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최근 “무상급식을 (지급할) 법적인 근거가 없다”며 무상복지 논쟁에 불을 붙였다. 황우여 교육부총리는 지난 11월20일 무상보육의 일환인 누리과정 예산 증액(5600억원)에 합의했다가 여당지도부의 반발로 묵살되는 수모를 겪었다. 10월29일두 부총리가 국회에서 얘기하는 모습. 한겨레 김경호 기자
무상복지를 제안한 옛 민노당 관계자들은 ‘무상=공짜’로 단순화한 여권의 주장이 자신들이 최초 주장한 무상복지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났다고 말한다. 국가재정이 어려워지든 말든 공짜로 의료·급식·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정치적 으름장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당시 민노당은 온 국민이 내는 각종 세금 외에, 일정 금액 이상의 고소득자에게 추가적으로 세금(부유세)을 매겨 이를 사회복지 예산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민노당 정책부장 등을 지내며 부유세 법안을 주도적으로 만든 김정진 변호사는 “그때 무상복지는 고소득자에게 좀더 과세해서 그 재원으로 복지를 확대하자는 것이 전제된 개념이었다. 그래서 사회서비스(급식·교육·의료 등)를 이용하는 시점에 대가(돈)를 지불할 능력이 없더라도 국가 전체의 조세체계에서 그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특혜성 감세 폐지, 사회적 합의를 거친 일정 수준의 증세를 통해 국가재정 규모를 늘려 복지를 확대하자는 무상복지의 최초 정신이 있던 자리에, ‘무상복지는 공짜다, 아니다’라는 정치적 논쟁이 현재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정작 야권 자신이 복지정책을 대중에게 쉽게 각인시킨다며 ‘무상’이란 용어에 기댐으로써 여권의 공짜 논쟁에 휘말린 측면이 있다는 지적도 있다. 야권에서 패착으로 부르는 정책 슬로건이 ‘무상버스’다. 올해 지방선거에서 새정치연합 경기지사 예비후보로 나선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이 내건 공약이다. 출퇴근 시간에 버스 집중 배차, 산간·오지에 버스 노선 투입, 버스 요금 할인 등 버스공영제가 포괄하는 서비스가 다양한데도 김상곤 후보가 이를 ‘무상버스’라고 이름 붙인 뒤 ‘버스공영제=무상버스=요금 공짜’란 구도에 갇히고 말았다. 경제학 박사인 우석훈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버스공영제에서) 요금은 단계적으로 줄여갈 수 있는 건데 무상버스란 이름으로 최종 단계(요금은 공짜)를 던지니까 바로 ‘그게 되겠느냐’는 논란을 불렀다”고 말했다. 야권에선 무상복지에 공짜란 올가미를 씌운 여권의 의도에 말려 폭넓게 사용해온 용어를 바꿀 필요가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무상의료와 무상보육이란 말이 국가가 의료서비스와 아이들 보육을 책임진다는 의미를 선명하게 담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철 전 부대표는 “무상급식은 현재 의무급식 등으로도 이미 불리고 있지만, 무상의료·무상보육은 후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상복지 대신 ‘보편적 복지’ ‘국가복지’란 용어를 쓰자는 주장이 있다. 이상이 공동대표는 “무상복지란 말이 이념적 갈등을 일으키는 측면이 있다. 2010년 지방선거를 거치면서 보편적 복지가 ‘누구나 균등하게 보장받는다’는 뜻이란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 보편적 복지가 이제 정치·사회적 시민권을 얻었으니 보편적 급식, 보편적 보육 등으로 불러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새누리당이 무상복지 논쟁을 재점화하고 있는데 유감스럽고 안타깝다. 이번 기회에 무상복지라는 표현보다 국민에 대한 기본복지, 의무복지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교육 현장에서 이뤄지는 아이들의 급식도 의무교육의 일환이며, 아이들 보육은 국가의 기본의무라는 정신을 표현에 담자는 것이다. 이시종 충북지사도 지난 11월10일 도청 확대간부회의에서 “초·중·고 학생에 대한 무상급식은 ‘무상’이라기보다 ‘국가 의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 논쟁을 합의의 영토로 하지만 표현의 변화를 말하는 이들도 우리 사회의 복지 논쟁에서 용어 문제는 중요한 본질이 아니라고 한목소리로 얘기한다. ‘무상급식은 야권 공약이고, 무상보육은 박근혜 대통령 공약’ 따위의 이분법적 대결 구도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문진영 서강대 교수(사회복지)의 얘기다. “복지 논의를 정파적 이해관계의 쟁투장이 아닌, 합의의 영토에 편입시켜야 한다. ‘합의의 영토’는 진보와 보수의 이념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최소한 이것만은 지키자’고 합의하는 것이다. 무상복지가 공짜일까? (교육과 보육을 받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 그걸(복지서비스) 받은 것을 두고 공짜라고 할 수 없다. 여야가 아이들의 교육(급식)과 보육은 권리이며, 그 권리성을 보장한다는 것에 최소한 합의하면 (공짜·무상) 논쟁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