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선거 앞두고 진보신당 창당 움직임… 각개약진 한계 드러나 공감대 확산
위기는 진보세력에 돌파구의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인가?
진보정당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전면에 내걸고 활동해온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 창당문제를 공론화했다. 과녁은 2002년 6월 지방선거와 12월 대통령선거. 11월14일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전국연합이 공동주최한 ‘진보정당과 2002년 양대 선거’ 토론회에서 정성희 민노당 재창당추진위원회 상임위원은 민노당 활동의 한계를 인정하고 나섰다. “민노당은 지역 서민대중과의 일상적 결합력이 아직 부재하다. 선거에 임박해 지구당을 만들고 후보를 내보내는 방식은 ‘선거 때만 찾아온다’는 비판을 비켜갈 수 없다. 또 뭔가 협소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아직 대안의 정치세력으로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는 결국 “진보진영이 외연을 확대해 각계 진보세력이 다 모인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며 진보신당 창당 필요성을 역설했다.
10·25 재보선 참패로 분위기 형성
전국연합과 한국노총, 한총련은 이런 호소에 일단 공감했다. 정대연 전국연합 정책위원장은 “각계각층 민중의 정치적 진출은 가속화되고 있지만 이를 하나의 힘으로 묶어 세울 강력한 정치적 구심이 부재해 고립분산성이 극복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정식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은 “노총 내부에서도 독자적 정치세력화 일정을 앞당기자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진보세력들이 진보신당 깃발에 선뜻 동조하고 나선 것은 좀 뜻밖이다. 민노당은 그동안 이들을 향해 끊임없이 동참을 호소했다. 하지만 민주노총과 전국빈민연합을 제외한 대다수 단체들은 민노당 활동에 회의적이었다.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정당활동은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훼손한다”며 주춤거렸다. 전국연합은 “진보정당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다수가 각계각층의 애국적 민주역량을 망라한 이른바 ‘민족민주 전선운동 강화’를 더 중요한 과제로 인식했다. 전국농민회도 민노당과의 결합보다는 DJ 정부의 농업정책에 더 기대를 걸었다. 한국노총은 아예 민노당을 “민주노총당”으로 깎아내리며, 기성 정치권과 정책연대를 통해 독자세력화 기반을 구축하는 전술을 선택했다. 2002년 대선에서 정당과 제휴를 통해 정권에 참여하고, 2004년 노동자와 국민대중의 독자정당을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각개약진에 익숙했던 이들을 ‘단결’로 급속히 몰아간 직접적 계기는 10·25 재·보선이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이 진보의 깃발을 들고 출사표를 던졌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서울 동대문을에서 민노당 2.91% 사회당 1.8%, 구로을은 두 당이 각각 2.61%와 2.68%를 얻는 데 그쳤다. 지난 4·13 총선 때 민노당이 얻은 13.1%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이를 지역주의와 보수주의가 만연한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진보진영 다수는 더이상 각개약진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상현 민노당 대변인은 “민노당조차 창당 이후 국민적 입지를 넓히지 못하면서 오히려 창당 프리미엄을 까먹는 상황에 부닥쳤다. 흩어져 싸우는 진보진영이 보수세력 중심의 정치구도를 돌파하는 것은 역부족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더 머뭇거리면 공멸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진보정당에 대한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이번에도 흩어지면 전체가 몰락한다는” 위기의식이 진보세력을 ‘단결’과 ‘자기 변혁’으로 몰아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각개약진을 통한 역량강화 전술을 택했던 진보세력들은 요즘 그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당장 전국농민회는 DJ 정부의 개방농정과 쌀값하락 등으로 생존권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한국노총도 기성정당과 정책연합에 대한 회의론만 거세지고 있다. 한국노총 한 관계자는 “97년 대선 때 DJ를 밀고, 지난해 총선에서는 정당을 가리지 않고 친노동 후보를 지원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뭐가 남았나. 구조조정만 가속화되고 있다. 믿는 놈한테 발등 찍힌 기분이다”고 말했다. 전국연합도 마찬가지다. 전선운동 강화 노선이 노동운동을 포괄하지 못하는 등 명백한 한계를 드러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심각성은 앞날이 더 암담하다는 데 있다. 내년 양대 선거는 지역대결 구도가 더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보수세력의 대표를 자임해온 한나라당의 집권이 예측되는 상황이다. 결국 진보진영이 단합해 보수 대 진보의 대결구도를 만들지 못한다면 보수정당의 틈바구니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거나 보수정당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투항하는 상황이 닥칠 수밖에 없다. 전국연합·한총련 가세… 한국노총 ‘고민중’
궁지에 몰린 각계 진보세력은 최근 민주노동당과 연대를 구체화하는 등 적극적인 활로찾기에 나섰다. 전국연합과 한총련의 변화는 가장 두드러진다. 전국연합은 최근 서울, 인천, 부산, 수원, 경기남부 연합 등 지역조직 대부분이 민노당으로 합류하고 있다. 전국 조직의 3분의 2 정도가 이미 민노당과 조직통합에 합의했다. 한총련은 중앙위원회 안에 진보정당연구회를 만드는 등 진보신당 창당에 적극 참여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몇몇 대학 학생회는 이미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에 동참하고 있다. 한총련은 내년 2월 한총련 창립 10주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진보정당 건설운동 참여를 공식선언하기로 이미 내부방침을 확정했다.
한국노총도 방향전환을 심각하게 고민중이다. 한국노총 지도부는 최근 조합원 3천명을 대상으로 긴급 여론조사를 벌였다. 조사결과 80% 이상이 정치세력화 시기를 앞당겨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기성정치권과 정책연합보다 진보정당 창당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정식 대외협력본부장은 “현재 실무단 회의 등을 통해 민주노동당과의 결합 등 진보신당 창당 가능성을 다양하게 검토하고 있다”면서 “내년 2월 노총위원장 선거가 끝난 뒤 구체적인 방침을 최종 확정하겠다”고 말했다. 전농 안에서도 정치세력화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진보신당 창당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은 셈이다.
그러나 신당 창당까지는 아직 걸림돌이 많다. 진보정당 건설이란 대의에 공감하지만 조금씩 생각이 다르다. 전국연합과 한총련은 사실상 민노당과 결합을 통한 진보신당 창당으로 큰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기존 민노당 지구당 위원장들의 기득권 인정 여부, 정강정책 조정 등 숙제가 남아 있다. 한국노총은 “민노당이 민주노총 중심의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탈색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민노당이 좀더 대중적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노당은 이미 재창당추진위 토론 등을 통해 다른 진보세력과 결합하기 위해 당명은 물론 현재 운영중인 지구당 등 모든 프리미엄을 버리기로 내부방침을 정했다. 권영길 대표도 지난 11월14일 “보수와 진보의 정치구도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면 민노당이 앞장서서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모든 진보세력이 대동단결해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에 공동대응할 수 있는 명실상부한 진보정당을 재창당하는 게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노당이 다른 진보세력과의 연대를 위해 자기 색깔을 급속히 탈색할 경우 “뭣 때문에 진보정당을 하려는 것이냐”는 내부 반발이 제기될 가능성도 높다.
내년 지방선거에 녹색후보 등 독자후보 출마를 준비해온 환경운동연합과 자치연대의 태도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이들은 진보신당 창당보다 지방선거 공조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국적으로 진보세력의 연대 네트워크를 결성해 개혁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자치연대 소속 지방선거 출마예상자 가운데는 기성 보수정당과의 결합에 무게를 두는 인사들도 적지 않다. 결국 이런 다양한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정하느냐에 진보신당의 성패가 달려 있다.
진보세력 위기를 선거로 돌파할 건가
위기상황인 만큼 일단 출발은 순조롭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민노당, 환경련, 자치연대 대표자들은 지난 11월23일 한국노총 8층 대강당에서 “지자체선거 공동대응을 위한 1차 연석회의’를 열었다. 이들은 “노동, 동민, 시민, 청년 등이 광범위하게 포괄된 연대체 구성을 통해 제대로 된 지방자치를 구현해야 한다”는 큰 원칙에 동의했다. 아울러 △연석회의 정례화 △지역주민을 위한 공동 공약과 후보조정 논의 △정당명부제 도입 등 범국민적 정치사회개혁운동 공동실천 등에 합의했다. 진보신당 창당으로 직행하기 전에 최대공약수인 지방선거를 매개로 그 분위기를 좀더 숙성시키자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분열했던 진보세력들이 내년 양대 선거에는 진보정당이라는 공동브랜드를 내걸고 출사표를 던질 수 있을까.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사진/ "진보세력 모두 모여라!" 내년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진보정당 건설 움직임이 활발하다.
전국연합과 한국노총, 한총련은 이런 호소에 일단 공감했다. 정대연 전국연합 정책위원장은 “각계각층 민중의 정치적 진출은 가속화되고 있지만 이를 하나의 힘으로 묶어 세울 강력한 정치적 구심이 부재해 고립분산성이 극복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정식 한국노총 대외협력본부장은 “노총 내부에서도 독자적 정치세력화 일정을 앞당기자는 의견이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진보세력들이 진보신당 깃발에 선뜻 동조하고 나선 것은 좀 뜻밖이다. 민노당은 그동안 이들을 향해 끊임없이 동참을 호소했다. 하지만 민주노총과 전국빈민연합을 제외한 대다수 단체들은 민노당 활동에 회의적이었다.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정당활동은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훼손한다”며 주춤거렸다. 전국연합은 “진보정당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다수가 각계각층의 애국적 민주역량을 망라한 이른바 ‘민족민주 전선운동 강화’를 더 중요한 과제로 인식했다. 전국농민회도 민노당과의 결합보다는 DJ 정부의 농업정책에 더 기대를 걸었다. 한국노총은 아예 민노당을 “민주노총당”으로 깎아내리며, 기성 정치권과 정책연대를 통해 독자세력화 기반을 구축하는 전술을 선택했다. 2002년 대선에서 정당과 제휴를 통해 정권에 참여하고, 2004년 노동자와 국민대중의 독자정당을 건설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각개약진에 익숙했던 이들을 ‘단결’로 급속히 몰아간 직접적 계기는 10·25 재·보선이다. 민주노동당과 사회당이 진보의 깃발을 들고 출사표를 던졌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서울 동대문을에서 민노당 2.91% 사회당 1.8%, 구로을은 두 당이 각각 2.61%와 2.68%를 얻는 데 그쳤다. 지난 4·13 총선 때 민노당이 얻은 13.1%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이를 지역주의와 보수주의가 만연한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진보진영 다수는 더이상 각개약진 방식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상현 민노당 대변인은 “민노당조차 창당 이후 국민적 입지를 넓히지 못하면서 오히려 창당 프리미엄을 까먹는 상황에 부닥쳤다. 흩어져 싸우는 진보진영이 보수세력 중심의 정치구도를 돌파하는 것은 역부족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더 머뭇거리면 공멸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진보정당에 대한 장밋빛 미래가 아니라 “이번에도 흩어지면 전체가 몰락한다는” 위기의식이 진보세력을 ‘단결’과 ‘자기 변혁’으로 몰아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각개약진을 통한 역량강화 전술을 택했던 진보세력들은 요즘 그 한계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당장 전국농민회는 DJ 정부의 개방농정과 쌀값하락 등으로 생존권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한국노총도 기성정당과 정책연합에 대한 회의론만 거세지고 있다. 한국노총 한 관계자는 “97년 대선 때 DJ를 밀고, 지난해 총선에서는 정당을 가리지 않고 친노동 후보를 지원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뭐가 남았나. 구조조정만 가속화되고 있다. 믿는 놈한테 발등 찍힌 기분이다”고 말했다. 전국연합도 마찬가지다. 전선운동 강화 노선이 노동운동을 포괄하지 못하는 등 명백한 한계를 드러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심각성은 앞날이 더 암담하다는 데 있다. 내년 양대 선거는 지역대결 구도가 더 강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보수세력의 대표를 자임해온 한나라당의 집권이 예측되는 상황이다. 결국 진보진영이 단합해 보수 대 진보의 대결구도를 만들지 못한다면 보수정당의 틈바구니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되거나 보수정당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투항하는 상황이 닥칠 수밖에 없다. 전국연합·한총련 가세… 한국노총 ‘고민중’

사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민노당 대표자 등이 지난 11월23일 지자체선거 공동대응을 위해 모임을 가졌다.(박승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