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단체장 권한 남용 제한을 둘러싸고 국회위원과 자치단체장의 계속되는 줄다리기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 남용 제한 방법을 둘러싼 국회의원과 자치단체장의 지리한 논쟁이 최근 다시 치열해지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10월16일 자치단체장의 책임 강화를 명분으로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먼저 눈에 띠는 것은 ‘주민청구징계제도’. 주민소환제를 변형한 이 제도는 유권자의 20% 이상, 또는 감사원장이 감사결과를 토대로 단체장에 대한 징계를 청구할 경우 독립기구인 ‘지방자치단체장윤리위원회’(대통령 임명 3명, 국회선출 3명, 대법원장 지명 3명으로 구성)에서 심사해 파면·해직·감봉·견책 등 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단체장 연임 허용 범위를 재선으로 제한하고, 기초단체장이 부단체장을 임면할 때 시·도지사와 협의를 거치는 방안 등을 내놓았다. 민주당은 “단체장의 월권행위에 대한 제재수단 마련을 요구하는 국민여론이 비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자치단체장 임명제는 독재적 발상”
그러나 단체장들은 “정부와 국회의 자치단체장 통제 음모가 드러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전국 232개 기초단체장들의 모임인 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회장 박원철 서울 구로구청장)는 오히려 편법적인 주민청구징계제도 대신 국회의원을 포함한 모든 선출식 공직자에게 주민소환제를 전면 실시하고,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을 배제하자고 맞불을 놓았다. 국회의원과 단체장의 힘겨루기 양상까지 보인다. 양쪽의 이해가 그만큼 첨예하게 엇갈린 사안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95년 7월 첫 민선단체장 선출 이후 자치단체장의 책임성 강화는 최대의 난제였다. 정치권과 행정자치부는 선거를 의식한 단체장의 선심 행정과 전시성 사업 남발에 따른 재정부담 증가, 자치단체의 님비현상에 따른 국책사업 차질, 부정부패 단체장의 잇따른 구속 등을 이유로 개선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특히 행정자치부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우수인력교류 확대 등을 내세워 단체장 임명제 전환과 부단체장 국가직 전환 등 구체적 대안을 모색해왔다. 김기재 행자부 장관 재임 시절에는 부단체장 국가직 전환 방침을 확정하고 단체장들을 설득하기도 했지만 “독재적 발상”이라는 반대여론 때문에 논의를 더 진전시키지는 못했다. 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지난해 11월29일. 임인배 의원(한나라당)이 여야의원 42명의 서명을 받아 자치단체장 임명제 전환을 내용으로 한 지방자치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당시 자치단체장들은 전국 비상대책위까지 구성해 임명제 철회를 요구하며 강하게 저항했고, 여야 지도부는 “몇몇 의원의 개인적 돌출행동”이라며 일단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이때부터 여야 정치권은 기초단체장의 무능과 비리 등 폐해개선을 명분으로 지방자치법 개정안 마련을 위한 내부 작업에 착수했다. 여야 정개특위는 특히 일정수 이상의 주민발의와 주민투표에 의해 단체장을 해임할 수 있는 주민소환제 도입, 부단체장을 국가직으로 전환하고 일정 권한을 법에 명시해 단체장의 인기영합 행정을 견제하는 방안 등을 긍정 검토하며 공론화 시기를 엿봤다. 위기의 단체장, 법개정에 결사항전 단체장들은 정치권의 이런 은밀한 움직임에 지금까지 여론몰이로 맞서왔다. 특히 정치권의 부단체장 국가직 전환 움직임이 구체화된 지난 8월부터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기초단체장 정당공천 폐지를 공개 주장하고 나섰다. “정당별 편가르기로 주민갈등을 부추기고 거액의 공천헌금을 낸 단체장들이 부패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국회의원들이 기초단체장을 통제할 수 있는 ‘끈’을 완전히 단절하겠다는 일종의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정치권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단체장들은 지난 10월11일에는 한발 더 나아갔다. 경기도 이천에 모인 전국 기초단체장들은 △현행 중앙집권체제를 기초단체 중심으로 지방분권화 △주민소환제와 주민투표제 전면 도입 △중앙정부의 재원을 지자체에 대폭 이양 등 6개항의 건의문을 채택하는 등 반발계수를 더욱 높였다. 국회와 정부쪽에 자치단체로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것이 ‘분권과 자치 확대’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다는 대응 논리를 펼친 것이다. 단체장들이 특히 그동안 주민소환제 도입을 거부하던 태도를 바꿔 광역·기초단체장은 물론 국회의원 등 모든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국민소환제를 도입하자고 주창하고 나선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부패집단으로 지목받는 국회의원들도 시민의 심판대에 함께 오르자는 논리인 것이다. 결국 반발계수를 높이며 10개월 이상 계속된 중앙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장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10월16일 민주당이 내놓은 지방자치법 개정안으로 중대한 충돌 국면을 맞게 됐다. 단체장들은 “중앙의 통제강화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개악이며 입법권을 남용해 경쟁자인 단체장을 국회의원 밑에 예속화하려는 음모”라며 전면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전국의 자치단체장들은 “주민청구징계제도와 단체장 연임제한 등을 그대로 밀어붙일 경우 위헌소송은 물론 단체장 총사퇴와 소속 정당 탈당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며 저항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도 “내년 6월 지방선거와 관련돼 있어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며 법개정을 서두르고 있어 앞으로 상당한 파란이 예상된다. 시민단체의 해법은 주민참여 확대 정치권과 자치단체의 힘겨루기가 심화되자 전국 270개 시민단체가 결합한 시민단체연대회의가 최근 이 문제에 본격적으로 발벗고 나섰다. 그동안 정치권과 단체장 양쪽을 모두 설득해온 시민단체연대회의는 지난 10월16일 민주당 개정안에 대해 “지방자치의 기본을 훼손하는 처사”라면서 주민소환제 전면 도입과 단체장 연임제한 논의 철회를 공식 요구하고 나섰다. 시민단체연대회의는 곧 자치단체장에게 중앙정부의 권한을 대폭 이양하고 지방재정 강화방안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제, 주민투표제를 전면 도입해 자치행정의 투명성 및 주민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별도로 제출하기로 했다. 지방자치는 계속 강화하되 주민감시 확대를 통해 자치단체장의 전횡 등 부정적 요소를 개선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시민단체연대회의의 이런 움직임은 국회와 자치단체장에게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주민참여 확대와 자치 강화라는 대의명분에 따른 정면승부를 벌일 것을 요구하는 압력이기도 하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사진/ 지난 10월15일 열린 서울시 은평구청장 보궐선거 합동연설회. 민주당은 단체장 연임 허용 범위를 재선으로 제한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내놓았다.(한겨레 이종찬 기자)
그러나 단체장들은 “정부와 국회의 자치단체장 통제 음모가 드러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전국 232개 기초단체장들의 모임인 시장·군수·구청장 협의회(회장 박원철 서울 구로구청장)는 오히려 편법적인 주민청구징계제도 대신 국회의원을 포함한 모든 선출식 공직자에게 주민소환제를 전면 실시하고, 기초단체장에 대한 정당공천을 배제하자고 맞불을 놓았다. 국회의원과 단체장의 힘겨루기 양상까지 보인다. 양쪽의 이해가 그만큼 첨예하게 엇갈린 사안이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95년 7월 첫 민선단체장 선출 이후 자치단체장의 책임성 강화는 최대의 난제였다. 정치권과 행정자치부는 선거를 의식한 단체장의 선심 행정과 전시성 사업 남발에 따른 재정부담 증가, 자치단체의 님비현상에 따른 국책사업 차질, 부정부패 단체장의 잇따른 구속 등을 이유로 개선 필요성을 제기해왔다. 특히 행정자치부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우수인력교류 확대 등을 내세워 단체장 임명제 전환과 부단체장 국가직 전환 등 구체적 대안을 모색해왔다. 김기재 행자부 장관 재임 시절에는 부단체장 국가직 전환 방침을 확정하고 단체장들을 설득하기도 했지만 “독재적 발상”이라는 반대여론 때문에 논의를 더 진전시키지는 못했다. 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지난해 11월29일. 임인배 의원(한나라당)이 여야의원 42명의 서명을 받아 자치단체장 임명제 전환을 내용으로 한 지방자치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당시 자치단체장들은 전국 비상대책위까지 구성해 임명제 철회를 요구하며 강하게 저항했고, 여야 지도부는 “몇몇 의원의 개인적 돌출행동”이라며 일단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이때부터 여야 정치권은 기초단체장의 무능과 비리 등 폐해개선을 명분으로 지방자치법 개정안 마련을 위한 내부 작업에 착수했다. 여야 정개특위는 특히 일정수 이상의 주민발의와 주민투표에 의해 단체장을 해임할 수 있는 주민소환제 도입, 부단체장을 국가직으로 전환하고 일정 권한을 법에 명시해 단체장의 인기영합 행정을 견제하는 방안 등을 긍정 검토하며 공론화 시기를 엿봤다. 위기의 단체장, 법개정에 결사항전 단체장들은 정치권의 이런 은밀한 움직임에 지금까지 여론몰이로 맞서왔다. 특히 정치권의 부단체장 국가직 전환 움직임이 구체화된 지난 8월부터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는 기초단체장 정당공천 폐지를 공개 주장하고 나섰다. “정당별 편가르기로 주민갈등을 부추기고 거액의 공천헌금을 낸 단체장들이 부패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국회의원들이 기초단체장을 통제할 수 있는 ‘끈’을 완전히 단절하겠다는 일종의 도전으로 받아들였다. 정치권의 최근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단체장들은 지난 10월11일에는 한발 더 나아갔다. 경기도 이천에 모인 전국 기초단체장들은 △현행 중앙집권체제를 기초단체 중심으로 지방분권화 △주민소환제와 주민투표제 전면 도입 △중앙정부의 재원을 지자체에 대폭 이양 등 6개항의 건의문을 채택하는 등 반발계수를 더욱 높였다. 국회와 정부쪽에 자치단체로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것이 ‘분권과 자치 확대’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다는 대응 논리를 펼친 것이다. 단체장들이 특히 그동안 주민소환제 도입을 거부하던 태도를 바꿔 광역·기초단체장은 물론 국회의원 등 모든 선출직 공무원에 대한 국민소환제를 도입하자고 주창하고 나선 것은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부패집단으로 지목받는 국회의원들도 시민의 심판대에 함께 오르자는 논리인 것이다. 결국 반발계수를 높이며 10개월 이상 계속된 중앙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장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10월16일 민주당이 내놓은 지방자치법 개정안으로 중대한 충돌 국면을 맞게 됐다. 단체장들은 “중앙의 통제강화로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개악이며 입법권을 남용해 경쟁자인 단체장을 국회의원 밑에 예속화하려는 음모”라며 전면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전국의 자치단체장들은 “주민청구징계제도와 단체장 연임제한 등을 그대로 밀어붙일 경우 위헌소송은 물론 단체장 총사퇴와 소속 정당 탈당까지도 고려할 수 있다”며 저항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도 “내년 6월 지방선거와 관련돼 있어 조속히 개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며 법개정을 서두르고 있어 앞으로 상당한 파란이 예상된다. 시민단체의 해법은 주민참여 확대 정치권과 자치단체의 힘겨루기가 심화되자 전국 270개 시민단체가 결합한 시민단체연대회의가 최근 이 문제에 본격적으로 발벗고 나섰다. 그동안 정치권과 단체장 양쪽을 모두 설득해온 시민단체연대회의는 지난 10월16일 민주당 개정안에 대해 “지방자치의 기본을 훼손하는 처사”라면서 주민소환제 전면 도입과 단체장 연임제한 논의 철회를 공식 요구하고 나섰다. 시민단체연대회의는 곧 자치단체장에게 중앙정부의 권한을 대폭 이양하고 지방재정 강화방안을 마련하면서, 동시에 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제, 주민투표제를 전면 도입해 자치행정의 투명성 및 주민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별도로 제출하기로 했다. 지방자치는 계속 강화하되 주민감시 확대를 통해 자치단체장의 전횡 등 부정적 요소를 개선하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시민단체연대회의의 이런 움직임은 국회와 자치단체장에게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주민참여 확대와 자치 강화라는 대의명분에 따른 정면승부를 벌일 것을 요구하는 압력이기도 하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