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설화 시한폭탄’이 터졌다
정청래 의원이 재·보궐 선거가 치러진 4월29일 당 최고위원회의에 어두운 표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그럼에도 그는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2등 최고위원이 됐다. 현장 당원 투표에선 꼴찌를 했으나, 사전 국민 여론조사에서 1등을 해 종합 순위 2위가 됐다. 지역구(서울 마포을)를 거점으로 삼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기반으로 전국적 인지도를 높인 결과다. 그의 트위터 팔로어는 14만여 명이나 된다. 당 안팎의 눈치를 보지 않는 그의 현재적 위치를 살피려면, 당이 영입했거나 특정 정치인의 뒤를 따르다 정계에 들어온 대개의 486 의원들과 다른 그의 ‘개척형 정치 입문 과정’을 볼 필요가 있다. 건국대에 다니던 1989년 그는 “공안통치 배후인 미국의 내정간섭과 수입 개방 압력 중단”을 요구하며 주한 미국대사관저 점거농성을 했다. 미리 준비한 ‘포니엑셀’ 자동차를 담벽에 붙인 뒤 차 지붕을 밟고 대학생 6명이 3m 담장을 넘어 관저에 들어가 50여 분간 농성을 벌였다. 이후 그는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으로 2년간 감옥에 갇혔다. 출소 뒤 그는 10년간 서울 마포에서 학원을 운영했다. 한때 교직원이 1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정치 공간에 나선 것은 2002년 대선 정국에서다. 대선 직전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 등과 함께 인터넷 기반의 ‘정정당당’ 창당을 모색하다 무산되자, 노사모 일부 회원 등과 함께 언론·정치 개혁을 내세운 ‘국민의 힘’을 2003년 창립했다. 인터넷 중심의 시민정치운동 단체였다. 지지 후보 또는 낙선 후보를 걸러내는 ‘정치인 바로 알기 운동’, 친일 행위를 한 <조선일보>의 윤전기를 독립기념관에서 빼내는 운동 등을 전개했다. 첫째아들 이름을 ‘한백’(한라에서 백두까지)이라 지을 정도로 통일을 사명으로 여기는 그는 이른바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이 남북 분단 고착화를 위한 갈등적 보도를 하고 여론시장을 독점한다며 언론개혁 운동도 펼쳤다. 현재 그가 보수언론과 인터뷰하지 않고, 이들 신문사의 종합편성채널(종편)을 ‘종일편파방송’이라 부르며 출연하지 않는 것도 ‘국민의 힘’ 활동의 연속선상에 있다.
일찌감치 맛본 인터넷 기반 정치의 힘
정청래 의원이 지난 1월 당대표·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예비경선에서 다른 후보들과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수십 년 단련한 언어유희의 결과?
하지만 선명한 야당성을 강조하는 그의 강경 화법은 열광과 비판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탄다. 가령 그는 조경태 전 최고위원이 당을 분열시키는 발언을 일삼는다며 “최저위원” “정신적 새누리당 당원”이라고 규정하거나,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해 “바뀐 애(박근혜 대통령을 지칭), 방 빼”라고 트위트를 날렸다. 야당의 무력함과 여권의 오만에 비판적인 이들은 그의 ‘짤막한 규정’에 열성적 지지자가 되지만, 당 안에선 여권을 공격하는 그의 발언이 조마조마하다는 반응도 많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문예반에서 활동한 그는 언어적 유희를 활용하는 스타일이다. 자신을 소개할 때 ‘삼더이즘(더 낮게, 더 겸손하게, 더 열심히)과 사쾌이즘(유쾌·상쾌·통쾌하게 정치하면 국민이 흔쾌히 받아들인다)의 창시자’라고 지칭하는 식이다. 그를 잘 아는 이상호 전 민주당 청년위원장은 “순발력과 단어 구사가 뛰어나다. 상황의 본질을 빨리 파악하고 그걸 규정하는 강점이 있다. 그러다보니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점도 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빨리 써먹으려는 욕구가 강해서다. 순발력이 장점이자 단점이다”고 말했다.
‘공갈 표현’으로 당에 내홍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넘어, 당 일각에서 ‘SNS에 의존한 정치가 막말을 낳았다’며 정 최고위원의 ‘SNS 교감 활동’ 전체를 부정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정치권과 시민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까지 폄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정 최고위원은 국정원 대선 개입,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주민세·자동차세 인상 반대 의정활동 등을 하며 SNS로 관련 내용을 전파·공유해왔다. 정 최고위원의 지지자들은 현장에서 시민과 호흡하며 강한 야당을 대변해온 새정치연합의 ‘파워 SNS 정치인’이 공갈 발언을 계기로, ‘정치 지분’에 관심이 큰 당내 정치세력들의 위세에 눌리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정 최고위원은 약한 사람 대신 힘이 있는 대상을 공격하고, 코너에 몰린 사람을 위해 대신해 싸우는 특징이 있다. 정 최고위원이 이번 일을 좋은 공부의 기회로 삼아야겠지만, 너무 위축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상호 전 청년위원장은 말했다. 정 최고위원은 지난 4월18일 경찰의 차벽 안에서 고립된 세월호 유족들을 현장에서 지킨 유일한 국회의원이었다. 당시 그는 경찰의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집회 참가자와 경찰의 대치 상황을 푸는 중재를 이끌었다.
“정 최고위원이 ‘나는 중도·상류층을 확보할 자신이 없으니, 좌측 하단(강한 야당을 원하는 시민과 서민층)을 확보하도록 하겠다’고 하더라. 당은 충성적 지지층이 버텨줘야 하는데, 정 최고위원이 그 지지층을 모으는 역할을 했다”고 정봉주 전 의원은 말했다.
정청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주요 발언
“그가 너무 위축되지 않았으면”
하지만 새정치연합 내부에선 “정 최고위원이 ‘난 정의로워서 과감히 비판한다’는 자기 확신이 지나치게 강해 걱정이다”라는 의견이 많다. 더구나 이제 그는 발언의 무게가 큰 최고위원 자리에 있다. “정 최고위원이 트위터에 올린 글에 대한 리트위트 숫자, 페이스북 ‘좋아요’ 숫자와 같은 반응성에 너무 민감하다보면 (일반) 여론의 흐름을 잘못 읽을 수도 있다”고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는 말했다. 새정치연합은 그에 대한 징계 절차에 빠르게 들어갔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