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도 판을 너무 키웠다. 중진 차출론 등 총동원령을 내리니까 선거판이 커졌고, 그러다보니 야권이 분열하면 안 된다는 정서도 커졌다. 안 의원에게 압박으로 작용했다. 여권이 조용히 선거를 치렀으면 ‘1여 2야’ 구도라서 나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어쨌든 안 의원 본인이 고리를 끊었다. 정치 지도자의 결정은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통합신당은 성공할까? 민주당과 안 의원 모두 모험에 나선 건데.
- 민주당은 보약을 먹어야 할 형편인데, 안 의원만 한 보약이 없었다. 민주당 누구라도 지방선거까지 안 의원에게 뭐라 들이대긴 어렵다. 지방선거 이후 친노·비노 구도가 된다 해도 안 의원에게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비노 쪽도 상당한 세가 있고, 차기 주자로 구심점이 필요하다. 친노 쪽도 바깥의 안철수보다 내부의 안철수와 싸우는 게 낫다. 안 의원이 해볼 만한 구도다. 정치의 주제를 바꾸는 게 핵심 과제다. 상대를 부정하는 문제 말고, 먹고사는 문제를 중심으로 치열하게 싸우는 식으로 정치의 주제를 바꾼다면, 그걸 중심으로 ‘안철수 어젠다’가 만들어진다면, 그게 리더십이다. 당내 정치에서 세력을 모아 ‘쪽수’가 많고 적고 따지게 되면 ‘안철수 현상’은 사라지고 ‘안철수’만 남게 된다.
- 국회의원 126석과 2석이 합쳤으면 2석 가진 쪽이 환호작약해야 한다. 5 대 5로 먹었다면, 셈법으로는 그렇다. 그런데 민주당은 환호하고, 안 의원 쪽은 호랑이굴에 들어간다고 한다. 나는 반반이다. 민주당이 호랑이굴이 아니라 토끼굴이라는 데 공감한다. 그러나 ‘민주당이 어떤 당인데’ ‘들어가서 결국 다 먹히는 것 아닌가’ 하는 것도 분명히 있다. 오랫동안 토끼굴이 해온 관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거다. 결국 통합신당에서 얼마나 새정치를 할 수 있는지는 안 의원 개인 리더십의 문제인데, 그게 아직까지 검증된 바가 없다.
- 통합신당의 기계적 효과 말고는 당분간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본다. 1+1=1.8만 돼도 성공이라고 본다. 더 빠질 가능성도 있다. 야권 통합이 너무 빈번해서 익숙하고 식상하기 때문이다. 혁신하기 싫은 사람들이 방편으로 삼아온 게 통합이었다. 2012년 민주통합당도 혁신 없는 통합이었잖나. 안 의원이 민주당을 얼마나 혁신하느냐가 최대 과제다. 안 의원이 인기 좀 있는 차기 주자 포지션으로 가면 금방 사그라질 것이다. 스타십만 갖고는 장사가 안 된다. 리더십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지방선거의 성패가 중요한데, 야권은 지금 이렇게 가면 수도권 전망이 나빠 보이지 않는다. 키포인트는 경기도지사 선거다. 서울을 지키고 경기를 이기면 안 의원은 날개를 하나 얻게 된다.
- 더구나 새누리당에는 ‘선거의 여왕’이 없다.
- 직접 뛰는 거 같던데. (웃음)
한귀영 - 안철수 지지층이 어떻게 할지도 관심사다. 여론조사에서는 대체로 통합신당이 7~8%포인트의 시너지 효과를 얻었다고 나온다. 나는 아직 제한적이라고 본다. 대선 때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48% 가운데 아직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다. 안 의원을 지지했던 중도보수층이 이탈할 거라는 얘기도 하는데, 그건 오히려 적을 걸로 본다. 안철수 지지층 가운데 88%가 통합신당으로 갔다면, 여론조사에서 그 정도 차이는 거의 다 간 것으로 간주된다. 최근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의 여성 유권자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책 이슈에서 안철수 지지층은 민주당과 한 집단으로 묶인다. 경제·사회·환경 이슈는 물론 안보도 다르지 않다. 두 세력이 합치면 안철수 지지층이 이탈하기보다는 모이는 효과가 더 클 것으로 본다. 안 의원이 그동안 자신의 지지층이 중도보수라고 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상돈 - 안철수 지지층은 막연한 게 아니었나. 보수 유권자는 아니고, 투표에 기권하기 쉬운 층, 정치적 무관심층, 정치를 도외시하는 젊은 직장인들, 막연히 그렇게 여긴 게 아니었나 싶다.
이철희 - 안철수 지지층은 ‘비민주당’이라는 게 맞는 듯 하다. 민주당은 싫고 새누리당은 아닌 것 같으니, 제3지역을 찾았던 거다. 안 의원은 ‘박근혜 벤치마킹’을 해야 한다. 대통령이 되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명박 대통령처럼 광역단체장을 거치는 건데, 안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하지 않기로 했으니 행정가로 성공해서 대통령으로 가는 길은 불가능해졌다. 그렇다면 정당을 끌고 가는 리더십으로 성공해야 한다. 김대중·김영삼·박근혜 사례다. 박근혜 대통령은 적당히 되는 것만 한 게 아니었다. 안 의원은 본인의 것을 대중에게 제안하면서 민주당 것을 깨고 가야 한다. 쉽지 않은 각오와 ‘깡다구’가 있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처럼 무서운 결기를 보여줘야 한다.
한귀영 - 2004년 총선 때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든다. 박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때 (다른 당 후보로) 독자 출마하려다 도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으로 들어갔고, 당내 세력 없이 2004년 총선에서 천막당사를 쳤다. 이번 선거에서 안 의원 처지도 비슷한 면이 있다.
이상돈 - 그때와 다른 것도 있다. 당시엔 한나라당이 완전히 어려웠다. 지금 민주당은 어쨌든 멀쩡하잖나? 당시 한나라당은 개헌 저지선을 내줄지 모른다는 절박함이 있었고, 박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아버지와 지역이 있다. 안 의원과 박 대통령이 같은 것도 있다. 대중성이다. 박 대통령은 자기 선거도 했지만 남의 선거도 이겼다. 안 의원이 이번에 자신을 버리고 박원순 시장이 이기도록 발 벗고 뛰는 식으로 가면 새누리당에 굉장히 큰 위협이 될 거다. 새누리당에는 이제 그런 역할을 할 사람이 없다. 중앙당에서 누가 간다고 하면 오히려 오지 말라고 할 판이다. 안 의원이 야권에서 ‘선거의 왕’이 될지 두고 보자.
심판론 안 먹힐 것… 종북 프레임도 약화
- 민주당과 안 의원은 기초단체 공천 폐지를 통합의 고리로 삼았다. 그러면서 ‘거짓의 정치 대 약속의 정치’라는 프레임을 제시했다. 박근혜 정부 심판론으로 가자는 것일까.
이철희 - 심판론이 작동하긴 어렵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높고, 임기 초반이라 심판론은 너무 이른 얘기다. 견제를 좀 하자고 하면 그나마 설득력이 있겠지만, 그건 구도를 너무 안이하게 잡는 거다. 2010년 지방선거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승부는 누가 누구를 심판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어젠다를 들고나오느냐에 달렸다. 예컨대 박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하면 야권은 ‘복지는 대박’이라면서 대안 프레임을 만들어야 한다.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레퍼토리를 들고 ‘한판 붙자’ 식으로 하면 안 먹힐 거라고 본다. 심판 문제가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를 누가 더 잘할 거냐의 싸움이 돼야 한다.
박 대통령이 “진정한 새정치는 민생을 챙기는 거”라고 말했다.
이철희 - 너무 승부사적이다. 굳이 안 해도 되는데, 그렇게 한마디 걸고 넘어갔다. (웃음)
이상돈 - 박 대통령도 이번 선거가 2010년의 재판이 되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한귀영 - 담담히 가도 될 텐데. 박 대통령이 조급해하는 것 아닌가. 자신에 대한 평가와 박근혜 정부에 대한 확고한 대중의 지지를 받는 것에 조급해하는 것 같다.
이철희 - 국가기관 대선 개입 논란에 대해 이번 지방선거에서 종지부를 찍고 싶어 하는 정서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꼭 이기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한귀영 - 심판론은 쉽지 않다. 2010년은 심판론이 작동할 여지가 충분했다. 대통령 임기 중반에 치러졌고, 2008년 촛불로 대중이 이명박 정부와 각을 세웠고, 무상급식이란 어젠다가 있었다. 이번 선거는 어젠다 측면에서도 각을 세우기 쉽지 않다. 복지정책의 경우에도 박 대통령이 기초노령연금을 아예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70%라도 하겠다는 거다.
이상돈 - 야당에서 어떤 중지를 모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야당은 정치 혁신, 박 대통령의 공약 파기와 미이행 등을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 여당이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게 없다. 기초선거 공천 폐지 문제는 선거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짐작을 못하겠다.
한귀영 - 민주당과 안 의원이 기초공천 폐지에 합의한 건 명분을 위한 명분이라고 생각한다. 기초공천은 폐해도 많지만, 유권자에게 정당이라는 가장 중요한 표식자를 해체하는 건 문제가 있다. 그런 면에서는 ‘약속 대 거짓’이라는 프레임은 설득력이 약하다.
이상돈 - 박 대통령이 기초공천 폐지를 포함해 공약을 우습게 안 건 사실이다. 야당이 그걸 제기하면 할 말이 없다. 어느 정도 크게 먹히진 않아도 상당히 얘기가 될 거라고 본다. 새누리당은 좋은 후보를 내는 거 말고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
이철희 - 일부에선 새누리당이 종북 프레임을 다시 들고나올 거라고 보기도 하던데.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이석기 의원 문제 등.
이상돈 - 통합진보당이 해산돼 후보가 안 나오면 야당에 유리한 거 아닌가? 그리고 2010년 지방선거 때 천안함 사건도 (새누리당에 유리한 쪽으로) 먹히지 않았다. 이석기 의원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이미 손을 털었다. ‘종북 시즌’은 이미 지난 걸로 본다.
이철희 - 새누리당이 차분히 선거를 치렀으면 의외로 소득이 있었을 텐데 너무 판을 크게 벌였다. 대통령 지지율과 상관없이 한 번은 (경고) 사인을 줘야 한다는 유권자 정서가 있다고 본다. 야권이 그걸 잘 읽으면 의외로 선전할 수도 있는데, 무지막지하게 심판하자고 들고나오면 복잡해질 거다.
승패 기준? 野는 경기, 與는 충청·강원
- 여야 총동원 체제인데, 선거 전망은 어떤가. 승패의 기준은 무엇이라고 보나.
이철희 - 야권은 경기도지사 선거가 관건이다.
이상돈 - 서울은 야당이 이긴다는 보장이 있나?
이철희 - 서울에서 지면 야당은 완전히 지는 걸로 봐야 한다.
한귀영 - 한 군데 꼽으라면 경기도다.
이상돈 -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충남·북과 강원이 모두 민주당인데, 이걸 야당이 다 지키면 심각해진다. 박 대통령도 그걸 걱정하는 거 아니겠나. 총선·대선에서 압승한 곳이니까 여당이 못해도 둘은 건져야 한다. 수도권 3곳 가운데 서울·경기를 모두 내주면 타격이 심하다. 대통령 임기가 3분의 1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패하면 정국 운영 추동력을 잃게 된다.
이철희 - MB 정부는 지방선거에서 지고도 끄떡없이 밀고 갔는데.
이상돈 - 그때는 서울(오세훈)·경기(김문수)를 이겨서 그걸로 연명한 거다. 야권이 노회찬·유시민 때문에 진 거다. 이번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후보가 얼마나 강한가, 안 의원의 유세가 얼마나 효력이 있는가가 변수다. 전체적으로는 어느 한쪽이 완패할 일은 없을 것 같다.
- 부산도 관심 지역인데.
이상돈 - 웬만해선 새누리당이 지킬 것이다.
이철희 - 야권이 이기는 싸움을 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 대선 때보다 득표율을 더 끌어올리는 싸움이라고 본다.
진행·정리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