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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비판? 무관심이 제일 무서운 거다”

새누리당 1인 피켓 유세와 ‘혁신작렬’ 반바지와 카우보이모자 기획한
조동원 전 홍보기획본부장… “새정치연합은 누가 선거전략 고민하는지 잘 알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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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12 15:31 수정 : 2014-08-1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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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이영표 축구 해설위원이 했던 말을 정치언어로 바꾸면 ‘선거(월드컵)는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실력을) 증명하는 자리’다. 선거라는 단기간 승부에선 실책을 최소화하고 당의 역량과 전략, 이기려는 절박감을 최대치로 쏟아야 한다. 조동원 전 새누리당 홍보기획본부장은 ‘도와주세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습니다’란 1인 피켓 유세(6·4 지방선거)와 ‘혁신작렬’이 적힌 반팔 티셔츠·반바지·빨간색 카우보이모자 유세(7·30 재·보궐 선거)를 기획해 여권 지지층 결집을 유도했다. 세월호 참사를 지우려는 읍소 마케팅(1인 피켓)이자 ‘쇼’(반바지 유세)란 평가도 많았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의 연속 패배를 본 야권 지지층에선 “여당이 반바지라도 입을 때 야당은 뭘 했느냐”며 혀를 끌끌 차기 시작했다. 조 전 본부장은 “여당은 그렇게 못할 것이란 고정관념을 깬 것이다. (야권의) 혁신 어젠다를 여당으로 끌고 왔고, 야당의 세월호 심판론에 맞서 뭔가 바꾸겠다는 혁신 메시지를 처절하고 절실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자평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닙니다. 과학입니다’란 유명 광고문구를 만든 광고전문가였던 그는 2012년 총선과 대통령 선거 때 여권에 영입돼 한나라당의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당 상징색을 빨간색으로 바꾸는 파격을 주도했다. 대선 이후 당을 떠났다가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재영입됐다. 재보선을 마치고 경기도 혁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그를 지난 8월7일 서울 여의도에서 만났다.

무겁게 가는 대신 희망을 얘기하는 쪽으로

-새누리당 선거 전략·홍보를 기획하며 다시 두 번의 선거를 치렀다. 야당의 수비 구멍들이 보이던가.

=상대를 평가하고 싶지 않다. (다만) 새누리당은 민심의 흐름을 정치인보다 더 아는 날 인정하고 권한과 책임을 많이 줬다. 저쪽은 누가 선거 전략과 홍보를 고민하고 결정 권한을 가졌는지 (외부에서) 잘 알 수 없다. 그게 양쪽의 결정적 차이다. 날 다시 불렀을 때 조건을 걸었다. ‘내 맘대로 하게 해달라. 혁신적 어젠다를 제안할 테니 받아들여라.’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났고, 정부 무능·책임론이 크게 일었다. 지방선거 전략에 변화가 생겼나.


=당으로선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혁신 메시지를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갔다. 그래서 내가 제안한 ‘크레이지 파티’(미친 듯이 토론하고 미친 듯이 혁신하는 정당)란 모바일 정당을 5월14일 상임전국위원회에서 홍보위 산하에 두도록 결정했다. 모바일 정당은 독일 해적당을 참고했다. ‘카카오톡’에 익숙한 국민은 즉각적 소통과 피드백(반응)을 원한다. 누구나 모바일 정당 홈페이지에서 이슈·정책을 제안하면 의원들이 바로 입법화를 한다. 국민이 새누리당 혁신의 주체가 돼달라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문에 선거 광고도 요란하게 할 수 없어,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 포털 배너 광고에 ‘누구나 참여하는 크레이지 파티’를 첫 광고로 내보냈다. 새정치연합은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영상을 만들어 ‘국민을 지키겠다’며 무겁게 가더라. 그래서 우린 다른 얘기로 넘어갔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안전, 자식 생각을 하는 모습을 봤다. 인천·경기·부산의 기초·광역단체장 후보와 가족들을 모아 스케치북에 ‘누구누구 사랑해’라고 적은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 등에 띄웠다. 무언의 침묵에서 희망을 얘기하는 쪽으로 갔다. 이 영상을 이틀 만에 완성했다.

당을 바꾸려면 우리 당을 디스해야

-지방선거 막판에 1인 피켓 유세는 어떻게 나왔나.

=지방선거 7~10일 전에 무슨 얘기를 할까 고민했다. 투표율이 중요했고, 또 우리 지지층이 투표하도록 어떻게 호소하느냐가 중요했다. 2012년 대선 때는 보수 집결을 위해 막판에 ‘대한민국 지켜주십시오’란 플래카드를 걸었다. 지방선거 막판에 우리 지지자가 관심을 갖는 새누리당 지도부를 유권자와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할까를 생각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큰 목소리를 내면 좋지 않을 수 있어 1인 피켓 유세를 구상하고 있다가, 안대희 국무총리 후보자가 사퇴한 다음날 당 현안조정회의에서 1인 피켓 유세안을 꺼냈다.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했다. 당 지지율이 더 떨어지고 절망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사전투표 이틀째인 5월31일 전국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후보와 지도부가 1인 피켓 유세에 동참했고, 지도부가 6월1일 서울 광화문 피켓 유세에 나섰다.

-집권여당의 구걸 마케팅이란 비판도 있었다.

=무관심이 제일 무서운 거다. 그만큼 반대가 있다면 지지층이 적극 찬성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논란을 보면서 이거 성공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1인 피켓 유세 효과를 내가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지지자들이) 피켓 유세를 보고 대통령의 개혁 의지에 동의했거나 저렇게 읍소까지 하면서 절실하게 하는 걸 봐서는 뭔가 하겠구나라고 느꼈을 수 있다. 선거 기획은 윤상현 당시 사무총장과 같이 했다. 그 친구는 선거 때 친박이냐 비박이냐를 생각하지 않는다. 선거 승리만을 위해 매진한다.

-29살 이준석씨를 위원장으로 앉힌 새바위(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도 당신의 기획이라는데.

=지방선거 이후 문창극 총리 후보자 참사가 터졌다. 그렇게 도와달라 읍소하더니 이게 뭐냐는 정서가 비판 흐름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혁신 어젠다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던 문창극 참사가 정리된 뒤 새바위를 띄웠다. 당을 바꾸려면 (기구 이름부터) 우리 당을 디스(비판)해야 한다. 어린 놈이 위원장을 맡아 뭘 하겠느냐는 말도 나오겠지만, 당 혁신을 위해 이 정도의 충격파가 있어야 한다고 봤다.

-7·30 재보선은 야당의 공천 파동 때문에 상대적으로 수월하지 않았나.

=약점을 파고드는 전략은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미래지향적으로 비칠까 고민했다. 혁신이란 큰 틀은 흔들리지 않으면서 (새정치연합 권은희 후보 공천 공세 등) 작은 전술이 가는 것뿐이다. 이게 새누리당의 저력이다.

-반바지·카우보이모자 유세는 선거 막판에 어떻게 등장했나.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 구태가 되고 도태된다. 지하철역에 도열해서 인사하는 선거운동도 구태스럽다. 국민이 세월호로 스트레스를 받은 상황에서 선거마저 갑갑하면 되겠나. 옷 뒤에 ‘혁신작렬’ 메시지를 적으면 신선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근데 느닷없이 지도부가 반바지를 입고 나오면 ‘생쇼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7월17일 당사에서 반바지 패션 시연회, 7월27일 해운대에서 당직자들이 페이스페인팅 2차 퍼포먼스를 한 뒤 김무성 대표 등 지도부가 7월28~29일에 반바지를 입고 유세를 했다.

-당은 혁신 의지가 없는데, 당신의 여러 기획들이 혁신할 것처럼 분칠만 했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게 처절히 약속했는데 실천을 못하면 다음 총선에서 진다는 걸 지도부도 안다. 적어도 혁신 과제 10개 중 하나는 할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재보선 이틀 전에 이준석 새바위 위원장과 당 혁신 대담 영상까지 찍어 온라인에 띄웠다. 그런 것들이 모두 혁신 하겠다는 인증샷이 되어 당에 부담이 될 것이다.

혁신 과제 10개 중 하나는 할 것

-새누리당은 뭘 혁신해야 하나.

=당이 시끄러워야 한다. 일사불란함은 바람직하지 않다. 동료 의원과 당의 문제에 대해 침묵하면 그 폭탄과 칼침이 자기 목을 겨누게 될 것이다.

-당신은 여당에서 큰 선거를 4개 기획했다. 선거는 무엇인가.

=선거는 당이 발전하고 변화하겠다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

그의 말들 중 눈여겨볼 대목 하나는 ‘크레이지 파티’(www.crazyparty.or.kr)다. 새누리당은 모바일 정당에서 청소년들의 심야시간 인터넷 게임 제한(셧다운제) 폐지를 제안하자 바로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지금은 모바일 정당에서 18살 선거권 도입 여부 투표를 진행한다. 온라인 정당을 누차 외치던 야권은 이것도 새누리당에 밀릴 참이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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