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사건 증거 위조’는 ‘국가정보원 주연, 검찰 조연’으로 벌어졌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가 지난 2월16일 이 사건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한겨레 이정아
‘출-입-입-입’을 ‘출-입-출-입’으로 위조? 검찰은 10월 중순 국정원으로부터 허룽시 공안국이 발급했다는 출입경기록(문서①)을 2부 받게 된다. 하나(①-1)는 공안국 관인만 찍혀 있고, 다른 하나(①-2)는 공안국 관인과 공증처 관인이 찍혀 있다. 검찰은 10월24일 선양영사관에 “허룽시 공안국에 출입경기록(①-2)을 발급했다는 확인서를 받아달라”고 요청했다. 출입경기록을 공식 절차를 거쳐 받은 게 아니기 때문에 선양영사관을 통해 중국 쪽의 확인서를 받는 사후 작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쪽 출입경기록은 유씨에게 불리하게 돼 있다. 유씨는 2006년 어머니 장례를 치른 뒤 5월27일 오전 10시24분 중국으로 돌아왔다. 여기엔 이견이 없다. 그런데 검찰 쪽 문서에는 유씨가 같은 날 오전 11시16분에 북한으로 다시 갔다가 6월10일 중국에 돌아온 것으로 돼 있다. 중국 정부가 맞다고 인정한 변호인단 제출 문서에는 두 번 모두 ‘중국으로 나왔다’고 돼 있다. 중국 정부는 흔히 나타나는 시스템 오류일 뿐, 북한을 드나든 사실이 없다는 변호인 쪽 문서가 맞다고 밝혔다. 결국 시스템 오류로 인해 ‘출-입-입-입’ 순으로 부자연스럽게 돼 있는 문서를 검찰과 국정원이 ‘출-입-출-입’으로 바꾼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된다. 그렇게 기록돼 있어야 유씨가 북한에 다녀온 게 되기 때문이다. 검찰이 발급처 표시가 없어 증거로 내지 못했다고 밝힌 문서에도 ‘출-입-입-입’의 순서로 적혀 있다. 국정원은 수사 과정에서도 ‘출-입-입-입’ 순서로 적힌 자료를 근거로 유씨를 추궁했다고 한다. 검찰은 1심 공소장에서 유씨가 두만강을 건너 북한에 넘어갔다고 주장했는데, 북한으로 나간 ‘출’ 기록이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은 2심에서 ‘출-입-출-입’으로 순서가 바뀐 문서를 제출하면서, 두만강을 건너간 게 아니라 정식으로 출경했다고 말을 바꿨다. 검찰이 진짜 기록을 확보하고도 꿰어맞춘 뒤 증거로 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검찰 쪽 문서는 유씨의 여권 기록과도 맞지 않는다. 예컨대 유씨의 여권 기록에는 2003년 9월15일 북한에서 중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검찰 쪽 문서에는 거꾸로 돼 있다. 문제가 된 2006년 5월27일 기록뿐 아니라 유씨의 출입경기록 전체에 나타난 시스템 오류를 전부 ‘출-입’ 순서가 자연스럽게 되도록 바꾸다보니 여권 기록과 맞지 않게 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유씨의 중국 여권을 갖고 있지 않다. 검찰 관계자는 “여권 기록과 우리가 제출한 기록에 왜 차이가 나는지 우리도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문서 양식과 도장에 찍힌 담당 부서 이름도 다르다. 옌볜조선족자치주 공안국이 발급한 변호인 쪽 문서에는 유씨의 생년월일, 호적, 주소지, 신분증 번호 등이 모두 적혀 있지만, 검찰 쪽 문서에는 생년월일만 나와 있다. 발급처가 왜 유씨와 아무 관계가 없는 허룽시 공안국인지도 의문이다. 공안몰이 거셀수록 ‘조작 유혹’도… 두 번째는 허룽시 공안국이 출입경기록을 발급했다는 확인서(문서②)다. 검찰이 선양영사관에 요청했고, 선양영사관이 지난해 11월27일 허룽시 공안국으로부터 받아 검찰에 보냈다. 이 문서 역시 두 가지 버전이 존재하고, 맞춤법이 틀린 대목이 있다. 이날 오전 9시20분에 수신된 문서(②-1)는 선양시 번호가 찍혀 있다. 오전 10시40분에 수신된 문서(②-2)는 발신번호가 허룽시 공안국이다. 검찰은 “화룡시 공안국이 처음에 팩스 발신번호를 잘못 찍어 보냈고, 문제가 될 수 있어 공식 팩스번호로 다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검찰은 번호가 잘못됐다는 ②-1 문서를 12월6일 재판부에 제출했다가, 이 문서와 같은 날 받은 ②-2 문서를 12월13일에 다시 증거로 제출했다. 이 대목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명이 없다. 가장 큰 의혹은 선양영사관이 공식 절차를 밟아 중국 기관으로부터 발급받은 문서②에 대해서도 중국 정부가 위조라고 밝혔다는 데서 나온다. 특히 외교부는 자신들이 알고 있는 문서가 재판에 제출된 것과 동일한지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며 답변을 회피하고 있다. 동일하다면 허룽시 공안국이 위조 문서를 보냈다는 얘기인데 설득력이 떨어지고, 동일하지 않다면 허룽시 공안국이 보낸 공문을 누군가 위조했거나 보내지도 않은 공문을 꾸몄다는 얘기가 된다. 변호인단은 누군가 공문을 위조해 선양시에서 팩스로 보냈다가 발신번호가 잘못 기재된 걸 뒤늦게 알아차리고 다시 보낸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세 번째 문서는 국정원이 삼합세관으로부터 받았다는 ‘정황설명에 대한 답변서’(문서③)다. 변호인단이 유씨의 출입경기록에 시스템 오류가 있다는 삼합세관의 정황설명서(11월26일 발급)를 제출한 뒤, 삼합세관으로부터 “(시스템 오류가 아니라) 작업인의 입력 착오로 ‘출’과 ‘입’ 기록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정반대 내용의 답변서(12월13일 발급)를 받았다. 검찰의 ‘출-입-출-입’ 주장과 들어맞는 내용이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이 답변서 역시 원본으로 추정되는 문서에는 영사의 인증이 없는데, 며칠 뒤 영사의 인증이 찍힌 답변서 사본이 제출됐다”며 위조 가능성을 제기했다. 위조 의혹이 숱하게 제기되자, 해당 기관들은 ‘폭탄 돌리기’를 했다. 검찰은 국정원에서 받았다고 하고, 국정원은 선양영사관에서 받았다고 하고, 윤병세 외교장관은 “문서② 외에는 모르겠다”고 하고, 황교안 법무장관은 “문서 3건 모두 외교 경로를 거쳤다”고 했다. 의혹의 눈길은 국정원에 쏠린다. 문서①과 문서③은 국정원이 입수한 것이고, 선양영사관이 받았다는 문서②와 관련해서도 외교관이 외교 마찰을 빚을 공문서 위조에 관여할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2월21일 국회에 출석한 조백상 선양총영사는 문서①과 문서③에 대해 “(국정원 직원인) 이아무개 영사가 유관 정보기관이 획득한 문서에 대해 내용을 번역하고 사실을 확인한 개인 문서”라고 말했다. 이 영사에게 문서를 넘긴 인물도 국정원 직원으로 추정된다.
유우성씨는 여동생에 대한 국정원의 강압 수사로 간첩으로 몰렸다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희대의 외국 공문서 위조 사건으로 비화한 2심 재판은 언제 끝날까. 유씨가 지난 2월16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기자회견장에 앉아 있다.한겨레 신소영









