 그는 혁신위원 11명 중 가장 젊은 만 33살이다. 그는 이 당의 12년째 당원이다.

지난 6월17일 만난 그는 혁신위에 합류한 이유를 설명하다 ‘소시지 사회론’을 꺼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위아래가 묶인 소시지와 같다”고 했다.

“소시지 아래가 묶여 있어 청년들은 일자리가 있는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그 여파로) 부모·기성세대는 자식들이 자립하지 못하니까 계속 일해야 한다. 이들의 퇴로를 열어줘야 하는데 위가 묶인 소시지의 상황처럼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는 “청년들의 꿈이 거세당하고 있다”고도 했다. ‘소시지 사회화’가 강고해지는데도 정치권은 “선거 때만 청년문제를 듣는 척하고 선거가 끝나면 ‘(너네) 누구니?’란 상황을 반복한다. 정책 논의 과정, 당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청년이 소외돼 있다”고 개탄했다.

청년들 표로 먹고살면서, 이렇게 매력 없다니

그가 혁신위에 참여한 것은 혁신을 강제당할 처지를 자초할 만큼 새정치연합의 내부 기득권이 심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당이 뜨거운 물에 있는 개구리와 같다. 소리쳐서 개구리를 나오게 하고 싶은데 의원들은 자각하지 못한다. 이번에 혁신하지 못하면 이 정당은 망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위기감을 토로했다. 그는 새정치연합을 “노쇠하고 활력이 떨어진 당”이라 평하면서, 5대 기득권(50~60대 중심·남성 중심·전문직 중심·운동권 출신 중심·호남 중심)에 둘러싸인 당을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탈당을 수차례 고민했지만 이 당을 바꾸기 위해 12년간 남았던 내가 혁신위원을 못한다고 하면 당 밖의 청년이 와서 뭘 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20~30대 청년 당원이 통째로 비어 있다”는 그의 말처럼 새정치연합 당원의 노령화는 심각한 문제다. 당의 대의원 전체에서 20~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9% 정도다. 당 내부에선 “청년이 당에서 희귀종이 됐다”는 말이 나온다. 이러다보니 당의 청년위원회 자격 요건이 만 45살 미만으로 높게 잡혀 있다. 생일이 지나지 않은 46살도 이 당에선 청년이 된다. ‘만 45살 미만 청년’ 조건을 가진 것은 당에서 청년이 귀한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선거 땐) 새정치연합은 청년들이 주는 표로 먹고살면서 청년들에게 이렇게 매력 없는 당이 되면 안 된다”고 그는 말했다. “당을 그대로 두면 5년 뒤엔 당의 청년 나이 기준이 더 올라갈 것이다. 농촌에선 60~70대 어르신이 마을 청년위원장을 맡기도 하는데 지금 당이 그 상황을 따라가고 있다”고 그는 우려했다.

그가 처음 정당과 정치를 만날 땐 지금보다 기대가 컸다. 군에서 제대한 2003년 겨울, 열린우리당 지역위원회 창당 행사에서 의자를 놓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들려온 “새로운 정치, 잘사는 나라, 정의로운 국가, 지역주의 타파” 등의 말이 손에 쥔 것 없던 시절의 그를 흔들었다.

13살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 뒤 그는 신문배달을 시작했다. 대전공고(자동차과)로 진학해 수업이 끝나면 자장면·피자를 배달했다. 고교 3년 내내 겨울방학이 되면 군고구마 장사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땐 총학생회장을 했다. 태권도를 잘했던 그는 체대에 들어갔다가 1학기만 다닌 뒤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제대 뒤에도 월세방 생활의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바로 그즈음 정당 행사장에서 새롭게 창당되던 정당이 추구하는 지향점이 “멋있게 들려” 입당 원서를 냈다. 우리 삶을 바꾸려는 긍정적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국 지역위원회를 민원센터로

그는 지인들로부터 300만원을 빌려 ‘이동학의 천원의 행복’이란 생과일 주스 노점상을 했다. 주차단속·노점단속, 지역 조직폭력배들의 간섭이 이어지면서 그는 법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밤 12시까지 장사하고 돌아와 한두 시간 책을 보고,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 농수산시장에서 과일을 사오는 생활을 하며 2005년 경기대 법대에 입학했다. 지난해까지 성균관대 법학 석사과정 3학기를 다니다 일단 학업을 중단했다.

그의 삶은 정체와 후퇴 없이 흘러왔지만 그의 정당은 그러지 않은 듯 보였다. 답답할 지경이었다.

“계파는 다른 계파의 리더십을 흔들고, 당에서 피해를 봤다고 느낀 의원은 계파 뒤에 숨어 해당 계파가 희생됐다고 얘기한다. (계파 갈등만 부각되니) 잘하는 정책은 드러나지 않고 시민들은 사분오열하며 싸우는 정당으로 본다. 이 정당이 내 문제를 들어주고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지 않게 된 것이다.”

그는 이 당이 365일 당원과 주민의 이야기를 듣는 체제로 변해야 한다고 했다.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다준다연구소’가 그랬듯 전국 지역위원회를 민원센터 성격으로 바꿔 간담회·토크쇼를 연중 상시로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 곳곳에서 제기된 문제를 당의 정책연구소인 민주정책연구원에서 연구하고, 이를 정책 대안으로 돌려주는 생활정치 중심 정당이 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청년 수혈”이 시급하다고 했다. “486세대 이후 한 세대가 통으로 빠져 있는”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민주화 세대와 미래 세대가 결합돼 “온전히 새로운 정당이 돼야 한다”고 그는 절박하게 얘기했다.

그러려면 “(당의 청년 기준인) 45살 미만 청년을 각종 선거에서 50%까지 공천하겠다는 정도의 충격과 파격적 혁신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혁신위 성과의 핵심도 청년이 진출할 기회를 열어주는 시스템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그는 당이 대학교별로 학생위원회를 둬 젊은 층과의 소통 통로를 넓히고, 당 내부에선 미래 리더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우리가 실력 없이 486세대 등이 물러나야 한다고 하면 공허하다. 우리 세대가 실력을 갖추면 우리 스스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그가 ‘다준다연구소’에서 또래 청년들과 함께 매주 토론·강연모임을 여는 이유이기도 하다.

좁은 사무실에서 꿈꾸는 ‘동학혁명’

이동학 혁신위원이 개인 사무실로 쓰는 서울 시내 작은 공간.

그는 “공동체에서 생긴 갈등을 중재하는 것이 정치이고 타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정치에 대한 관심의 출발이다. 하지만 청년들이 그런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사회가 되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여러 강연에서 이렇게 말하며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얘기한다.

“지금 청년들이 개미지옥에 빠져 있고 곧 머리까지 잠길 수 있다. 이제 우리가 주도적으로 원하는 세상을 개척하는 첫 세대가 되어보자.”

그를 만난 곳은 서울 시내 어느 공용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지하 1층 계단 옆 좁은 공간이었다. 제1야당의 혁신과 청년세대의 정치 진입을 도모하는 그가 사무실처럼 쓰는 곳이다. 작은 경비실 크기였다. 선풍기도 없었다. 연간 임대료가 200만원이 안 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자신의 이름처럼 ‘동학 혁명적’ 정치 혁신을 꿈꾸는 한 청춘의 절박함을 정치권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동안, 땀을 흘리던 그가 손에 쥔 부채를 여러 차례 흔들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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