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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MBC 인사평가, 상호성과 공정성 대신 일방성만 강화”

이성주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장이 말하는 MBC 구성원의 입장… “지금 MBC에선
거의 매달 정직, 징계, 부당전보가 일어난다… 그 속에서 가장 먼저 작동하는 건 자기보존을 위한 자기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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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08 15:56 수정 : 2014-12-08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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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3일 MBC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이성주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장을 만났다. 류우종 기자
지난주 <한겨레21>은 MBC가 ‘장기 저성과자 해고 절차’의 법적 정당성을 법무법인에 자문한 자료를 보도(제1039호 표지이야기 ‘치밀하고 교묘한, MBC 해고 프로젝트’)했다. 기획재정부가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에 대한 여론전을 벌이기도 전에, MBC는 정규직을 ‘저성과’라는 이유로 해고하기 위해 어떤 절차적 정당성을 갖춰야 하는지 법적 검토를 받았다. MBC는 보도가 나간 뒤 12월2일 “진영의 덫에 걸려 정당한 경영 행위를 호도한 보도”라며 보도 내용을 반박하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같은 날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는 “회사는 내놓은 입장 자료를 통해 <한겨레21>에 보도된 법률 자문 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했다”며 “합리적이지 못한 평가를 통해 직업적 소명에 충실하려는 직원들을 ‘편파적인 진영 논리’로 폄훼하고 그것도 모자라 징계와 해고의 칼날을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MBC 구성원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12월3일 이성주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장을 만났다. 그는 1995년 MBC에 입사한 20년차 기자이기도 하다. 노동조합 위원장을 하는 게 ‘편향의 낙인’이 돼버린 시대에 노조위원장을 하고 있다. 그 때문에 ‘나는 지금 편향적인가’ ‘내가 지금 서 있고 말하는 것은 상식에 기반하는가’를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한다고 했다.

평가의 근거는 ‘간부에 대한 신뢰’

-MBC는 직원들의 성과 여부에 대한 합리적 평가제도를 갖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노동자 입장에서 MBC의 인사평가제도는 합리적인가. =인사평가의 합리성과 공정성을 따지는 데는 ‘평가자가 객관적인가’ ‘능력에 따른 정량적 평가인가’에 대한 검증이 가장 중요하다. 그 때문에 다른 방송사를 포함해 대다수 기업은 평가를 검증하기 위한 여러 보완 장치를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직원들의 상향평가일 것이다. 그런데 MBC는 올해부터 되레 상향평가를 폐지했다. 11월 중순 열린 노사협의회에서 상향평가제도를 폐지한 이유를 묻자, 회사 쪽은 ‘부장에 대한 평가는 간부들이 한다. 신경 쓰지 말라’고 답했다. 평가 시스템에서 상호성과 공정성 대신 일방성을 강화한 셈이다.

-MBC의 인사평가 기준은 뭔가. 업적 평가의 경우 S·T·O·N·R 5개 등급으로 나눠 평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정량적 기준이 없다. 예를 들어 기자직군의 평가 항목은 업무기여도(50점), 업적 자기기술 평가(30점), 특종(20점)이다. 그런데 업무기여도를 따지는 정량적 기준이 없다. 리포트 횟수를 통해 업적을 평가할 수있을까? 협업이어서 리포트를 하지 않아도 중요한 취재를 담당하는 경우도 있다. 리포트마다 질도 다르다. 보도자료를 받아쓰는 리포트와 고발·심층 리포트는 다르다. 중요한 건 출입 부서에 따라 역할이 다르고, 각자의 역할이 모여 하나의 뉴스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그만큼 정교한 평가 기준이 필요한데, 현재까지는 제시된 기준이 없다.

-회사는 인사평가에서 가장 낮은 등급인 R등급을 통해 해고할 수 있는지까지 자문했다. 그러려면 적어도 R등급은 기준이 있는 것 아닌가.

=R등급은 정말 황당하다. R등급을 세 번 받으면 인사위원회를 통해 징계에 회부된다. 심지어 이번에 밝혀진 문건에 토대해서 보건대, 회사는 R등급을 근거로 교육발령·대기발령·해고에까지 이르는 프로세스를 검토했다. 이건 사원에게 엄청난 신상 변화를 일으키고 불이익한 조건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런 프로세스를 검토하는 전제조건으로 R를 부여할 때 정량적 평가가 이뤄져야 하는데, 없다.


예를 들어 올해 상반기 평가에서 이우환 PD가 R등급을 받았다. 이우환 PD는 올해 3월 <불만제로> 프로그램에서 연출한 ‘잇몸약의 배신’으로 한국PD연합회가 주는 작품상을 받았다. 최근에는 ‘화장’(가제)이라는 기획안이 통과돼 초고화질(UHD) 다큐 제작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충처리위원회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평가자의 평가가 엇갈렸다. 바로 위 부장은 좋은 평가를 했는데 국장이 나쁘게 평가했다. ‘평가가 상반되고 수상 실적도 있는데 왜 R등급이냐’라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국장의 판단을 믿는다”라는 것이었다. 인사평가의 근거로 구체화된 기준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간부에 대한 신뢰’가 기준인 셈이다. 노동조합에서 민주방송실천위원회(민실위) 간사를 맡고 있는 김재영 PD는 R보다 한 등급 위인 N등급을 받았다. ‘수·우·미·양·가’로 따지면 ‘양’이다. 김재영 PD가 N등급을 받은 이유에 대해 고충처리위원회에 참가한 회사 쪽 인사는 “민실위 보고서를 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건 명백한 노동탄압이다. 회사는 사원들을 향해 ‘진영의 덫에 걸려 회사를 비판한다’고 하지만 회사야말로 진영 논리에 빠져 합법적으로 보장된 노동자의 정당한 노조활동을 근거로 인사등급을 낮게 매기고 있는 셈이다.

‘같이 일하기 어렵다’는 말에 교육발령

-10월31일 교육발령 조치를 받은 12명은 어떤 이유로 교육발령 조치를 받은 건가.

=12명 가운데는 앞서 언급한 이우환 PD도 있고, 역시 <불만제로> 프로그램에서 ‘자동차보험의 두 얼굴’ 편을 연출해 6월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선정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받은 이춘근 PD도 있다. 이춘근 PD의 경우 ‘광우병’ 편을 제작해 이미 여러 차례 징계를 받았다. 노사협의회에서 도대체 이 사람들이 교육발령을 받은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은 “부서들에서 같이 일하기가 어렵다고 말한 사람을 뽑아낸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자의적인 기준인가. 어떤 기준으로 교육발령 대상자를 뽑았는지 정량적으로 제시되는 기준은 없고 누군가가 ‘같이 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는 이유가 교육발령의 근거다. 이런 인사를 어떻게 사원들이 납득하고 받아들이겠나.

-MBC는 10월31일 12명을 교육발령하고 그 가운데 5명을 대기발령한 이유로 ‘올해 영업이익 적자가 500억원으로 예상되는 등 미디어 경쟁 심화로 수익 구조가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성과를 내고자 하는 전문가 조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말했다. 이 설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10월31일 교육발령 인사 12명 가운데 7명은 다시 인사를 냈고, 5명은 대기발령 중이다. 그런데 이 7명 가운데 제작부서로 돌아간 사람은 기자 1명에 불과하고 앞서 언급한 이우환 PD나 이춘근 PD 등은 다 비제작부서로 갔다. 이 외에도 많은 기자와 PD들이 비제작부서로 갔다. 예를 들면 영화 <제보자>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모두가 금과옥조로 받아들이던 황우석 박사의 거짓말을 파헤친 한학수 PD는 신사업개발센터로 감으로써 연출권을 빼앗겼다. 그런데 회사가 정말 ‘성과를 내기 위해 전문가 조직’을 만들려면 사업에 특화된 인재를 찾아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신사업이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업적 마인드도 없는 사람을 신사업 개발하라고 보내놓으면 사업 개발이 제대로 되겠나. 축구 잘하는 사람한테 야구 하라고 배트를 주는 셈이다. 한학수 PD는 10월31일에 발령이 났는데, 그 전에 연출하던 ‘god 다큐’를 마저 찍어야 해서 한 달 동안은 새로 발령 난 부서에 가지도 못했다. 이게 과연 ‘전문가 조직’을 만들기 위해 고심한 인사라고 볼 수 있는가.

전문가 조직을 만들려면, 그 일에 적합한 전문가를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배치해야 한다. 김재영 PD의 경우 <남극의 눈물>을 연출해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의 TV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이번 인사에서 편성국에서 방송이 잘 나가는지 체크하는 MD로 발령 났다. 김재영 PD가 <남극의 눈물>을 만들면서, <불만제로>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편집실에서 밤을 새웠으며, 얼마나 많이 작가들과 회의했으며, 얼마나 많이 그림을 찍고 봤겠는가. 그런 노하우는 정량적으로 평가하거나 비용으로 환산할 수 없다. 그건 MBC가 가진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데 그 노하우를 다 버리는 것이다. 이런 인사를 내놓고 ‘전문가 조직’을 말하면 그 ‘전문가’는 어떤 전문가인지 이해할 수 없다. 경영진이 말하는 어휘가 우리와 너무 다르다.

“건강한 창의성과 자율성을 살려야”

-MBC는 저성과자에 대한 조치를 통해 국민과 시청자를 위한 방송이라는 본질을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MBC는 가장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회사였다. ‘뉴스데스크’라는 포맷을 만든 것도 MBC였고, 을 통해 탐사저널리즘 영역을 구축한 것도, 몰래카메라 같은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의 기원을 연 곳도 MBC였다. 지금은 대표 프로그램도, 어젠다 세팅을 하는 뉴스도 없다. 지금 MBC에선 거의 매달 정직, 징계, 부당전보가 일어난다. 보도국에서 보도 방향과 관련해 의견을 말했다 싶으면, 곧 다른 부서로 튕겨져나간다. 의사결정 구조는 하향식이고 일방적이다. 교양제작국이 없어졌을 때 편성기획부에서도 그 사실을 몰랐고, 수시평가제도를 도입하는데 평가의 가이드라인 하나 없이 ‘하라’고만 했다가 안 한 사원 20여 명을 징계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구도 창의력을 발휘하며 일에 매진할 수 없다. 가장 먼저 작동하는 것은 자기보존을 위한 자기검열이다. 저성과자 평가의 객관성도 문제지만, 누군가를 저성과자로 분류해 퇴출하겠다는 회사의 방침은 경직성을 심화시킬 뿐이다. 요즘 7층 보도국은 정말 조용하다고 한다. 원래 보도국은 건강한 토론을 통해 살아 있는 뉴스를 만드는 곳이었다. MBC가 정말 수익성을 회복하고 국민과 시청자를 위한 방송이라는 본질을 회복하려면 건강한 창의성과 자율성을 살려야 한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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