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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번 선거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욕망만 남은 정치인들 체스판의 ‘가치’ 후보 김종철, 그의 선거운동본부에서 같이 보낸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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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8-05 15:20 수정 : 2014-08-05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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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개표가 이뤄지던 7월30일 밤, 서울 동작을 지역에 출마한 노동당 김종철 후보의 선거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정치 행위는 욕망과 가치의 교집합 안에서 이루어진다. 가치만 남은 정치는 무력하고 욕망만 남은 정치는 공허하다. 누구나 가치를 보여주는 정치인을 만나길 소망한다. 감동 있는 정당, 진정성 있는 정치인을 만나고 싶다고 말하는 이는 많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표는 강한 욕망으로 추동하는 정치인에게 던져진다. 가치만 남은 정당, 돈과 조직이 없는 정치인이 발 딛고 설 땅이 ‘여의도’에는 없다.

6년 동안 닦은 지역, 1.4% 득표

지난 7·30 재·보궐 선거에서 서울 동작을은 욕망만 남은 정치인들의 체스판이 되었다. 선거의 도는 관전하기 민망스러울 만치 곤두박질했다. 갑작스런 전략공천으로 주소지 이전을 하지 못한 나경원 새누리당 후보는 투표권도 없이 선거를 치렀고, 기동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사퇴)는 ‘동지의 지역구를 빼앗았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노회찬 정의당 후보 역시 진보정치 후배가 터 닦아온 지역구에 입성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다. “정치란 제한된 재화와 무제한적인 야심의 딜레마에 봉착하게 마련”이라지만, 가치와 비전을 상실하고 그 ‘무제한적인 야심’의 각축장으로 전락할 때 정치는 조롱거리가 된다.

그 가운데 묵묵히 가치를 밀고 나가는 김종철 노동당 후보도 있었다. 2008년 18대 총선 이후 6년 동안 동작을에서 터를 닦았지만 그는 끝내 1.4%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욕망의 정치를 경멸하지만 가치의 정치는 선택하지 않는 ‘표심’의 역설이다. 선거를 일주일 앞둔 지난 7월24일부터 이레 동안 김종철의 선거대책본부와 함께했다. 다시 밑바닥에서 시작하는 김종철의 이야기를 통해 타협 없는 가치의 정치, 고립된 진보정치에 가능한 미래가 있는지 더듬어본다.

【실패한 계산】 상상치 못한 기습이었다. 지난 7월24일 낮 3시, 김종철은 통합진보당 유선희 후보와의 단일화 기자회견을 앞두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막판 의견을 조율하는 중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기동민 후보가 같은 시각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퇴의 뜻을 밝혔다. “후보직을 사퇴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 진보당 원내행정실 모니터를 바라보는 김종철 수행팀의 표정이 굳어졌다.


전날 밤, 선본 관계자들은 유선희의 김종철 지지 사퇴, 노회찬-기동민 단일화 안건을 두고 회의를 벌였다. “노회찬에 대한 공세는 가급적 자제하자. 노회찬이 사퇴하고 기동민을 지지할 경우 선본의 긴급 성명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 기동민의 사퇴를 가정한 2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선거가 전쟁이라면, 다양한 시나리오에 근거한 전술의 변칙은 필수다. 기동민 사퇴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상태에서 김종철 선본은 그야말로 ‘눈 뜨고 당한’ 형국이었다.

김종철-유선희 단일화는 결국 기동민-노회찬 단일화의 종속변수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단일화로 김종철이 챙길 만한 이익은 별반 없는 상태였다. 언론의 관심은 자연히 김종철-노회찬의 추가적인 단일화 가능성에 쏠렸다. “(노회찬 후보의) 제안이 있다면 논의해봐야 하나 아직까진 말씀이 없다”는 정도의 수세적 답변으로 기자회견이 끝났다. “휴…. 슬픈 현실이죠.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네.”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선 김종철은 좀체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트위터에는 김종철의 양보를 주장하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었다. 차 안에서 김종철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김종철의 통 큰 결단이 필요하다” “김종철 사퇴하고 노회찬으로 단일화해야” 같은 주장을 한참 동안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6년 전 용산에서 동작으로 지역구를 옮겨올 때, 그와 아내 정혜정은 한 걸음씩 내딛기로 결심했다. 18대 총선 1758표(2.01%), 19대 총선 4708표(5.14%). 미미하지만 욕심 부리지 않고 그렇게 차근차근 해나갈 작정이었다. 이번 재보선에서 7~8%만 득표할 수 있길 바랐다. 거리에서 만난 주민들의 분위기가 좋았다. 진보정치 선배인 노회찬 정의당 후보가 동작을 출마를 선언하기 전까진 계산대로 진행될 것 같았다.

아우, 노동당! 꿈과 이상만 있는!

선거를 일주일 남겨두고 ‘멘탈’이 흔들렸다. 단일화 깜짝 발표 뒤 예정된 유세를 진행하지 못했다. “좀 긴장감을 가집시다.” 선거 홍보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아야 할 유선전화기의 전원이 꺼져 있는 것을 보고 김종철이 상근자들에게 한마디를 한다. 좀처럼 남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그다. 잔뜩 날이 서 있는 것이 분명했다. “유세하러 나가면 단일화할 건지 말 건지 사람들이 물어보겠지.” 후보가 혼자 한숨을 내쉰다.

거리 유세에서 그를 지켜보는 주민들의 마음은 엇갈렸다. “김종철을 쭉 지켜봤다”는 우지용(43)씨는 “기동민 후보의 사퇴, 노회찬 후보와의 단일화 과정을 지켜보며 유권자를 우롱하는 게 아닌가 했다”고 말했다. “뜻을 가졌으면 끝까지 가야지, 당략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모습이 신물납니다. 그 사람들은 동작구에 기여한 게 전혀 없잖아요. 노회찬 후보가 나왔지만 김종철씨보다 열심히 할까 의문입니다. 결국 그분 자신의 입지를 넓히자는 것이죠.” 임상열(33)씨의 생각은 다르다. “노회찬씨가 평범한 사람들의 힘든 삶을 잘 대변해왔다. 여차저차해서 그분이 동작을에 왔지만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했다. 임씨는 젊은 유권자지만 ‘주민 후보’라는 김종철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5번(김종철)은 여기에 산다는 것 말곤 잘 모르겠네요. 당선될 것 같지도 않고요. 나경원 후보가 되는 것보단 노회찬 후보가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지….”

막간의 쉬는 시간, 선본 안에서도 단일화를 두고 논쟁이 벌어진다. 김종철 후보의 친구로, 비노동당원인 이신호 수행팀장의 현실론과 김종철의 열렬한 지지자 김종옥 노동당 동작당협 부위원장의 이상론이 티격태격이다.

- 김종철이 단일화 안 하면 명분이 있어야 하잖아. 나경원이 괘씸해서 노회찬을 찍어야 한다는 사람들, 그런 평범한 동네 사람들한테 어떻게 설명할 거냐고.

- 에이, 투표는 차선이 아니라 최선을 선택하는 거지.

- 아니, 아들 친구 엄마들을 생각해봐. 그런 평범한 사람들한테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명할지….

- 사람이 실패하더라도 꿈과 이상을 가지고 해볼 만한 거 아닌가.

- 아우, 노동당! 꿈과 이상만 있는!

막판의 수동적 선거, 괴로운 대결 구도

김종철로선 진퇴양난의 처지가 되었다. 본인이 출마한 선거만 쳐도 이미 네 번을 치렀다. 상대를 비판해야 득표가 늘어나는 것이 선거의 이치임을 그가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자신의 목표이기도 한 ‘진보정치 재편’이라는 큰 가치를 내버릴 수 없었다. 선거를 마친 뒤 그는 다음과 같이 돌이켰다. “(노회찬 출마 이후) 선거의 전 과정이 다 괴로웠던 것 같아요. 대결 구도를 만들 수 없어서, 막판에 오랫동안 수동적으로 선거를 치러야 했거든요. 지역에서 초기엔 지지하는 분이 꽤 있었는데 노 후보가 나온 뒤 ‘단일화’ 압박도 들어왔고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동당 안에서는 진보당과의 ‘단일화’를 우려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폭풍 같은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미디어의 외면】 미디어 없는 정치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선거에서, 언론은 철저하게 승자독식을 위해 존재한다. ‘야마’(핵심) 잡기에 주력하는 선거 보도는 경마 중계식 판세 보도로 굳어진다. 이 과정에서 소수 정당은 그나마 기계적인 안배조차 구할 수 없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5% 이상을 득표하고도 ‘삼파전’ ‘양강 구도’의 선명한 제목에 밀린 김종철은 선거 기간 내내 ‘투명 후보’의 처지를 견뎌야 했다.

지난 7월 초, 김종철 후보가 서울 동작구 흑석초등학교 바로 옆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 매장 개설을 반대하는 1인시위에 나섰다. 차를 탄 채 음식을 주문하는 매장이 늘어나면 자동차 통행량도 증가해 초등학생들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비판했다(위쪽). 김 후보가 동작구 상인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 김종철 후보 선거대책본부 제공
기동민-노회찬 단일화로 잠시 언론의 관심이 김종철에게 모이긴 했다. 7월25일, 오전부터 언론 담당인 양솔규 노동당 기획조정실 국장에게 몇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후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간밤에 노회찬 쪽 관계자들을 만난 김종철은 동이 트고서야 귀가했다. 단일화를 약속하고 무엇을 구할 수 있을까. 명분이 없었다. 대화는 접점을 찾지 못했다. 애꿎은 오전 유세만 날렸다.

노회찬 선본의 움직임은 기민했다. 일찌감치 박지원, 기동민 등이 총출동한 집중 유세를 펼쳤다. 나경원 쪽에 ‘양자 TV토론’도 제안했다. ‘야권 단일후보 노회찬’ 펼침막을 거리마다 내걸었다. 작은 글씨로 ‘노회찬 기동민 단일화 성사!’라고 적긴 했지만 김종철을 고려하지 않은 지독한 마케팅이다. 상대 후보에게도 ‘투명 후보’ 신세가 되자 미디어를 향한 상근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배우자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다른 지역의 친구들한테 연락이 오네요. 김종철이 사퇴했냐고…. 조금만 매너 있게 해주면 좋을 텐데, 이래서 선거 끝나고 진보 재편이 가능할까요.”

“통합진보당은 안 돼!” “같은 당 아니에요?”

언론은 노회찬 선본의 입장을 그대로 받아쓰기했다. “야권 단일화 완성” “1대1 대결 구도 완성” “양자 구도로 진행”. 오해의 소지가 있는 기사가 넘쳐났다. 유권자들이 선거 정보를 접하는 대형 포털도 김종철을 배제했다. ‘다음’의 7·30 재보선 페이지엔 나경원·노회찬 두 후보는 물론, 사퇴한 진보당 유선희 후보까지 기재됐지만 5번만 쏙 빠져 있었다. 김종철 선본은 7월2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인터넷선거보도심의위원회에 YTN, <한겨레> 등 대표 기사 4건에 대해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잘 모르니 오해가 쌓인다. “통합진보당은 안 돼!” 이수역에서 저녁 퇴근길 인사 중인 김종철에게 한 중년 남성이 소리를 버럭 지르고 간다. “저는 노동당입니다.” 익숙한 반응에 쓴웃음을 지으며 김종철이 해명한다. 7월28일엔 결국 한 중년 여성을 지구대에 인계해야 했다. “이석기당은 안 됩니다! 살인교사당은 안 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 하시라”며 김종철이 마이크까지 건네줬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말만 거듭했다. 물론 다 알면서 망언을 하는 이도 있다. 노동당은 같은 날 “서울 동작을의 노회찬 후보는 종북 논란의 중심인 통합진보당 후보와 단일화한 노동당 김종철 후보와 추가 연대를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막장 공천이 노골적 종북 연대인 막장 연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 김을동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허위 사실 유포로 고발하기로 했다.

노동당인 줄을 알아도, 다른 진보정당과 무엇이 다른지 구별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반찬가게 아주머니가 묻는다. “이번에 노회찬씨도 나왔는데 같은 당 아니에요?”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이후 빚어진 지난한 ‘헤쳐 모여’를 짧은 시간 지나치는 시민들에게 설명할 길이 없다. 어쩌면 정치 인생 내내 지고 가야 할 짐일 것이다. 그래도 ‘악플’이라도 있는 쪽이 김종철은 낫다는 듯한 표정이다. “원래 정치인이 인기가 많아지면 모욕을 많이 당하게 마련이야. 나는 욕도 안 먹잖아요.”

【힘없는 조직, 힘없는 캠페인】 조직이 있는 후보는 정책이 없어도 당선된다. 조직이 없다면 정책이 있어도 미적지근하다. “시대가 부패한 상태로 남아 있는 한 (중략) 정치적 인간은 그가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부분적으로는 야수의 역할을 겸비해야 생존할 수 있다.”(마키아벨리) 정권심판론과 네거티브 전략에 그치는 선거 캠페인은 지리멸렬하지만 소수 정당의 후보는 그마저 없으면 눈길을 끌 수 없는 시절임이 분명하다.

“여러분, 나경원 후보를 국회로 보내주세요.” “강남 4구, 나경원이 만들겠습니다.” 나경원에겐 ‘연설’이 없다. 그냥 ‘저 나경원이에요’ 한마디만으로 박수 갈채가 나온다. 김무성 대표, 김을동 최고위원 등이 유세를 돕는 상황에선 박수가 더 커진다. 노회찬은 시종 심판론이다. “박근혜 정권 이대로는 안 됩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에 경고장을 보내주셔야 합니다.” 역시 내용은 없지만 호응이 있다.

‘저 나경원이에요’와 ‘심판론’ 사이에서

그에 견주면 김종철의 유세는 알맹이가 있는 편이다. 민주노동당 대변인 출신인 그는 원래 탁월한 연설가다. 노인 복지, 청년 일자리, 국회의원 연금 폐지를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약속한다. 한자리에 서서 오래 들으면 마음이 움직일 만하다. 하지만 ‘직관적’인 메시지는 아니다. “김종철! 언젠가는 될 것이다!” “똑똑하기야 제일 똑똑하지.” 지나던 주민들이 한두 마디씩 건네지만 귀가 확 트이는 반응을 끌어낼 만한 건 보이지 않았다. 특별히 새로운 의제가 눈에 띈 것도, ‘동작’이라는 지역의 특수성을 고려한 정책을 내놓은 것도 아니어서다. 전국 규모의 총선이 아니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진보정치가 가장 잘하는 일이 정책 개발이라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결국 자원의 문제일 수 있다. 조직의 체급이 크게 모자란다. 10명 안팎의 인력이 선본에 상근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거는 애초부터 후회 없이 완벽하게 치러지기 어려웠다. 후보 수행을 맡아줄 이가 없어 당 외부의 지역 이웃이 나섰고, 유세 지원 차량을 운전할 상근자가 없어 군을 막 제대한 청년당원이 급히 면허를 따 후보를 실어날랐다. 집중 유세를 위해 당원들이 지지 방문을 해도 30여 명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100명이 넘는 선거운동원이 좁은 뒷골목까지 터잡은 나경원·노회찬 선본과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어제오늘 당원들이 별로 모이질 않네요. 당 안팎 상황이 많이 안 좋아요. 최근 사기가 많이 떨어진 건 사실이에요.” 한 선본 상근자의 설명이다. 후보 본인의 개인기와 그를 철석같이 믿는 몇몇 당원들의 헌신이 꾸려가는 선거나 마찬가지였다. 1·2위 후보와 비교하면 충무로 블록버스터와 대학 독립영화 수준의 차이다.

어쩌면 득표 차는 딱 그만큼일지 모른다. 7월30일 밤, 개표 방송 직전 김종철은 나름 ‘과학적 분석’이라며 3.5~4%의 득표율을 예상했다. 더 높이 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지만, 그는 그마저 자신하기 어렵다고 했다. ‘1076표’. 결국 김종철이 얻은 최종 득표수다. 다시 처음이다. 아니, 처음만도 못하다. “호감도는 있는데 김종철에 대한 확고한 지지로 이어질 만한 단단함은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지역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2013년이니 아직 탄탄히 뿌리내리지 못한 면이 있고요. 우리 당 조직이 허술하다는 게 많이 드러난 것 같아요. 어쩔 수 있나요. 하던 것 꾸준히 해야지요.” 하던 것을 꾸준히 하면, 그와 그의 지지자들이 밀고 나가는 가치의 정치도 언젠가 이상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다시 7월29일 자정, 김종철이 지난 6월19일 서울 동작을 지역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한 뒤 쉼없이 메꿔온 40여 일의 여정이 저물고 있었다. 마지막 기념촬영을 위해 선거운동원들이 남성시장 입구로 모여들었다. 질 것을 알면서도, 질 거라면 그만 빠져달라는 비난과 싸우면서도 무거운 다리를 끌고 경주를 완주한 김종철과 지지자들의 표정에 비로소 ‘할 바를 다했다’는 안도가 깃들었다.

야수가 되지 않고 가치를 지키는 일

그때 그들의 자축을 깨고 한 취객이 고함을 질렀다. “노회찬이 떨어뜨리려고 나온 거 아냐. 지지율 몇%도 안 나오면서.” 김종철이 나서서 그를 진정시켰다. “이번에 안 되더라도 나중에 하려고 합니다.” 그의 말이 취객에게 가닿을 리 없었다. 술친구들에게 끌려가며 취객이 다시 말했다. “뭐? 다음? 내가 볼 땐 당신은 100% 안 돼.” ‘최선’만으로 설득할 수 없는 관객 앞에 김종철과 지지자들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욕망을 믿는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야수가 되지 않고도 가치를 지키는 일이 가능한지 지금은 단언하기 어렵다. 언젠가 김종철의 발걸음이 증명할 일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 참고 문헌 <정치와 비전> 셸던 월린,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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